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싱크탱크를 가다](5)대한민국 연구할 ‘조직 거점’부터 세워야 한다

홍일표(사회학 박사, 희망제작소 선임연구원)
미국 싱크탱크의 토론회에서 한국 외교관이나 기자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위는 미국기업연구소가 주최한 북핵 전망 토론회

역사상 최대 규모를 자랑했던 베이징 올림픽 폐막 바로 다음날인 8월 25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한국을 두 번째 방문하였다. 두 정상은 한국과 중국의 관계를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로 격상시키고 한중 자유무역협정 체결 검토, 고위급 전략 대화 연내 가동 등 굵직굵직한 사안들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였다. 그리고 후주석은 다음날 곧바로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담 참석을 위해 타지키스탄으로 떠났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 이후 줄곧 한미동맹을 ‘21세기 전략 동맹’으로의 관계 격상을 추구함으로써 중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중국이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흥미로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역사상 가장 우호적이라는 현 단계 중-러 관계가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중국의 급부상에 따른 미중관계의 변화, 이에 대응한 미일동맹, 한미동맹의 강화, 한미일 삼각동맹의 구축 가능성, 북미관계의 개선 여부, 남북관계의 경색, 미중일 삼각공조 구상, 한일관계의 냉각, 6자회담의 재개, 다자간 지역안보기구의 논의 등 빠르고 복잡하게 전개되는 한반도 주변 상황은 ‘적’과 ‘동지’, ‘위협’과 ‘기회’를 명확히 가르기 힘들게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연일 발생하는 외교적 혼선과 실수들을 바라보며 많은 이들은 걱정과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과연 미국의 세계 전략 수립에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수많은 싱크탱크들이 벌이는 ‘정책 경쟁’의 현장에서 한국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으며, 또 어떻게 다뤄지고 있는가?

시간을 잠시 2년 전으로 돌려 보자. 지난 2006년 10월 9일 북한이 핵실험 실시 발표가 있은 직후, 브루킹스연구소, 미국기업연구소, 카네기기금, 전략 및 국제문제연구소, 헤리티지재단 등 미국의 주요 싱크탱크들은 다양한 형식으로 상황에 개입하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한 이유, 이에 따른 대북제재의 수준, 향후 국제정세 및 부시 행정부 대북정책에의 영향 등에 대해 각기 다른 진단과 처방을 제시하였다. 그런데 이들 싱크탱크들이 내놓는 분석에선 일본에 대한 북한의 위협, 그에 따른 일본의 핵무장 가능성, 동아시아 군비경쟁과 불안, 이 문제에 대한 중국의 역할과 책임 등이 쟁점으로 형성되었을 뿐 남한에 대한 구체적 언급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코러스 하우스에서 발표하는 브루킹스연구소 마이클 오핸런 박사

한참 낮은 ‘남한’ 체감지수

2007년 10월 4일, 남한과 북한의 두 지도자가 “2007 남북정상회담 공동선언”을 발표하였다. 그것은 정전체제의 종식과 평화체제 수립, 그 전날 발표된 제6차 6자회담 2단계 회담결과에 대한 이행의지가 담겨 있는, 실로 큰 사건이었다. 그러나 그 직후 워싱턴 싱크탱크들의 반응은 거의 ‘무관심’에 가까울 정도였다. 선언이 있은 직후,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이수훈 대통령 자문 동북아시대 위원장, 문정인 연세대 교수 등 노무현 정부의 전?현직 요인들의 남북회담과 공동 선언의 성과를 알리기 위한 워싱턴 방문이 이어졌지만, 브루킹스연구소와 전략 및 국제문제연구센터, 카네기기금, 외교관계평의회, 미국진보센터 등 미국을 대표하는 주요 싱크탱크들은 2주 이상 아무런 ‘논평’조차 하지 않았다(다만 헤리티지재단의 브루스 클링너, 미국기업연구소 니콜라스 에버슈타트 박사 등이 정상회담과 공동선언에 대해 ‘비판적’ 내용을 담은 글을 월스트리트저널 등에 기고함으로써 오히려 그 의미를 반감시켰다).

