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박명준
희망제작소 객원연구원 / 독일 체류 중

”?”독일의 정당재단들

독일의 주요 정당들은 자신의 가치지향을 담은 재단(Stiftung)을 설립하여, 그것과 상호 독립적이면서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공익지향적인 씽크탱크로서의 역할을 수행해 오고 있다. 대표적으로 사회민주당은 독일 바이마르공화국의 초대대통령을 역임한 프리드리히 에버트(Friedrich Ebert)의 이름을 딴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FES)을, 기독교 민주당은 2차대전 이후 서독의 초대 수상이었던 콘라트 아데나워(Konrad Adenauer)의 이름을 딴 콘라트 아데나워재단(KAS)을, 그리고 녹색당은 20세기의 유명한 문필가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는 비판적 지성인 하인리히 뵐(Heinrich Boell)의 이름을 딴 하인리히 뵐 재단(Boell)을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그 밖에 기사연CSU, 자민당FDP, 좌파정당Linkspartei 등 상대적으로 소수당이지만, 여타 정당들도 모두 유사한 취지와 형태의 재단을 설립, 운영하고 있다.

소위 ‘정치재단(Politische Stiftung)’ 혹은 ‘근정당재단(Parteinahe Stiftung)’으로 명명되는 이들은 독일 사회의 여론형성과 정책개발에 큰 영향을 끼치는 ‘씽크탱크’로서 기능하고 있다. 사실 독일의 정치재단과 미국식의 개념인 ‘씽크탱크’가 동일한 형태는 아니다. 전자의 활동범위가 더 넓고, 제도적 지위도 독특한 편이다. 그럼에도 독일의 정치재단은 독일적 맥락에서 미국의 씽크탱크들에 가까운 역할을 수행하는 곳이며, 씽크탱크로서의 기능은 독일 정치재단들의 활동에 있어서 핵심 요소 가운데 하나이다.

독일의 정치재단들은 내부적으로 특정한 연구기관(institute)을 설립하여 씽크탱크로서의 기능을 보다 더 특화시켜 수행토록 하거나, 아니면 전체적인 활동 부서가운데 한 곳 혹은 몇 곳을 씽크탱크적인 성격을 상대적으로 강하게 지니도록 설계하여 운영한다. 그러한 단위들에서는 특정 주제와 관련하여 준학술적이고 정책개발지향적인 보고서와 페이퍼들을 생산해 내고, 재단내에서 해당주제와 관련한 실천을 행하는 부서들에게 도움을 줌과 동시에 외부적으로도 관련분야의 전문분석자료로 연구적, 실천적 측면에서 적지 않은 기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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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3회에 걸쳐 정당재단들 중 대표적인 세 곳을 소개한다. 이번 회에서는 그 첫번째로 프리드리히 에버트재단(Friedrich-Ebert-Stiftung: 이하 FES)을 다룬다.

방문

FES를 찾은 날은 2007년 11월 어느 서늘한 늦가을이었다. 몇 년 내로 베를린으로 대거 이동을 계획하고 있지만, 일단 아직까지는 과거 서독의 수도인 중소도시 본에 본부가 위치해 있었다. 본 중앙역에서 전철을 타고 약 10여분을 도시의 남쪽을 향해 내려가면,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이라는 전철역이 나왔다. 하차하여 인도를 따라 걷다가 보니, 옷을 벗은 가로수들과 그 아래에서 뒹구는 낙엽들의 간지럽히기 놀이와 만나게 되었고, 어느새 길게 늘어선 붉은 벽돌의 저층 건물들이 시야에 가득찼다. 가운데 정문에는 흰색의 기둥이 위용있는 모습을 하며 서 있었다. 입구에는 재단 이름과 함께 ‘80년’이라고 하는 상징적인 명패가 함께 붙어 있었다.

