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싱크탱크와 동아시아 : 한국(1-2)] “한반도 전문가에 대한 전략적 투자가 필요합니다.”

홍 : 그럼, 잠시 개인적인 질문을 좀 드려 보겠습니다. 한국과의 인연은 어떻게 맺게 되셨습니까?

스나이더 : 저는 원래부터 한국이라는 렌즈를 통해 아시아를 보아 왔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학생 시절 이미 한국을 경험했었기 때문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대학을 졸업한 직후 저는 1년짜리 펠로우쉽 프로그램으로 한국에서 지낼 수 있었습니다. 그 때 저는 한국, 한국어, 한국 역사 등을 공부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연세대학교였는데요. 제가 간 해가 1987년이었는데, 바로 그해에 연세대학교에 국제관계대학원(GSIS)이 만들어졌었습니다.

홍 : 그럼, 1987년 6월 항쟁을 한국에서 경험하셨던 것인가요?

스나이더 : “6월 항쟁”을 직접 경험하진 못했습니다. 제가 도착한 것은 8월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제가 도착한 8월까지 최루탄 가스가 학교 곳곳에 그대로였습니다. 바로 그때 저는 거기에 있었던 것이고, 그것은 정말 제게 흥미롭고도 중요한 경험이었습니다. 사회와 정치, 그리고 경제가 모두 ‘이행’의 과정에 있던 시기였죠. 제가 원래 한국으로 가고자 계획했던 것은 6월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 저는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던 일에 대해 비교적 많은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항상 신문을 읽으며 한국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저희 부모님도 그 신문을 같이 보셨다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 부모님께선 늘 제게 “내 아들을 어떻게 그렇게 위험한 곳에 보낼 수 있겠냐”라고 말씀하시곤 하셨습니다. 당시 저를 한국에 보낸다는 것이, 저희 아버지에겐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셨죠. 그는 이미 베트남 전쟁을 경험해 보셨기 때문에, 당신의 아들을 한국과 같이 위험한 곳으로 보낸다는 것이 결코 반길만한 일은 아니었던 것이죠. 당시 한국에서 벌어진 격렬한 시위장면들이 해외 언론들에 의해 많이 전해졌었습니다. 홍박사께서도 잘 아시겠지만, 당시 각국 사진기자들이 대학생들의 시위장면을 사진에 담으려 할 때, 가장 대표적인 곳 가운데 하나가 연세대학교 정문이었습니다. 당시 저희 부모님들이 텔레비전을 보실 때, “아, 저기가 우리 아들이 가려하는 대학교 아닌가?”라고 놀라셨던 것은 당연한 상황이었죠. 이런 이야기들은 제가 한국과 인연을 맺게 된 이야기 전체의 한 부분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홍 : 그럼, 한국에는 1년간 머물렀던 것인가요?

스나이더 : 예, 그렇습니다. 그렇게 1년을 보낸 후, 다시 미국으로 돌아 와 하버드 대학교 대학원 아시아 연구학과에서 2년을 공부하여 석사를 마쳤습니다. 아시겠지만, 하버드 대학교의 아시아 연구 분야에는 미국 내 다른 어떤 대학교보다 더 훌륭한 교수진들이 속해 계십니다만, 한국을 전공한 교수님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당시 중국이나 일본과 관련된 과목을 훨씬 더 많이 들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홍 : 스나이더 당신과 더불어 현재 미국 싱크탱크 소속 연구자들 가운데 대표적 인물이라 할 수 있는 고든 플레이크(L.Gordon Flake)와 당신은 매우 가까운 사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같이 북한 관련 비정부기구(NGO)에 관한 책(With Good Intentions: The NGO Experience in North Korea)을 펴내기도 하였구요. 고든 플레이크는, 당신과 자신이 매우 친하지만, 동시에 조금은 다른 장점과 캐릭터를 소유했다고 얘기하더군요. 실제로 스나이더 연구위원이나 고든 플레이크 사무총장, 피터 백(Peter M. Beck) 북한인권위원회(U.S. Committee for Human Rights in North Korea) 사무총장 등은 능숙한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대표적인 젊은 세대 연구자들이라 여겨집니다.

