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함께 일하는 협동조합

안신숙 희망제작소 일본 주재 객원연구위원이 전하는 일본, 일본 시민사회, 일본 지역의 이야기. 대중매체를 통해서는 접하기 힘든, 일본 사회를 움직이는 또 다른 힘에 대한 이야기를 일본 현지에서 생생하게 전해드립니다.

안신숙의 일본통신 (27-2)
일본 NPO 워커즈 콜렉티브 협의회의 새로운 도전
– 누구나 함께 일하는 협동조합

가나가와 워커즈 콜렉티브 연합회가 추진하는 또 하나의 사업이 바로 ‘워커즈 콜렉티브 핫피상(이하 핫피상)’이다. 핫피상은 지역 고령자들의 재택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워커즈 콜렉티브다. 주로 혼자 또는 부부만 사는 고령자들에게 청소나 정원 풀 뽑기, 벽지와 창문지 갈기, 병원과 쇼핑 동행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지역의 고령자들이 나이 때문에 스스로 해결하기 힘든 생활 문제를 의뢰하면, 핫피상은 무슨일이든 반드시 일반 조합원과 청년 조합원이 팀을 이뤄 고령자의 집으로 출장을 간다. 현재 시니어 조합원 8명과 청년 조합원 15명이 핫피상을 구성하고 있다. 2012년 조합원들이 5,000엔씩 출자해서 지역의 커뮤니티 하우스 ‘바바노이에(할매의 집)’에 사무실을 두고 설립해 올봄에 두 돌을 맞이했다.

마침 지난 일요일 핫피상의 월례회의를 겸한 정기 총회가 있어 참관했다. 총회장에는 핫피상의 일 년을 기록한 영상이 흐르고 있었다. 그동안의 활동 사진을 모아 조합원이 직접 만들었다고 하는데 아마추어 실력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만큼 훌륭했다. 청년들은 지난 일 년을 돌아보며 각자 소감을 얘기했다. “이제 혼자서도 도배를 할 수 있게 돼 너무 기쁘다. 앞으로 기술을 더욱 연마하고 싶다.” “동료가 많이 생겨서 기쁘다.” “일정표를 까맣게 덮을 정도로 일이 많아졌음 좋겠다.” “개호 일을 조금씩 배워서 상근자로 일할 수 있는 곳을 찾고 싶다.” “취직이 결정돼 다음 달부터 출근한다. 핫피상에서 일 년 동안 일하면서 자신감을 회복한 덕분이다.” 이처럼 청년 조합원들에게 있어서 핫피상은 일터이기도 하지만 동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공동체이기도 하다. 이들은 매월 1회 월례회의를 갖고 함께 점심식사를 하면서 교류의 시간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즐겁다고 한다.

이용자들의 반응도 무척 좋다. “작년에 남편이 죽고 혼자 살면서 우울증 증세가 있었다. 핫피상 조합원들에게 부탁해 창문지와 벽지를 새로 갈았다. 작업 내내 청년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기뻤다. 덕분에 창문을 활짝 열고 생활할 수 있게 되어 기분 전환이 됐다.” 청년들이 직접 제작하고 있는 핫피상의 뉴스레터에 게재된 이용자들의 소감을 읽으면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지역 복지의 참 모습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an27_5