”?”방문에서 만난 인물들은 재단의 신진들로, 한창 조직의 중심에서 활발히 활동을 하며 자신과 재단의 미래를 꾸려가는 젊은 인물들이었다. 할베어그(Hallberg) 연구원은 이제 3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젊은 여성이었다. 재단에 근무한지는 5년이 되었다고 한다. 처음에 훈련생(Trainee)으로 FES에 들어와 성공적으로 수련기간을 마친 후 이제는 정식 연구원(Referentin)으로 재직중이라고 했다. 원래는 다른 부서에 속해 있다가 얼마전부터 홍보부에서 근무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녀와 약 1시간 가량 이야기를 나눈 후에 국제정치분석실의 연구원인 카치울리스(Katsioulis)씨를 30분 가량 만났다. 그 역시 이제 재단에 막 입사한 신참 연구원으로 3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젋은 남성이었다. 매우 친절하고 논리적으로 씽크탱크로서의 FES의 면모에 대해 설명해 주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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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정체성

FES는 독일 내에서 가장 오래된 정치재단으로서 1925년에 창립되어 오늘날 약 80여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당시 독일의 바이마르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을 지낸 노동운동가이자 사회민주주의 정치가인 에버트의 유언에 기초해 만들어졌다. 당초 핵심취지는 그의 유산을 대학교육을 받기 어려운 가정의 젊은이들의 학비를 위해 장학금으로 지원해 주는 사업을 하는 것이었다. 창립시 공식적으로 표방한 모토는 민주주의와 다원주의의 이상에 기초하여 모든 사회적인 삶의 영역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정치적 및 사회적 교육을 촉진하고, 장학금을 통하여 재능있는 젊은이들이 대학교육을 받고 연구를 할 수 있도록 후원하며, 국제적인 상호이해와 협력에 기여한다는 것이었다. 1930년대 나치의 탄압을 받아 활동이 금지되었다가 2차대전 후 1946년에 다시 부활하여 오늘에까지 ‘공익지향성을 갖는 민간문화기구’로 자신을 자리매김하면서, 왕성한 활동을 벌여 오고 있다.

오늘날 FES는 사회민주주의의 기본가치를 강화히기 위한 정치교육, 그러한 가치를 추구하는 젊은 학자들에 대한 학술지원, 그러한 가치를 향한 기반을 닦기 위한 다양한 형태의 정치적 대화의 장 마련, 세계정의를 목표로 하는 협력의 발전 추구, 그러한 가치의 기반을 연구하고 그것을 공유하기 위한 연구 및 정치적 조언 추진, 세계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한 국제협력의 교량 마련 등의 수단을 통하여 사회민주주의의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경주한다고 하는 목표를 표방하고 있다. 독일의 여느 재단들과 마찬가지로 법률상으로 공익재단(e.V.)의 성격을 지닌다.

FES가 진력하고 있는 사회정치적인 주제영역은 크게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사회정의와 사회적 응집력이다. 여기에는 가족, 어린이, 인구변화, 사회보장, 사회국가개혁 등 독일의 사회경제체제 전반에 사회적 평등과 정의의 가치를 구현하는 제도의 구축과 관련된 내용들이다. 둘째는 혁신과 참여이다. 세째는 민주적 문화의 창달이다. 이는 시민들의 사회참여와 사회민주주의의 기초가치를 되새기며 실현하려는 것이다. 네째는 사회 연대적 방식에 기초한 세계화의 구축이다. 특히 마지막 주제야 말로 현재 FES가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주제로, FES가 관심을 기울이는 세계화의 주제는 그것이 인간적 세계화, 사회친화적 세계화가 되도록 하는 것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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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과 지출

