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지방자치가 들려주는 이야기(2)]작아야 참여하기 좋지. Municipality!

<편집자 주> “미국 지방자치가 들려주는 이야기” 기획 연재가 오늘부터 게재됩니다. 이번 기획 “미국 지방자치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작년 말 연재되었던“미국 풀뿌리 민주주의 리포트”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필자 정보연님은 3대 도봉구 구의원, KYC(한국청년연합회) 공동대표, 도봉시민회 공동대표(현)를 지내다가 현재 Columbia 방문 연구원으로 뉴욕에 거주 중입니다.

작아야 참여하기 좋지. Municipality!

2009년 3월18일 필자는 한국에서 온 13명의 지방의원들과 함께 팔리세이즈 파크 보로(Palisades Park Boro.)를 방문했다. 인구의 거의 절반이 한인으로 한인의 밀집도가 미국에서 가장 높다는 점을 제외하면 2만명의 주민이 사는 평범한 Municipality였다.(첫번째 글에서 이미 설명했듯이 Municipality는 가장 작은 단위의 지방자치단체를 통칭하는 용어이다.)

우리들은 의회 의장인 제이슨 김의 안내로 시정의 구석구석을 살펴볼 수 있었다. 시장, 의원과 면담하면서 행정 전반을 파악하였고, 구역설정위원회(Zoning Board)과 구역계획위원회(Planning Board)의 위원들을 만나서 주민이 직접 참여하는 도시계획 적용에 관해서 들었다. 경찰서장을 통해 동네 경찰서, 자원봉사 소방대와 응급구조대의 운영에 대해서 자세하게 알게 되었으며, 마지막으로 팔팍(이곳의 한인들은 Palisades Park라는 긴 지명을 그렇게 줄여서 부른다. 나도 그렇게 부르겠다.) 도서관을 방문하여 지역 도서관의 설립과 운영에 관해 들었다.
그건 정말 신나는 경험이었다. 만남을 전체적으로 주선해 준 제이슨 김 의장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뜻을 전한다. 주민참여의 현장을 스케치한 이번 글은 그의 세심한 배려가 없었다면 쓰여질 수 없었다.

미국의 평범한 Municipality는 과연 어떻게 운영되고 있을까?

시장이 와도 공무원들이 일어서지 않는다?

용산구에서 온 권용하의원의 일갈이다. 시장이 보로 청사에 들어와서 사무실에 들어가는 동안 아무도 신경 쓰지 않더란다. 그리고는 한마디 더.
“팔팍은 블럭으로 지은 이 허름한 보로 청사 회의실에서 날짜를 바꿔가며 어느 날은 의원들이 와서 의회를 열고, 어느 날은 판사가 와서 재판을 하고, 구역설정위원회 회의와 공청회, 기타 행사를 개최하는데 용산구청은 1,600억원을 들여 신청사를 짓는다니!”
물론 용산구의 인구가 25만으로 10여배 크기는 하지만 그래도 뭔가…

그랬다. 전일근무자가(Full-Timer) 95명, 파트타임이 85명으로 전체 180명의 공무원이(경찰 포함. 하지만 교사 등 교육공무원은 제외.) 일하고 있는 보로 청사는 참 소박했다. 원래 미국의 공공건물은 그런가 보다 했다. 모든 간담회를 마치고 우리는 보로 청사에서 5분 정도 떨어져 있는 지역 도서관은 방문했다. 깜짝 놀랐다. 보로 청사의 한 10배쯤 되는 크기였다. 도서관의 인테리어는 얼마나 깨끗하고 현대적이었던가.
그래 이게 정상인 것 같다.
용산구청장에게 말해주고 싶다. “왕권은 저택의 장려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임금의 덕에서 나온다.”고. 그래서 요임금은 평생 좋은 궁궐을 짓지 않았다고.
[##_1L|1196216235.jpg|width=”400″ height=”292″ alt=”?”|3월18일 오후에 찾아간 팔리세이즈 파크 보로(Palisades Park Boro.)의 청사 회의실 전경. 여기서 재판도 하고, 의회도 열고, 각종 회의와 행사도 개최한다. 블록벽이 그대로 드러나 있고 인테리어도 별로 없다. 그래도 바로 이곳이 주민참여의 중요한 통로이다. _##]공무원으로부터 홀대를(?) 받는 로툰도시장은(James Rotundo) 선거로 임기 4년의 시장에 선출되었지만 별도의 직업을 가지고 있다. 시장은 자원봉사직으로 1년에 2400불 정도의 활동비만 받기 때문이다. 의원도 자원봉사직으로 1년에 1900불의 활동비를 받는단다. 대신 상근하는 보로 매니저를(Boro. Manager) 두고 있고 이 사람이 시정을 전반적으로 관리한다. 첫번째 글에서 이미 소개한 카운티 매니저와 같은 개념이다. 다만 카운티 매니저는 행정장이 없는 상태에서 의회의 임명을 받아 시정을 관리했는데 팔팍의 보로 매니저는 선출된 시장이 있는데도 보로 행정을 관리하는 책임을 맡는다. 주민에 의해 선출되는 자원봉사 시장과 시의원이 시정의 방향을 결정하면 매니저가 정해진 방향에 따라 행정을 하는 셈이다. 팔팍의 매니저는 연봉 15만불을 받는다고 한다. 연봉으로만 보면 로툰도시장, 홀대를 받을 만도 하다.

