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편집자 주> “미국 지방자치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작년 말 연재되었던“미국 풀뿌리 민주주의 리포트”의 연장선상에서 기획되었습니다. 필자 정보연님은 3대 도봉구 구의원, KYC(한국청년연합회) 공동대표, 도봉시민회 공동대표(현)를 지내다가 현재 컬럼비아 대학교 방문 연구원으로 뉴욕에 거주 중입니다.

오늘도 동네가 촛불에게 초대장을 보낸다. 그것도 두 번째와 세 번째 초대장을 연달아서…

필자는 첫 번째 초대장에서 한국 지방자치의 제도적 개혁을 이야기했다.
“주민이 직접 참여하여 지역의 중요한 공적 의사를 결정하고, 지역사회가 가진 자원을 적극 활용하여 행정을 수행”하는 것이 가능한 체계가 만들어지면 촛불이 조금씩 동네로 들어오게 될 것이다. 그들이 가진 참여의 열정을 동네에 쏟아 붓기 시작할 것이다. 그 때쯤 두 번째 초대장이 필요하게 된다. 두 번째 초대장의 이름은 “동네 거버넌스”이다.

극장을 떠나는 관객

미국 독립혁명과 프랑스혁명 이후 150여 년간 많은 학자와 정치인들의 노력으로 “대의민주주의”는 그 제도적 틀을 갖추게 되었다. 모든 권력은 국민들로부터 나온다는 명제 아래, 시민들이 자유롭게 정당을 구성하고, 선거로 정당이 추천한 대리인을 뽑고, 대리인들이 분립된 3권의 체제 아래 견제하며 권력을 행사하고, 지방자치를 보장하는 제도가 바로 그것이다.
”?”세습하는 왕, 권력에 참여할 자격이 있는 귀족 그리고 피통치자인 평민으로 구분되던 봉건적 시스템을 대신해서 대의민주주의는 훌륭하게 작동했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사람들의 주권의식이 높아졌고, 사회의 창조력도 확장되었다. 하지만 이 세상에 완전한 것은 없다. 차차 대의민주주의도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대의민주주의의 핵심적 한계는 “대의”가 잘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선거 기간 동안에는 비교적 대의가 활발하게 이뤄지지만 그 후 4년 동안 권력은 당선자의 손에 머물고 주민은 관객으로 전락한다. 그런 과정이 자꾸 반복되다 보면 흥미를 잃은 관객들이 극장을 떠난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하면서 정치와 선거에 관한 국민의 관심은 한껏 고조된다. 1971년 이후 16년 만에 국민이 직접 투표로 대통령을 뽑은 1987년 13대 대선의 투표율은 89.2%였다. 하지만 그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하여 81.9%, 80.7%, 70.8%를 거쳐 2007년 치뤄진 17대 대선에서는 63.0%를 기록하였다. 지난 20년 동안 무려 26.2%의 투표율이 하락했고 관객의 37%가 극장을 떠났다. 가뜩이나 재미없는 연극인데 관객마저 드문드문, 한국의 정치는 점점 썰렁해지고 있다. 그나마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는 대통령선거는 좀 나은 편이다.

1988년 치뤄진 13대 국회의원 선거의 투표율은 75.8%였으나 그 이후 지속적으로 낮아져서 2008년 18대 국회의원 선거의 투표율은 46.1%였다. 드디어 관객의 절반 이상이 극장을 떠났다. 이대로 가면 한국의 대의민주주의는 국민의 무관심 속에 조기종영될 운명을 맞을지도 모른다.
”?”내용적으로 보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지난 18대 국회의원 선거의 경우 서울시와 부산, 대구, 광주 등 전 광역시가 평균 이하의 투표율을 보였다. 반면 제주, 경북, 강원도 등 농어촌 지역은 50%를 상회하였다. 여론을 형성하고 비교적 진보적 성향을 보이는 대도시일수록 투표율이 낮은 것이다. 또 한가지. 60세 이상이 65.5%의 투표율을 기록한 반면, 20대 후반은 24.2%였다. 젊을수록 급격하게 투표율이 낮아진다. 따라서 세월이 지날수록 투표율은 점점 더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

이미 대한민국의 대의시스템은 잘 작동하고 있지 않다. 특히 2002년 월드컵, 2004년 탄핵, 2007년 태안, 2008년 촛불을 이끌었던 대도시의 2030세대에게는 거의 외면당하고 있는 수준이다. 사실 새로운 한국을 만들 에너지는 그들에게 있는데 말이다.

