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광모] 누가 고릴라를 보았는가

정광모의 국회를 디자인하자


– 국정감사 vs 국회감사


“흰색 셔츠를 입은 세 사람과 까만 색 셔츠를 입은 세 사람이 공을 가지고 서로에게 패스를 하고 있다. 동영상의 중간 쯤 고릴라 옷을 입은 사람이 천천히 걸어 들어와서 어슬렁거리다가 카메라를 향해 가슴을 쾅쾅 치고 나가 버린다. “

하버드대 심리학 교수인 댄 시몬스가 실험을 위해 보여준 30초짜리 동영상의 내용이다. 그는 실험전 실험 참가자들에게 관찰력 테스트를 한다고 하면서 흰색 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서로에게 몇 번이나 공을 패스했는지 세어 보라고 지시한 뒤 위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동영상이 끝나고 난 뒤 뭔가 이상한 것을 보지 않았는지 묻는다. 놀랍게도 아주 적은 수의 사람만이 고릴라를 보았다고 말한다. “고릴라를 못 보았나요?” 하면 몇 몇 사람은 자신의 눈을 믿지 못하고 다른 동영상을 보여 주었다고 항의하기도 한다. 인간의 심리학적 시야란 이렇게 형편없다.

여기서 고릴라를 ‘사회 조직’에서 한번 생각해보면 어떨까? 사람이 모여 어떤 조직을 만들면, 그 조직원은 조직의 관행에 익숙해져 ‘조직의 무능’이나 ‘조직의 관성’에서 오는 폐단에 무뎌지고 ‘조직의 쓴 맛’만 두려워하여 시야가 좁아지고 통찰력도 사라진다.
그렇다면 국정감사에서 고릴라는 없는 것일까?


‘국회 조직의 무능’과 ‘국회의 관성’


한나라당 김성태 의원은 ‘초선의원이 본 국감 중간 평가’를 홈페이지에 올렸다. “피감기관들은 내부자료를 숨기는 건 기본이고 도통 내놓질 않는다.”, “애당초 의원 1인당 10분의 질의, 5분의 보충질의를 통해 30여개 피감기관을 국민의 눈으로 제대로 감사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무리한 발상 아닌가?”, “사전에 질의서를 피감기관에 주고 피감기관은 짜놓은 답변을 하고, 이래서야 피감기관들이 긴장감 속에 국정감사를 준비할 수 있을까 싶다.”, “언론도 심히 유감이다. 리베이트, 인사청탁, 뇌물 수수 등 자극적이고 소위 섹시한 내용이 아니면 보도가 될 리 만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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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는 18대 국회 초선의원을 모두 조사했더니 “국감 이대론 안 된다”라고 응답한 의원이 98%였다. 응답자 105명 중 103명이 현행 국감제도를 고치거나 다른 제도로 대체해야 한다고 답하였다.

이 자료들을 보면 초선의원들은 대체로 국정 감사 속에 숨어 있는 고릴라를 간파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잘 보면 이 내용들은 매년 국감이 끝나면 익히 듣던 이야기다. 의원들이 생각하는 이슈별 집중감사제 등 개선책 역시 오래전에 나온 안과 비슷하다. 얼핏 보면 국정감사장에 어슬렁거리는 ‘국회 조직의 무능’과 ‘국회의 관성’이란 고릴라를 본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금방이라도 국감 제도를 고칠 것 같았지만 10년 넘게 국정감사 제도 개선 타령만 이어질 뿐 행동은 없다. 그들은 점차로 ‘언론보도’와 ‘의원 사이의 경쟁’이라는 ‘공’에 더 관심을 갖게 되고 ‘국회 조직의 무능’과 ‘국회의 관성’이 가진 폐단이라는 ‘고릴라’에는 무디어져서 그 응답은 일회성에 그치고 마는 것이다.

마침내 국회의장이 나섰다. 10월 24일 국회운영제도개선 자문위원회가 ‘국정감사제도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몰아치기식 국감 종식’ ‘국정감사 결과에 대한 사후 통제 강화’ ‘국감자료의 위원회별 관리’ 등 훌륭한 방안이 제시되었지만, 고릴라보다 공에 더 관심을 갖고 있는 국회의원들이 과연 국정감사의 기본 프레임을 바꾸는 이런 제도개선을 할 수 있을 지 의심스럽다.


국정감사가 부딪친 문제는 국회의 문제


국회의원이 바라보는 ‘공’은 ‘언론보도’와 ‘의원 사이의 경쟁’만이 아니다. 의원이 속한 정당의 요구도 크게 한 몫 한다. 실제로 의원실에서는 국감을 위해 많은 에너지를 쏟아 붓는다. 자료준비를 위해 두 달이 넘는 시간을 소비하고, 예산 심의 일정까지 줄여 가며 공을 들인다. 하지만 정치 이슈가 생기면 그 동안의 준비와 관계없이 국감장은 정쟁의 장으로 치닫기 일쑤다. 서민을 위한다고 하는 정치권의 많은 다툼이 정작 국민들에게는 자신들 집단 이익을 위해 하는 일처럼 보인다.

국정 감사에서 정쟁이 심해질수록 국민들은 정치를 혐오하게 된다. 정치판이 흙탕물이 되면 될수록 국민들은 그 나물에 그 밥이라 생각하게 되고 개혁적인 정치인의 입지는 더욱 좁아진다. 그러니 결국 그들이 노린 ‘공’도 놓치고 마는 것이다.

국정감사가 부딪친 문제는 국회의 문제다. 국회의원들의 ‘공’이 개인의 이익이나 조직의 이익을 넘어서지 못한다면 내년 이맘때도 또 다시 ‘국감 이대로는 안 된다’는 보도가 언론의 전면을 장식하게 될 것이다. 허장이 아닌 진정한 의미에서 ‘국민’을 중심에 두고 국정감사를 하는 것이야말로 정치 신뢰를 회복시키는 양약이 될 수 있다. 국회 스스로가 자신을 감사해보자. 과연 이번에 국회가 ‘조직의 무능’과 ‘조직 관성’을 극복할 수 있을는지 국회의 능력을 보여줄 때다.


* 이 칼럼은 여의도 통신에 함께 게재합니다.


[##_1L|1166120864.jpg|width=”120″ height=”91″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_##] 정광모는 부산에서 법률사무소 사무장으로 10여년 일하며 이혼 소송을 많이 겪었다. 아이까지 낳은 부부라도 헤어질 때면 원수로 변하는 모습을 보고 인생무상을 절감했다.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일하며 국록을 축내다 미안한 마음에 『또 파? 눈 먼 돈 대한민국 예산』이란 예산비평서를 냈다. 희망제작소에서 공공재정 연구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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