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편집자 주> “미국 지방자치가 들려주는 이야기” 기획 연재가 오늘부터 게재됩니다. 이번 기획 “미국 지방자치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작년 말 연재되었던“미국 풀뿌리 민주주의 리포트”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필자 정보연님은 3대 도봉구 구의원, KYC(한국청년연합회) 공동대표, 도봉시민회 공동대표(현)를 지내다가 현재 Columbia 방문 연구원으로 뉴욕에 거주 중입니다.

태초에 지방정부가 있었다. 분권이라고? 임권이거든!

임권이 맞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조물주로부터 몇 개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받았다…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 이 권리를 확보하기 위하여 인류는 정부를 조직했다… 정당한 권력은 인민의 동의로부터 유래하는 것이다. 어떠한 형태의 정부이든 이러한 목적을 파괴할 때에는… 새로운 정부를 조직하는 것은 인민의 권리이다.”
– 미국 독립선언문 중(1776년 7월 4일)

이렇게 해서 아메리카 이민자들은 영국과의 독립전쟁을 시작한다. 독립전쟁이 한창이던 1781년, 이미 독립을 선언한 터에 전쟁 이후에 우리는 어떤 국가를 만들 것인가? 라는 국민적 질문에 답할 필요를 느낀 신대륙의 지도자들이 모여 최초의 근대적 성문헌법인 연합규약 혹은 연맹규약을(Articles of Confederation) 채택한다. 이 규약의 주요 내용을 요약하면 “주권은 주민에 의해 수립된 주 정부만이 가질 수 있다. 따라서 주정부는 독립된 주권체로서 입법, 행정 등 모든 권한을 가지며, 이 연합규약에 의해 설립되는 연합의회는 외교, 국방, 화폐, 인디언대책 등 각 주에서 위임받은 사무만을 처리한다.”

그렇다. 미국이라는 나라를 디자인했던 사람들의 최초 구상은 각 주 정부가 주권국가의 권한을 가지며, 자기 권한의 일부를 위임하여 연합정부를 구성한다는 것이었다. 분명 지역이 권한을 위임하여 중앙을 구성하는 것, 임권이다.

물론 독립전쟁에서 승리한 이후인 1787년에 개최된 헌법제정회의(Constitutional Convention)에서 116일에 걸친 치열한 토론 끝에 만들어진 현재의 헌법은 독립적인 주정부의 느슨한 연맹을 구상했던 연합규약과는 달리 미국을 하나의 국가로 묶기 위해 연방정부가 징세권, 상비군 보유 등의 주요기능을 갖도록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헌법은 몇 가지 경우를 제외하고는 연방정부와 주정부가 동등한 지위를 향유하며 주정부는 연방정부의 산하조직이 아닌 완전히 독립된 정부임을 규정하고 있다. 특히 1791년 강력한 중앙정부의 출현을 막기 위해 연방정부에 대한 국민과 주정부의 위상을 강조한 수정 헌법 10개조가 채택되면서 현재와 같은 연방주의의 균형이 어느 정도 틀을 잡게 되었다.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권한에 관한 논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만 확실한 것 한가지는 주 정부의 합의와 위임에 의해 연방정부가 창설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이다.

많은 사람이 지방자치! 하면 분권을 떠올린다. 태초에 중앙이 있었고 그 중앙이 지역에 권한을 나눠준다는 발상이다. 하지만 진실은 그 반대에 가깝다. 원래 권한은 주민과 가까운 지역에 있는 것이고 중앙은 그 지역이 위임한 권한을 받아 구성된다. 인류가 사회란 것을 조직해 나간 역사를 보면 이것은 명확한 사실이다. 서양 문명의 시초인 그리스는 도시국가였고, 고구려도 중앙이 매우 약한 부족연맹체였다.

