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동등한 세상이란

‘장애·인권 X 시민’ 강연 시리즈 #3. 김동현 수원지방법원 판사
– 김동현 판사가 전하는 나의 현실, 내가 만난 장애인의 현실

희망제작소가 마련한 ‘장애·인권 X 시민’ 시리즈의 마지막 강연이 9월 15일 목요일 오후 8시부터 한 시간 남짓 진행됐습니다. 김동현 수원지방법원 판사가 강사로 나서, ‘장애인권익옹호기관 변호사를 거쳐 판사가 된 시각장애인이 마주한 장애인의 현실’을 주제로 이야기했습니다.

김동현 판사는 10년 전, 로스쿨 재학 중에 갑작스런 사고로 시각장애인이 되었습니다. “잘 보이던 시절엔 장애인을 헬렌 켈러 위인전에서나 봤던” 그는, 당사자가 된 후 큰 혼란을 겪었고 시각을 제외한 다른 감각을 활용해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훈련을 받으며 걷는 법부터 다시 배웠다고 합니다.

시각장애인 판사가 사는 법

강의를 시작하며, 김동현 판사는 평일 아침에 일어나 법원에 출근하고, 근무를 마친 후 집에 돌아와 잠자리에 들기까지, 그리고 주말에 STX를 타고 멀리 있는 여자친구를 만나러 가기까지 그가 겪는 일들을 찬찬히 들려줬습니다. 시각장애인용 휴대폰앱과 보조공학기기, 판사실의 전담 속기사가 그의 일을 돕고, 노란색 유도블록과 횡단보도의 음성신호기, SRT 승무원이 그의 길을 안내합니다. 이런 “접근성과 정당한 편의 제공”은 “장애인이 장애가 없는 사람들과 똑같이 평범하게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것들”입니다.

접근성과 편의가 적절히 제공되지 않으면, 장애인은 불편을 넘어 아예 움직이기 힘든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김동현 판사는 “고객센터에 전화와 이메일을 보내고, 인권위에 진정을 하고, 관련 활동가들에게 후원금을 보내거나 지지와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합니다. “판사가 아니었다면 프로소송러가 됐을 것”이라고 하네요.

그가 말하는 “접근성과 정당한 편의 제공”은 비단 장애인만을 위한 일이 아닙니다. 어린이와 노약자 등 신체적 기능이 약한 사회구성원들에게 두루 도움이 되는 일이지요. 김동현 판사는 또한 “(시스템에 의한 사회적) 접근성의 수준이 높으면 (주로 인적‧개별적인) 편의 제공의 필요가 낮아지기 때문에 접근성을 최대한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예를 들면 상품과 서비스 기획단계부터 ‘유니버셜 디자인’을 적용하는 것인데요, “나이가 많건 적건 장애가 있건 없건 외국인이건 내국인이건 누구나 쓸 수 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면, 이용이 편리할 뿐 아니라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따로 비용을 들일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날 강연에서 김동현 판사는 장애인권익옹호기관 변호사로 일하던 시절 피해 장애인의 회복을 지원한 경험도 들려줬습니다. 피해 장애인을 도우며 장애인들의 명의를 도용해 휴대폰을 개통하고 이용요금을 비롯해 소액결제와 휴대폰대출을 받는 등의 범죄가 빈번하다는 걸 알게 된 그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고심하다 관련 논문까지 썼다고 합니다. 김동현 판사는 “(범죄 등의) 피해를 당한 장애인들에게는 기본적인 의식주 해결과 충분한 지원이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지역사회에서 잘 정착해 살 수 있도록 배척하지 않고 공동체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소셜디자이너’ 3인과의 만남

세 차례에 걸쳐 진행된 ‘장애·인권 X 시민’ 강연 시리즈를 통해, 우리는 일상에서 사회문제를 발견하고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세 명의 ‘소셜디자이너’를 만났습니다. 첫 강연자인 이주언 공익변호사(강연 보러가기)는 시각·청각 장애인들이 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하기 어려운 문제에 주목해 장애인 당사자들과 함께 소송에 나섰습니다. 홍윤희 협동조합 무의 이사장(강연 보러가기)은 장애인 자녀가 대중교통 이용에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보고 시민들과 함께 교통약자를 위한 콘텐츠를 만들고 있습니다. 김동현 판사는 장애인 당사자로서 소외된 사람들의 인권까지 소홀하지 않고 소중하게 지키는 좋은 재판을 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희망제작소는 세 분의 강연자를 비롯해 우리사회 곳곳에서 자신과 이웃의 경험을 토대로 다양한 사회문제를 함께 해결해 나가는 시민들을 응원합니다. 앞으로도 일상을, 마을을, 세상을 바꾸는 우리 곁의 소셜디자이너들의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김동현 판사의 강연은 희망제작소 유튜브 채널에서 다시 볼 수 있습니다. 한편, 이번 강연에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통역과 문자통역이 제공되었습니다.

– 정리: 이미경 미디어팀 연구위원 | nanazaraza@makehop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