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과 관, 제대로 ‘협력’하려면

 

디 이노베이터 시리즈는 다양한 분야에서 사회혁신을 이끌고 있는 활동가들과 함께, 사회혁신의 방법론과 사례 등을 알아가는 사회혁신 프로그램입니다. 아래 내용은 디 이노베이터 시리즈의 다섯번째 시간이었던 ‘ 사회혁신 활성화를 위한 민?관 거버넌스, 어떻게 구축하고 발전시킬 것인가?’ 워크숍을 정리한 글입니다.

지난 9월 17일, 희망제작소와 하자센터 공동 주관으로 디 이노베이터 (The Innovator) 다섯 번째 마스터 클래스가 하자센터에서 열렸습니다. 이번에는 영국 진보적 싱크탱크 데모스(Demos)의 창립자이자, 영 파운데이션(The Young Foundation)의 전 소장(Director)직을 맡은 후, 현재는 NESTA (National Endowment for Science, Technology and the Arts)의 대표직을 맡고 있는 제프 멀건(Geoff Mulgan)이 전체 클래스를 이끌면서 영국의 경험과 현황을 공유해 주셨습니다. 이 자리에는 약 15명 남짓한 한국 시민단체 및 사회혁신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분들이 함께 하셔서 민?관 거버넌스의 경험과 과제 등을 자유롭게 논의하며 대화의 장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갑자기 몰아친 태풍으로 빗속을 뚫고 도착한 참석자들에게 제프 멀건은 자신이 영국에서 비를 몰고 온 것 같아 죄송하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내더니, 클래스 시작을 기존의 프레젠테이션이 아닌, 자리에서 일어나 화이트보드에 그림을 그리며 시작했습니다.

[##_1C|1010749012.jpg|width=”500″ height=”372″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제프 멀건(NESTA 대표)_##]


 “여러분은 시민사회와 정부의 관계를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협력’ 혹은 ‘대결’?”

좌중을 침묵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 이 어렵고도 애매한 질문을 던진 후, 제프멀건은 말을 이어갔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부와 시민사회 각자가 사회라는 유기체 안에서 서로 다른 역할을 맡고 있음을 인식하고, 긴장관계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의 구조는, 시민사회는 정부를 어떻게 우리 쪽으로 끌어올 것인가만 생각하고 정부는 시민사회를 어떻게 우리 쪽으로 끌어올 것인가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서로의 위치와 역할을 인정하지 않고, 각자의 입장만을 고집한다면 협력을 바탕으로 한 협력의 민?관 거버넌스는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민?관 거버넌스에서 중요한 것은 서로를 이해하는 ‘공감능력 (ability of empathy)’ 입니다. 정부는 정부가 제공하는 공공 서비스를 받는 사람들과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함께 하는 시민사회를 이해하지 못하고, 시민사회는 정부가 처해있는 상황과 그 내부의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면 서로 적대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그는 영국의 경험을 바탕으로 정부와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 시민사회가 해야 할 일에 대하여 이야기했습니다. 영국 정부 내에는 시민사회를 잘 이해하고 그들의 역할을 잘 이끌어낼 수 있도록 구성된 전문가 집단 부서(Unit)가 존재합니다. 눈여겨볼 것은, 그중 한 부서인 사회배제부서(Social Exclusion unit) 입니다. 이 부서에는 시민사회에서 경험을 쌓은 사람들이 절반 이상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정부와 시민사회를 연결하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고 합니다. 또 다른 민?관 거버넌스 예로, 런던시에서 실시한 ‘청년 시장 (young mayor)제도’를 소개해주었습니다. 이 독특한 시스템을 통해서 청년들은 직접 자신의 ‘청년 시장’을 선출하고 예산도 집행할 수 있었습니다.

제프멀건은 이러한 영국의 경험을 소개하며, 시민사회의 입장에서 정부와 함께 일하려면 관료적인 부분과 책임성이나 위기 관리, 재정관리와 같은 구체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을 하면서, 시민사회 영역이 정부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을 소개했습니다.
 
우선 첫 번째 방법은 정책과 아이디어로 협력하는 업스트림 (upstream)이고, 두 번째 방법은 시민과 직접 소통하며 서비스를 제공하는 책임을 맡는 다운스트림 (downstream) 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둘 중에 어떤 것이 자기 조직에 맞는 것인지를 찾는 것입니다.