지역 주민들이 모여 회를 만들면 그게 지역정부이고, 지역정부가 모여 룰을 만들면 그게 중앙정부이다. 그렇다면 지역정부가 세금을 걷고 그 중에 일부를 중앙정부에 보내는 것이 맞다. 국세란 개념은 없어지는 것이다. 대부분의 인허가권과 입법권도 기본적으로 지역이 갖는 것이 좋다.

모든 권력은 사람과 직접 만날 때 인간적이다. 권력과 인간이 서류를 통해서 만나기 시작하면 딱딱하고 비정해진다. 따라서 가능하면 좀 더 많은 권력이 동네에 머물러 있는 것이 좋다. 동네 권력은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네 정부를 만들자!
그리고 청와대와 여의도에는 최소한의 권한만 위임하자!
대한민국을 그렇게 다시 디자인하자!
”?”Municipality

오늘은 7회 기고의 첫번째 순서이다. 그래서 미국의 지방정부에 대해 간단하게 소개를 좀 하려고 한다. 우리와 무엇이 다른지, 어떤 특징이 있는지 대략적으로 살펴볼 테니 미국 지방자치에 대해서 감을 잡으시라.

주 정부는 그 자체로 하나의 국가적 성격을 가지기 때문에 빼고 진짜 지방정부라 할 수 있는 카운티(County)와 Municipality만(적당한 한국말이 없어서 그냥 영문으로 쓰겠다.) 소개한다.
우선 Municipality를 다룰 텐데 사실 이 Municipality는 매우매우 재미있기 때문에 다음 기고에서(2회 기고글의 제목은 “작아야 참여하기 좋지. Municipality!”이다.) 자세하게 살펴볼 예정이다.
오늘은 구체적인 지자체 운영은 빼고 일반 소개만 하기로 하자.

내가 살고 있는 미국 뉴저지는 2007년 기준으로 8,685,920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서울과 얼추 비슷한 셈이다. 서울의 지방자치 계층이 서울시-자치구(25개)-동(500여개)인 것처럼 뉴저지도 뉴저지주-카운티(21개)-Municipality(566개)로 구성되어 있다. 즉 Municipality가 모여 County를 구성하고 County가 모여 주를 구성하는 것이다.

버겐 카운티(Bergen County), 에섹스 카운티(Essex County)처럼 카운티는 구체적인 행정 지명에 사용되지만 Municipality는 주민하고 가장 가까운 지방자치단체를 지칭하는 일반명사로서 실제의 지명에는 사용되지 않는다. 예로 들면 포트리 보로(Fort Lee Borough.), 뉴왁시(Newack City), 리지우드 빌리지(Ridgewood Village), 해먼톤 타운(Hammonton Town)과 같이 실제 지자체 명칭에는 보로(Borough), 시(City), 빌리지(Village), 타운(Town) 등이 사용되고 이렇게 주민과 가장 가까운 작은 지자체를 통틀어 Municipality라고 지칭하는 것이다.

미국의 가장 작은 지자체인 Municipality는(뉴저지의 어떤 Municipality는 인구 1,000명도 안되고, 또 어떤 것은 200,000명을 넘기도 하지만 대략 인구 5,000명에서 50,000명 사이라고 보면 된다.) 한국의 동과는 달리(보통 인구 30,000명 수준이고 선거를 통해 정부가 구성되는 지자체가 아니라 행정 사무소일 뿐이다.) 선거를 통해서 입법부와 행정부, 사법부가 구성되는 버젓한 하나의 지방정부이다.
내가 살고 있는 인구 30,000명의 포트리 보로(Fort Lee Borough)를 예로 들면 시정은(여기서 시정은 시라는 유형의 지자체에 한정하지 않고 보로, 빌리지, 타운, 타운십, 시 등 모든 유형의 지자체 행정을 뜻하는 일반적 의미로 사용했다. 이후로도 그런 의미로 사용하겠다.) 선출된 시장과 약간명의 시의원들이 책임진다. 시장이 임명하고 시의회가 승인한 경찰서장이 Municipality의 치안을 책임지며 Municipality 법원에서는 교통 관련 사범, 음주 운전, 기타 비교적 경미한 범죄에 대한 재판이 이뤄진다. 물론 기소를 담당하는 검사도 있고 국선 변호인도 있다.