스나이더 : 고든 플레이크와 저의 만남은 1990년대 초반까지 거슬러 올라 갑니다. 당시 저는 뉴욕에 있는 아시아 소사이어티(Asia Society)에서 일하고 있었고, 당시 고든은 아직 대학생(Brigham Young University)이었고, 아마 우리가 했던 어떤 프로그램에서 처음 만났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뒤에 고든은 한미경제연구소(KEI)에 결합했고, 저는 비록 뉴욕에 있었지만 본격적인 교류가 시작될 수 있었습니다.

홍 : 그러면, 혹시 한국과 관련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는 ‘젊은 세대 연구자’들을 거명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스나이더 : 물론입니다. 저도 이미 나이가 좀 들었나요? (웃음) 제가 볼 때 중요한 연구자들로는 존 박(John S. Park, USIP)이나 재이 구(Jae H. Ku, SAIS) 등을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외에도 주요 대학들에 젊은 한국 관련 연구자들이 많이 있지요. 하지만 싱크탱크 소속 연구자들이라고 좁혀 말해 본다면, 그렇게 많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홍 : 저는 아직 존 박과 만나보지는 못했습니다만, 그가 중요한 젊은 연구자라는 얘기는 많이 듣고 있습니다. 또한 최근에 그와 스나이더 연구위원, 그리고 전략 및 국제문제연구센터의 보니 글레이저(Bonnie S. Glaser) 연구위원 세 명이 공동으로 발표한 보고서(『말 안 듣는 이웃을 주시하기』Keeping an Eye on an Unruly Neighbor : Chinese Views of Economic Reform and Stability in North Korea)도 흥미롭게 읽어 보았습니다. 잠시 얘기를 다른 곳으로 돌려 보면, 이처럼 각기 다른 소속의 연구자들이 공동으로 보고서를 작성할 때는 어떤 방식으로 그것이 이루어지는지요? 예컨대 시간과 보수 등은 어떻게 조정되고 관리되는지요? 예를 들어, 스나이더 당신은 현재 아시아재단 소속인데, 그 보고서는 전략 및 국제문제연구센터가 중심이 되어 진행된 프로젝트의 성과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가 적지 않은 것 같던데요.

스나이더 : 제 경우엔 그런 기회가 자주 있습니다. 우선, 아시아재단은 정확히 말하자면 “싱크탱크”라 할 수 있는 조직이 아닙니다. 오히려 ‘개발과 원조’를 중심으로 하는 조직이지요. 저는 아시아재단 한국대표를 맡으며 아시아재단과 인연을 맺기 시작하였는데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저는 꾸준히 ‘정책관련’ 업무에 주로 관여를 해 왔습니다. 그리고 재단은 제가 그런 일을 하는 것에 대해 비교적 관대한 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비록 아시아재단이 주로 ‘개발문제’를 다루는 곳이지만, 재단 역시 여타 정책관련 이슈들에 일정한 수준에서 연계를 맺고 있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 조직 내부에는 그런 연구역량이 그렇게 충분하질 않습니다. 지금 저와 함께 일하고 있는 동료들 대부분 역시 ‘연구자’들이라기보다는 ‘프로그램 매니저’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 분야에서 매우 뛰어난 전문가들임에 틀림없습니다. 예컨대 협치(governance)나 민주주의(democracy) 등에 있어서,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은 ‘현장’ 전문가들입니다. 다시 말해, 그들은 매우 훌륭한 전문가들이지만 대부분이 자신들이 다루는 ‘나라’에 관해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 재단에는 아주 유명한 인도네시아 전문가가 계신데, 그는 평생 인도네시아 문제만 다뤄왔던 분이시죠. 저 역시 아시아재단 한국대표를 맡으면서 한국에 관한 전문가가 될 수 있는 매우 소중한 기회를 부여받았던 것입니다.

홍 : 그렇다면, 아시아재단이 아닌 다른 곳에서 발주한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될 경우, 시간이나 급여 등의 조정은 어떻게 이루어진다는 것인가요? 아시아재단이 관대하게 대해 준다고 한다고 하더라도, 업무 시간 내에 다른 프로젝트에 관련된 연구를 할 수 있기도 하는 것인가요? 또한 프로젝트 참여에 따른 수당을 따로 받을 수도 있을 것이구요.