뽑아주는 것 재미없다. 난 직접 행정을 하고 싶다

왜 관객들이 극장을 떠나고 있을까?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 가운데 필자는 “정치와 행정이 생산자와 소비자로 과하게 나뉘어 있다.”는 점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즉, 주민들은 세금이란 비용을 내고 정치와 행정을 소비할 뿐 직접 생산에 참여할 기회를 심하게 제한 당하고 있다. 정치와 행정에 직접 참여하여 자기의 요구에 맞는 정책을 입안하고, 예산 배정을 요구하고, 주민투표를 통해 주요 정치사안에 의사를 표현할 기회가 매우 적다. 아니 거의 없다.

미국은 일단, 선거용지를 이용한 주민투표로 주민의 의견을 수시로 물어본다. 이번 기고에서만 봐도 뉴욕시가 커뮤니티 보드를 시 헌장 상의 기구로 만들 때도 주민투표를 했고(3회 기고) 버겐 카운티가 일명 공지 기금을(Open Space Trust Fund) 만들 때도 주민투표를 했고(1회 기고) 캘리포니아주에서 주민들이 “재산세 제한을 위한 주민 구상(일명 주민발의안 13호)”를 발의하고 통과시킬 때도 주민투표를 하였다.(4회 기고)

하지만 난 평생 한 번도 주민투표 혹은 국민투표를 해 본 적이 없다.

”?”우리나라의 정부와 지자체는 의사결정에 참고하고자 여러 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변호사나 교수가 아니면 참여하기 어렵다. 그나마 변호사나 교수라도 매우 한정된 개방형 임용(전문 지식을 갖춘 민간인을 공무원으로 임용하는 제도)을 뚫고 직접 공직에 진출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이다. 행정의 주인은 바늘구멍 들어가기보다 힘든 시험에 합격한 사람들(관료)만의 특권이다. 일반 주민이 행정을 책임진다? 꿈도 꾸지 마라는 얘기이다.

한 가지 방법이 있기는 하다. 선거에 출마하는 것. 하지만 그것도 한나라당과 민주당이라는 두 거대 정당에 줄서서 최소 5년 이상 손 비빌 생각을 해야 한다. 그러고도 우리나라는 선출직의 전체 수 자체가 워낙 적어서 정말 관운을 타고 태어나지 않는 한 어렵다.

한마디로 우리나라에서 정치와 행정의 생산자는 매우 한정된 특별한 사람들이다.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은 그저 세금 내고 그들이 제공하는 행정 서비스를 주는 대로 받아먹을 뿐이다.
Government Of the People? 주민의 정부?
그건 지금 한국의 대의민주주의로는 불가능하다.

“Government Of the People”

도봉구 연수단 100명이 로체스터시에 갔다온지 벌써 2년이 지났다. 그 당시 구청장과 공무원들, 구의원들, 시민단체 회원들, 그리고 자발적으로 참여한 일반 주민들이 10일 동안 로체스터시 전체를 샅샅이 살피고, 자료를 모으고, 인터뷰를 했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돌아와서도 2달 동안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며 “도봉구에서 이 거버넌스 사례를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구상했다.

전 세계적인 경제 불황이 계속되자 정부는 재정규모를 줄이기 시작했다. 거기에 더해서 정부 재정의 급격한 감소를 막기 위해 지자체에게 교부하는 지방교부세율마저 낮추었다. 지자체는 이중고를 겪게 되었다.
재정자립도가 약한 도봉구, 기존의 행정 서비스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세수를 늘려야할 형편이지만 제도적으로 새로운 세원을 개발하는 것도 쉽지 않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당선된 새 구청장은 공무원과 세금에만 한정하지 않고 지역사회의 다양한 자원을 활용하는 방법밖에는 해결책이 없다고 판단하여 전면적인 행정 쇄신을 단행한다. 다행히 도봉구는 주민의 참여를 통해 성장한 강력한 시민운동의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 신임 구청장은 임기 첫해 먼저 시민단체들과의 협력체계를 구축했고 그 다음 단계로 주민들의 에너지를 직접 끌어낼 장치를 마련하기 위해서 100여명의 대규모 연수단을 조직하여 로체스터시를 다녀온 것이다.