120명의 자원봉사자로 운영되는 4개의 소방대가 있으며 이와는 별도로 미국에서는 Ambulance Corps라고 부르는 응급구조대도 있는데 이것도 자원봉사 기관이다. 소방대와 응급구조대는 비록 자원봉사 기관이긴 하지만 8주에서 6개월에 걸친 교육과정을 이수한 자들로 관련 자격증을 보유해야 봉사가 가능하며 하루 24시간, 1년 356일 쉬지 않고 운영된다. 자원봉사라고 깔보지 말란 말이다.
선출된 교육위원들로 구성된 지역교육위원회가 4개의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를 운영한다. 지역사회의 지식 센타와 같은 역할을 하는 도서관은 별도의 도서관 운영위원회가(Library Board) 운영을 총괄한다.

뉴저지의 경우 이 Municipality의 정치행정체제를 대략 5개의 유형으로 구분한다.
5명 이내의 선출된 의원들이 시정을 책임지는 가장 간단한 정치체제의 빌리지(Village)를 비롯하여, 의회의 의장이 시장을 겸직하는 타운십(Township), 시장을 따로 뽑기는 하지만 행정부와 입법부가 통합적 관계를 맺는 타운(Town)과 보로(Borough), 그리고 인구가 많은 지역에 적용되며 행정부와 입법부의 엄격한 분리를 추구하는 시(City) 등이 그것이다.

각 Municipality는 인구나 기타 정치 여건을 고려하여 자신에게 맞는 지자체 유형을 선택할 수 있으며 또 언제든지 바꿀 수 있다. 내가 살고 있는 버겐 카운티(Bergen County)만 해도 9명의 의원이 행정을 책임지던 형태에서 1986년 주민투표를 통해 1명의 행정장과 7명의 의원이 권력을 분점하는 형태로 지자체 유형을 바꾸었다. 아마 인구가 급속히 늘면서 권한과 책임 관계를 좀 더 명확히 하고 행정의 체계를 갖출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광역이건 기초이건, 서울이건 강릉이건 전국의 전 지자체가 강시장-약의회형을 채택하고 있는 한국에서 살다온 필자의 눈으로는 참 부럽다. 처지에 맞게 정치행정체제를 선택할 수 있다니 말이다.

County

2009년 3월19일 필자와 한국에서 온 13명의 지방의원들은 버겐 카운티(Bergen County)를 방문하였다. 행정장과의 간담회도 재미있었거니와 특히 각 파트의 국장들이 직접 나와서 자기 분야 행정 전반에 대해서 소상이 설명하고 질의응답하는 기회를 얻었으니 정말 운이 좋았다. 그 중 인상 깊었던 것을 몇가지 소개한다.
“아! 카운티 정부란 것이 이렇게 운영되는 구나.” 느끼시기 바란다.

70개의 Municipality가 모여 구성된 버겐 카운티(Bergen County)는 인구가 100만명으로 뉴저지주에서 가장 크며, 미국 전체로 봐서도 몇 손가락 안에 드는 큰 카운티이다. 전체 재정규모는 4억7700만 달러이고 이중 4억 달러 정도를 지방세 수입을 통해 자체 조달하며 나머지는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보조금 등으로 충당한다.

이 예산의 일부로 1개의 형무소와 지역대학(Bergen Community College) 그리고 7개의 학교를(Municipality에서 운영하는 초중고교와는 다른 특수목적의 학교. 예를 들면 버겐 카운티 기술 학교 등.) 직접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행정장(Executive)이 행정을 수반하고, 7명의 의원이(카운티 정부에서는 의원을 Freeholder라고 부른다. 연방정부의 상원 의원과 하원 의원, 주정부의 상원 의원과 하원 의원, 카운티의 의원, Municipality의 의원을 부르는 이름이 다 다르다. 처음에는 얼마나 헷갈렸는지…) 입법부를 구성한다.

