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정책 브레인을 해부한다(17)]연재를 마감하며 : 독일싱크탱크의 유형별 특성과 한국적 함의

[##_1M|1021127023.jpg|width=”670″ height=”130″ alt=”?”|_##]

필자 : 박명준
희망제작소 객원연구원?독일 쾰른대

소위 싱크탱크(Thinktank)는 학술적인 연구와 분석을 통대로한 지식을 생산하되, 순수 아카데미즘에 머물지 않고, 해당 사회가 당면한 현실문제 해결을 위한 전문적 정책지식을 생산하고 유통시키며 정책결정 과정에 직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곳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독일의 모습에서 보았듯이 한 사회에서 싱크탱크들은 일정한 스팩트럼을 보이며 분화되어 있다.

서두에서 필자는 독일 싱크탱크의 유형을 크게 국가싱크탱크와 비국가싱크탱크로 구분했다. 이는 재정적인 기반과 원천을 어디에 두고 있느냐에 따른 구분이었다. 그러면서 두 유형을 다시 각각 세 가지 하위유형으로 구분을 하였다. 국가 싱크탱크를 다시 독립학술기관형, 정부의 소관연구기관 그리고 정당재단 등으로 구분하였고, 비국가싱크탱크의 경우도 기업재단형, 대규모 이해옹호형, 소규모 이해옹호형 싱크탱크로 나누었다.

이 글에서는 지금까지 다룬 여섯가지 유형의 독일 싱크탱크들의 특성을 간략히 요약하면서, 유형별로 독일의 싱크탱크체제가 한국 사회의 미래의 싱크탱크를 설계함에 있어 어떠한 점에서 대안이 될 수 있을지 짚도록 하겠다. 이 글을 끝으로 지난 11월에 시작하여 약 5개월간 20회에 걸쳐 진행해 온 연재를 일단 마감한다. 향후 이 내용을 토대로 보다 더 알찬 구성과 내용을 덧붙여 단행본으로 출간할 계획에 있다.
[##_1C|1018755735.jpg|width=”660″ height=”237″ alt=”?”|독일 싱크탱크의 유형과 사례_##]
독립학술형 싱크탱크

독일의 독립학술형 싱크탱크들은 학계와 정책계 사이에 하나의 새로운 제도적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국가도 대학도 아닌 곳에서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하며 자신의 역량을 국가와 대학에 배분하고 있는 형태을 갖고 있다.

이 장에서 살펴본 네 기관들 ? MPIfG, IfO, PIK, HSFK – 은 모두 정부가 재원조달에 절대적인 역할을 하고 있고, 모두 최고의 아카데미즘을 추구하고 있다. 이들의 절대다수는 박사학위소지자들로, 국내외 최고의 학술저널들에 기고를 할 것을 연구소의 체계 내에서 공식적으로 권고받고, 역량평가에 있어서도 그러한 업적에 따라 평가를 받는다.

이들은 독일의 대중대학시스템에 있어서 일종의 보완기제이다. 실용적, 응용적인 학술연구에 집중을 기울이면서 그 역량을 배경으로 대학과 긴밀한 협력방식을 구축하여 양자가 상호 윈윈(win-win)하는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연구원들은 근교의 대학들에 연구소의 학술적 성과를 활발히 공급하고 있다. 더불어 독일 사회의 현재를 진단하고 그 미래를 제시하는 전문적인 정책생산기반이기도 하다. 연구를 통해 축적한 역량은 정책개발과 정책자문에 기여하는 방식으로도 사용된다. 다만 어디까지나 연구가 주主이고, 자문은 부附이다.

이들은 우리의 국책연구소가 하는 역할을 더욱 더 민주적이고 질 높게 수행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경제정책의 경우 라이프니츠협회에 속한 5-6개 선도적인 경제연구기관들이 최고수준의 경제분석작업을 일상적으로 수행하고 있고, 그를 통해 정부의 정책형성에 절대적인 기반을 제공해 준다. 그 밖에 환경, 기후, 이민자통합, 노동, 평화외교 등 여러가지 정책들에 있어서도 이들 독립형 학술싱크탱크들은 매우 높은 수준의 연구역량과 정책개발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정부부처 소관연구기관

