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R 3.0’의 시대

소기업발전소는 기업사회공헌의 새로운 패러다임 ‘CSR 3.0’을 조명하는 글을 5~6 회에 걸쳐 싣습니다. 그동안 진행한 자료 조사와 관계자 인터뷰를 중심으로 국내 사례를 살펴보고, CSR 3.0의 현황과 미래를 점검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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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SR 3.0’의 시대   

2010년 펩시는 23년 동안 계속했던 슈퍼볼 광고를 중단했다. 대신 그에 소요되던 비용 2000만 달러를 ‘펩시 리프레쉬 프로젝트(Refresh Project)’ 라는 365일 지속되는 시민참여 공익마케팅 캠페인에 썼다. 펩시가 내건 목표는 ‘좀 더 긴밀한 고객과의 연계’였고, 프로젝트는 전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국내의 한 SSM(기업형 슈퍼마켓)은 꼼수를 선보였다. 대학로 노른자위에 터를 잡은 이 SSM은 지난해 ‘위장개업’이라는 신공을 통해 기습개점에 성공했다. 골목상인들의 반발을 피하기 위해, 신장개업 이틀 전까지 그들이 내건 공사가림막에는 ‘피자집 리모델링중’ , ‘스쉬뷔페 입점예정’ 이라고 쓰여 있었다.
 
반면 월마트는 진화하고 있다. 매년 순이익이 120억 달러를 넘나드는 이 회사는 본사 벽에 이런 문구를 새로 써 붙였다. “우리는 어떻게 사회적 전략을 비즈니스 전략으로 만들 수 있을까?” 2006년 그들은 모든 월마트 고객들이 일반 처방약을 단돈 4달러에 살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런칭했다. 건강보험 미가입자 등 모든 고객이 약 20억 달러를 아끼게 되었고, CVS나 월그린 같은 대형 의약품매장들은 결국 가격인하에 동참할 수 밖에 없었다. 1년 새 210만 명의 새로운 고객이 등장했고, 새로운 ‘처방전 마켓’이 형성됐다.

기업 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기업의 사회적 책임) 부서는 전통적으로 기피부서다. 미국식으로 이야기하자면, ‘CLM(좌천-Career limiting move)’ 되어 ‘CYA(구린 곳을 덮어주는 일 – Cover your ass)’ 하는 사람들이 일하는 곳 쯤으로 받아들인다. 얼마 전, 평소 잘 알고 지내던 기업홍보팀 한 관계자가 갑자기 CSR 담당으로 발령을 받으면서 내뱉은 한 마디는 “이직을 준비해야겠다”였다.
 
반면 2006년 맥도널드는 ‘로널드 맥도널드 자선하우스 (Ronald McDonald House Charities)’ 전략 실행팀을 발족하면서, 35년간 사내요직을 두루 거친 최고의 인재 척 스코트를 리더 자리에 앉혔다. 그는 본사 사장에게 직접 보고하며 능수능란하게 프로젝트를 성공으로 이끌었다. 이제 패스트푸드계의 거인은 ‘슈퍼 사이즈’ 콜라를 폐지하고 플레인 요구르트를 팔고 있다. 또 강화된 식품안전 기준, 작업장의 복지기준을 협력업체에까지 확대하기 시작했다.
 
CSR이 변하고 있다

CSR 1.0(전통적인 자선), CSR 2.0(전략적 자선이나 지속가능경영)’을 지나, 바야흐로 CSR 3.0(기업 사회혁신)의 시대이다. 책《CSR 3.0》(청년정신, 2011)의 저자 제이슨 사울은 다음과 같이 현재의 거스를 수 없는 ‘대세’를 역설한다.

