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식 논은 왜 무너져 내릴까

2011년 1월, 공감만세의 필리핀 공정여행에 참가한 동화작가 이선희님의 여행 에세이 ‘편견을 넘어’를 12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공감만세는 공정여행을 진행하고 있는 청년 사회적기업으로 희망제작소의 청년 소셜벤처 인큐베이팅 프로그램 희망별동대 1기를 수료했습니다. 이번 연재를 통해 조금 더 많은 분께 공정여행을 알리고, 또 다른 여행 이야기가 시작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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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을 넘어 (7) 계단식 논은 왜 무너져 내릴까 

바타드의 계단식 논이 보여주는 풍광을 아름답다고 감탄하며 바라보는 것은 첫날뿐이었다. 이후에는 도저히 같은 눈으로 그 풍광을 바라볼 수 없었다.

계단식 논 한 가운데 있는 마을에 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 벽에 걸린 그림을 바라보듯 멀찍이서 보기만 하다가 그림 속으로 뛰어든 것이다. 작품의 제목은 ‘세계문화유산 계단식 논’. 멀리서 바라볼 때 그것은 세계문화유산이었다. 하지만 가까이에서 본 그것은 무너지고 있거나 버려진 땅덩어리일 뿐이었다.

바타드의 계단식 논이 무너지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태풍이나 산사태 같은 자연재해로 인해 무너지기도 하고 쥐나 지렁이와 같은 생물에 의해 파괴되기도 한다. 관광객의 무분별한 행태로 인해 훼손되기도 하고 마을 주민들이 떠남으로써 버려지기도 한다.

단단한 바위도 닳게 만드는 세월의 힘 앞에 계단식 논이라고 장사일까? 무엇보다도 농사일에는 사람의 손이 제일 필요할 테다. 자연재해로 무너져도, 생물에 의해 파괴돼도, 관광객에 의해 훼손돼도 그것을 복원할 사람만 있다면. 그러나 누구더러 복원하라 말할 수 있겠는가? 마을 주민들은 계단식 논을 관광 상품화 하여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일을 하려고만 하지, 정작 그 논을 가꾸지는 않는다. 세계문화유산으로서 계단식 논이 특별한 이유는 그 안에 사람이 살고 일(농사)을 한다는 것인데. 코디네이터의 말에 의하면 지난 20년 간 바타드 계단식 논의 70%가 훼손되었다고 한다. 10년 뒤에는 그나마 남아있는 것의 3% 밖에 남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이런 슬픈 현실을 온전히 바타드 주민들의 탓으로 돌릴 수 있을까?

[##_1C|1280907875.jpg|width=”500″ height=”331″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바타드의 계단식 논 (사진:이선희)_##]우리가 묵은 산장의 주인 사이먼은 계단식 논을 가리켜 어글리 뷰(Ugly View)라고 불렀다. 보기 흉하다는 뜻이다. 내게 아무리 아름답고 소중한 것도 주변에서 하도 극성을 떨면 마음이 식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그처럼 이들에게는 소중한 유산일 터요, 삶의 터전일 계단식 논이 여러 가지 이유들로 인해 꼴 보기 싫은 풍경이 되었다는 것에 여행자의 한 사람으로서 죄스런 마음이 들었다. 

그의 등 뒤로 첫날 본 것과 전혀 다를 바 없는 계단식 논이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감탄할 수는 없었다. 계단식 논은 그 경이로움으로 인해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그 아름다움은 너무나 애달픈 마음이 들게 했다. 병마와 싸우다 숨진 어느 여배우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심정과 비슷했다.

계단식 논 사이를 걸어 마을을 둘러보았다. 이푸가오의 전통가옥 발루이(Baluy)가 곳곳에서 보였다. 발루이는 3층의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기둥만 있는 1층에서는 가축을 키우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갈 수 있는 2층은 방 하나로 된 구조에 화덕이 있어 요리도 할 수 있고 잠도 그곳에서 잔다. 3층에는 곡식을 보관하는데 2층 화덕에서 올라오는 증기로 곡식을 말릴 수 있다.