사회적 협동조합의 도전 그리고 과제

“지난 26년간 주부들의 사회 참여, 지역 참여를 꾸준히 독려한 워커즈 콜렉티브라는 협동 노동이, 장애인이나 히키코모리 등 사회적으로 소외돼 있는 청년들의 사회 참여, 지역 참여를 촉진하는데 있어서도 매우 유효한 방식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이에 대해 3년간 조사 연구 작업을 진행했다. 그러나 맴버들의 고령화, 만성적인 인재 부족 등의 여러 과제를 안고 있는 기존의 워커즈 콜렉티브가 청년들을 받아 들이는데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이탈리아의 B형 사회적 협동조합’을 참고하여 사회적 약자로 불리는 장애인, 고령자, 니트족의 청년들이 함께 일하는 워커즈 콜렉티브를 새로 결성하기로 하고 그 모델 사업으로 ‘포란’과 ‘핫피상’을 만들었다. 이는 일터를 공유한다는 것과 상부상조로 취업 소외계층들의 생활을 지원한다는 점이 기존 워커즈 콜렉티브와 다른 점이다.” 나카무라 히사코(中村久子)협회 이사장은 포란과 핫피상을 설립하게 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이처럼 포란과 핫피상은 협회가 취업 문제를 안고 있는 청년들의 사회 참여와 지역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이탈리아의 B형 사회적 협동조합을 모델로 하여 실험적으로 출발한 조합으로 각각 설립 5년과 2년을 맞이하고 있는 조직이다. 실험적 시도를 통해 얻을 수 있었던 확신은 무엇이며 과제는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포란을 이끌고 있는 잇시키 세츠코 부이사장은 “포란에서 일하는 청년들은 그들의 작업과 작업 환경에 매우 만족하며 즐겁게 일하고 있다. 이제껏 어떤 직장에서도 한두 달을 넘기지 못했던 그들이 장기적으로 정착해 일하고 있다. 경쟁에 근거한 일반 사업장과 달리 협동의 정신으로 그들이 자신감을 갖고 일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고, 또한 아직 충분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장애인들이 복지 사업장에서 받는 것보다 많은 임금을 받고 있다.” 라며 워커즈 콜렉티브가 취업 소외계층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음을 강조했다.

잇시키 부이사장은 이어서 “청년 조합원들이 포란에 정착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에게 하나부터 열까지 작업을 세심하게 알려 주면서 각자의 속도에 맞춰 일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 시니어 조합원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일 노동 동일 임금으로 대부분의 시니어 조합원들은 적은 임급을 받고 있고, 자원봉사자 정신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래서 시니어 조합원들을 확보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이들에게 좀 더 완전한 수입이 보장돼야 더 많은 참여가 이뤄질 것이다.”며 지금 포란이 안고 있는 과제에 대해 설명했다. 포란과 같은 워커즈 콜렉티브 모델이 성공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일반 조합원과, 장애인 등 일과 생활에 지원을 필요로 하는 조합원의 비율이 3:1 정도가 돼야 한다는 것이 그녀의 설명이다.

이러한 어려움은 핫피상도 마찬가지다. 일이 의뢰가 들어오면 시니어 조합원과 청년 조합원이 1:1로 짝을 이뤄 함께 일을 한다. 따라서 시니어 조합원들의 도움이 더욱 절실하다. 이러한 과제에 대해 나카무라 이사장은 “조합원에게 보다 충분한 수입이 돌아갈 수 있도록 경영을 쇄신할 필요가 있다. 이는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그러나 이러한 협동 노동이 지역 복지 시스템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후원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장애인들끼리 일하는 복지 사업장에는 운영비가 지원된다. 그러나 우리는 비장애인과 동일한 임금을 지급하고 있음에도 지원비를 받지 못하고 있다.” 며, 어떤 형태로든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회적 협동조합으로 지역의 복지 니즈 해결과 취업 소외계층의 사회 참여라는 과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포란과 핫피상은 분명 선진적인 시도임에 틀림없다. 한국과 달리 일본은 협동조합법이 소비자 협동조합, 신용 협동조합 등 분야별 협동조합법으로 분리돼 있어서 소규모의 사회적 협동조합이나 노동자 협동조합은 법적 또는 제도적 근거가 없어 아무런 보호와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이 이들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온전히 주체들의 진정성에 의지해 고난을 헤쳐 나가고 있기 때문에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지 않을 수 없다. 협동조합법 제정으로 일본에 비해 협동조합 설립과 활동에 더욱 좋은 환경이 마련된 것처럼 보이는 한국에서도 이들의 ‘누구나 함께 일할 수 있는 협동조합’ 운동이 좋은 사례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글_ 안신숙 (희망제작소 일본 주재 객원연구위원 westwood@makehop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