로체스터 연수단은 다음의 몇가지를 결정했다.
첫째, 로체스터시의 NBN을(Neighbors Building Neighborhood. 이웃 공동체를 만드는 이웃들) 벤치마킹하여 “협치(거버넌스의 한국말 표현)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한다. 각 동에서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구성될 이 기구는 6개월 동안 다양한 과정을 거쳐 주민의 의견을 모으고 지역의 문제점, 해결방안, 장기적 비젼을 마련한다. 그리고 그 이후 1년 6개월 동안의 실현 과정에서도 중추적 역할을 맡는다.

둘째, 2년 후 이 1기 협치위원회의 성과를 평가하여 제도화를 추진한다.
셋째, 필요하면 사안별로도 협치 기구를 구성한다. 1차로 대형 마트 때문에 경영난을 겪고 있는 재래 점포의 활로를 찾기 위한 협치 기구를 구성하기로 한다.

그렇게 2년이 지났다. 1기 “협치위원회”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 14개 동에서 3만8천명의 주민이 계획을 수립하는 과정과 그 실행에 참여했다. 주민의 1/10이 참여한 셈이다. 743개의 지역 문제가 제기되었고, 그중 322개가 1기 협치위원회의 과제로 선정되었으며, 이중 73%가 해결되었거나 해결되는 과정에 있다.

하지만 이런 수치상의 결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민들의 변화이다. 이전에는 동네에 문제가 있어도 무관심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매주 열리는 협치위원회를 찾아와 문제 상황을 설명하고, 함께 해결의 방안을 찾고, 해결과정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참여하면 해결된다, 행정이 공무원들만의 몫은 아니다라는 믿음 같은 것이 만들어졌다.

주민만 변한 것이 아니다. 구청장과 구의원들도 변했다. 처음 그들은 자신의 정치적 권한을 주민들에게 빼앗기는 것은 아닌가 싶어 조심스러워 했다. 일부는 여러 가지 논리를 갖다 붙여서 협치위원회를 반대했다.
“우리는 선거라는 합법적 과정을 통해 권한을 위임 받은 사람들인데 협치위원회라는 것은 그냥 임의기구 아닌가? 그런 기구가 어떻게 대표성을 갖나?”
”?”하지만 지난 2년의 활동을 통해 밝혀졌다. 거버넌스는 선출직 정치인의 힘을 뺏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좀 더 중요한 일을 할 기회를 준다는 것을. 주민들이 직접 참여해서 자기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자 그 많은 의견과 주장을 조율하고, 설득하고, 상호 존중 속에서 중재하고, 우선 순위를 정하는 일이 매우 중요해졌다. 이 과제는 자연스럽게 선거를 통해 정당성을 확보한 선출직 정치인들의 몫이 되었다. 그들은 주민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더 중요한 결정을 하게 되었으며, 더 많은 존경을 받게 되었다. 드디어 그들이 진짜 정치인이 된 것이다.

동네에 참여의 역동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재정 상황은 나빠졌지만 이런 참여의 역동 덕분에 오히려 지역은 더 따뜻해졌고 더 많은 문제를 해결하게 되었다.

도봉구 거버넌스

그렇게 2년이 지났다. 지금은 그 동안의 성공을 바탕으로 “도봉구 거버넌스”를 안착시키기 위한 본격적인 제도화를 추진하고 있다. 우선 조례를 제정하려고 한다.

“도봉구 협치의 제도화를 위한 기본 조례”라고 명명된 이 조례안은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 도봉구의 주민은 행정과 정치의 주인으로서 누구나 협치에 참여할 권리를 가진다. 도봉구청과 도봉구의회는 이 권리의 실현을 위해 노력할 의무를 진다.
● 구청장과 구의원의 선거 주기를 고려하여 매 2년마다 지역발전의 종합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한다. 이를 위해 “협치위원회”를 각 동에 설치한다.
● 협치위원회가 지역발전의 종합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을 지원하기 위해 구의회 내에 “예산검토위원회”를 구성하여 각 계획의 실현에 필요한 예산에 대해 연구하고 조언한다.
● 기타 구체적인 개별 사안에 대해서도 협치 기구를 구성할 수 있다. 구성 절차는 주민 100명이나 구의원이 기구를 발의하면, 구의회에서 구성 여부를 결정하고, 구청장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그 동안 거버넌스는 통찰을 갖춘 몇몇 뛰어난 정치인들의 주도로 이뤄졌다. 이 조례는 그런 거버넌스를 제도화한 첫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특히 주민들이 협치에 참여하는 것을 시민적 권리로 명문화한 것은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뛰어 넘기 위한 시도로 정치사적인 의미가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필자가 사는 도봉구를 무대로 그려본 가상의 이야기)