아, 홀대를 받을 만한 이유가 또 하나 있다. 의회의 힘이 참 세다. 재미있는 예를 하나 들어 볼까? 한국의 의회는 시장, 구청장의 인사권에 대해 아무런 견제권한이 없다. 그런데 팔팍은 시장이 임명한 자에 대해 의회가 최종 결정권을 가진다. 그뿐 아니다. 시장이 임명한 자를 의회가 거부할 경우 시장이 30일 이내에 새로운 사람을 임명하지 않으면 임명권까지 시의회가 가져간다. 즉 시의회가 마음만 먹으면 공무원의 임명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의 시장, 구청장은 멋진 건물에서 견제 받지 않는 권한을 행사한다. 그런데 미국의 시장은 행정하기 참 어렵다.

전문가들은 조언할 뿐 결정은 주민이 한다!

중국에 갔을 때 이런 말을 들었다.
“정부에는 정책이 있고 우리에게는 대책이 있다.”
정부가 어떤 정책을 내어놓아도 사람들은 그걸 빠져나갈 나름의 대책이 있다는 말이다. 그 이야기를 한 사람은 중국 정부가 1가구 1자녀 정책을 강력하게 시행했지만 일반 국민들은 나름의 방법으로 빠져나간다며 이 말을 했다.
정부의 불합리한 정책에 대한 조롱이기도 하지만 중국처럼 큰 나라가 국가 정책을 유들이 없이 적용할 경우 오히려 부작용이 많을 수도 있다는, 따라서 한치의 차이도 없는 엄격한 적용보다는 처지와 상황에 맞는 유연한 대응이 더 필요하다는 말이기도 했다.

미국도 큰 나라다. 주정부가 도시계획의 가이드 라인을 제시하고 이에 따라 Municipality의 시장과 의회가 도시계획의 마스터 플랜을(10년 단위로 재검토한다.) 세우지만 실제의 삶에서는 그런 가이드 라인이나 마스터 플랜을 그대로 적용하기 어려운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그때 Zoning Board(직역하면 구역설정위원회)와 Planning Board(구역계획위원회 정도로 번역할까?)가 나선다.
구역계획위원회는 식당으로 사용되던 상가를 학원으로 바꾼 다든지, 한 가구가 살던 주택을 duplex(한 건물이지만 두개의 가구가 입주할 수 있는 주택)로 다시 짓는다든지 하는 경우에 그 허가 여부를 결정한다. 즉 그 용도가 이전과는 상당한 정도로 바뀔 때는 항상 구역계획위원의 검토를 거쳐야 한다. 또 예를 들어 원래는 관련법에 따라 20개의 주차장을 확보해야 하지만 18개 이상의 주차장이 나오지 않는 경우, 건물의 주인이 “이런저런 불가피한 사정이 있으니 용인해 달라.”고 요청을 하면 검토를 해서 결정해 준다.
구역설정위원회는 좀 더 큰 사안을 다룬다. 관련법이나 마스터 플랜에 따라 4층 이하의 건물을 지어야 하는 구역에서 5층 혹은 6-7층의 건물을 지으려고 할 때, 다른 건물과 일정한 거리를 두어야 하는데 그 거리를 확보하지 못할 때 구역설정위원회가 검토한다.
가이드 라인은 주정부가 법률로 정하지만 그것의 구체적인 적용은 개별 Municipality에서 상황에 맞게 결정하는 것이다.