독일의 정부부처 소관연구기관들은 독립학술형 싱크탱크들과 달리, 일정하게 ‘의무적 연구’의 영역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질적으로 구분된다. 일단 정부의 정책과 관련한 과제를 수행해야 하므로, 앞서 학술형 씽크탱크들에 비하여 정책자문에 더 많은 역량을 할애해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의무가 전문 연구기관으로서 역량을 훼손할 정도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정권의 교체로 인하여 운영방식이나 성격상에 부분적인 변화가 생길지언정 공익을 위한 정책생산의 씽크탱크로서의 본연의 정체성을 안정적으로 유지해 오고 있다. 독립학술형 싱크탱크들만큼은 아니어도 정부로부터 일정하게 독립성을 유지하고 있고, 외부세계와도 활발한 교류를 행하고 있다.

나아가 자율적으로 연구영역을 추구하는 가운데, 공공정책의 마련과 이의 실현과정 속에서 지역중심, 시민참여 중심의 정책개발에 매진하는 모습도 느껴진다. 현장의 공공정책의 고객들, 수혜자들이 행동하고 느끼는 것들이 정책에 반영이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독일의 정부부처 산하의 소관연구기관들도 우리의 국책연구소와 기능과 역량상에서 유사하다. 다만 우리의 경우 국책연구소들이 전체 싱크탱크 시스템 상에서 절대적인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 반면, 독일 싱크탱크의 전체적인 환경에서 이들 정부소관 연구소들의 위상은 상대적으로 작다. 이들은 아주 핵심적으로 중요한 정책영역이나 특수한 정책수요가 존재하는 지역 등을 중심으로해서만 존재한다.

현재 독일의 소관연구기관들도 개혁을 통해 국내외적으로 인정받는 아카데미즘의 역량을 갖추기 위해 적극적으로 경주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싱크탱크의 힘의 강화에 학술적 역량의 증진이 기여를 한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좋은 정책은 보다 심도 있고 자율적이며 전문적인 연구를 통해 만들 수 있다. 그러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경직된 관료기구적 속성을 탈피하고, 세계 학술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춘 자율적 학술기관으로서의 성격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정당재단형 싱크탱크

독일의 정당재단형 싱크탱크들은 분명 일정한 수준에서 파당성을 지니고 있고, 그것은 자신들이 속한 정당의 방향성과 일치한다. 이들은 안정적이고 규모있는 조직적, 물적 자원을 활용하여 실효성있는 정책대안의 마련과 여론의 형성을 위하여 일상적으로 경주하고 있다.
그러나 정당재단들이 정당에 종속된 형태가 아니라 자율적인 공익기관으로 국가의 재정지원을 받고 있다는 점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이 연재에서 소개한 세 곳들 – FES, KAS, Boell – 중에서 상대적으로 가장 영세하면서, 아직도 운동단체적 속성이 강한 하인리히 뵐 재단 같은 곳이 전 세계 20여개국에 지부를 두고 100여명을 고용하며 국내외적으로 유의미한 활동을 벌여 나갈 수 있는 것도 법률상 정해놓은 규정에 따라 정부로부터 제공되는 풍요로운 재원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독일의 정치재단들이 여전히 시민사회적 속성을 지니면서도 무게있는 규모와 역량을 갖추고 활동할 수 있는 근저에는 소위 ‘보충성의 원리’, 국가가 정치교육을 담당해서는 안 된다는 헌법상의 규정, 그리고 정당의 정치재단들이 각 재단들이 연방의회에서 대표되는 비율에 따라 재원을 비례해서 나눠갖도록 하는 분배원칙(Verteilerschluessel) 등 독일 사회에서 국가를 규정하는 독특한 제도적인 규정들이 존재한다.

독일의 정치재단들이 각 주마다 한 곳씩 ‘정치교육센터’를 설립해 상시적으로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정치교육을 행하는 모습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정치교육(Politische Bildung)’에는 두 가지의 의미가 담겨져 있다.

첫째는 정치의 장을 이끌어가는 직업정치가들을 양성하는 훈련장으로서, 그들의 역량을 강화시키는 향상훈련(Weiterbildung)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국가가 재원을 마련하고 정치재단이 주도하여 고급의 정치인력들을 양성하고 그들의 활동의 질을 향상, 관리해 가고 있는 모습은 우리에게 매우 큰 시사점을 준다.