2007년 11월 9일, 송민순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이 우드로윌슨센터에서 한미동맹의 미래를 주제로 한 강연회를 개최하였다. 강당은 방청객들로 가득 찼고, 한 달 전에 있었던 2차 남북정상회담의 의의나 6자회담의 방향, 한미동맹의 전망 등에 대한 진지한 강연이었다. 강연이 끝난 직후, 방청석에선 평소 다른 토론회에선 볼 수 없었던 장면이 연출되었다. 장관을 수행하기 위해 강당 한쪽을 꽉 채우고 있던 외교관들이 동시에 일어나 함께 행사장 밖으로 빠져 나가는 것이었다. 사실 워싱턴 싱크탱크들의 토론회에서 한국 외교관들을 만나기란 매우 힘들다. “한국 외교관들의 주 업무는 의전”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를 보여 주는 장면이었다(이는 중국이나 일본 외교관들이 각종 토론회에 방청객으로 열심히 참여하는 모습과 많이 다르다). 한국과 직결된 현안이 아닌 경우엔 기자들 또한 싱크탱크들이 개최하는 토론회에 직접 참석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이래저래 워싱턴 싱크탱크 세계에서 “한국의 존재”란 느끼기 어렵다.

이런 ‘낮은 관심’과 ‘약한 존재감’은 도대체 어디서 기인하는 것일까? 물론 이러한 상황이 한국이 미국에 있어 중요하지 않은 나라라는 뜻은 아니다. 미국 싱크탱크들이 만들어 내는 각종 보고서에서 ‘한미동맹’의 중요성은 지속적으로 강조되고 있다. 지난 2007년 발표되었던 2차 아미티지-나이 보고서에서도 한국과 미국의 군사동맹 강화, 한미 자유무역협정 체결은 미국의 전략적 과제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커트 캠벨 박사가 주도한 새로운미국안보센터의 「균형의 힘 : 아시아에서의 미국」이라는 보고서에서도 한미간의 강력한 군사동맹, 한미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통한 동맹 범위의 확장이 제안되고 있다.

존스홉킨스 대학 한국연구과의 서재정 교수

한국은 과연 중요하지 않은 나라인가?

공화당 맥케인 후보를 돕고 있고, 2차 아미티지-나이 보고서의 집필자 가운데 한명이기도 한 랜달 슈리버 아미티지인터내셔날 파트너 역시 “미국은 한반도라는 공간적 제약을 넘어 지역적, 지구적 차원의 이슈들을 함께 다루는 한미동맹으로의 발전을 원한다”라고 한국의 전략적 중요성을 강조한다. 국방분석연구소 오공단 박사 또한 “남한과 미국은 독특한 동맹관계이다. 미국의 최전진기지로서의 남한을 잘 다루는 것은 미국의 세계전략에서 여전히 매우 중요하다”며 한국의 전략적 위상이 결코 낮지 않다고 말한다.

오바마 후보를 돕는 한국 전문가 가운데 한명인 맨스필드 재단의 고든 플레이크 사무총장은,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펴낸 『한국의 새로운 정치현실 이해하기』라는 정책보고서에서 “자유무역협정 체결, 미군기지 이전, 새로운 한미주둔군지위협정, 전시작전권 전환 등 한미동맹간 난해한 문제에 실질적 진전이 있었다. 그러나 북한에 대한 양국의 정책적 접근법의 차이, 동북아 주요 역학에 대한 다른 견해, 개인적, 정치적 차원에서서 기존에 구축된 관계 부재 등으로 상당한 수준의 신뢰 저하가 있었다”고 지적한다. 브루킹스연구소의 리처드 부시 박사 또한 “지난 5년간 한미동맹의 ‘내용적’ 문제는 없었다. 다만 정부 부처 간의 정책혼란이 미국 정부의 신뢰를 약화시켰다”며 이명박 정부에선 이러한 ‘정책혼란’이 아닌 ‘정책조율’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반면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 워싱턴 싱크탱크 소속 한국 전문가들 가운데 상당수는 “이제 내가 잘 알고, 말이 쉽게 통할 사람들이 청와대에 많아질 것 같다”며, 이명박 정부에 대한 ‘낙관적’ 전망을 제시하였다. 여기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내세운 ‘실용주의’(pragmatism)에 대한 기대도 한몫을 하였다. 많은 이들이 한국의 대선 과정 동안 반복적으로 활용된 ‘노무현=이념, 이명박=실용’이라는 프레임을 별다른 여과장치 없이 받아들였던 것이다. 실제로 ‘한국 전문가’라고 하는 이들 가운데 한국어를 전혀 구사하지도 못하는 경우가 상당수이며, 한국 현대사나 국내정치의 복잡성에 대한 충분한 지식 없이, 그저 조선일보나 중앙일보 영문판 기사를 통해서 한국에 관한 정보를 확보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한미동맹의 중요성이 여전히 강조되는데도 워싱턴 싱크탱크에서 한국의 존재감은 약하다. 미국기업연구소가 주최한 이명박 정부와 한미관계 토론회