이들 외에도 헌법적 공무원이라고(Constitutional Officers. 아마도 주 헌법에 언급된 직위들인 듯하다.) 해서 카운티 서기(County Clerk. 카운티의 등기 관리, 여권 발급, 선거 업무, 카운티 정부에서 관할하는 모기지 기록 관리 등을 총괄한다.)와 보안관(Sheriff. 1,000명에 달하는 형무소의 관리, Municipality의 경찰 업무 지원, 버겐 카운티 법원에서 벌어지는 재판 과정의 안전 책임, 기타 지역 보안에 관한 포괄적 홍보와 교육 등을 담당한다.) 그리고 유언검증판사(Surrogate)와 검사장(Prosecutor)은 막강한 권한을 가진 독자적인 기관들이다. 이중 검사장만 주지사가 임명할 뿐 나머지 3개의 직위는 행정장이나 의원들과 마찬가지로 선거를 통해 선출되기 때문에 그 독자성을 보장받는다.

카운티 정부는 많은 Authority(청), Agency(국), Commission(규제위원회)을 가지고 있지만 핵심적으로는 보건부, 공공사업부 등 8개의 부서로 구성된다. 이들 부서의 장들은 행정장이 임명하고 의회의 승인을 거치며, 행정장과 의원들의 정책 방향에 따라 공무원이 아닌 외부 인사를 임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날 우리와 함께 샌드위치로 점심을 때우면서 정성껏 브리핑을 해준 사회복지부의(Department of Human Services) 다간국장도 뉴욕시립대학의 교수로 재직하다가 4년 전에 버겐 카운티에 왔다고 한다. 카운티와 비슷한 급인 서울시 구청이 비서실의 일부 직원을 제외하면 공무원이 아닌 자를 임용하는 것이 불가능한데 미국은 훨씬 개방적이다. 이날 참석한 한국의 지방의원들도 시정을 역동적으로 펼치기 위해서는 고위공무원들에 한해 좀 더 개방적으로 임용하는 것이 필요하다는데 대체로 동의했다.
재미있는 것은 이들이 정무적 성격의 공무원이기 때문에 행정장이 바뀌면 자신들의 거취도 영향을 받게 되는 바, 사석에서는 현재의 행정장이 내년 선거에서 당선되도록 돕는 것이 그들의 Job Security라고(직업 보장) 이야기 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공공연하게 선거운동을 하는 것이 선거법 위반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미국의 정치 문화에서는 크게 문제되지 않는 듯하다.
”?”이상이 카운티 정부의 대략적 소개이고 이제부터는 특이한 사업 하나를 좀 자세하게 소개한다. 사업 내용도 의미 있을 뿐 아니라 그 사업이 결정되는 과정, 추진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미국 지방정부가 한국과 무엇이 다른지 그 한 단면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버겐 카운티의 인구가 늘어나고 급속히 개발되면서 “개발로부터 미래를 보호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에 따라 공지를(Open Space) 확보하고, 농지를 유지하고, 공원을 확대하기 위해 별도의 기금을 확보할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그 계획에 의하면 모든 주민들의 재산을(대부분 부동산) 평가하여 그 평가액의 매 100불마다 0.5센트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추가의 세금을 걷고,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니 5년 동안 2000만불을 넘지 않는 범위에서 채권 발행 등을 통해 카운티 정부가 재정을 보조하기로 했다. 주가 정한 법에 따라 새로운 세금을 걷는 문제는 주민의 동의가 필요했으므로 1998년 3월3일 선거용지의 Public Question을(매년 있는 각종 선거에서 투표용지에 질문을 적어 물어보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주민투표. 자세한 내용은 필자가 작년 기고한 “미국 풀뿌리민주주의 리포트(1) 선거용지를 보면 미국의 민주주의가 살짝 보인다.”
(참조. http://old.makehope.org/report/thema/brain/researchview.php?id=317&cate_key=0&st=45&srh_key=&srh_value=) 통해 주민투표에 부쳐졌다. 찬성이 압도적으로 많았으므로 카운티 의회에서 정식 입법과정을 거쳐 “버겐 카운티 공지, 휴양지, 농지 및 역사보호지를 위한 기금(Bergen County Open Space, Recreation, Farmland & Historic Preservation Trust Fund)”이 만들어졌다.