둘째는 민주주의의 주인인 유권자들이 올바르고 이성적인 판단의 주체로 성장하도록 이끄는 대중교육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이는 민주시민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양성되는 것이라는 평범한 진리가 떠올리게 한다. 정치교육은 평생학습(life-long learning)의 일환으로서 일반 시민들에게 고루 기회제공이 되어야 하며, 올바른 의식을 갖춘 민주시민만이 올바른 정치가를 선택할 수 있고, 좋은 민주주의를 함께 건설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독일의 정치재단들은 한 나라의 시민사회의 역량과 정치적 영향력의 문제가 비단 국내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이들은 세계의 주요국들에 해외사무소를 설치하고 독자적인 외교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각 기관들의 해외대표부는 경직된 국가외교의 한계를 극복하고 보완하기 위한 수단임과 동시에, 해당국내에서 민주주의의 전파기지로서의 성격을 갖는다. 독일의 정치재단들이 스스로를 국제네트워크로 규정하면서 활발하게 외교의 영역에 이념과 내용을 불어 넣는 활동을 하는 모습은 보편적 가치보다 국익 특히 경제적인 이익에 우선한 외교를 펼치는 우리의 모습을 성찰하게 만든다.

기업재단형 싱크탱크

독일의 대기업들은 공익재단을 설립하고 사회혁신을 위한 차원에서 여러가지 프로그램들에 매진하고 있다. 그들은 우리의 재벌경제연구소들처럼 거시경제정책 전반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지는 않고, 기업재단들의 위상도 전체 싱크탱크 환경 속에서 그렇게 두드러지지 않으나 최근들어 그 추세는 양적, 질적으로 확산되는 모습이다.

이 글에서 소개한 대표적인 두 재단들 ? 베텔스만 재단과 보쉬 재단 – 은 모두 의식있게 살아온 성공적인 기업가들의 ‘창업정신’에 기반하여 형성되었다. 그들은 단순히 돈을 버는 것을 넘어서 기업운영의 궁극적인 목표를 사회기여에 두고 있던 인물들이었다. 이들은 창업자의 가치실현을 위한 기업외곽의 지적, 실천적 사령탑이다. 오늘날 그들의 후계자들은 매년 약 1천억원 가량에 이르는 엄청난 액수의 돈을 재단운영에 쓰고 있다.

두 기관 모두 현재 100명이 넘는 지적인 두뇌들이 일상적으로 모여 사회적 혁신을 위한 정책개발과 창안에 경주하고 있다. 그러한 두뇌들의 움직임을 지원하는 동일한 규모의 사람들이 업무의 효율성을 증진시켜내고 있다. 결과적으로 수준 높은 정책-지식 제품이 만들어지고, 혁신적인 사회적 담론을 창출해 내는 사건이 이들로부터 끊임없이 나타나는 것이다.
오늘날 두 재단 모두 국제적, 세계적 수준에서 요구되는 정책적 의제들에 대해 적극적인 모색을 하고 높은 수준의 사회적 네트워킹을 갖추어 가고 있는 점에 주목하게 된다. 이는 비단 해당기업을 위해서가 아니라, 독일인들 그리고 그 네트웤을 이용하려는 전문가들 모두를 위한 공공선(public good)으로 기능한다고 볼 수 있다.

이해옹호형 대규모 싱크탱크

이익단체를 기반으로한 대규모 이해옹호형 싱크탱크로 이 글에서 소개한 두 기관 ?WSI와 IW-Koeln – 모두 모두 양적, 질적으로 매우 높은 수준의 학술적인 분석능력과 정책생산 능력을 지니고 있는 씽크탱크들이라는 점에서 의심의 여지가 없다. 공히 ‘공익지향성’과 높은 수준의 ‘학술적인 역량’을 겸비하면서, 각각 ‘노동의 대(對)사회적 정치’와 ‘자본의 대사회적 정치’에 근간을 제공하는 연구에 매진하되, 직접적으로 정치적 개입을 하지는 않는다.