100만 볼트의 빛이 나는 눈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대한민국 헌법 1조 2항)

4년에 한번 투표만 할 때 주권자의 눈은 게슴츠레하다. 고만고만한 사람들 중에 한 명 찍어 주는 게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하지만 지역에 뛰어들어 직접 문제를 해결하는 주민의 눈은 100만 볼트로 빛이 난다. 그때 진짜 주권자가 되기 때문이다. 투표하는 자가 아니라 공공에 참여하는 자가 바로 진짜 주권자이다.
“시민 이니셔티브” “민주주의 2.0” “Government OF the People” “거버넌스” 그런 것들이 평범한 주민을 진짜 주권자로 만들 것이다.

지난 세기에 인류는 대의민주주의를 완성했다. 새로운 세기는 노쇠한 대의민주주의를 넘어서서 새로운 민주주의를 실험한 세기로 기록될 것이다.

동네가 촛불에게 보내는 마지막 초대장

Home Rule이(우리 동네는 우리가 다스린다.) 가능한 지방자치 제도를 만들어 촛불을 동네로 불러들이고(첫 번째 초대), 거버넌스를 통해 촛불이 정치와 행정에 직접 참여한 다음(두 번째 초대),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자유롭게 정치조직을 만들고 직접 선거에도 출마하는 것.
그게 초대장의 전체 내용이다. 이제 그 마지막 단계를 살펴볼 순서이다.

도봉구에는 시민운동가가 지방의원에 출마하여 당선된 사례가 많다. 1995년 서울동북여성민우회 출신의 최찬애의원이 당선되었고, 1998년 도봉푸른청년회의 추천으로 필자가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최찬애의원과 필자는 당시 민주당에 입당했고 내부 공천을 받았다. 그 당시만 해도 도봉구 시민운동의 힘이 그렇게 강하지 않았고 선거 경험도 적었다.
하지만 2002년에는 김낙준, 추경숙 두 후보가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당히 당선되었다. 지역의 여러 단체가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섰고, 지역 사정에 밝은 현직 구의원이었던 필자가 한몫 거들면서 좋은 결과를 얻게 되었다.

그들 시민단체 출신 의원들은 지역단체와 함께 왕성한 활동을 펼쳤고 도봉구의 개혁을 선도했다. 그건 자타가 공인하는 바이다. 하지만 선거법이 바뀌면서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여러 가지 제도가 바뀌었지만 핵심적으로는 그 동안 공천이 배제되었던 기초의원 선거도 정당이 공천을 하게 되면서 시민단체 출신이 무소속으로 출마할 여지가 크게 줄었다. 이전에는 모두가 무소속인 셈이라 주민들이 후보자의 자질을 중심으로 투표를 하였는데 정당 공천이후부터는 어떤 정당인가를 먼저 보게 된 것이다.

”?”유난히 중앙 정부의 힘이 세고, 중앙언론이 이슈를 독차지하며, 특히 지방선거가 정권의 중간평가의 장처럼 인식되고 있는 한국의 현실에서 주요 정당 출신의 후보자들은 세배, 네배의 유리한 위치에서 선거를 치루게 된다.
제도가 바뀌고 치룬 2006년 지방선거에서 1,000만 서울시민을 대표하는 서울시의회는 한나라당이 전 의석을 싹쓸이 하였다. 타당은 단 1석도 얻지 못했다. 오직 비례대표에 의지해서 몇석을 건졌을 뿐이다. 균형을 잃어버린 서울시의회는 임기 내내 의장선거 비리 등 각종 부정에 흔들리고 있다. 25개구의 구청장도 모두 한나라당이 승리했다. 그건 정상적인 선거라고 말하기 어려웠다.

도봉구 시민단체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출마한 김낙준, 추경숙의원과 이창림후보는 모두 낙선했다. 비단 도봉구뿐만 아니다. 전국적으로 마찬가지였다.
비록 자질이 부족해도 정당 공천을 받아 1번 혹은 2번의 번호를 부여 받으면 당선되었고 지역에서 오랫동안 활동하며 주민의 지지를 받아온 지역 활동가들은 대부분 낙선했다.