누가 워싱턴 싱크탱크의 ‘한국 전문가’인가

존스 홉킨스 대학교 외교대학원(SAIS)의 한국연구과를 맡고 있는 서재정 교수는 “과연 워싱턴의 한국 전문가들이 한국에 대해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가에 대해 의문”이라고 하면서 “중국이나 일본 연구자들의 경우, 해당 국가의 언어, 역사, 문화에 대해 일정한 수준을 갖춰야 전문가로 대우 받지만, 한국 전문가들은 몇 차례의 한국방문만으로도 전문가로 대접받고 있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오랫동안 주한 미국대사관 정치과장으로 근무하였고, 현재는 스탠포드대학교 아시아태평양연구센터 한국연구 프로그램 부대표로 일하고 있는 데이빗 스트라우브 역시 비슷한 진단을 내놓고 있다. “한국에 대해 조금씩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을 진짜 ‘한국 전문가’라 할 수는 없다. 대한민국의 정치, 사회,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분석할 만한 사람이 더 필요하다.” 워싱턴 싱크탱크의 한국 전문가들 가운데는, 일본이나 중국을 주된 영역으로 하면서 한국까지 다루고 있거나, 핵확산 문제로 북한을 다루게 면서 그를 계기로 남한 국내 문제에 관한 발언을 하는 이들 또한 적지 않다.

현재 미국에는 정부 관료로써 한국 문제를 다뤄 온 이들, 전직 주한 미국대사들, 주요 대학에서 한국학을 가르치는 교수들, 그리고 싱크탱크 소속의 연구원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경력과 배경을 갖춘 이들이 미국의 한반도 정책과 여론 형성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그러나 이 가운데 워싱턴 싱크탱크에 속한 한국 전문가들의 숫자나 역량은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북핵 문제에 있어 가장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니컬러스 에버슈타트 박사는, 댄 블루멘탈이나 존 볼튼 전 유엔주재 미국대사 등과 더불어 미국기업연구소 소속의 대표적 네오콘이자 한국 문제 전문가로 분류된다. 헤리티지재단에는 현재, 미국 중앙정보국 한국담당 부국장 등 정보기관에서의 오랜 근무경력을 지닌 브루스 클링너가 한국을 담당하고 있다. 그는 최근 북핵 문제 뿐만 아니라 남한의 정치나 경제, 일본까지 포괄하는 분석보고서들을 가장 활발하게 제출하고 있는 인물이다. 지금은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차관보 특별보좌관으로 자리를 옮긴 한국계 발비나 황 박사의 후임으로 발탁되었다.

전략 및 국제문제연구센터의 경우, 현재 조지타운대학교수이자 전 국가안전보장회의 아시아담당 보좌관을 지냈던 마이클 그린 재팬 체어 대표가 한국 문제에 관한 적극적인 논평 활동을 벌이고 있다(실제로 한국 언론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한명이지만, 그는 분명 ‘일본 전문가’이며 그 시선으로 아시아를 읽고 있다). 이외에도 아인혼 선임연구원이나 데릭 미첼 선임연구원이 한반도 문제에 관한 정책들을 다루고 있는데, 특히 데릭 미첼은 오바마 후보 캠프에 속한 대표적 아시아 문제 전문가 가운데 한명이다. 전략 및 국제문제연구센터의 자문위원직을 맡고 있기도 한 커트 캠벨 새로운미국안보센터 대표나 랠프 코사 퍼시픽 포럼 회장 역시 중요한 한반도 문제 전문가들로 손꼽힌다.