아니 그러면 구역설정위원회와 구역계획위원회를 통해서 주정부의 가이드 라인을 무시한 난개발을 결정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한국과 같은 경우에 지역개발이란 이름으로 아파트만 지어대는 엉망진창 도시계획이 실제 이뤄지고 있지 않은가?
그게 그렇지 않다.
위원회의 위원들은 재선을 위해 단기간에 지역 개발을 추진하려는 정치인도 아니고, 개발 이익을 얻고 동네를 뜨려고 하는 뜨내기도 아니다. 지역에서 오래 살아왔고 앞으로 살아갈 평범한 주민들이다. 그래서 지역의 삶터를 망치는 무분별한 개발에 우호적이지 않다. 주유소 하나를 새로 만드는데도 오랜 토론을 거친다고 한다. 우리 동네에 이미 2개의 주유소가 있는데 왜 또 만들어야 하느냐? 외부 차가 많이 들어와서 아이들만 위험해지는 것 아니냐? 주민들 의견은 물어 보았느냐?
아이린은 예를 들어 설명했다. 꽤 오래 전에 팔팍에 3개동의 아파트를 짓겠다는 계획이 구역계획위원회를 통해 신청되었다고 한다. 근처 주민들이 반대했고 구역설정위원회와 구역계획위원회도 여러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이 사안을 쉽게 결정해 주지 않았다. 수도 없는 미팅과 협의 끝에 결국 통과가 되었지만 지역주민의 의견을 수렴하여 계획이 많이 수정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합의하는데 13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거참 13년이라니…

그러면 나름 막강 권한을 가진 구역설정위원회와 구역계획위원회의 위원은 누가 할까?
3월18일 팔팍의 구역설정위원회를 대표해서 간담회에 참여한 존은 이곳에서 태어나 평생을 살아온 주민이다. 1960년대에 주한미군으로 한국에 온 경험도 있다는 그냥 평범한 동네 중노인이다. 구역계획위원회의 의장인 아이린은 고등학교 교사이다. 요즘은 졸업시험 때문에 많이 바쁘지만 한국에서 손님이 온다기에 학교 끝나고 곧바로 왔단다.
구역설정위원회와 구역계획위원회의 각각 7명 위원들은 모두 지역에서 오래 살아온 평범한 주민들이다. 변호사도 아니고 도시계획 전공자도 아니다. 위원들은 위원회에 소속된 자문 변호사와 도시계획 전문가의 조언을 듣는다. 하지만 결정은 주민들이 직접 한다. 동네의 주인은 전문가가 아니라 주민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주민들 참 착하다. 위임을 잘 한다. 정치인에게 위임하고 관료에게 위임하고 그리고 전문가에게 위임한다. 도봉구청의 도시계획위원회에는 평범한 주민이 없다. 구의원이거나 구청 과장이거나 교수거나 변호사들이다. 그런데 미국 사람들 독하다. 자기 권한과 권리 잘 위임 안한다. 잘 모르면 조언은 듣지만 결정은 자기 스스로 하려고 한다. 우리도 한번 그렇게 해봤으면 좋겠다.
[##_1R|1310443807.jpg|width=”400″ height=”293″ alt=”?”|왼쪽이 구역설정위원회의 존이고 오른쪽이 구역계획위원회의 아이린이다. 도시계획과는 아무 상관없는 평범한 주민들이다. 이들이 훌륭하게 동네의 도시계획 적용을 토론하고 결정하고 있었다. _##]심의 절차는 대체로 이렇다. 저렇게 구역을 설정해 달라, 우리집을 이렇게 새롭게 짓겠다고 신청서를 작성한 주민이 변호사를 대동하고 한달에 한번 열리는 구역설정위원회와 구역계획위원회 회의에 출석해서 제안설명을 한다. 물론 회의는 공개되며 누구나 청취할 수 있다.
제안설명을 듣고 나면 위원들이 자문 변호사와 관련 전문가들의 조언을 들어 가부를 결정한다. 이 과정에서 다른 이해관계인이나 주변 주민의 의견이 있으면 회의에 참석하여 혹은 사적으로 피력할 수 있으며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자신들의 변호사를 따로 선임하여 위원들을 설득할 수도 있다.
최종 결정은 활발하게 상호 의견을 교환하여 양측이 충분히 납득할 만한 과정을 거쳤다고 판단되었을 때 이뤄진다. 따라서 결정에 불복하고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는 매우 낮다고 한다.

