[내가 다시 자치단체장이 된다면③] 아래로부터의 변화가 진정한 변화

편집자주 / 2008년 9월 2일 오후2시 희망제작소 2층 희망모울에서는‘내가 다시 자치단체장이 된다면’의 세 번째 순서가 진행되었다. 세 번째 강연자는 진안지역의 발전을 위해 마을만들기 사업을 적극적으로 수행한 임수진 전 진안 군수이다. 임수진 전 군수는 지역의 근본적인 문제와 특성은 지역주민이 가장 잘 알고 있으며 변화를 주도하는 주체도 지역주민임을 역설하였다. 또한 진안지역 마을만들기 사업이 뿌리내리도록 기울였던 노력의 경험을 강연에서 풀어놓았다.

단체장이 생각하는 마을만들기 論

[##_1C|1224260183.jpg|width=”670″ height=”502″ alt=”?”|임수진 전 진안 군수가 재임 기간동안 진행한 마을만들기사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_##]

농민운동에서 지방자치운동으로

임수진 전 진안군수는 진안에서 출생한 진안 토박이다. 서울에서 휘문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대학을 가지 않고 현장으로 바로 가 4H 본부와 한국농촌문화연구회에서 활동했다. 가톨릭 농민회, 기독교 농민회활동을 하고 전국 농민회 총연맹에서 의장 의결기구에 참여해서 농민운동에 투신하였다.

임수진 군수는 ‘대부분의 농민운동이 중앙과제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지역의 경제적 협동을 위해 튼튼한 협동조합을 건설하거나 주민이 자발적으로 신용협동조합을 만드는 실제적인 마을만들기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때마침 크리스찬아카데미에서 마을개발 지도자 교육을 받고 1978년에 마을로 돌아가서 개발위원장과 마을의 이장을 하면서 지역개발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그 후 전라북도 도의원이 되어 의정활동 경험을 쌓고 이후 3선 연속 진안군수를 역임하고 자치단체의 마을개발에 대한 행정체계를 세웠다.

우리농촌공동체의 실정

임수진 전 군수는 ‘농촌 공동체, 집안의식, 고향의식, 동창의식이 와해되는 상황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다’고 했다. 우리사회의 농촌의 구성원은 실제로 사회적 약자인데 공동체를 만들지 못해 불이익을 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농민과 같은 사회적 약자가 대자본에 맞서기 위해 조직을 만들어 대항해도 부족한데 기존의 조직마저 와해되고 있는 실정을 예로들며 공동체의 복원을 강조했다.

그래서 그는 지역공동체의 복원에 목적을 두고 지역개발을 시작했다. 또한 지역공동체를 복원하기 위해서는 농민의 경제 능력이 향상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농촌 현실을 바꾸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_1C|1357335885.jpg|width=”670″ height=”502″ alt=”?”|참석한 청중들이 진지하게 강연을 듣고 있다 _##]

마을만들기의 기초는 기본 인프라

임수진 전 군수는 마을만들기를 하기 위해서 주위의 인력을 조사해보았다. 그러나 공무원이나 주민이 직접 마을만들기 사업을 수행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음을 느꼈다고 한다. 특히 1998년 IMF 이후 농촌 공동체는 해산되거나 통합되어 피폐한 상황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기본적인 인프라 구성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그는 사회복지시설, 병원, 노인요양, 유아원을 만들어 지역공동체를 유지하는 기초인프라를 구성하였다.

아울러 진안지역 공동체의 절실한 목표는 소득증대였다. 특히 영세농가의 경우 소득증대가 꼭 필요했다. 그래서 영세농이 직접 작목반과 조합을 만드는 일을 추진하게 했다. 기존의 행정체계는 상명하달식이라 주민들이 행정의 지원만 바라는 경우도 많았기에 영세농들이 직접 사업을 진행하도록 했다.

마을만들기의 수행에 관련한 인력과 예산은 어떻게 했나?

그래서 이를 전담할 수 있는 마을간사를 채용하였다. 마을간사는 동네일을 하면서 계획서, 회의록을 작성하거나 지속적으로 사업을 진행하는 사람을 말한다. 지역주민들은 농사일과 마을 간사일을 병행하기 어렵다. 그래서 귀농운동본부와 협의해 귀농자에게 100만원 정도 지원하고 마을에 정착할 때까지 마을간사로 일하도록 했다. 또한 이때 농림부에서 실시하는 마을사무장제도를 활용하여 현재는 20개 지역에서 마을만들기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마을만들기를 효과적으로 진행하기 위해서는 또한 연구자도 절실히 필요하다. 그래서 임 전 군수는 유정규 박사와 구자인 박사 채용해 사업을 진행했다고 한다. 지역주민의 소득을 증대를 위해 영세민 지원 대책을 썼다. 농협과 협조하여 대출이자 11.5%로 돈을 빌렸다. 그리고 농협에서 3.5% 지자체가 3%, 농민이 5% 이자를 부담하여 이자율을 줄였다. 농민에게 공돈을 줄 필요는 없지만 저리로 빌려줄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임수진 전 군수는 ‘내가 진안에 있는 이상 농민들에게 5% 이상 이자를 물수 있지 않도록 하였다’ 라고 말했다. 나중에는 해마다 군에서 소득기금을 조성하여 임수진 군수의 임기가 마지막인해에 106억을 조성했다. 이로서 영세농이 특별한 담보 없이도 돈을 빌릴수 있게 했다. 또한 행자부와 도에서 각각 특별교부세 10억과 5억을 받아 마을만들기 사업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었다.

[##_1C|1093455246.jpg|width=”670″ height=”502″ alt=”?”|희망제작소 김해창 부소장이 패널로 참여하여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_##]

진안의 마을만들기는 주민의 자발적인 움직임

진안의 마을만들기는 기존의 건설위주의 지역개발과는 다른 모습으로 진행되었다. ‘마을에 산초기름이 많다’ ‘홍삼이 있다’ ‘마이산이 있다’와 같은 11개 마을이 가진 특성을 바탕으로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임수진 전 군수는 공동으로 생산을 하고 동일한 브랜드로 이를 통합해유통하자고 제안했다. 그래서 대부분 마을만들기를 하면서 마을마다 가공공장을 하나씩 짓도록 유도했다. 농민이 단순한 농산물 생산자로는 살아가기 어렵고 배즙이나 홍삽즙 같은 2차가공물이 필요함을 주장한 것이다.

임수진 전 군수는 농민들에게‘사업이 실패할지라도 우리 힘으로 자발적으로 생산하자’고 말하곤 했다. 사업을 진행하다보면 당장은 힘들지만 지역명품이 되고 지역의 자랑이 되면 지속적으로 일감을 받아 진행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특히 이러한 사업은 대기업은 개입하지 말고 철저히 주민의 힘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또한 진안농산물의 유통과 브랜드를 구축하기 위해 전북지역 도시와 관계를 맺었다. 지금은 이러한 네트워크가 확대되어 진안지역 20개 마을의 네트워크가 전국적으로 형성되었다고 한다.

[용어 설명]

* 4H 본부: 청소년들에게 지.덕.노.체의 4-H이념을 생활화하여 민주시민으로 키워 지역 사회에 기여토록 하는 사회교육운동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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