아직 그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첫 시도인 만큼 5년 기한의 일몰제로(5년의 기한이 지나면 자동폐기되는 제도) 운영하였는 바, 제도가 성공적으로 운영되자 카운티 정부는 이 기금을 지속하기로 하고 2003년 11월 다시 한번 Public Question을 통해 주민투표를 진행한다. 이때는 좀 더 대담하게 “평가액의 매 100불마다 1센트를 넘지 않는 범위”로 상향 조정하였고 그 대신 카운티 정부의 빚으로 남는 채권은 발행하지 않기로 하였다. 이미 현실에서 이 사업의 필요성을 경험한 주민들은 역시 압도적으로 찬성하였다. 그렇게 해서 지금까지 운용되고 있는 이 기금은 지난 10년 동안 1억1422만불을(이글을 쓰고 있는 2009년 3월29일 환율에 따르면 1543억원 정도 된다. 버겐 카운티 정부가 이 정도의 재정을 들여 하고 있는 일은 “지역을 개발하는 일”이 아니라 “개발로부터 지역을 보호하는 일”이다.) 적립했고 642개의 프로젝트에 그 돈을 사용하였다.

”?”이 사업의 시행 과정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우선, 한국은 지방세의 세목을 전부 법률로 명시하고 있어 자치단체 스스로 새로운 세목을 개발하거나 부과할 권한이 없다. 이에 반해 미국은 주 정부가 제시하는 가이드 라인을 지키고, 주민만 동의하면 세목과 세율을 비교적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다. 그러니 지방정부가 창의성을 발휘해서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또 주민에게 참 많이 물어본다. 일명 “공지 기금(Open Space Trust Fund)” 하나를 만드는 데만 두번의 주민투표를 진행했다. 나는 한국에서 단 한번도 주민투표를 경험해 본 적이 없다. 중앙 정부건 지방 정부건, 누구를 뽑아 달라는 것 외에 나의 정치적 견해를 물어본 투표를 한 적이 없다.
“선거에나 해라. 그리고는 신경 쓰지 마라. 위임받은 자들이 다 할테니.” 그런 건가?

마지막으로 뭐든지 새로운 것을 시행할 때는 한국에 비해 매우 조심스럽다. 주민이 압도적으로 찬성하는 정책인데도 그 성패 여부가 확실하지 않은 만큼 5년 동안 한시적으로 운영하는 일몰제로 시행해보고, 그 평가에 기초해서 본격적인 제도화를 추진했다. 그리고 세율도 처음에는 “평가액의 매 100불마다 0.5센트를 넘지 않는 범위”로 낮게 책정하고 부족한 부분은 카운티 정부가 한시적으로 빚을 져서 충당하다가 사업 추진에 자신이 생기자 “평가액의 매 100불마다 1센트를 넘지 않는 범위”로 세율을 높였다. 뭐랄까 주민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고 세심하게 노력한다고 할까? 눈이 주민에게 가 있다고 할까?

