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돈이 전쟁을 돕는다

희망제작소는 10회에 걸쳐 ‘착한 돈은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가’에 관한 글을 연재합니다. 이 연재글은 일본의 NGO 활동가 16명이 쓴 책《굿머니, 착한 돈은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가》의 일부를 희망제작소 김해창 부소장이 번역한 글입니다. 몇몇 글에는 원문의 주제에 관한 김해창 부소장의 글이 덧붙여져 있습니다. 일본 시민사회 활동가들의 눈에 비친 전 세계적인 돈의 흐름을 엿보고,  바람직한 경제구조를 함께 고민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_1R|1371450347.jpg|width=”1″ height=”1″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_##]


미 군사비, 일본이 부담한다?

세계의 총 군사비는 2006년 역대 최고를 기록해 연간 120조 엔이 훨씬 넘는다. 일본의 국가예산이 80조 엔이니까 일본 정부가 일 년간 사용하는 것보다 많은 액수가 전쟁에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 가운데 약 50조 엔이 미국 한 나라가 사용하고 있는 몫이니 미국이 얼마나 군사대국인가 알고도 남을 것이다.

해마다 이 정도 거액의 군사비를 지출하는 미국은 그만큼 돈에 여유가 있는 나라일까?

미국은 세계 최고의 경제대국이니 군사비로 50조 엔 정도를 지출하는 것이 그리 부담은 아니라고 여겨질지 모른다. 하지만 사실 미국은 거액의 재정적자를 안고 있으며, 2005년에는 재정적자가 약 3,000억 달러를 웃돌았다. 아무리 봐도 50조 엔이나 되는 군사비를 세금에서 낼 수 있는 상태는 아니다.

그래서 미국은 국채를 발행해 세계 여러 나라에 판매함으로써 국가 운영에 필요한 돈을 조달하고 있다. 결국 다른 나라에서 돈을 빌려 무기나 폭약을 사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전쟁을 하는 것이다.

미국에 돈을 가장 많이 빌려준 나라는 어느 나라일까?

아래의 그래프를 보면 한눈에 알 수 있다. 미국 국채 보유액 1위는 일본으로, 6,109억 달러(약 67조 엔)를 구입했다. (2009년 7월 현재 1위는 중국으로 8,000억 달러이다 ─ 옮긴이) 일본은 미국의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국가예산에 맞먹는 돈을 미국에 빌려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국가재정 또한 적자다. 그럼 어디에서 미국에 빌려줄 돈을 조달하고 있을까? 사실은 일본도 국채를 발행해 돈을 조달하고 있다. 2006년 9월 말 현재 일본의 국채 발행액은 약 828조 엔으로, 그중 약 10%가 미국 국채 구입에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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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저금이 전쟁으로

일본 국내의 금융기관이 일본 국채를 얼마나 구입하고 있는지 한번 살펴보자.
 
일본은행의 통계에 따르면 일본 국내 은행의 예금 액수는 약 532조 엔, 국채 구입액은 약 92조 엔이다(2006년 11월 현재). 예금의 6분의 1이 국채 구입에 쓰이는 것이다.

몇 가지 가정하이지만, 우리의 저금 가운데 얼마가 미국의 군사비로 사용되는지 간단히 계산해볼 수 있다. 예를 들어 30만 엔을 은행에 맡겨두면, 은행은 그 6분의 1인 5만 엔을 일본 국채 구입에 사용한다. 그리고 5만 엔의 약 10%인 5,000엔을 미국 국채 구입에 쓴다. 미국의 예산 중 약 20%가 군사비니까 우리가 은행에 30만 엔을 예금하면 약 0.33%인 1,000엔이 전쟁을 하는 데 쓰이는 것이다.

돈이 전쟁으로 흘러들어 가는 길이 이런 국채를 통한 경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예금이 직접 군수산업에 투자 또는 융자되는 경우도 있다. 군수산업이라고 하면 아무도 모르는 기업일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세계 군수산업의 순위를 보면 100위 안에 도시바나 NEC 같은 누구나 알 만한 전기기기 회사들이 즐비하다.
 