주요 정당의 공천을 받으면 곧바로 정당이었기 때문에, 지구당 위원장들은 주민을 위해 뛸 사람이 아니라 다음 국회의원 선거에서 충성할 사람을 공천했다. 지역사회에서 거대 정당의 영향력은 급속히 강화되었고 그 만큼 지역의 자생적 시민조직이 정치에 개입할 여지는 줄어들었다.
지방선거란 측면에서 보면 지방자치가 10년은 후퇴했다.

정당정치도 필요하면 제약할 수 있다

원래의 의도가 무엇이건 간에 결국 지방선거에서 정당이 후보를 공천하는 행위가 가져온 결과는 부정적이다. 현재의 선거제도를 유지해서는 아무리 Home Rule하고, 거버넌스를 해도 절반의 성과를 얻기도 힘들다. 좋은 제도도 사람이 운영하는 것이고 좋은 사람들이 지방정치인이 되어야 제도가 가진 가능성이 다 발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당공천을 시행한 근거는 정당정치의 활성화이다. 정당정치는 대의민주주의의 핵심적 수단이다. 그것이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점에 필자도 이견이 없다. 다만 정당정치가 대의민주주의의 핵심 수단이듯, 지방자치도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중요한 가치이다. 더구나 시작한지 15년밖에 되지 않아 우리 사회가 더 키우고 발전시켜야 할 가치이다. 만약 정당정치를 활성화하기 위해 시행한 어떤 제도가 지방자치의 발전을 저해한다면 그건 한번 재고해 봐야 한다. 지방선거 정당공천이 그렇다.

정당은 기본적으로 전국적 성격을 가진다. 특히 한국은 지역정당을 인정하지 않는다. 정당법에 의하면 정당은 서울에 중앙당을 “둬야 하고” 전국 5개 이상의 광역시도에 시도당을 “둬야 한다.” 당연히 정당의 활동방식은 중앙적이고 전국적이다. 지역하고는 거리가 멀다. 특히 지역사회에서 정당은 중앙의 힘이 지역으로 내려오는 주요한 통로중의 하나이다.

즉 전국적인 정당은 기본적으로 지방자치와 상충하는 면이 있다. 그래서 지방자치를 제대로 하려면 정당도 일부 제약을 감수해야 한다. 한국처럼 중앙집중적인 사회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미국은 양당제가 정착했다. 공화당과 민주당은 150여년의 역사를 가진 정당으로 미국 정치의 대주주들이자 기득권자이다. 미국에서 “정치하겠다.” 하면 이 두 당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두개의 기업이 시장을 양분하고는 카르텔을 형성한다. 그리고는 자신들의 우세한 지위를 이용하여 새로운 기업의 시장 진입을 막고, 가격을 조정하여 부당한 이익을 얻고, 소비자의 이익을 침해한다. 이런 상황이 장기화되면 시장이 가진 자율경쟁의 역동을 해쳐서 막대한 비효율을 발생시킨다.”

그때 반독점법이 작동한다. 시장의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거액의 벌금을 물리기도 하고 필요하면 기업의 분할을 명령하기도 한다. 실제 스탠다드 오일, 아메리카 토바코, AT&T 등이 반독점법에 의해 제소 당해 수십개의 작은 회사로 분할되었다.
시장에는 독과점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있으나 정치에는 그런 것이 없다. 실제 민주당과 공화당은 독과점적 지위를 이용해 정치 시장을 왜곡하고 소비자의 요구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점을 극복하기 위해 미국의 지방선거에는 Nonpartisan(무당파) 선거구란 것이 있다. 이 선거구에서는 정당이 공천을 하지 않는다. 누구나 출마가 가능하고 그저 자기 약력에 어느 당원이라는 것을 표시할 뿐이다. 더구나 독자적으로 정한 날에 선거를 치루기 때문에 중앙정치에 휘둘리지 않고 지역선거라는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다.

무당파 선거구는 두당의 독점적 지배력을 약화시켜야 지역 정치 시장이 소비자의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고 판단해서 만든 제도이다. 이렇게 정당정치란 것은 지고지순의 가치가 아니며 정치적 필요에 의해 제약할 수 있는 것이다.

