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인물과 빈 공간 찾는 ‘문화 복덕방’

시사IN 기자들이 희망제작소가 제안한 천개의 직업 중 일부를 직접 체험하고 작성한 기사를 시사IN과 희망제작소 홈페이지에 동시에 연재합니다. 본 연재기사는 격주로 10회에 걸쳐 소개됩니다.  


체험, 1000개의 직업 (4) 문화 복덕방 사업자

사회적 기업 ‘써니사이드업’과 ‘하품’ 직원들은 스스로를 ‘일 벌이는 사람’으로 소개한다. 그들과 현장에 나가보았다.


“뭣으로 먹고 사는가, 그게 제일 궁금하네.” 한참을 고민하던 권기산씨(64)가 드디어 질문거리를 하나 떠올렸다. 3월9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교동 주민센터. 로컬 매거진 <홍대 찾기>에 실릴 아티스트 인터뷰 준비를 위해 마을 주민들과 사회적 기업 ‘하품’ 직원들이 모였다. 다음 날로 잡힌 2인조 여성 듀오 인디밴드 ‘9호선 환승역’ 인터뷰에서 질문자 구실을 맡은 이들은 서교동 주민 권씨와 박영란(64)·장은아(37) 씨. 서교동에서 30년 넘게 살아온 마을 터줏대감들이 인근 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를 잘 인터뷰할 수 있도록, 기자와 하품 직원들은 ‘9호선 환승역’의 멤버 정보를 알려주고 첫 앨범 수록곡 ‘쿠키’도 들려줬다.

처음으로 준비해보는 인터뷰라 다소 긴장한 주민들에게 “어머님 자제분 친구라고 생각하고 질문거리를 생각해보세요”라고 조언했더니, “결혼은 언제 할 거지?” “남자 친구는 있는지?”와 같이 어머니들만이 할 수 있는 ‘강한 질문’들이 쏟아져 나왔다. [##_1C|1212565366.jpg|width=”500″ height=”333″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문화 복덕방’에서는 거리를 뒤져 문화 전시·공연이 가능한 카페·공방·극장 등을 찾고, 그곳을 사진 자료로도 기록한다. ⓒ시사IN 백승기_##]    
문화 매개로 사람-사람, 사람-장소 이어줘

‘1000개의 직업’ 체험을 위해 지난 3월 둘째 주 <시사IN> 기자가 찾아간 곳은 문화예술 사회적 기업 ‘써니사이드업’과 ‘하품’. 이곳 직원들은 스스로를 ‘문화 기획자’나 ‘컬처 매니저’ 혹은 ‘일 벌이는 사람’ 등으로 소개한다. 문화를 매개로 사람과 사람, 장소와 장소를 이어 또 다른 문화 콘텐츠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어떤 이들은 이 직업을 ‘문화 복덕방 사업자’라 부르기도 한다.

전아름 써니사이드업 대표(23)는 “남을 도와주면서 나도 행복하게 만드는 일을 찾다가, 내가 좋아하고 즐기는 문화를 재료로 판을 벌여보자는 생각에 이 회사를 창업했다”라고 말했다. 2009년 8월 ‘마포 희망기획단’이라는 단기 지자체 사업단에서 출발해 지금은 민간 비영리 문화 기업으로 독립한 ‘하품’의 김정미 홍보팀장(24)은 “내가 낸 아이디어가 이내 현실이 된다는 게 우리 직업의 매력이다”라고 말했다. 박경일 하품 대표는 “최근 문화 콘텐츠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자원 활동 정도로 그치던 문화 기획 업무가 충분히 어엿한 직업이 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든다”라고 말했다.

대체 무얼 하는 직업인지는 하는 일을 보면 알 수 있다. 써니사이드업은 직장인 등 일반인과 예술가의 만남을 주선하는 ‘컬처포트락파티’ ‘문화다방’과 같은 행사를 꾸렸고, 지금은 문화 정보와 인물을 모은 온라인 플랫폼 ‘컬처업’을 개발하고 있다. 하품은 실버 세대에겐 일자리를, 지역아동센터의 아이들에겐 상상력을 선사해주는 ‘동화 구연 희망 아카데미’와 성산2동 댄스 아카데미 ‘쉘 위 댄스’를 개설하고, 마포구 문화 자원 조사 작업 ‘마포 컬처 트리’를 진행하고 있다. 하품이 만드는 마을 문화 소식지 <홍대 찾기>는 벌써 10호 발간을 앞두고 있다. 곳곳에 소소하게 흩어져 있던 문화 인물과 공간이 이들 ‘문화 복덕방’을 거치면서 살이 붙고 서로 이어지는 것이다. 