FES의 재정은 그 절대적인 부분(약 95%)이 연방정부로부터 충당된다. 2007년의 예산은 1억 1,700만 유로(약 1,500억원) 에 달하였고, 그 가운데 1억 1천만 유로가 연방정부의 재정에서 나왔다. 나머지 600만 유로 가운데 250만 유로는 주정부들의 지출로 충당되었고, 300만 유로는 EU나 DFG(학술진흥재단) 등의 프로젝트에 의한 제3수단이었다.
지출부문을 보면, 이러한 막대한 액수의 예산의 55%인 6,700만 유로는 국제협력사업에 씌여지고, 900만 유로는 학술연구 및 연구진흥 사업에, 1,400만유로는 장학사업에, 그리고 2,000만 유로는 정치교육 부문에 할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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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구성

FES의 조직을 보면, 기관의 최상층부에 대표부(Vorstand)가 위치해 있고, 그 아래에 크게 4개의 대규모 사업본부들이 위치해 있다. 이들은 각각 정치교육, 국제협력, 학술 그리고 행정사무 등의 활동으로 특화되어 있다. 정치교육본부의 활동은 풀뿌리 민주주의의 활성화와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기반을 강화해 가는 쪽으로 모아진다. 산하의 정치아카데미국은 정치교육의 내용과 그것의 소통방식을 관장하고, 사회정치정보국은 교육의 실행을 담당하며, ‘다이얼로그 동독’은 그 중에서도

특히 동독지역의 정치교육에 대해 더욱 심화된 고민을 한다.
국제협력본부는 크게 국제개발협력사업국과 국제다이얼로그국으로 나뉘어 운영된다. 전자는 전세계 개발도상국(중동부유럽제외)에 설치된 국가별 지부조직체들을 중심으로 민주주의의 신장과 노동운동의 발전 그리고 경제성장을 위한 방안들의 모색을 위해 경주한다. 후자는 서구의 산업사회와 중동부유럽 지역의 정치적 현안들을 분석하는 일을 주로 한다. 특히 이곳에서는 ‘국제정치분석실’과 학술지 <국제정치와 사회> 편집실을 두어 보다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연구, 분석작업을 수행한다.

학술본부는 크게 장학지원사업국, 역사연구센터 그리고 경제사회정책국으로 나뉘어진다. 이 중에서 경제사회정책국은 노동-사회정책연구실과 경제정책연구실 두 곳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FES가 국내에서 심혈을 기울이는 핵심적인 정책개혁방안을 구상하고 그와 관련한 외부적인 소통을 담당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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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크-엔-두 탱크

FES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총 591명이다. 이들은 본, 베를린, 독일내 지역의 정치교육 아카데미와 사무소들, 그리고 해외지부들의 직원들 전체를 총망라한 수이다. 이들 가운데 가장 능동적이고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존재들은 레퍼런트(Referent)라고 불리우는 ‘연구원’들이다. 그들 중에는 박사급도 있고 석사급도 있지만, 양자를 크게 구분하지는 않는다.

FES의 연구원이 되는 통로는 크게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재단이 공식적으로 지원을 받아서 선발을 하는 훈련생 프로그램에 참여를 하는 것이다. 이 경우 견습생으로 선발되어 2년이 경과하면 연구원이 된다. 다른 하나는 FES에서 수행하는 프로젝트들의 보조원으로 참가를 하는 것이다.

정치교육, 국제협력, 장학사업 등을 주축으로 한 FES의 조직적 면모는 독일 정치재단을 대표하는 전형적인 모습이지만, 그것이 싱크탱크의 전형, 혹은 독일적 싱크탱크의 전형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할베어그씨는 “저희는 정치적 행위자라기 보다는 대화조언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라고 밝혔다.
‘국제정치분석실’과 ’경제사회정책국’은 나름대로 조직 내에서 연구와 분석작업을 특화해서 수행하는 단위이다. 이들은 주제영역에 포진한 전문가들과의, 혹은 전문가들간의 협업적인 연구활동을 발전시키는 매개로서의 역할도 수행한다.