우리 동네엔 우리 동네의 경찰관, 소방관 그리고 응급구조대가 있다.

미국의 자원봉사 소방대는 오래전 주로 농사를 짓거나 작은 사업을 하며 하루 종일 동네에서 생활하던 시절부터 내려오던 유서 깊은 전통이다. 그 당시는 주민들이 운영하는 자원봉사 소방대가 뭐 그리 대단할 것도 없었다. 옆집에 불이 나면 주민들이 다 나서서 꺼주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하지만 세월이 흘러 지금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네에서 잠은 자지만 일 하지는 않는다. 자원봉사 소방대란 것이 쉽지 않은 여건이 되었다. 그래서 인구가 많은 도시지역에서는 급여를 받는 전문 소방관들이 자원봉사 소방대를 대신한다. 하지만 팔팍과 같은 작은 동네에서는 아직도 이 전통이 유지되고 있다.

물론 이런 작은 동네에서 전문 소방관을 고용할 경우 그 비용을 충당하기 어렵다는 현실적 이유도 이 전통을 유지시키는 중요 요인 중의 하나이다. 미국에서는 “너 커서 뭘 될래?” 하면 많은 아이들이 “소방관이요!” 한다. 소방관은 위험에 처한 자를 구해주는 사람으로 사회적 인식이 매우 좋고 또 그만큼 급여도 세다. 그러니 작은 동네에서 전문소방관을 고용하기는 쉽지 않다.

팔팍은 70여명의 자원봉사 소방관들이 소방업무를 책임지고 있다. 소방차는 지방정부에서 구매한다. 하지만 거기까지이다. 그 유지보수와 기타 소방대 운영비는 거의 대부분 주민들이 내는 기부금에 의존한다.(필자가 작년에 기고한 『미국 풀뿌리 민주주의 리포트(4) 풀뿌리의 다른 이름 “Community에 참여함”』 참조)

소방관이 되면 정해진 소방관 아카데미를(일주일에 2일씩 8주간 이뤄진다.) 이수하고 자격증을 받게 되며 이 과정에서 체력 테스트 등을 통과해야 한다. 그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교육이 이뤄지는데 그런 교육을 이수해야 소방관으로서의 자격이 유지되며 더 심화된 자격증을 받을 수 있다.
팔팍은 인구의 절반이 한인이지만 70여명의 소방관 중 한인은 3-5명 수준이다. 그점에 대해서 토박이 미국인들이 많은 불만을 토로하고 있단다. 아직 한인들이 먹고 살기 힘들뿐더러 소방 자원봉사라는 것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리라. 앞으로는 더 많은 한인들이 지역사회의 자원활동에 참여하리라고 기대해 본다.
[##_1L|1271289329.jpg|width=”380″ height=”248″ alt=”?”|포트리의 4개 소방대 대장들이 시장 앞에서 선서를 하고 있다. 아마도 시민의 안전을 위해 노력하겠다 뭐 그런 내용이리라. 시장과 소방대장들. 저들이 사실은 우리 옆집의 평범한 주민들이다. _##]낮 시간대에 보로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이 점점 적어지면서 낮에 불이나면 어려움이 많다고 한다. 팔팍에는 3대의 소방차가 있는데 낮에 불이나면 보통 소방차 1대당 3명 정도의 소방관만이 출동한다고 한다. 그 정도의 인원으로는 불을 끄기 어렵기 때문에 주변의 다른 Municipality 소방대가 함께 출동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서로서로 상부상조하는 것이다.