브루킹스연구소 소속의 한국 전문가로는 리차드 부시 박사와 마이클 오핸런 박사 등이 손꼽힌다. 그러나 원래 이들은 각각 대만 전문가, 군사 및 중동 문제 전문가들이다. 실제로 마이클 오핸런 박사는, 마이클 모치즈키 조지 워싱턴 교수와 함께 『대타협』이라는 북핵문제 해법을 제안하는 저작을 집필하기도 했으나, 스스로가 ‘한국 전문가’로 불리는 것이 아직 부담스럽다는 입장이다. 그는 “자신이 ‘한국 전문가’로 불리는 것 자체가 현재 브루킹스연구소의 한국 연구 수준이다”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피터 페터슨 국제경제연구소의 마커스 놀랜드 박사와 브래들리 뱁슨 전 세계은행 북한 담당관이 북한 경제 전문가들이며, 한미 자유무역협정 문제 등에 대해선 같은 연구소 제프 스캇이 전문가로 손꼽힌다. 북한문제와 관련해서는 국제정책센터 셀리그 해리슨 국장이 한국에도 많이 알려져 있다. 이외에도 앨런 롬버그 스팀슨센터 선임연구원, 래리 닉시 미 의회조사국 선임연구원, 오공단 국방분석연구소 연구위원 등이 중견급 한국 전문가들로 평가된다.

아시아재단의 스콧 스나이더

“매출은 크되, 수익은 작다”

최근 워싱턴 싱크탱크에는 이미 상당한 연구 역량과 넓은 활동 반경을 보여주는 ‘소장파’들의 활약도 쉽게 확인된다. 진보적 싱크탱크인 정책연구소의 존 페퍼는 남한과 북한 문제 전반에 대한 활발한 기고를 계속해 오고 있지만, 미국 주류 싱크탱크들이 개최하는 한국 관련 세미나에서 잘 등장하지 못한다. 북핵 문제에 대해 비교적 강경한 입장을 취해 왔던 고든 플레이크 맨스필드재단 사무총장이 오바마 캠프의 대표적 한국 전문가로 언급되고 있다(※민주당 부통령 후보로 지명된 조셉 바이든 상원의원의 핵심 스탭 가운데 한명인 프랭크 자누찌는 대표적인 지한파 인물이다. 넬슨 리포트는 프랭크 자누찌, 고든 플레이크, 토마스 허바드, 도널드 그래그, 스티브 보스워스 전 주한대사, 무기통제 전문가 조엘 위트 등을 오바마의 한국 정책 자문단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와 더불어 아시아재단의 스캇 스나이더, 북한 인권위원회 전 사무총장 피터 벡 등은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워싱턴의 한국 전문가들이며, 실제로 워싱턴 싱크탱크들이 개최하는 한국 관련 토론회 등의 가장 ‘단골’로 초청되는 인물들이다. 미국 의회 재원으로 운영되는 평화연구소의 존 박 선임연구원 역시 최근 주목받고 있는 젊은 한국 전문가 가운데 한명이다.