”?” 묘안! 유권자단체

필자는 2006년 선거의 결과를 보면서 지방선거의 정당공천을 반대하게 되었다. 하지만 뭐든지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하라.”고 하는 것보다 말발이 약하다.
정당에게 정당공천하지 마라?
쉽게 설득력을 갖기 어려웠다. 그런데 최근 좋은 대안을 발견했다.
부산대학교 김남철교수는 “다양한 정치세력의 지방선거참여를 위한 법적 과제”란 논문을 통해 참 설득력 있는 제안을 했다.

독일에는 유권자단체란 것이 있단다. “지방선거에 참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인적 결사체”를 의미한다. 기존 정당과는 달리 대통령선거나 국회의원 선거에는 참여하지 않고 지방선거에만 참여하는 조직으로 일정수의 지역 주민이 결사하면 쉽게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지방선거에 관해서는 기존 정당과 완전히 같은 지위를 누리면 선거를 치른다. 번호도 부여받고 선거비용도 지원 받는다.

어떤 지역에서는 이런 유권자단체들이 34.3%의 지지를 받아 주요 정당인 기민당과 사민당을 이기기도 하고 또 어떤 지역에서는 미미한 득표를 하기도 한단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얼마의 지지를 받느냐가 아니다. 기성의 정당들이 시민의 정치적 요구를 다 대변하지 못할 때 최소한 지방선거만이라도 주민들이 준정당적 조직을 결성하여 스스로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는 것이 중요하다.

2009년 1월 내일신문과 한길리서치가 조사한 정례여론조사에 의하면 한나라당이 19.4%, 민주당이 9.5%의 지지를 얻었다. 무당층이 무려 64.9%이다.
기성의 정당 체계가 시민의 정치적 요구를 전혀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 그래서 시민들이 정치적 선택지를 갖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 시민이 스스로 자신의 정치적 결사를 만들도록 길을 열어주는 방법 밖에는 없다. 최소한 지방선거만이라도 그런 길을 열어줘야 한다.

정당의 공천권을 제약하는 방식보다는 정당과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지역의 정치적 결사를 인정하여 지방정치를 주민에게 돌려준다는 발상이다. 정당정치를 주장하는 사람도 할 말이 없는 묘안중의 묘안이다. 유권자단체는 촛불이 정치의 변방 지역에서 스스로를 조직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386과 민주노총 그리고 그 다음

1980년대의 민주화운동은 정치세력을 만들어냈다. 한축은 386이라 불리는 학생운동 그룹이고 한축은 민주노총으로 대표되는 노동운동 세력이다. 도식화할 수는 없지만 대체로 386은 민주당에 결합했고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조직적 토대가 되었다. 이들로 인해 한국의 정치는 한단계 더 나아갔다. 필자는 앞으로도 이들의 활약을 기대한다.

하지만 그들만으로는 힘에 부치는 것 같다.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을 계기로 386과 민주노총은 후퇴하기 시작했고 무엇보다도 그 정치적 신망이 약화되고 있다.
한국의 진보는 그 다음 세대를 키워야 한다.
과연 386과 민주노총 다음의 진보는 누구일까? 촛불이다.
그들은 어디서 어떻게 성장할까? 지역에서 Home Rule과 거버넌스를 통해 성장할 것이다.
어떤 계기로 정치 무대에 진출할까? 지역에서의 정치세력화를 통해 정치에 진출할 것이다.

한국의 진보가 현명하다면 촛불로 대표되는 시민의 역동을 진보의 한 세대로 키워내야 한다. 그래서 한 10년 후에는 전국 곳곳의 유권자단체들이 네트워크한 새로운 유형의 정치세력으로 국민들 앞에 등장해야 한다. 그들이 386과 민주노총을 이어 진보의 새로운 시대를 열 것이다.

● 연재순서
0. [공지]기획연재 & 필자 소개
1. 태초에 지방정부가 있었다. 분권이라고? 임권이거든!
2. 작아야 참여하기 좋지. Municipality!
3. 뉴욕의 힌트 “Community Board”
4-1. 미래의 지방자치 “아! 로체스터” <최악의 상황이 만들어낸 새로운 미래>
4-2. 미래의 지방자치 “아! 로체스터” <시민 이니셔티브>
5-1. 동네가 촛불에게 보내는 첫번째 초대장 지방자치 혁명!”
5-2. 동네가 촛불에게 보내는 첫번째 초대장 지방자치 혁명!”
6. 도봉구 거버넌스 그리고 도봉구 유권자단체

이번 글로 기존에 계획했던 것 보다 1회 먼저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직접 발로 뛰며 탐방하고 좋은 글을 써주신 필자 정보연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