어떤 기업의 경영진들은 사회적 전략이나 활동과 같은 일이 돈 버는 일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즉 ‘그저 옳은 일만을 하는 것’ 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기업사회혁신은 좋은 아이디어 그 이상이다. 기업사회혁신은 비즈니스를 하는 방식이다. 기업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그리고 그것을 수익과 연결하는 데 있어서)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경제학적 현실은 비즈니스 안에서 사회가 차지하는 중요성을 완전히 변화시켰다. 보험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 신선한 음식 소외지역 사람들, 인도 등 거대 개발도상국과 같은 ‘사회적 시장’ 은 아직 미개척 분야로 남아 있다. 기업은 이 시장에 적합한 ‘사회적’ 제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하지 않고는 이 새로운 시장에서 비즈니스 혜택을 얻기 힘들다. 젊은 세대의 교육을 지원하고 고객과 사회적 정서적 유대감을 쌓지 않으면 말이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사회변화와 경제적 가치를 결합하는 새로운 경제 (사회적 자본시장)가 갖는 특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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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비즈니스 환경 못지 않게, 급속하게 변화하는 CSR 패러다임을 기업이 따라잡고 능동적으로 대응하기란 쉽지 않다.
윤리경영, 창조경영, 지속가능경영 등의 개념을 이제 좀 이해한 듯 싶다가도, 지역, 이슈, 운영기관별로 중복적으로 발표하는 기준, 규범, 강령, 규제 등이 너무 많아 어떤 것을 따라야 할지 혼란에 빠지기 쉽상이다. (세레스원칙, 글로벌설리반원칙,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ICC비즈니스 헌장, ISO 14001, ISO 26000, 사회적책임 8000, 미 연방정부 선고가이드라인, AA1000 등)

또한 이를 실천하고 실행하는 데도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기업사회혁신 담당자는 내부 구성원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메시지를 확산시키고, 최고경영자를 설득해 패러다임을 바꾸고 기업 핵심전략과 CSR전략을 통합해야만 한다. 그 과정에서 담당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무한한 인내심, 그리고 높은 수준의 업무역량이다.
 
실제 그동안 희망제작소에서 진행했던 국내 기업사회공헌 컨설팅과 협력사업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대부분의 기업 CSR담당자들은 바람직한 롤모델로 유한킴벌리의 ‘우리강산푸르게푸르게’, 교보생명의 ‘다솜이재단’ 사례 등을 꼽으며 구체적인 상을 이미 정립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러한 상을 조직내 구성원들, 특히 최고경영자나 상급자와 공유하고 그들을 설득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데 있었다. 연간 임직원 자원봉사시간이 8만 시간을 넘어섰다는 성과보고를 받은 CEO가 “8만 시간동안 놀았다는 이야기군” 이라 읊조렸다는 일화가 비단 한 기업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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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슨 바울은 이러한 현실을 바탕으로 성공적인 ‘기업사회혁신으로 가는 로드맵’ 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첫째, 올바른 기업사회혁신 전략을 수립 한다. 가장 일반적인 유형의 전략은 다음 다섯 가지이다. ▲서브마켓 제품과 서비스를 통해서 매출 올리기 ▲백도어 채널을 통해 신규시장 진입하기 ▲고객들과 정서적 유대감 만들기 ▲인재채용을 위한 파이프라인 만들기 ▲역 로비를 통해 정책에 영향 미치기
 
이러한 전략을 성공적으로 수립하기 위해서는 우선 비즈니스와 연관된 사회문제를 분석하고 가용한 핵심 자산을 파악한 뒤, 가장 중요한 ‘혁신요소’를 접목해야 한다. 보편적인 혁신요소로는 잠재적인 고객군 찾아내기, 공익적 투자자 유치, 핵심역량의 재배치, 유통망 신설과 새로운 일자리 창출을 들 수 있다.

둘째, 수립된 전략을 기업 내 다른 비즈니스 부서들과 통합하는 데 전력을 집중한다. 최우선 통합 목표는 기존의 ‘지속가능경영’ 부서다. 이를 위해 비즈니스 일반에 대한 높은 이해와 역량을 갖추어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훌륭한 팀원을 구성하고, 쉽고 일관된 메시지를 만들어 구성원들과 소통하며 호응을 이끌어내고 성과를 내야 한다. 때로는 노련한 정치력으로 경영진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할 때도 있다. 때문에 일반 프로젝트 관리자 (Project Manager)로서 숙련도가 높고 뛰어난 성과를 낸 이들을 담당자로 임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성공요소라 할 수 있다.
 