스나이더 : 그렇긴 하지요. 하지만, 기본적으로 아시아재단은 저의 그런 관여를 장려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전략 및 국제문제연구센터의 해당 프로젝트에 참여했을 때, 중국 출장 등에 관한 경비는 전략 및 국제문제연구센터가 지급합니다. 하지만, 기본적인 급여는 아시아재단이 지급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프로젝트들의 경우, 그렇게 규모가 크지 않은 것이 대부분입니다. 상징적 수준의 사례금을 받기는 하지만 액수는 그리 크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재단은 제게 그만큼의 시간을 ‘기부’해 주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저는 그것을 다시 또 다른 프로젝트에 ‘기부’하고 있는 것이구요. 만약 ‘기부’라는 표현이 적절치 않다면, ‘보조’(subsidizing) 정도가 정확하겠군요.
홍 : 그럼, 이제 새롭게 출범한 한국의 이명박 정부에 대한 당신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브루킹스연구소 웹사이트에 게시되어 있는 당신의 글(Inauguration of Lee Myung-bak: Grappling with Korea’s Future Challenges)을 읽어 보았습니다. 그 글에서 당신은 이명박 정부에게 열린 기회는 물론 도전과 변화 등에 대해 다양하게 언급하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747” 공약이나 국내 정치에 대한 전망도 담고 있었는데요.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국민적 지지도가, 인수위원회나 장관인선 과정 등에서의 혼선과 부적절함 등의 이유로 인해, 오히려 전임 대통령들의 취임 직후 수준보다 훨씬 낮게 나타나는 등, 그리 낙관적일 수만은 없는 상황이라는 의견도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스나이더 : 제가 그 글을 썼던 것은 일단 2월 초였기 때문에 지금의 상황과는 약간 다를 것입니다. 그때는 몇 가지 문제점들이 이제 막 보이기 시작하던 시점이었으니까요.

홍 ; 그래서 제가 드리고 싶은 질문 역시, 이명박 정부의 출범 직후 그에 대한 기대와, 그 이후 몇 달 간의 변화까지 포함하여, 당신이 보시는 향후 한국 정치, 그리고 한미관계 등에 대한 전망을 들어봤으면 하는 것입니다.

스나이더 : 알겠습니다. 보통 이러한 정치적 이행의 국면에선, 특히 이번 한국에서의 정치적 변화와 같은 상황에선, 대체로 큰 기대와 에너지들이 초기에 분출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런 ‘기대’와 ‘희망’이 모두 ‘실현’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현재 한국의 경우, 그 나라를 ‘통치’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가 않다고 여겨집니다. 그것은 많은 경우 긍정적인 의미를 띤 것으로, 사회가 보다 더 복잡하고 성숙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잠재적으로는 부정적 측면도 함께 갖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노무현 대통령이 져야 했던 ‘통치의 부담’만큼이나 노무현 대통령 후임자 역시 그만큼의 부담을 져야할 것이라는 점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명박 대통령이 그런 어려움을 잘 해결해 낼 수 있는 능력(skill set)을 과연 가지고 있는지 여부를 좀 더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이명박 대통령은 대기업의 최고경영자 출신이고, 서울시장이었다는 점을 이유로 그가 뛰어난 행정능력을 갖추고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 몇 달 동안 어떻게 보면, 전통적인 한국 사회의 갈등구조가 잠시 수면 아래로 가라 앉은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사라졌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이번 장관 인선과정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 사회는 그동안 이미 많이 변했습니다. 특히 한나라당(의 전신)이 한때 집권세력이었을 때와 비교한다면 정치 환경은 크게 변해 있는 것입니다.

또한 제가 쉽게 확언할 수 없는 것 가운데 하나가,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이 과연 어떻게 서로 협력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아시다시피 이명박 대통령은 전통적 의미의 ‘정당 지도자’가 아닙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분명 그의 서울시장 경력 등을 기반으로 하여 한나라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승리를 거두었던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런 상황은 다소 복잡하지만 매우 흥미로운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왜냐하면, 만약 제게 누가 가장 한나라당을 대표하는 인물인가를 묻는다면, 저는 여전히 박근혜가 한나라당의 대표적 인물처럼 보인다고 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연 이명박 대통령이 향후 한나라당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인가가 무척 궁금하게 여겨집니다.

이와 관련해서 재미있는 것은, 그가 물론 당내 경선을 통해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지만 그것이 그가 한나라당 전체를 이끌 만큼 압도적인 것은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10년 전과 비교할 때 가장 큰 차이점은, 대통령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당을 완전히 통제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현실에서 그러한 정당과 대통령의 끈이라고 하는 것은, 과거 한국 정치를 지배해 왔던 관계입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그런 관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명박 대통령이 한나라당에 영향을 미치고자 할 때 그것은 ‘간접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그가 ‘직접적’ 통제를 시도하려 한다면, 거기엔 분명히 후폭풍이 몰아닥칠 것입니다.