자원봉사 소방관들은 정말 한푼도 받지 않을까? 그렇지는 않다. 소방 콜에 35% 이상의 출석을 기록하면, 특히 팔팍 안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의 경우는 40% 이상을 출석하면 3개월 마다 1인당 1000불 정도의 활동비를 받는다. 그리고 한달에 300개 이상의 콜이 있을 경우 소방복 비용을 추가로 지급한다고 한다.(1년에 보통 600콜 정도가 있다고 하니 한달에 300콜을 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미국은 거의 모든 Municipality에 소방대와는 별도의 Ambulance Corps가(응급구조대) 운영된다. 자원봉사직이지만 6개월에 걸친 과정을 이수해야 자격증을 딸 수 있고 자격증이 있어야 구조대가 될 수 있다. 내가 살고 있는 포트리의 경우는 3대의 응급차를 운영하고 있으며, 가을마다 헌혈 운동도 하고, 자전거 구조단도 두어서 보로에서 벌어지는 각종 행사에서 기동적으로 응급 업무를 보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만난 한 경찰관은 경찰로 채용되기 전에 약 3년 정도 소방대나 응급구조대와 같은 다양한 자원봉사 활동을 했다고 한다. 아마 그런 점이 높이 평가되어서 4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경찰로 채용되었을 것이다.

경찰 이야기가 나왔으니 이제 팔팍의 경찰에 대해서 알아보자.
Municipality는 작지만 하나의 지방정부이기 때문에 동네마다 자기 동네 경찰서를 운영하고 있다. 경찰복도 다르고 경찰차도 다르고 월급도 다르다. 인구 2만의 팔팍은 10명의 보조경찰을 포함해 41명의 경찰을 채용하고 있다. 한번 채용되면 98% 정도가 정년까지 근무한다니 꽤 인기 있는 직업인 셈이다.

동네의 경찰은 주로 교통 관리, 가정 폭력 관련 사항, 기본적인 치안 유지를 담당한다. 한국으로 치면 지구대 정도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팔팍에는 법원도 운영되는데 동네 법원도 위와 비슷한 수준의 경미한 사안에 대해서만 재판권을 행사한다. 그것을 넘어서는 비교적 중한 범죄가 발생하면 카운티의 수사관 혹은 검사들이(Prosecutor) 팔팍 경찰들의 지원을 받아서 전문적 수사를 하고 기소까지 담당한다.

우리 동네 경찰관, 소방관 그리고 응급구조대? 그게 뭐가 좋은데?

그래 한번 짚고 넘어가자.
소방서와 응급구조대를 국가가 운영하는 것 vs 시민이 자원봉사로 하는 것.
국가경찰시험 붙은 사람을 국가가 채용해서 국가가 똑같은 월급을 줘서 전국적으로 운영하는 것 vs 동네에서 알아서 채용해서(뉴저지는 일단 Municipality에서 경찰 면접을 봐서 대상자를 선정한다. 그 동안 커뮤니티에서 얼마나 봉사했는가가 중요한 면접 포인트라는 것은 이미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는 Municipality에서 스스로 시험을 본다. 때로 주 정부가 제시한 시험으로 대체하는 경우도 있다. 뭐 경찰과 관련된 법 시험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합격이 되면 폴리스 아카데미로 보낸다.) 동네에서 월급 주며 동네 상황에 맞게 운영하는 것.
어떤 차이가 있을까?

얼마 전 나는 아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중에 아내 가족에 관한 재미나고, 슬프고, 아름답고, 아픈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로부터 장인, 장모님을 거쳐 처남에 관한 이야기까지. 그 이후 한 가지 작은 변화가 생겼다. 그저 장인, 장모님이었던 분들이 김상균, 신경자라는 어려웠던 그 시대를 살아간 한 사람으로 살아났다. 더 안아주고 싶었고 더 얘기 걸고 싶었다. 뭐랄까? 흑백 영화에 붉고 노란 색깔이 물들었다고 할까? 죽었던 고목에 싹이 텄다고 할까?