물론, 그 역할은 정부와 시민단체의 협력-적대적 관계 스펙트럼 안에서 파악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정부를 견제하는 긴장관계에 더 초점을 맞춘 단체라면, 정부의 간섭을 최대한 피하고 기관이 추구하는 순수한 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역할을 추구할 것이고, 이 때문에 수익을 낼 수 있는 기회는 그만큼 줄어들 것입니다. 반면, 정부와 너무 가까운 관계를 추구하다 보면, 수익을 낼 수 있는 기회는 많아지겠지만 독립성은 떨어질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위치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중요한 과제일 것입니다. 제프멀건은 시민사회가 정부에 미치는 영향에 따라서 세 가지 카테고리로 나누어 그들의 역할을 구분했습니다. 1)구조(Structure) 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로 정부 내에서 중간자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2)프로세스(process)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로 예산을 책정하고 분배하는 것에 참여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경우에는 공공사업을 민간영역에게 열어 시민사회의 참여를 더 쉽게 할 수 있습니다. 3)마지막으로 문화(culture)에 영향력을 미치는 경우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집니다. 예를 들면 공무원과 시민사회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함께 교육하여 서로의 입장을 배우고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한국의 민?관 거버넌스 상황은?

제프멀건의 이야기를 들은 후, 자유로운 의견 발표 시간을 통해 한국 민?관 거버넌스 형성의 어려움에 대한 고민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많은 분들의 공통된 의견은 ‘한국에서 거버넌스 문화를 찾기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민?관 거버넌스를 성립하기 위해서는 우선 민민 거버넌스부터 정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한국 시민사회는 시민사회 내부의 생각 차이가 크기 때문에 통일된 입장을 갖고 정부를 상대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는 지적이었습니다. 이런 시스템에서 민민 거버넌스는 업스트림 (정책수립)에 관여할 힘을 가지기 어려울 것입니다

또 다른 한국 거버넌스의 문제로는 정치적 성향이 거버넌스 정책 유지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최고 통치권자, 자치 단체상의 성향, 경험, 출신에 따라 거버넌스의 형태가 바뀝니다.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 이상 대안이 없다는 점에서 시사점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시스템(구조) 문제는 제프멀건이 언급한 구조-프로세스-문화의 카테고리에서 서로 다른 역할의 중요성에 대한 한국 시민단체 대표들의 반응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실질적으로 문화 혹은 프로세스 영역에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것이 거버넌스 확립에 중요하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한국 실정에는 아직 ‘구조’가 더 중요하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어떤 강력한 힘 (법에 의한 강제성을 통하여)을 발휘해야지만 현재 거버넌스 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위원회’는 민?관 거버넌스를 이야기할 때 가장 최초로 만들어지는 것인데, 실제로 위원회가 우리 사회에서 갖는 역할은 정부 행정 대행 역할 혹은 보좌에 그치며 정책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현재 행정 시스템(구조) 하에서는 시민사회가 파고 들 수 있는 매커니즘이 부족한 것입니다. 더불어, 한국 시민사회가 민?관 거버넌스의 정확한 주체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아직도 좁은 시야에 갇혀 협력 대상, 협력 방법에 대한 모색이 올바르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한국 시민사회가 아직 발전 초기 단계에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민관 거버넌스 형성에 생기는 모든 어려움과 잡음은 너무나 당연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럴 때일수록, 더 많은 고민과 자기 성찰을 통해 혁신적인 ‘민관 거버넌스모델’을 세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특히, 정치적인 구조의 특성상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많을 경우에는 더욱더 활발한 ‘다운스트림’ 활동이 기대됩니다. 이것이 바로 시민과의 연대를 통해 풀뿌리 운동으로 민간의 역할을 확대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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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신 분들

김영식(씨즈), 류효봉(노리단), 문진수(한국사회적금융연구원), 이은애(씨즈), 이학종(모티브하우스)
박홍순, 조수빈, 홍서연(서울특별시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 남혜선, 임경진, 허윤정(하자센터)
진무두(빅이슈코리아), 홍일표(김기식 의원 보좌관), 송창석, 한선경, 양소연, 김혜영, 박아영 (희망제작소)


통역_ 변주경 (자원활동가)
녹취_ 박아영 (사회적경제센터 연구원
loana@makehope.org)
글_ 김혜영 (사회혁신센터 위촉연구원
hkim@makehop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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