홍 : 실제로 현재 한나라당 내에서는 ‘친이’, ‘친박’이라 불리는 세력들 간의 당 주도권을 둘러싼 다툼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4월 총선을 앞두고, 소위 ‘친박’으로 분류되는 인물들이 대거 공천에서 탈락하게 되면서 이들 사이의 긴장은 더욱 수위가 높아져 가고 있는데요.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이명박 대통령이 ‘친이’로 불리는 이들을 매개로 한나라당을 장악하려 한다고 의심하고 반발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이 인터뷰는 4월 총선이 이루어지기 약 한달 전에 진행된 것으로, 그 뒤 ‘친박’ 계열 의원들의 탈당, <친박연대>나 <친박무소속 연대>의 결성, 4월 총선 결과 등에 대해선 인터뷰에서 다뤄질 수 없었음을 다시 밝혀 둔다)

스나이더 : 제가 브루킹스연구소에서 썼던 글에서도 그런 당내 정치나 대통령과 여당과의 관계에 대해 간단히 썼습니다만, 일단 너무 자세한 내용에 대해선 미국 대중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지금 우리는 누가 대통령인지는 이미 알고 있으나, 과연 그가 어떤 정치적 맥락 속에서 그의 임무를 수행해 나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좀더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라 여겨집니다. 예를 들어, 그가 이미 각 부처 장관들을 임명하였지만, 우리는 여전히 과연 그들이 이명박 대통령이 제기하는 정책 아젠다들을 실현해 낼 수 있는 권력과 능력을 과연 갖추고 있는가에 대해선 좀더 기다려 봐야 알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가 가고자 하는 ‘방향’ 그 자체에 대해서조차도 아직은 불명확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아직, 과연 새롭게 구성될 의회의 의원들이 대통령의 정책을 지지할 것인지, 대통령 스스로가 자신의 정책적 아젠다를 실현하기 위해 좀더 왼쪽으로, 또는 오른쪽으로 기울어진 정책연합을 시도할 것인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이는 마치 2년 전, 이 곳 미국에서 벌어진 상황과도 비슷합니다. 갑작스레 민주당이 의회 다수당을 장악하게 되었고, 정치적 맥락 자체가 변화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됨으로써, 부시 대통령이 자신의 2기 재임 기간 중 첫 2년 동안 의회를 상대해 왔던 방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2기 임기 후반 2년을 보내야 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한국의 경우, 전통적으로 통령은 의회 다수당의 지지를 받아야 뭔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실현할 수 있는, 그런 정치 구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은, 한나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고 대통령이 되었지만, 그는 결코 당을 이끌어 본 제도적 권력을 행사해 본 적이 없는 인물입니다. 오히려 박근혜가 항상 그 역할을 해 왔던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이명박 대통령이 과연 어떻게 한나라당과 대통령의 관계를 공고히 할 것인가가 매우 중요한 정치적 요소라 생각합니다.

또 다른 요소로는, 말할 것도 없이, 아래로부터 제기되는, ‘개혁’에 대한 다양한 사회적 압력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실제로 한나라당의 경우, 그런 문제들을 직접 해결해 본 경험이 없는 정당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아직, 한나라당이 과연 앞으로 어떤 정당이 될 것인지에 대해 알 수가 없다고 할 것입니다. 모든 것이 아직은 불확실합니다. 어쩌면 과거 노무현 정부나 열린우리당이 겪었던 어려움을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 역시 똑같이 겪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열린 우리당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했고, 그의 친구들도 많았고, 열린우리당은 제1당인 여당이었지만, 그 둘의 관계는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열린우리당의 많은 의원들은 언제나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곤 했었습니다.