월급을 받는 전문소방관이 불을 “꺼주고” “응급처지를 해줄” 때 우리에게 동네는 무채색이다. 거기에는 아무 스토리가 없다. 관계도 없다. 하지만 내가 나서서 이웃의 불을 끄고 중풍에 쓰러진 사람을 실어 나르면 내 눈에 동네가 들어온다. 동네에 관한 스토리가 생기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게 된다. 그때 나는 커뮤니티 안에 들어가게 되고 그게 진짜 동네에서 사는 것이다.
그래서 가능하면 “세금 낼테니 해줘.” 보다는 “내가 해볼께.”가 낫다.
동네에 구립어린이집은 꼭 필요하다. 사립어린이집보다 더 안전하고 싸다. 하지만 보다 좋은 것은 주민이 스스로 만든 공동육아가 많아지는 것이다. 구청이 육아를 알아서 해주는 것보다는 주민이 스스로 나서서 함께 할 사람을 조직하고, 육아에 관해 함께 공부하고, 운영의 원칙을 세우고, 돈을 모으고, 운영하면서 이리저리 부딪치는 것이 좋다. 그러하면 그 공동육아를 중심으로 하나의 커뮤니티가 생기고 관계가 생긴다. 그게 지역을 따뜻하게 만든다.

물론 구청의 역할이 있다. 공동육아는 처음에 조합비도 한 200만원 내야하고(건물도 주민들 스스로 마련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합원은 가입할 때 조합비를 내고 아이가 커서 탈퇴할 때 다시 돌려받는다.) 육아비도 비싼 편이며 이것저것 부모의 참여를 많이 요청한다. 맞벌이 저소득층이 참여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구청이 그 문턱을 낮춰주는 역할을 하면 된다. 조합비도 내주고 육아비도 지원해 주고 공동육아와 협의해서 맞벌이 저소득 가족에 대한 배려를 요청하고. 마치 자원봉사 소방대가 다 알아서 운영하지만 비싼 소방차는 지방정부가 사주듯이.

한국은 경찰이나 교사 등 중요한 행정 서비스의 인사권과 재정권을 중앙이 가지고 있다. 시험도 중앙이 보고 채용해서 배치하는 것도 중앙이 하고 월급도 중앙이 준다. 당연히 공무원의 눈이 중앙에 가 있다. 그들에게 동네는 그저 근무지일 뿐이다. 의정부 교사인 내 아내, 의정부 지역사회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관심도 없다. 몇 년 후에는 또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날 텐데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
지역에서 지역에 맞는 사람을 채용하고 월급을 주면 사정이 달라진다. 경찰 이야기는 이미 했고 교육만 해도 각 Municipality 단위의 교육위원회에서 교사를 채용하고, 월급을 주고, 심지어 교과서도 지역에서 알아서 정한다. 그러니 교사의 눈이 지역 커뮤니티로 가게 된다. 근무지가 아니라 삶터가 된다. 그제사 자치가 시작되는 것이다.

들어나 봤나? BCCLS.

다른 것은 몰라도 미국 도서관만큼은 정말 부럽다. 필자가 가본 팔팍과 포트리, 파라무스의 도서관들 참 멋졌다. 보로 청사는 엉망이어도 도서관은 최신식이다. 팔팍 도서관은 처음에는 보로 청사 안에 조그맣게 있다가 1996년 새로 지어 옮겨왔다고 한다. 버겐 카운티의 Municipality가 70개인데 75개의 지역 도서관이(Community Library) 있다니 Municipality마다 자기 도서관을 하나씩은 운영하고 있는 셈이다.

[##_1R|1052854497.jpg|width=”400″ height=”291″ alt=”?”|팔팍 도서관 내부 전경. 넓은 공간에 쾌적한 시설이다. 사람들도 여유가 있어 보인다. 버겐 카운티에는 이런 도서관이 75개 있다. 부럽다. _##]지방정부에서 재정을 지원하고 관장을 임명하지만 구체적인 도서관 운영을 터치하지는 않는다. 도서관의 운영은 별도의 도서관 운영위원회가(Library Board) 책임진다.
팔팍 도서관의 경우 13명의 직원이 오전 10시30분부터 저녁 9시까지 근무하며 매년 6만불의 장서를 구입한다고 한다. 최근 미국의 경제위기로 예산 삭감의 조짐이 있어서 다른 도서관들처럼 “아이들의 친구들(Friends of Children)”이라는 일종의 후원회를 조직하여 독자적인 펀드 레이징을 계획하고 있단다.