WSI는 한스뵈클러재단이라고 하는 특정 재단 산하에 존재하며, IW-Koeln은 독자적인 사단법인이다. 규모와 자원에 있어서 IW-Koeln은 양적으로 훨씬 큰데, 연구진의 수나 예산 등이 그러하다. 학문 분과적으로 WSI가 정치학, 사회학, 경제학, 노사관계학 등 다양한 분과를 배경으로 하는 연구자들로 구성되어 있다면, IW는 90% 가량이 경제학자들이다. 이는 WSI가 ‘사회’와 ‘노동’의 관점을 중심으로 하는 반면, IW가 ‘시장’과 ‘효율’을 중심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 가운데 상대적으로 WSI쪽이 학술적인 성과를 내고 그 영역에 기여하는 면에 더욱 주안점을 두고 있다고 보여진다. IW-Koeln의 경우 아직까지 씽크탱크로서 활동의 촛점은 독일 안에 맞추어져 있고, 절대다수의 출간물이 독일어 위주로 발행되고 있다.

이익단체들을 기반으로 한 독일의 싱크탱크들은 독일 사회의 이해갈등을 첨예한 계급투쟁이 아니라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방식으로 해소해 가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고 있다. 여기에는 독일의 사회적 파트너쉽, 자율교섭주의 등의 좋은 가치를 담지한 제도가 함께 작동하고 있다.
노동문제에 있어서 사회정치적 타협은 각 주체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할 내용적 배경의 두께가 두터운만큼 가능성이 높아지는 법이다. ‘내용의 두께’라고 하는 상징적인 표현은 단적으로 연구 및 정책개발 역량을 의미한다. 분석과 사고의 깊이가 깊어질 수록 타협의 공간은 넓어지는 법이다. 이는 ‘이해정치의 이성화(Vernunftlichung)’라고 표현할 수 있다. 노사가 물위에서 대립할지언정 물밑의 씽크탱크들 수준에서는 그와 한발짝 떨어져 보다 근본과 깊이를 지니고서 논의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노사간의 이해가 첨예하기 대립할지라도 이들간에는 부분적으로 공동의 연구도 가능하다.
우리의 경우도 노동문제에 대해서 노동운동가들의 정신적 깊이를 심화시키고, 정책적 상상력을 고양시키며, 보다 합리적 대안을 모색토록 하는 작업, 문제해결의 인프라를 강화시키는 작업이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합리적인 기준을 마련하여 이들을 후원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해옹호형 소규모 싱크탱크

비록 덩치가 작고 재정기반이 취약하다는 면이 단점이지만, 독일의 이해옹호형 소규모 싱크탱크들이 생산해내는 비판적이고 참신한 정책대안들은 여러층의 관심을 끌고 있다.여러가지 주제들에 있어서 비판적이고 참신한 시각을 내 놓을 수 있다는 점에서 장점을 갖는다. 정부나 대규모 씽크탱크들이 특화하지 못하지만 중요한 과제들에 천착을 하고 독자적으로 이에 집중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정책시장(policy-market)’이라고 하는 하나의 ‘사회적 장場’을 상정할 수 있다면, 이들 소규모 싱크탱크들은 마치 중소기업과 같다. 창의성과 독창성을 무기로 틈새시장에 파고드는 것이다. 또 이들은 마치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납품을 하듯이, 정부나 대규모 싱크탱크들이 주관하는 거대한 프로젝트 가운데 자신의 구미에 맡는 것을 담당하는 식으로 정책생산물을 생산해 내기도 한다. 이는 일종의 생산제휴를 통한 ‘정책납품’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 소개한 두 기관들 ? Berlinpolis와 WEED – 은 사실 이념적 지향이나 활동방식에 있어서 적지 않은 차이를 보이나, 10인 미만의 소규모 조직체로서 정책시장에 영향력을 끼치려는 의도를 갖고 연구와 정책개발에 진력하는 기관이라는 점에서 동일한 범주로 둘 수 있다. 상대적으로 WEED는 보다 더 비판적 시민단체와 같은 성향을 지닌다.