또한 미쓰비시 중공업 같은 중공업 회사는 자위대에 무기나 전투기를 대량으로 납품하는데, 군수 의존도(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율)가 5~10%를 차지할 정도로 높다. 이들 군수산업체도 우리가 돈을 맡긴 은행에서 융자를 받아 경영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미쓰비시 중공업은 옛 도쿄 미쓰비시 은행의 대규모 융자처 3위로, 약 1,000억 엔의 융자를 받고 있다(2005년 자료).

[##_1C|1230853551.jpg|width=”500″ height=”275″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_##]또한 최근에는 일본의 ‘메가뱅크 3사(미쓰비시 도쿄 UFJ 은행, 미쓰이 스미토모 은행, 미즈호 은행)’가 각각 100억 엔 단위로 해외의 클러스터 폭탄제조 관련기업에 융자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클러스터 폭탄은 폭발하면 널리 퍼져 나가도록 만들어져 지뢰처럼 불발탄을 남기는 것으로, 전쟁이 끝난 뒤에도 주민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한다. 클러스터 폭탄 피해자의 98%는 비전투원이며, 그중 27%가 어린이라고 한다. 우리의 저금이 일반 시민들 머리 위에 폭탄을 터트리는 데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우리가 ‘전쟁은 좋지 않다’, ‘거들고 싶지 않다’고 생각해도, 우리의 저금은 군사예산이나 군수산업으로 흘러들어가 전쟁을 치르는 데 사용된다. 이는 우리가 저금한 돈의 사용처를 지정할 수 없기에 빚어지는 문제다. ‘전쟁이든 환경파괴든 아무 데나 사용되어도 좋다’고 백지위임을 한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위임장을 첨부하라

‘돈이 전쟁으로 흘러들어 가는 것을 막을 수 없다’고 포기해버릴 일이 아니다. ‘전쟁으로 돈이 흘러들어 가지 않는 구조’ ,‘위임장을 첨부하는 구조’는 가능하다.

유럽에는 ‘무기산업에는 투자하지 않는다’거나 ‘환경과 사회에 공헌하는 기업이나 사업에만 융자한다’는 경영방침을 세운 ‘사회적 은행’이 많이 있다. 영국의 생협은행, 네덜란드의 토리오도스 은행 등이 유명한데, 토리오도스 은행에는 ‘사용처 지정형’ 계좌가 있어, 그 계좌에 맡겨둔 돈은 유기농업이나 재생가능 에너지를 생산하는 사업자 등을 지원하는 데 융자된다. 네덜란드 정부는 이런 환경보전형 예금 및 투자에 대해 세제 우대를 하고 있고, 예금자는 이자 등에 부과되는 세금을 면제받는다.

벨기에에서는 NGO 네트워크 블렌데렌(Netwerk Vlaanderen)이 은행 돈이 무기산업으로 흘러들어 가는 것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벌여, 2004년에는 ‘지뢰의 생산·이용·재고 관리를 실시하는 기업에 대한 투자 금지법령’이 국회에서 가결되었다. 이 방침에 따라 네덜란드의 5대 은행이 4대 무기(클러스터 폭탄, 지뢰, 핵무기, 우라늄 무기) 제조 기업에 대한 직접 투자를 중지했다. 이 캠페인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군수산업이나 원자력발전에는 돈을 투자하지 않는다는 운동을 비롯한 ‘사회책임투자’도 전 세계에 널리 퍼지고 있다. 미국에는 군수산업 · 원자력발전 · 환경파괴 등에 관여하는 기업에는 투자하지 않는다는 펀드도 많다.