홍 : 혹시 ‘노명박’이라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노무현 정부와 유사한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는 얘기를 하셨는데요.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이 스타일이나 처한 조건이 닮았다는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스나이더 : 제가 말씀드리고 싶었던 것은 오히려 ‘구조적 이슈’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정치지도자들의 자질에는 커다란 차이가 난다고 믿고 있습니다. 솔직히 이명박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이 가졌던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고 봅니다. 하지만 저는 이명박 대통령이 자신이 해결해야 할 과제를 풀어야 하는 상황에서는 훨씬 더 나은 ‘관리자’가 될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이 발생할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는 아마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원칙과 메커니즘을 발견해낼 것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저는 가끔 이런 말을 하곤 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한국 민주주의에 가장 크게 기여한 바는 그가 무언가를 ‘하지 않은’ 것에 있다.” 하지만, 저는 그러한 “하지 않음”이 실제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그는 검찰의 수사에 개입하질 않았습니다. 그것은 매우 큰 기여임에 틀림없습니다. 물론 그가 “하지 않은 것”에서 책임을 져야할 것도 발견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경제정책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던 것을 들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구조적’ 이슈들이 더욱 흥미로운 것은 사실입니다. 아마 한국 사회에서도 이런 점들이 더욱 논쟁이 될 것으로 보는데요. 예를 들어, 작년에 노무현 대통령이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했던 것에 대해, 저는 그것이 절대적으로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모든 사람들이 그것이 옳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봅니다. 다만 그것이 ‘노무현의 아이디어’였기 때문에 그것을 싫어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그런 시간은 지났지만, 같은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이제 언젠가 다시 그 문제가 새롭게 논의될 것으로 기대하며, 그 외에도 다른 시스템 이슈들, 한국 정부의 구조 등이 다뤄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한국의 선거관리위원회에 매우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이명박 대통령 역시 힘겨워 했긴 마찬가지지만, 어쨌든 선거관리위원회는 정당의 선거 운용과 선거자금의 통제 등에 있어 큰 역할을 수행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선거는 분명 10년 전과 달랐고, 또 5년 전과도 달랐습니다. 이러한 제도적 개혁의 성과에 대해선, 아마 이곳 디씨에 있는 소위 “한국 전문가”들의 95% 이상이 동의할 것입니다. 저는 바로 이러한 변화야말로, “플러스(+) 코리아”라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이라 할 것입니다.

홍 : “플러스(+) 코리아”라는 것이 무슨 뜻인가요?

스나이더 : 한국만의 독자적 중요성이라 할 것입니다. 예컨대, “차이나 플러스 코리아”, “비확산 플러스 코리아”라는 것입니다.

홍 : 이제 마지막 질문을 드려 보겠습니다. 향후 만약 민주당이 집권하게 된다면 “아시아 정책”에 어떤 변화가 있을 것이라 보시는지요? 그리고 과연 누가 민주당 정권의 아시아 정책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할 수 있을런지요?

스나이더 : 아직 확실하게 어떤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단정 짓는 것은 다소 이르다고 봅니다. 하지만 분명 일정한 변화는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부시 행정부의 경우, 다른 지역에서 생긴 문제들을 우선 풀어야 한다는 과제의 시급성 때문에 아시아 문제가 다소 뒤로 밀리 수밖에 없었습니다. 현재 미국 아시아 정책이란 것은, 중국에 대해 보다 협력적일 것인가, 아니면 견제를 강화할 것인가의 상대적 무게를 어디에 둘 것인가를 둘러 싼 논쟁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북한) 핵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시기 동안 “초당적 실패”를 경험하였습니다. 클린턴 행정부가 실패했고, 부시 행정부 역시 실패한 것이나 마찬가지라 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북한 문제가 “당파적 이슈”가 될 것이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공화당이나 민주당 모두 이런 실패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의 과제를 떠안고 있고, 이들은 문제 해결을 위한 새로운 접근을 시도할 것입니다. 하지만 당선자가 과연 어떤 인물들을 등용할 것인가에 따라 차이가 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물론 맥케인 후보가 당선될 경우, 민주당 후보들에 비해 북한에 대해 훨씬 더 강경한 태도를 취할 것임은 분명합니다. 어쨌든 제 생각으로는, 두 정당 간의 큰 얼개는 다른 것처럼 제시될 수는 있겠지만, 막상 현실에서 그것이 과연 얼마나 큰 차이를 드러낼 것인가를 따져 본다면, 저는 그렇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봅니다. 예컨대 현재 크리스토퍼 힐이 진행하고 있는 일련의 과정에 대해 민주당 역시 그리 불만스러워 하질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상당히 만족스러워 하는 양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그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민주당이 아니라 공화당 쪽에 더 많다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홍 : 오랜 시간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스나이더 : 저 역시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 서로 협력할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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