국제정치분석실의 주된 작업은 대체로 유럽내 여러 국가들의 정치사회 동향과 이슈들을 분석하는 것이다. 이곳은 국제협력사업의 현지 활동을 돕기 위한 보다 이론적이고 거시적인 분석작업을 행함과 동시에, 현지로부터 제기되는 핵심적인 문제들을 받아서 분석의 주제로 삼는 식으로 현장의 해외지부들과 밀접한 상호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내부적으로는 유럽의 경제사회모델(EWSM), 유럽의 기업규제정책, 공동의 대외 및 안보정책(GASP), 유럽의 이웃국가 정책(ENP) 그리고 사회민주주의 모니터링 등 5개의 역점 주제영역을 선정하여 연구와 분석 작업을 수행한다.

경제사회정책국은 크게 경제정책연구실과 노동 및 사회정책연구실 등 크게 둘로 나누어 조직을 운영하고 있으며, 직원들은 내부에 여러가지 주제별로 연구집단을 별도로 구성하여 연구작업을 수행한다. 이들은 각각 노동-기업정책, 중소기업, 서비스, 소비자정책, 혁신적인 교통정책, 경제정책, 노동과 숙련, 사회정책, 이민과 사회통합 등 다양한 주제영역을 담고 있다.

카치울리스 연구원에 따르면, FES 내부에서는 스스로를 단순히 씽크탱크가 아니라 ‘씽크-엔-두 탱크(Think-and-Do-Tank)’라고 이해를 하며, 이 두 곳이 ‘씽크(Think)’의 역할을 집중적으로 하고, 나머지는 대부분의 부서들이 ‘두(Do)’의 역할을 하고 있다. 두 부서 모두 이들이 행하는 연구작업은 정책페이퍼의 형태로 간행이 되어 재단 내부의 다른 부서들 뿐 아니라 외부의 전문가들에게 전달이 된다. 국제정치분석실의 경우 <콤파스(Kompass) 2020>와 <국제정치분석IPA>라고 하는 이름으로, 경제사회정책국의 경우 의 이름으로 정책페이퍼를 발간한다.

분석작업은 FES의 연구원들이 직접 수행한 프로젝트 내용일 수도 있고, 심포지움이나 컨퍼런스등 FES가 개최한 행사들에 참가한 학자들과 전문가들의 글을 모은 것일 수도 있다. 비정기적으로 발간되는 정책 보고서 이외에 5개의 주요 정기간행물들이 대외적인 소통의 활성화 차원에서 발행되고 있다. 이는 국제정치분석실이 주관하는 계간 학술지 <국제 정치와 사회 IPG>, <새로운 사회 Neue Gesellschaft> , 계간으로 발해되는 재단의 소식지 <인포Info>, <사회사 아히브 Archiv fuer Sozialgeschichte>, 그리고 <누에바 소시에다드 Nueva Sociedad> 등이다.

[연재순서]

1. 연재를 시작하며
2. 쾰른의 막스플랑크 사회연구소 MPIfG
3. 뮌헨의 ‘경제를 위한 연구소 IfO’
4. 포츠담의 ‘기후영향연구소PIK’
5. 프랑크푸르트의 ‘헤센 평화와 갈등 연구 재단(HSFK)’
6. 뉘른베르그의 ‘노동시장과 직업연구를 위한 연구소IAB’
7. 도르트문트의 ‘도시와 공간정책 연구소ILS-NRW’
8. 본의 ‘프리드리히 에버트재단 FES’
9. 베를린의 ‘콘라트 아데나워재단 KAS’
10. 베를린의 ‘하인리히 뵐 재단 Boell’
11. 귀터스로의 ‘베텔스만 재단(Bertelsmann Stiftung)’
12. 슈트트가르트의 ‘로베르트 보쉬 재단(Robert Bosch Stiftung)’
13. 뒤셀도르프의 ‘경제사회연구소(WSI)’
14.‘쾰른 경제연구소 (IW Köln)’
15. 베를린의 ‘베를린폴리스(Berlinpolis)
16. 베를린의 ‘위드(WEED)’

[기획연재] 독일의 정책브레인을 해부하다 는 매 주 수요일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