[##_1C|1288902610.jpg|width=”500″ height=”333″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마을 주민들과 로컬 매거진 <홍대 찾기>에 실릴 인터뷰를 준비하고 있는 변진경 기자(앞줄 왼쪽). ⓒ 시사IN 백승기 _##]복덕방의 기본은 ‘매물’ 확보. 이를 위해 3월9일 오후에는 마을 문화 공간 수색에 나섰다. 하품이 마포구청과 함께 진행하는 문화 자원 조사 ‘마포 컬처 트리’ 작업에 조사원 자격으로 참여한 것이다. 지역 문화 수집가 여하니(25)·송은주(23) 씨와 함께 지하철 6호선 망원역 일대를 뒤져서 비영리 문화 전시·공연·교육이 가능한 카페·공방·극장 등을 찾았다. 이렇게 정보를 모아 데이터베이스화하면 향후 지역 축제 등 문화 행사에 활용하기도 좋고, 책자를 발간해 예술가들끼리 교류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란 게 하품과 마포구청의 생각이다.

‘문화적 냄새’가 나는 공간을 찾아 그곳 명칭, 대표 이름, 연락처 및 전시·공연·교육 활용 가능 여부와 수용 인원, 보유 장비 목록 등을 조사지 안에 기입하고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면 되는 작업이었지만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한 뮤직 스쿨에서는 대표자가 자리에 없다고, 어떤 스튜디오에서는 곧 이사를 간다며, 어느 가죽 공방에선 그저 싫다는 이유로 조사를 거부했다. 

혹시나 하고 들여다본 공간에서 뜻밖의 수확

하지만 의외의 수확도 컸다. 혹시나 하고 들어가서 본 한 출판사 건물 지하에서 ‘무따기홀’이라는 강연·교육 공간을 발견했다. 조사차 방문한 성미산 마을 극장에서는 우연히 KBS <TV 미술관> 촬영 현장을 구경하기도 했다. 카페 ‘작은 나무’에서 소개받아 찾아간 카페 겸 공방 ‘햇빛 부엌’은 이날 찾은 가장 반짝이는 문화 공간이었다. 유기농 음료와 간식거리를 팔면서 바느질 공방을 운영하는 이 카페 지하 공간에서는 댄스 수업과 모닝 요가 교실도 열리고 있었다. 다양한 끼를 가진 사람들이 모이면 이런 문화 사랑방이 꾸려질 수 있듯, 다양한 색깔을 지닌 이런 공간들을 또 한 번 연결하면 훌륭한 지역 문화 네트워크가 탄생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다른 사회적 기업 써니사이드업도 비슷한 문화 자원 네트워킹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이들은 페이스북이나 싸이월드의 문화예술인 버전 같은 온라인 플랫폼 ‘컬처업’을 3월 중 베타(시범) 서비스로 오픈할 목표로 디자인·개발 작업을 벌이고 있다. 전 대표는 “앞으로 우리처럼 숨어 있던 문화적 자원을 발굴하고 필요한 사람들에게  연결해주는 일을 하는 사람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이 직업은..
돈은 어떻게 버나? ‘하품’은 지난해 5월 서울형 사회적 기업으로 인증받아 서울시에서 인건비 등을 지원받는다. 그 외 구청이나 기업과 프로젝트를 공동 진행하면서 사업비를 보조받기도 한다. 써니사이드업은 온라인 광고·마케팅 대행으로 돈을 벌기도 하고 자체 이벤트로 후원금이나 참가비를 받기도 한다.


어떻게 시작할까?

하품, 써니트레이닝에서는 종종 서포터스나 자원활동가 등 일손을 구한다. 모두 대학생 인턴 프로그램을 상시 운영한다.


시사IN 변진경 기자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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