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준 몽타주

희망제작소 3주년 기념 서평이벤트 ‘책이랑 놀자! 서평쓰며 놀자!’ 수상작 3편을 발표합니다. 이번 이벤트에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희망제작소 책 많이 사랑해주세요.

☞ 서평콘테스트 최우수작/조혜진
<마을에서 희망을 만나다> “마을 – 삶을 바꾸는 변화가 시작되는 곳”

☞ 서평콘테스트 우수작/박석훈
<우리는 더 많은 민주주의를 원한다> “민주주의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준 몽타주”

☞ 서평콘테스트 장려/황용운
<우리는 더 많은 민주주의를 원한다> “현장의 목소리로 찾아가는 우리시대 민주주의”

-서평콘테스트 우수작/박석훈
[##_1R|1214500374.jpg|width=”267″ height=”390″ alt=”?”|유시주외 | 창비 | 2007_##]

‘몽타주 이론’으로 음미하는 본 연구서의 의미

나는 영화감독 지망생이다. 특히 영화적 구성으로써 몽타주(montage)에 흥미를 느낀다. 몽타주란 쇼트(shot)와 쇼트의 결합, 즉 편집을 통하여 어떤 의미나 효과를 창출해내는 기법이다. 서로 관련 없는 쇼트들을 병치시켜 관객의 뇌리에 충돌과 비약의 효과를 노렸던 아이젠슈타인(Eisenstein)의 몽타주 개념을, 나는 각별히 선호한다.
『우리는 더 많은 민주주의를 원한다』를 읽고 내가 본 것은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톺아보기 앞서) 몽타주였다. 민주주의를 주제 삼는 책들의 홍수 속에서 이 책이 돋보이는 까닭은, 서로 무관해 보이는 텍스트를 번갈아 배치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민주주의를 독자적으로 사유하게끔 하는 힘을 이 책은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엇과 무엇이 서로 무관하다는 말인가? 바로 구술 텍스트와 학술 텍스트. 딱딱한 학술 텍스트가 주를 이뤘던 기존의 출판물과 비교하면(혹은 지나치게 말랑말랑하여 주제가 퇴색되어 버린 대중서적들과 비교하면), 서로 다른 두 텍스트의 이 ‘평등한 번갈음’이야말로 하나의 몽타주로 작동하는 것이다.

일상의 민주주의, 혹은 민주주의의 일상

이 책에서 저자들이 다부지게 밀고 나가는 문제의식은 이것이다 – 민주화가 되었다는데, 왜 일상에서는 그것을 느끼기가 힘들까? 평서문으로 바꿔 쓰자면, ‘일상에서의 구체적인 경험을 통하여 한국 민주주의의 현실을 조명해본다’가 되겠다. 일상! 저자들은 왜 일상에 주목하는 것일까.

‘일상은 민주적 가치의 부재가 불러일으키는 고통을 자각하는 통각세포이며, 시민들은 일상의 정치적 고통을 경유하며 민주적 가치를 이해하고, 내면화한다. 이때 일상은 사적인 공간이 아니라 ‘이행의 현장’으로서의 역사적 공간이 되며, 낡은 가치와 새로운 가치가 부딪히는 이 역사적 현장에서 시민들이 무엇을 고민하고, 어떤 가치를 선택하며,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는 곧바로 한국 민주주의 진로의 좌우하는 정치적 행위가 된다. 그래서 민주적 가치를 생성하고 내면화하는 이행의 과정에서 일상은 특별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338쪽)

그렇다면 구술면접을 통해 분석된 ‘일상의 민주주의’란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일상의 민주주의’는 (…) 작고 사소한 민주주의를 가리키지 않는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개념을 ‘관계 속에 놓고 양자가 서로를 조절하는 행위’로 넓게 확장하자는 제안이며, 우리가 타인과 맺는 모든 관계, 일상의 모든 공간과 행위 양식이 민주주의 내용을 구성한다는 인식이며, 일상의 가치와 행위규범, 관행과 습속의 차원으로 민주주의를 민주화하자는 주장이다. (338쪽)

그동안 한국사회의 민주주의 이론은 일상을 외면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것들이 지나치게 ‘학구적’이거나 ‘전문적’이었던 나머지 일상도 이론을 무시했다. 이와 달리 이 책은 일상에게도 무게중심을 실어주며, 토라진 일상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일상이 민주주의 ‘이행의 현장’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보듬는 따끈한 관심이, 이 책에서는 묻어난다.

민주주의가 담을 넘고 있다

이 책이 같은 주제를 다룬 다른 책들에 비해 갖는 장점이 연구방법에 있다면, 역설적이게도 한계 역시 그것에서 기인한다. 앞서 구술 텍스트(“일상!”)와 학술 텍스트(“이론!”)가 자아내는 몽타주 효과를 언급한 바 있는데, 각 텍스트의 주인공은 30명의 시민들과 4명의 저자들이 되겠다. 한계는 이 주인공들로부터 나온다.
먼저 시민들이 갖는 한계. ‘시민들의 일상체험’을 분석하겠다는 저자들의 의도는 현실적으로 달성되기 어렵다. 우리 시민들은 자신의 체험을 자신의 언어로 풀어내는 훈련이 제대로 되어 있질 못한 까닭이다. 외국학자들의 이론을 암기하고, 대형신문들의 논조를 담지하는 데 익숙한 대중들은, 면접을 통해 ‘암기한 것’과 ‘담지한 것’을 질러버리기 쉽다. 실제로 이 책에 등장하는 구술 텍스트가 많은 경우 ‘구어체의 옷을 입은 교과서’ 같다고 느껴지는 것에는 이러한 연유가 있다.
다음으로 저자들이 갖는 한계이다. 이는 책의 서문에서도 저자들 스스로 경계한 바있다.

이런 질적 연구에서는 텍스트를 향해 ‘열린’ 자세가 아주 중요하다. 연구자가 ‘닫혀’ 있으면, 구술 텍스트는 연구자의 가설이나 주제를 입증하는 사례나 논거로 ‘동원’되기 쉽다. (…) 다시 말해 연구자가 구술자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이미 가지고 있는 해석과 평가의 체계 속으로 이야기를 끌어들이면 구술 텍스트는 어떤 새로운 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17쪽)

그럼에도, “김대중 정부 이래 우리 사회 보수진영이 그 안위를 걱정해 마지않는 자유민주주의”(26쪽)와 같이 다소 편파적인 표현이나, “민주주의란 (…) 더 나은 사회를 향해 나아가는 거의 유일한 방법”(42쪽)과 같은 배타적인 입장들이 책 곳곳에서 발견되는 점은 아쉽다.
허나,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이 한 편의 영화처럼 품고 있는 ‘몽타주’에 주목하련다. 덕분에 독자는 이 책으로 민주주의를 ‘암기’하지 않고, 이 책을 통해 스스로 민주주의를 엮고 겪게 된다. 그러므로 이 책은 독자 아닌 오로지 저자만을 만나게 되는, 즉 끊임없이 쓰여지는 ‘불사서’(不死書)로 작동하는 것이다.
끝으로, 이 연구서를 위한 또 하나의 몽타주를 구성하련다 – 서평(書評)과 시(詩)의 몽타주! 아래의 시는 반칠환의「웃음의 힘」을 패러디한 「민주주의의 힘」.

민주주의가 담을 넘고 있다
현행범이다
활짝 웃었다
아무도 잡을 생각 않고 따라 웃었다
왜 민주주의의 월담은 죄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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