문제는 적지 않은 ‘한국 전문가’들에도 불구하고, 워싱턴 싱크탱크 세계에서 “한국의 존재감”은 전혀 크지 않다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요인 가운데 하나는 ‘제도화된 거점’ 마련을 위한 전략적 투자의 부재라 할 것이다. 중국 연구가 브루킹스연구소와 카네기기금의 중국연구 프로그램을, 일본 연구가 전략 및 국제문제연구센터 재팬 체어를, 대만 연구가 스팀슨 센터를 중요한 기반으로 하고 있다고 할 때, 한국 연구의 조직적 거점이라 할 수 있는 주류 싱크탱크는 하나도 없다. 이는 한국 정부의 워싱턴 싱크탱크들에 대한 접근방식이 전략적인 투자보다는 일회성 세미나나 유명 인사들의 이름값에만 급급함을 의미한다. 오공단 박사는 일찍이 한국 정부가 브루킹스연구소나 외교관계평의회와 같은 ‘주류 싱크탱크’에 한국 프로그램을 제도화할 것을 수차례 제안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아쉬워하였다. “작은 프로젝트 몇 번 한 것을 가지고 한국에 우호적인 인물이 만들어지길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다. 브루킹스연구소에 한국 연구 책임자가 있다고 생각해 보라. 그의 존재만으로도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데, 한국 정부는 그런 식의 투자를 중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재 워싱턴 싱크탱크의 한국 연구에는 국제교류재단의 지원이 작지 않은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교류재단은 주로 대학의 한국 연구에 비중을 더 크게 두고 있으며 워싱턴에 대한 전략적 투자를 주도하지는 못하고 있다. 피터 페터슨 국제경제연구소의 마커스 놀랜드 박사는 국제교류재단이 보여 주는 지나치게 ‘관료적’인 행태들도 워싱턴 싱크탱크들이 한국 연구에 소극적인 요인이 되고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국제교류재단과 더불어 워싱턴 소재 한미경제연구소(Korea Economic Institute) 또한 중요하다. 미일경제연구소(JEI) 모델을 따라 설립된 한미경제연구소는 찰스 프리처드 현 소장 취임 이후 활동범위를 ‘경제’ 문제에서 ‘안보’로까지 확장하면서, 그것의 활동과 공신력 등의 상승효과를 누리고 있다.

국제교류재단이 주로 대학의 한국어, 한국역사, 한국문화에 관련한 ‘장기투자’를 우선하고 있고, 주요 싱크탱크들이 한국문제 전담자를 거의 두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한미경제연구소는 소중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 커크 라슨 브리검 영 대학교 교수(전 조지 워싱턴 대학교 한국 프로그램 담당 교수)의 설명이다. 또한 주미 한국대사관이 운영해 온 코러스 하우스(KORUS HOUSE)의 강연 프로그램 또한 워싱턴 싱크탱크 소속 한국 전문가들의 견해를 직접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으나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점차 이 프로그램은 이전의 성격보다 ‘문화’나 ‘홍보’ 위주로 전환되고 있다. 이외에도 북한 문제에 관심을 갖는 미국의 몇몇 재단들―루스, 스탠리, 스카이프, 리차드슨 재단 등―이나, 삼성과 현대 등의 한국 기업들도 워싱턴 싱크탱크에서의 한국 연구에 필요한 자원을 간헐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이처럼 대사관, 국제교류재단, 한미경제연구소의 존재 등, 타이완과 비교할 경우 엄청난 수준의 제도적 기반이 워싱턴에 마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워싱턴 싱크탱크에서의 “한국의 존재감”이 타이완보다 크지 않다는 것은 결국 워싱턴 싱크탱크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전략 부재가 원인이었다. 브루킹스연구소 북동아시아정책연구센터의 객원연구원을 지냈던 카톨릭대학교 박건영 교수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서는 이에 긍정적인 조직과 인물에 대한 지적 교환과 도덕적 지원을 배가하는 방안이 강구되어야 함에도, 실제 한국 정부는 이에 대해 적극적이지도, 능숙하지도 못함을 지적한다. 아시아재단의 스캇 스나이더 역시 한반도 문제를 제대로 다룰 수 있는 인물과 기간에 대한 ‘전략적 투자’ 없이 워싱턴 싱크탱크에서 한국 연구의 위상이 제고될 것을 기대하기란 어렵다고 말한다. 개별 연구자들에 대한 단발성 프로젝트나 일회성 행사만이 주를 이루고, 중진 연구자가 책임자로 일할 수 있는 한국 연구 프로그램의 설치나 신진 연구자에 대한 장기적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매출은 크되, 수익은 작은” 비효율적 결과를 나을 뿐이다.