이들이 독일의 소규모 싱크탱크의 다양한 스팩트럼 가운데 어느 정도에 위치하며 어느 정도로 대표성을 지닐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다만 적어도 범주상으로 위에서 소개한 잘 제도화된 대규모 싱크탱크들과 구분이 되는 것은 확실하며, 이들에 대한 이해를 시작으로 독일내 존재하는 소규모 싱크탱크들에 대한 탐색에 돌입해 간다는 측면에서 이들을 살펴보는 작업은 의미가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특히 이들이 제도화된 대규모 싱크탱크들과 달리 ‘재정확보’를 통한 생존에의 노력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상황은 역시 제도화의 정도가 그리 높지 않은 우리의 시민사회 싱크탱크들의 활동에 오히려 더 가까운 참고가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들을 이해하는 의의는 결코 대규모 싱크탱크들을 살펴보는 것에 뒤지지 않는다. 시민사회적 운동체에서 시민사회를 기반으로 한 싱크탱크로의 발돋움을 과제로 하고 있는 한국과 같은 젊은 민주주의 사회들에게는 독일의 두터운 제도적 자원을 기반으로 엄청난 역량을 지니고 있는 다른 대규모 싱크탱크들보다 오히려 더 큰 함의를 지닐 수도 있을 것이다.

맺음말

우리나라의 싱크탱크는 현재 국책연구소와 대기업 산하의 연구기관들이 주를 이룬다. 흥미롭게도 독일의 싱크탱크체제는 싱크탱크가 전 세계 어느 나라에 비해 발달한 미국과는 상이한 모습을 하고 있으나, 오히려 우리의 모습과는 외관상 유사성이 커 보인다. 그것은 두 나라 모두 국가의 역할이 강조되는 자본주의 체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한국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국책연구소가 국가싱크탱크를, 대기업 산하 연구기관들이 비국가싱크탱크를 대변하며 그 하위 유형들의 분화가 세심히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라고 볼 수 있다면, 독일의 경우는 우리보다 이 부분에서 더욱 진화 내지 분화가 이루어진 상태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민주주의’의 심화된 원리가 작동을 하고 있다.

한국 사회를 업그레이드 시키기 위해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혹은 명멸하는 ? 여러 싱크탱크들을 보다 합리적이고 민주적으로 업그레이드 시켜야 하는 과제는 절실하다. 향후 우리의 싱크탱크 모델을 재구축하는 과정에서 독일의 모습은 매우 중요한 준거로 삼을 만하다. 이 연재가 향후 그러한 논의의 진행과정에서 작게나마 기여할 수 있기를, 그리고 향후 보다 발전적인 연구로 이어질 수 있기를 기대하며 연재를 마감토록 한다.

[연재순서]

1. 연재를 시작하며
2. 쾰른의 막스플랑크 사회연구소 MPIfG
3. 뮌헨의 ‘경제를 위한 연구소 IfO’
4. 포츠담의 ‘기후영향연구소PIK’
5. 프랑크푸르트의 ‘헤센 평화와 갈등 연구 재단(HSFK)’
6. 뉘른베르그의 ‘노동시장과 직업연구를 위한 연구소IAB’
7. 도르트문트의 ‘도시와 공간정책 연구소ILS-NRW’
8-1. 본의 ‘프리드리히 에버트재단 FES’
8-2. 본의 ‘프리드리히 에버트재단 FES’
9. 베를린의 ‘콘라트 아데나워재단 KAS’
10. 베를린의 ‘하인리히 뵐 재단(Heinrich Böll Stiftung)’
11-1. 귀터스로의 ‘베텔스만 재단(Bertelsmann Stiftung)’
11-2. 귀터스로의 ‘베텔스만 재단(Bertelsmann Stiftung)’
12. 슈트트가르트의 ‘로베르트 보쉬 재단(Robert Bosch Stiftung)’
13.‘쾰른 경제연구소 (IW Köln)’
14-1. 뒤셀도르프의 ‘경제사회연구소(WSI)’
14-2. 뒤셀도르프의 ‘경제사회연구소(WSI)
15. 베를린의 ‘베를린폴리스(Berlinpolis)
16. 베를린의 ‘위드(WEED)’

그 동안 [기획연재] 독일의 정책브레인을 해부하다를 정성을 다해 써주신 박명준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박명준님의 다른 글, [유럽 대안경제와의 조우]

Comments

“[독일의 정책 브레인을 해부한다(17)]연재를 마감하며 : 독일싱크탱크의 유형별 특성과 한국적 함의”에 대한 2개의 응답

  1. 이영근 아바타
    이영근

    아…. 정말 수고 많이 하셨네요…^^ 언제 귀국하시면 같이 소주나 한잔 하시지요?

  2. 박명준 아바타
    박명준

    좋지요. 감사합니다. 일본 싱크탱크 이야기도 흥미롭게 보고 있습니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관련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