자, 이제 마지막으로 카운티 정부의 정치행정 유형에 대해서도 잠깐 알아보자. 뉴저지는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자료가 없어서 뉴욕의 카운티 정부 구조로 대신한다. 그림을 보시라. 카운티 정부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 용어 해설(ABC 순)
ADMINISTRATIVE ASSISTANT : 행정보좌관
AUDITOR : 회계감사관
CLERK OF LEGISL. : 입법서기(입법부의 각종 자료를 관리)
COMMUNITY COLLEGE : 지역대학(보통 2년제.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은 대부분 입학이 가능하며 교육비가 매우 낮다. 가난한 학생이 지역대학에서 실력을 쌓아 좋은 대학에 진학할 수 있으며, 또 지역사회에 평생 교육의 장을 제공한다.)
CORONERS : 검시관
COUNTY ATTORNEY : 카운티 법률관
COUNTY CLERK : 카운티 서기(각종 등기, 선거 관리, 여권 발급 등의 업무 등을 맡는 선출직 사무관)
COUNTY LEGISLATIVE BODY : 카운티 입법부, 즉 의회
COUNTY MANAGER(Employed by Legislative Body) : 카운티 매니저(의회에 의해 임명됨. 행정이나 경영에 유능한 자를 매니저로 고용하여 행정 전반을 관리하도록 하는 미국 고유의 체제. 매니저는 선출직이 아니므로 시정을 책임지지는 않으며 다만 의회가 정한 행정 방향에 따라 행정을 관리하는 기능을 수행함. 뉴저지에는 행정수반인 시장을 선출하고도 매니저를 따로 임명하는 Municipality도 많음.)
DATAPROCESSING : 자료처리관
DISTRICT ATTORNEY : 검사장(선출직으로 경찰 및 수사관의 수사 결과에 따라 기소를 책임짐)
ELECTED OFFICIALS : 선출직 공무원들(미국은 시장, 의원뿐만 아니라 다양한 직위의 공무원을 선출함)
EXECUTIVE : 행정장
FUNCTIONAL COMMITTEES : 행정 기능을 수행하는 위원회들(의회중심형에서 입법역할뿐 아니라 행정수행역할까지 겸하는 의회의 위원회들을 지칭함)
LEGISLATIVE COMMITTEES : 의회의 각종 위원회들
OPERATING DEPARTMENTS & AGENCIES : 각종 부서와 행정청들
OTHER AGENCIES, OFFICIALS, BOARDS, COMMISSIONS, ETC. : 기타 행정청, 사무소, 위원회들
PURCHASING : 구매관
SHERIFF : 보안관
SPECIAL BOARDS & COMMISSIONS : 특별위원회와 규제위원회
TREASURER : 재무관
VOTERS : 유권자

”?”이 유형의 카운티 정부에는 별도의 행정 수반이 없고 의회만 있다. 의회가 입법과 행정을 모두 책임진다. 따라서 의회에 행정기능까지 떠맡는 FUNCTIONAL COMMITTEES가 설치된다. 우리는 미국이 대통령중심제 국가로서 행정수반 중심의 정치 전통이 강하다고 알고 있지만 사실 거의 모든 레벨의 정부에서 의회의 힘이 매우 강하다.

또 한가지 재미있는 부분은 선출직 공무원이 참 많다는 것이다. 행정장과 의원은 물론이요 검사장, 재무관, 보안관, 카운티 서기, 검시관까지. 검시관을 선출한다니 조금 우습기까지 하다. 사건사고가 많았던 미국 건국 초기, 수사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만든 직책인 듯하다. 여기는 대표적인 것만 언급했을 뿐이며 뉴욕시의 경우는 공익옹호관과 감사원장도 선거로 뽑는다. 이렇게 각 지자체의 상황에 따라 선출직의 종류와 수를 스스로 결정한다. 한국이 인구수에 따라 정해지는 의원과 시장만을 선출하는 것에 비하면 참 많이 뽑는다. 미국 국민들 참 좋겠다.

”?”

역시 선출된 행정 수반이 없는 유형이다. 다만 행정 규모가 커지고 서비스의 범위가 넓어져서 의원들이 행정을 관리하는데 어려움이 생기자 카운티 매니저라는 전문 관리자를 두었다. 카운티 매니저는 의회에서 임명한다. 따라서 이 유형에서도 여전히 의회가 강력한 권한을 가진다.