평화연구소의 존 박

‘이중 트랙 전략’이 필요하다

한국 정부나 기업이, 타이완처럼 대학보다 워싱턴 싱크탱크에 집중하는 전략을 택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최근 일본이 취하고 있는 ‘이중 트랙 전략’, 즉 장기적 효과를 발휘하는 대학에 대한 투자와 신속한 결과물들을 도출해 낼 수 있는 싱크탱크에 대한 동시 투자가 보다 적절할 것이다(그리고 일본은 ‘제도적 거점’을 만드는 것을 중시하였다). 이와 더불어 한국에 대한 관심과 경험을 갖게 되는 ‘다음 세대’가 변화하고 있다는 점을 정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한국전쟁, 주한미군, 평화봉사단, 모르몬 선교활동 등을 통해 한국어와 한국문화, 한국사회를 접했던 이들로부터 이제는 미국의 대학과 한국의 영어 학원을 통해 한국을 배워 가고 있는 이들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언어나 문화적 정체성에서 경쟁력을 갖는 동포 1.5세대와 2세대들의 활약도 커가고 있는 추세이다. 한미경제연구소의 안살림을 오랫동안 꾸려온 플로렌스 리에 따르면 연구소는 “미국 내 주요 대학들에 대한 순회강연 프로그램만이 아니라, 최근에는 전도유망한 젊은 동포 청년들이 함께 모이는 기회를 조직”하는 사업을 이미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한미경제연구소의 프로그램 개발 차원에서 국한되어서는 안 될 문제이다. 워싱턴 싱크탱크에 대한 훨씬 더 전략적인 접근과 체계적 투자가 절실하다. 만약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으로 당선될 경우, 앞으로 브루킹스연구소만큼 중요한 민주당 계열 싱크탱크의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예상되는 미국진보센터의 핵심 연구자들과 한국 대사관 소속 외교관들과 한국 특파원들은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접촉을 하였을까? 만약 미국진보센터에 ‘코리아 체어’(Korea Chair)의 개설을 매칭 펀드(matching fund)를 조건으로 국제교류재단이나 개별 기업이 제안하여 실현된다면? 어쨌든, 워싱턴 주요 대학들에 훌륭한 연구 역량을 갖춘 한국학 연구자들이 이미 많이 모여 있고, 여러 다양한 제도적 기반들이 튼튼하기에 한국이 처한 조건은 결코 나쁘지 않다. 결국 문제는 “전략적 투자”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역량에 달려 있다. 이제라도 시급히 한국의 독자적인 ‘이중 트랙 전략’이 만들어 져야할 것이다. “워싱턴 싱크탱크들이 한국을 어떻게 다뤄줄 것인지 기다리기만 하기보다, 한국이 워싱턴을 어떻게 다룰 지 먼저 고민해야 한다.”

피터페너슨 국제경제연구소의 마커스 놀랜드

글의 편집과 사진 등은 <시사IN> 원고와 일부 다를 수 있습니다.

<시사IN><희망제작소>는 총 5회에 걸쳐 “미국 싱크탱크들의 동아시아 연구 동향과 연구진에 관한 기획기사”를 공동으로 게재하고 있습니다. “제5의 권부”로까지 불리며 미국 국?내외 정책 형성에 막강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싱크탱크들에서 과연 누가, 어떻게 한반도, 중국, 대만, 일본 등에 관한 연구를 진행해 가고 있는가를 살핌으로써, 향후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의 향방을 예측해 보고자 합니다.

지난 2년간 미국 조지워싱턴 대학교 시거센터의 객원연구원으로 머물며 미국 싱크탱크들에 대한 연구를 수행해 왔던 홍일표 박사(희망제작소 선임연구원, 『세계를 이끄는 생각 : “사람과 아이디어를 키워라”―미국 싱크탱크의 전략』(중앙북스, 2008)의 저자)는 미국 싱크탱크들의 동아시아 연구 현황과 주요 전문가들에 대한 입체적인 정보와 분석을 제공할 예정입니다. 첫회는 “미국 싱크탱크란 과연 어떤 곳인가,” 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돕는 글로 작성되었습니다. 본 글은 <시사IN> 48호에 게재되었으며, 시사인 온라인 사이트의 e-book을 통해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기획연재 ‘미국의 씽크탱크를 가다’ 리스트
①중국의 대약진
②워싱턴의 그들 미국을 넘어 세계를 기획하다
③타이완의 ‘전략 투자’ 뿌린 대로 거두네
④미국은 여전히 일본을 중심으로 아시아를 관리한다
⑤대한민국 연구할 ‘조직 거점’부터 세워야 한다

※이번호를 끝으로 시사IN-희망제작소 공동기획 [미국 싱크탱크를 가다 : 미국 싱크탱크의 동아시아 연구]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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