자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미국 도서관의 부러운 점을 말해보자.
우선 대출 정책이 다르다. 필자가 사는 한국의 도봉구에는 다행스럽게도 서울시립도서관이 하나 있다. 시립도서관이라 시설이나 장서 등이 훌륭한 편이다. 도봉도서관은 1인당 2권의 책을 2주간 빌릴 수 있으며 대기자가 없을 경우 1주를 연장할 수 있다. 포트리 도서관은 1인당 30권의 책을 한 달 동안 빌릴 수 있고 한 달 더 연장 가능하다. 파라무스 도서관은 50권까지 대출이 가능하다. 손 한번 크다. 책 좋아하는 우리 가족, 미국의 손 큰 대출 정책이 정말 부럽다.
왜 그럴까? 도서관 인프라에서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인구 100만의 버겐 카운티에 75개의 지역도서관이(Community Library) 있다. 도서관의 규모는 서울시립 도봉도서관의 2/3 수준이다. 반면 인구 1,000만의 서울은 시립도서관 17개, 구립도서관 12개(도봉문화정보센타처럼 전통적 도서관+멀티미디어 센타+커뮤니티 센타를 혼합한 타입도 포함) 해서 29개의 도서관이 있을 뿐이다. 큰 차이이다. 물론 최근 작은 동네도서관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지만 미미한 수준이다. 이렇게 도서관 한 개가 커버하는 인구수에서 큰 차이가 나니 한국의 도서관들이 소극적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다.

대출 카드 발급 방식도 다르다. 동네에 1년 정도 살러온 나 같은 사람도 쉽게 대출증을 만들 수 있을 뿐더러 더구나 어린이 대출증은 어떤 증명도 요구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만들어 준다. 그에 반해 도봉도서관의 어린이 대출증은 부모의 신분증은 물론 부모와의 관계를 증명하는 주민등록등본까지 요구한다. 주민등록이 없는 외국인은 대출증 자체를 만들 수 없다.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이 백만을 넘어섰다고 하는데 이제 도서관도 좀 더 개방해야 하지 않을까?
또 미국 도서관은 지역 커뮤니티의 중심이다. 영화상영, 미술전시회 등 각종 행사가 자주 열리고 도서관 한켠에 있는 몇개의 방에서는 주민들의 모임이 수시로 진행된다. 팔팍처럼 한인이 많은 곳은 매일 오전과 오후 외국인을 위한 무료 ELS 수업이 개최되기도 한다.

각각의 도서관들이 모두 훌륭하지만 그 훌륭함을 배가시키는 좋은 정책 때문에 지역 도서관이 더욱 빛난다. 75개의 도서관들은 각자 나름의 특성이 있다. 파라무스 도서관은 한국 어린이들을 위한 책이 매우 잘 갖춰져 있다. 아무래도 도서 선정에 참여하는 사람 중에 한국 도서에 정통한 사람이 있는 것 같다. 또 한국 영화와 연속극 DVD도 많다. 우리 가족이 3주전에 가서 대출 한도인 50권의 책과 한국 DVD 세개를 빌려 왔다. 우리는 내일 집에서 가까운 포트리 도서관에 가서 책과 DVD를 반납할 예정이다. DVD는 대출 기한을 넘겼기 때문에 약간의 벌금을 내야 하는데 그것도 포트리 도서관에 내면 된다. 멀리 파라무스까지 갈 필요가 없다. 버겐 카운티의 75개 도서관은 BCCLS란(Bergen County Cooperative Library System) 이름으로 서로 연합되어 있다. 마치 하나의 도서관 같다. 이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다른 도서관에 반납하는 것은 물론이요 한 도서관에서 75개 전체 도서관의 도서 상황을 다 파악할 수 있고 신청만 하면 먼 도서관의 책도 집 근처 도서관에서 빌려 볼 수 있다. 이 시스템 하나로 동네 도서관이 75배의 장서수와 75배의 편리함을 갖추게 된 것이다.