”?”
선출된 행정장을 두는 유형이다. 버겐 카운티가 바로 이 유형이다. Mayor가(시장) 시를 대표하는 자라는 의미를 갖는 명칭이라면 Executive는(행정장) 3권 분립에 기초해서 행정부만을 대표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영어로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를 보통 Executive, Legislative, Judicial이라고 표현한다.) 재밌는 사례가 있다. 한국에서 13명의 지방의원들이 버겐 카운티의 행정장에게 선물을 준비했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실무자가 정색을 하며 행정장과 의원은 같은 급이기 때문에 행정장에게만 선물을 전달해서는 안된다, 7명의 의원들에게도 선물을 주든지 아니면 아예 준비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또 그림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지역 대학(Community College)이 의회 산하 기구로 되어 있다. 그 이유와 의미에 대해서 정확하게는 모르겠다. 다만 의회의 권한이 매우 세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권력? 청와대에서 동네로!

이상으로 미국 지방정부의 대략적 모습을 살펴보았다. 그림이 좀 그려지시는지 모르겠다. 미국의 지방정부는 다양한 선출직이 있고 정치행정 유형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지방정부가 많은 권한을 가지고 있고 그렇기 때문인지 주민의 의견을 더 많이 물어본다.
힘이, 권력이 중앙보다는 지역에, 주민 가까이에 있다는 뜻이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권력이 주민 가까이에 있으면 조금 더 인간적이 된다.

사실 미국 삭막하다. 이번 세미나 기간 중에 만난 젊은 한국계 경찰은 미국은 총기 소유가 가능하기 때문에 항상 조심스럽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내 차를 검문했던 경찰들은 사소한 위반임에도 하나 같이 위압적이었다. 겁나니 위압적이 될 수밖에 없다.

또 이런 말하기 그렇지만 한인유권자센타 인턴 6개월 동안(필자는 Columbia 대학의 방문 연구원으로 있으면서 뉴욕,뉴저지의 저명한 풀뿌리단체인 한인유권자센타에서 인턴으로도 근무하고 있다.) 활동가들과 회식을 한 적이 없다. 소장님댁에서 딱 한번 가족 저녁식사를 했을 뿐이다. 한국이라면 외국에서 온 인턴과 회식을 해도 몇번을 했고, 노래방에서 쓴 돈만해도 기십만원은 될 것이다. 한인유권자센타가 정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미국의 문화가 그렇다. 따뜻한 사회는 아니다.

그런 미국을 그나마 따뜻하게 해 주는 것은 지역에 가까운 권력이다. 지역에 기반한 권력이 지역사회란 것을, Community란 것을 유지시켜 주고 있다. 얼마 전 한국에서 벌어진 용산참사의 전모에 대해서 난 잘 모른다. 다만 경찰 특공대라는 권력과 농성자라는 주민이 서로 전혀 알지 못했고 그 익명성으로 인해 서로를 더 불신하고 더 공격적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만약 인구 2-3만명의 “한강로 2가” 동에서 주민이 동장과 동의원을 선출하고, 그들에 의해 임명된 혹은 주민에 의해 선출된 동 경찰대장이 있었다면, 그렇게 권력이 우리와 가까이 있었다면 그날의 모습은 영 딴판이었을 수도 있다.

“어이! 김씨 이제 내려와. 날씨도 춥잖여.”
“박소장님! 죽겠어. 거 동장은 뭐래? 아직도 아무 소식 없는겨? 좀 어떻게 해봐.”

권력은 우리 가까이에 있어야 한다.

● 연재순서
0. [공지]기획연재 & 필자 소개
1. 태초에 지방정부가 있었다. 분권이라고? 임권이거든!
2. 작아야 참여하기 좋지. Municipality!
3. 뉴욕의 힌트 “Community Board”
4. 지방선거 정당공천? 정말 꽝이다.
5. 미래의 지방자치 “아! 로체스터”
6. 서울시의 행정개편을 제안한다.-1
7. 서울시의 행정개편을 제안한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