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지난 17일(목) 희망제작소 세미나실에서는 한국고전번역원 원장과 다산연구소 이사장을 맡고 있는 박석무 원장이 비농업인의 입장에서 농업에 대해 강연하는 시간이 있었다. 이날 행사는 희망제작소 부설 농촌희망본부가 기획하고 한국농촌공사가 후원하는 “비농업인이 바라본 한국 농업농촌의 미래” 강좌의 일환으로 마련된 것이다.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와 최상용 희망제작소 고문의 인사말에 이어 등장한 박석무 원장은 “농업의 신 실학운동”이라는 주제로 다산 정약용의 농업관련 정책들을 여러 문헌 자료를 바탕으로 풀어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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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선생은 28세에 문과에 급제하고 등용된 후 29세 때 농책이라는 책문을 올리게 됩니다. 정조는 인재, 군사, 재정, 민산(백성 살림)과 관련된 4대 개혁을 주장하였는데 다산은 농업개혁을 통해 백성살림을 풍부하게 해야한다고 했던 것이지요.”

다산은 35~6세쯤 되던 해 함경도, 평안도, 황해도 삼각지 일대에 있는 곡산도부사로 부임하게 되었고 이 시절 응지농정소(임금의 뜻을 받들어 농업에 대해 올린 글)를 올리게 되었다고 한다. 이 글에는 유명한 삼농(三農)정책이 담겨져 있었다.

“삼농정책의 첫째는 후농(厚農)으로 농사꾼들이 후하게 먹고 살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편농(便農)으로 농사를 편하게 짓도록 도와주자는 것입니다. 셋째는 상농(上農)인데 농민들의 지위 향상을 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현재 농업문제를 이야기하라고 한다면 다산의 삼농정책을 구체적으로 낸다면 될 것으로 봅니다.”

박석무 원장은 특히 토지소유문제를 강조하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토지소유문제입니다. 후농이 되려면 그리고 이익이 남으려면 소작료를 안 바치게 하고 그 소득을 자신이 활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즉 경자유전정책이 강조됩니다. 후농의 핵심은 토지소유제도의 개혁에 있는 것이지요.”

박원장은 편농에 대해서도 언급하였다. “편농은 쉽게 말해 농업기계화입니다. 지금은 초등학생도 알고 있는 농업기계화이지만 200년 전에는 누구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시절 농기구를 개발하고 수리를 개발해야 한다고 말하는 다산의 생각이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이죠. 사람들이 농촌에 돌아오도록 하고자 한다면 농사가 쉬워져야 할 것이 아닙니까?”

그러나 박원장은 무엇보다 농민의 지위 상승, 즉 상농의 문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농민의 지위를 올려줘야 합니다. 어쩌면 바로 오늘을 위해서 200년 전 다산이 상농정책을 부르짖은 것일지도 모르죠. 요즘 농촌의 총각들에게는 시집올 규수가 없습니다. 또한 농사를 짓는 농민의 지위가 너무 낮습니다. 농민의 지위가 이렇게 낮은 이상은 사람들에게 농사를 짓게 할 수도, 농업이 발전할 수도 없습니다.”

박원장은 농업분야 공무원들과 정치지도자에 대해서 뼈있는 말을 남겼다. “다산 선생은 과거제도를 바꿔서 농사경험이 없으면 과거시험에 합격하게 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농업분야 공무원들이 농사 경험이 없이 농정을 펼치게 하면 안됩니다. 이것은 지역의 군의원과 도의원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지요.”

박원장은 여전제에 대해서도 언급하였다. 다산 정약용이 38세 되던 해, 농업제도, 토지제도에 있어서 전세계 유일무이하다는 독창적인 전론(田論) 1~7편을 썼다고 하는데 이를 요약해서 여전제(閭田制)라고 하였다.

“여(閭)는 마을 25호를 중심으로 한 마을 단위인데 다산은 여전을 통해서 농산물을 생산하는 방법을 강구하였습니다. 이것은 독창적인 논리로서 25~30호 되는 마을에서 각 농가가 개별적으로 농업을 유지할 것이 아니라 25호가 살고 있는 이 마을이 전체적으로 토지를 공유해서 농민들이 함께 공동으로 경작하고 수확해서 노동일수에 따라 분배해 준다는 것입니다.”

군대인력을 농업과 연결시키는 부분에 대해 박원장은 자신의 의견을 내비쳤다. “여전제에 나오는 재미있는 부분이 병농일치인데 여단위의 농민조직을 유사시에는 군대제도로 바꾸는 것이지요. 낮에는 농사짓고 밤에는 군대훈련을 시키는 식입니다. 전방 GOP 군인들을 제외한 나머지 2군과 3군지역의 병력은 평화 시 농촌에 투입해서 농업을 진흥시키는 일을 하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박원장은 다산의 글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은 글을 적고 강연을 마무리하였다.

科擧爲主(과거위주)
而道義不講(이도의불강)
信義壞以(신의괴의)
(과거 공부만을 주로 하면서 도의를 강론하지 않으니 사회적 신뢰가 무너지고 만다)

“인간사회는 서로 믿어야 유지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 농업현실을 보면 소비자가 농민을 믿지 못하고 있었요. 그러다보니 열심히 좋은 농산물을 생산한 농민들도 덩달아 피해를 보게 됩니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농업분야에서도 신뢰의 회복이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으로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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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 후 이어진 순서에서는 농업정책을 전공하고 있는 서울대 이태호 교수가 좌장을 맡아 전체토론을 진행하였다. 이태호 교수는 “소작제가 없어진 지금에도 경자유전이 중요한 것은 농업보조금이 땅을 소유한 사람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며 유기농은 몇 년이상 자기 밭에 공을 들여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 땅 가진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라며 박원장의 강연내용에 설명을 덧붙였다.

또한 현재 농업계에서는 농업, 농촌, 농민의 세부분으로 나누어 정책을 펼치고 있다면서 각 요소에 후농, 편농, 상농의 개념을 결합시키면 좋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 교수는 “박석무 원장님의 말씀대로 믿음이 중요한데 농민과 정부가 서로 믿지 못하고 농민이 시장(market)을 못믿는 상황이 되어버렸다”면서 신뢰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청중들도 박석무 원장의 강연에 대한 질문과 자신들의 의견을 제시하며 활발한 토론을 벌였다. 경기도 화성에서 목장을 운영하고 있는 한 여성 농업인은 “상농정책과 신뢰에 대한 이야기에 많은 감명을 받았다고 하면서 국민들이 우리 농산물을 보다 더 신뢰할 수 있는 방안 마련을 위한 연구가 더 활발해졌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밝히기도 하였다.

비농업인과 농업인의 연결을 통해 농촌에 희망을 주고 농촌에서 희망을 찾기 위해 기획된 “비농업인이 바라본 한국 농업농촌의 미래”강좌는 매월 셋째 주 목요일마다 개최되고 있으며 2월에는 패션기업 쌈지의 천호균 사장이 강연자로 나설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