미국은 이미 100년 전에 이와 같은 지역도서관과(Community Library) 지역대학(Community College. 일반적으로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진학할 수 있으므로 가난하거나 실력이 부족한 학생이 2년제 지역대학을 나와 4년제 대학에 편입하는 경우가 많다. 또 사회인들을 위한 평생교육의 요람이기도 하다. 860만 인구의 뉴저지에만 19개의 커뮤니티 칼리지가 있다.) 체계를 만들기 시작했다.
필자는 “미국 풀뿌리 민주주의 리포트”라는 이름으로 연재된 지난 기고에서 미국이 기울고 있으며 이 세기가 가기 전에 미국의 “Super Power”는 끝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다. 다만 미국의 그 탄탄한 기본기에는 감탄할 수밖에 없다. 특히 지역도서관과 지역대학 체계는 한국도 꼭 배웠으면 좋겠다.

창4동 지방자치!

보통 인구 5,000명-50,000명의 가장 작은 지방정부 Municipality. 미국의 지방자치는 이 Municipality를 통해서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지방자치의 핵심은 주민참여지요. 주민참여는 작을수록 쉽습니다. 인구 40만의 도봉구보다는 4만의 창4동에서 지방자치를 해보세요. Community가(지역사회) 살아날 거예요.”

교육의 기회가 한정되고 정보가 독점되던 때가 있었다. 그 시절에는 정치인이나 행정가 등 위임받은 사람들이 사회를 이끌고 국민들이 따르는 방식이 잘 작동했다. 하지만 더 이상 그런 방식으로는 좋은 정치를 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촛불이 그것을 웅변한다.

“촛불의 본질은 쇠고기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쇠고기문제는 언론을 통해 과장된 측면이 많아요. 촛불의 함의는 내가 이 나라의 주인인데 왜 대통령이 내말을 듣지 않느냐는 것이에요. 예전에는 내가 이 나라의 주인이다 그런 생각 별로 안 했는데 이제는 모든 국민이 그런 생각을 하거든요. 그걸 몰랐던 거지요.”

13명의 지방의원과 함께 이번 세미나에 참석한 한나라당 전의원인 권오을님이 최종 토론 자리에서 논찬을 하면서 꺼낸 말이다. 정치적 입장에서는 촛불이 탐탁지 않았을 텐데도 그는 촛불의 함의를 정확하게 읽고 있었다.

이제 사람들은 선거를 통해 사람을 뽑는 행위로 정치적 의사표현을 끝내려 하지 않는다. 더 많은 사안에 대해 자기 생각을 표출하고 가능하면 직접 참여하고 싶어한다. 그런 공간을 열어주지 않으면 그들은 계속 기존 정치행정 시스템과 부딪칠 것이고 계속 거리에 나설 것이다. 그건 심각한 낭비이다.

참여하고자 하는 시민들을 지역사회로 끌어들이자. 그들이 동의원으로 출마하고, 학교급식조례를 발의하고, 마을 도서관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사회적 기업을 창업하고, 갈 곳 없는 재개발 세입자를 위한 새로운 정책을 연구하게 하자. 중앙을 바꾸는 것은 힘드니 우선 지역을 바꿀 기회부터 주자. 1970-80년대의 민주화운동이 소수 전투적 재야인사들에 의해서 주도되었다면, 1990년대-2000년대의 시민운동이 전문가들에 의해서 기획되었다면, 이제는 직접 참여하는 시민들에 의해 새로운 사회운동이 벌어지도록 하자.

지역을 시민참여의 저수지로 만들자.
단, 현재의 지방자치 제도로는 어렵다. 제도개선이 꼭 이뤄져야 한다. 어떤 제도개선이냐고? 뒷편을 계속 읽어보시라.

● 연재순서
0. [공지]기획연재 & 필자 소개
1. 태초에 지방정부가 있었다. 분권이라고? 임권이거든!
2. 작아야 참여하기 좋지. Municipality!
3. 뉴욕의 힌트 “Community Board”
4-1. 미래의 지방자치 “아! 로체스터” <최악의 상황이 만들어낸 새로운 미래>
4-2. 미래의 지방자치 “아! 로체스터” <시민 이니셔티브>
5-1. 동네가 촛불에게 보내는 첫번째 초대장 지방자치 혁명!”
5-2. 동네가 촛불에게 보내는 첫번째 초대장 지방자치 혁명!”
6. 도봉구 거버넌스 그리고 도봉구 유권자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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