셋째, 선보인 성과는 반드시 측정할 수 있어야 한다. 성과는 사회적 자본시장에서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많은 기업들이 ‘다우존스 지속가능성 지수’, ‘글로벌 리포팅 이니셔티브’ 등의 기준을 준수하지만, 정형화된 틀에 얽매이거나 억지로 비용과 성과 사이의 연계성을 증명할 필요는 없다. 다른 어떤 분야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신뢰도 있게 측정하는 것, 그리고 스마트한 측정표시를 만드는 것이다.

저자가 소개한 맥도날드 기금 모금통의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매장 내 설치된 모금통의 기부총액이 해마다 증가했지만, 사실 고객들은 모금통을 ‘잔돈 버리는 장소’ 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여 단순한 모금 총액대신, 모금통에 든 ‘지폐의 숫자’ 를 측정지수로 선정했고, 그 결과 훨씬 명확한 연계성과 경향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한다.

CSR 안해도 잘나간다?

그렇지만 여전히 의문이 든다. 과연 기업이 이처럼 종합적이고, 총괄적이며, 비용이 소요되지만, 쉽게 성패를 점치기 어려운, ‘또 매우 시급하지도 않은’ 조직개혁 프로젝트 실행에 나설까? 대체 왜? 과거에도 현재에도 CSR을 하지 않는 기업들은 여전히 잘 나가고 있지 않은가?
 
아직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급성장하고 있는 ‘사회책임투자(SRI) 시장’이 이 문제를 푸는 열쇠가 될 전망이다. UN 주도 아래 2006년 결성된 ‘유엔책임투자원칙(UN PRI)’ 에 서명한 회원사가 이미 916개를 넘어섰고, 총 운용조산이 이미 30조 달러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한겨레21 기사 참조)

우리나라 역시 여기에 서명을 했는데, 올해 3월 주목할 만한 사건이 일어났다. ‘큰 손’ 국민연금이, 주주총회에서 계열사 부당 지원과 분식회계 등으로 처벌받은 정몽구 현대 ? 기아차그룹 회장과 최태원 SK회장의 이사 재선임에 반대한 것이다. 두 사람의 행위가 유엔책임투자원칙이 정한 기준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덴마크의 공적연금인 ATP 역시 현대차를 투자 대상에서 제외했고, APG 자산운용은 백혈병논란에 대한 삼성전자 재조사를 신뢰할 수 없다는 견해를 표명했다.
 
무엇보다, 본디 기업이라는 조직의 핵심 구성원리, 존재이유가 바로 사업계획서 최정점에 위치하고 있는 ‘Mission(사명)’ 이지 않은가. 기업이란 맹목적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집단이 아닌, 바로 그 사명을 사회에서 실천하고 가치를 사회 속에 구현하는 조직이란 것을 우리는 너무 오래 잊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기업에 대해서는 여러 상반된 시각이 있다. 기업은 영혼도 없고 걷어찰 엉덩이도 없는 나쁜 사람들이라는 한 외국 NGO 활동가의 표현, 하는 일 없이 놀고 먹는 양의 탈을 쓴 늑대 등 기업은 우리에게 일자리를 비롯한 수많은 혜택을 주지만, 언론에 터져 나오는 나쁜 소식들은 우리에게 많은 실망감을 안겨 준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서라도 나는 기업의 진정성과 잠재력, 가능성에 대해서 한 치의 의심도 한 적이 없다. 이것은 기업 현장에서 겪은 나의 믿음이며 신념이다.  – 안젤라 강주현(역자)

글_ 소기업발전소 이재흥 연구원 (weirdo@makehop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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