만약 전쟁에 흘러들어 가는 돈 120조 엔을 사람들을 돕는 데 사용한다면 어떻게 될까?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의 제4차 보고서에 따르면, 지구온난화를 막으려면 2050년까지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 그 해 새롭게 생산된 물건과 서비스의 경제 가치)의 최대 5.5%(약 300조 엔)가 필요하다고 추정하고 있다. 세계의 군사비를 모두 여기에 사용한다면 그 3분의 1을 충당할 수 있다. 전쟁에 흘러들어 가는 돈을 달리 사용하면 기후변화 때문에 피해를 입게 될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

새로운 금융은 가능하다 

일본에는 유감스럽지만 유럽과 같은 구조의 ‘사회적 은행’은 아직 없고, 군수산업에 대한 투자를 규제하는 법률도 없다. 단, 시민 측에서 그러한 구조를 만들려는 움직임은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NPO(Non-Profit Organization, 비영리 민간단체)은행이다.

1994년에 설립된 ‘미래은행 사업조합’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전국에 NPO은행이 약 열 군데 설립되었다. 모두 규모는 작지만 돈이 전쟁이나 환경파괴에 사용되지 않고 지역이나 사회에 도움이 되는 데 쓰이도록 하기 위해, 시민들이 출자해서 NPO나 환경주택 등에 융자를 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시민이 스스로 ‘환경과 사회를 배려한 금융기관이나 투자 펀드를 선택하자’고 호소하는 에이 시드 재팬(A SEED JAPAN, 국제청년환경 NGO)의 에코 저금 프로젝트나 사회책임투자의 확산을 목표로 하는 시프 재팬(SIF-JAPAN)의 활동도 전개되고 있다. 이처럼 시민 스스로가 새로운 구조를 만들거나 의지를 갖고 금융기관을 선택하자는 움직임이 활발해진다면 ‘백지위임장 방식의 저금’이 ‘미래지향적 저금’으로 바뀌어갈 것이다.  

글_ 쓰치야 가즈유키
번역_김해창 (hckim@makehope.org)

● 연재순서

1. 당신의 돈이 전쟁을 돕는다
2. 저금이 환경을 파괴한다?    ? 다시 생각해봐야 할 국책ㆍ공공사업
3. 통화위기 부르는 미국의 헤지펀드
4. 금리, 지역경제와 환경의 파괴자
5. 지역통화로 돈에 정당한 가치를 부여한다    ? 한국의 대표적 지역화폐 공동체 ‘한밭레츠’
6. 돈의 사용처 공개하는 착한 금융기관
7. 계좌로 바꾸는 세계
8. 굿(goods) 감세, 배드(bads) 과세
9. 공유지 보전으로 지속가능한 지구를 만든다    ? 한국의 내셔널트러스트 운동
10. 지금, 돈의 주인으로 사는 방법    ? 개발을 거부한 도심 속의 오래된 미래, 물만골공동체의 도전

Comments

“당신의 돈이 전쟁을 돕는다”에 대한 5개의 응답

  1. 이재흥 아바타
    이재흥

    지난해 개봉한 영화 (인터내셔널 (The International, 2009)에는 이러한 다국적투자은행들의 행태가 아주 리얼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군산복합체’ 를 넘어,
    ‘군-금-정 복합체’가 지배하는 비열한 국제질서를 현실보다 더 현실적으로 담아내 평론가들에게 깊은 찬사를 받았습니다.

  2. 이재흥 아바타
    이재흥

    이 영화는 1974년에 파키스탄에 실재했던 BCCI라는 조직에 대한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되었는데, 40여년이 지난 지금의 상황도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상황이라, 보고난 후 참 가슴먹먹했던 기억이 납니다

  3. 이재흥 아바타
    이재흥

    다행히 최근 국내에서도 사회혁신기업 지원사업을 펼쳐온 소풍(http://www.sopoong.net/)에서 ‘소금(so-金)프로젝트’를 시작하는 등 굿머니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있는 듯 합니다.

  4. 이재흥 아바타
    이재흥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부소장님~ ^^

  5. 신미영 아바타
    신미영

    부산대학 신미영입니다.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잘 지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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