본래 발루이는 볏짚으로 만든 지붕으로 되어 있지만 요즘에는 손쉽게 양철로 만든 지붕을 쓴다. 양철지붕은 온도를 보관하지 못한다. 낮에는 빛을 여과 없이 받아들여 집을 절절 끓게 만들고, 저녁에는 그 열을 담고 있지 못해 춥게 만든다. 짚은 더운 낮에는 제 스스로 빛을 보관하여 집 안을 덜 덥게 하고, 저녁에는 낮에 보관한 열로 따뜻하게 해준다.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양철지붕이 생겨나는 원인 중 하나는 원주민들이 짚으로 지붕을 엮는 방법을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마을을 지나 험난한 길을 걸어 바타드의 젖줄이라는 탑피아 폭포를 보았다. 엄청난 양의 물이 물보라를 일으키며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산 어딘가에서 발원했을 그 물에 기대어 논도 사람도 살고 있다. 폭포에 풍덩 빠져보았다. 겨울산 계곡물에 몸을 담그며 각오를 다진다는 한 스포츠선수의 말에 공감이 되는 순간이었다. 차가운 물에 몸을 담그니, 죽을 것 같이 차가우면서도 새로 태어나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뭐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샘솟으면서 말이다. 바타드의 계단식 논이 지켜지길, 탑피아의 영험한 기운에 빌어보았다.

[##_1C|1340793109.jpg|width=”300″ height=”358″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탑피아 폭포(사진제공:공감만세)_##]그날 저녁 바타드 마을 사람들과 함께 하는 전통 축제가 열렸다. 악기를 두드리며 춤을 추고 술을 마시는 한 구석에 특별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이곳에서는 그를 뭄바키라고 부르는데 이는 주술사라는 뜻이다. 바타드에 남은 마지막 뭄바키라고 한다. 일흔이 훌쩍 넘은 그는 기둥에 기대 앉아 중얼중얼 무언가를 읊조렸다. 이는 죽은 조상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는 의식이라고 했다. 계단식 논에서 추수한 쌀로 빚은 술을 가끔씩 들이키며 그는 끊임없이 그들의 조상을 불렀다. 그런 와중에 축제의 한 가운데에서 처량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나무막대기에 네 발이 묶인 돼지가 몸을 뒤틀며 울고 있었다. 축제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돼지를 잡는 일이라고 했다. 마을 사람들이 열심히 장작불을 지피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남자 넷이 돼지를 들어 뭄바키가 앉아 있는 곳으로 갔다. 돼지는 자신의 마지막을 감지한 듯 울음소리를 높였다. 남자가 칼을 들어 돼지의 목을 그었다. 그때 처음으로 들었다. 돼지 멱따는 소리. 나는 그게 듣기 싫은 소리를 가리키는 말인 줄 알았다. 그 소리가 세상에서 가장 슬픈 소리, 생명이 끊어지는 소리라는 것을 그 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다.

돼지가 움직임을 멈추자 남자들은 돼지를 불로 가져가 털을 그슬렸다. 그런 다음 돼지의 배를 갈라 생간을 꺼내어 뭄바키에게 건넸다. 뭄바키는 그것으로 점을 쳤다. 간에 붙은 하얀색 힘줄이 한 줄로 연결이 되어 있으면 축제를 지내는 사람들의 운수가 좋은 것. 이리저리 간을 살펴보던 뭄바키가 여행자들을 둘러보며 “Good.”이라고 했다. 점괘가 좋게 나왔다는 것이다. 뭄바키는 코디네이터에게 우리의 여행이 무사히 끝날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_1C|1223936086.jpg|width=”400″ height=”425″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뭄바키(사진제공:공감만세)_##]돼지를 잡을 때 우리 여행 참가자들은 대부분 그 모습을 바로 보지 못한 반면 서양 여행자들은 흥미진진한 눈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징그럽지 않느냐는 한 친구의 질문에 싱싱한 고기를 먹을 수 있어서 좋다는 답변을 했다는 말을 듣고 또 하나의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물론 어떤 문화를 막론하고 맛있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똑같을 것이다. 서양 여행자들도, 우리 여행 참가자들도, 필리핀 원주민들도 모두 그날 희생된 돼지를 아주 맛있게 먹었으니까. 사람뿐만이 아니라 개들도 역시.

바타드에 왔으면 꼭 일출을 보라는 코디네이터의 충고에 5시부터 일어나서 해가 뜨기를 기다렸다. 구름이 껴서인지 해는 보이지 않은 채 서서히 날이 밝아왔다. 산장 아래를 내려다보니 한 할아버지가 마당에 나와 장작을 패고 있었다. 나무 하나가 굉장히 단단했던지 내내 앉아서 작업을 하던 할아버지가 벌떡 일어나 온 힘으로 도끼를 휘둘러 나무를 쪼갰다. 저 장작으로 불을 피워 우리가 먹는 음식, 우리가 씻을 물을 덥히겠지?

그러다 문득 우리가 타인의 삶을 이해하는 방식은 아이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에게 어떤 것을 가르쳐 보라. 가르치는 사람이 의도한 바와는 전혀 다른, 일반적인 추론으로는 나올 수 없는 아주 엉뚱한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것처럼 나 또한 그들의 실제와는 전혀 다른 엉뚱한 이해의 축적으로 그들의 삶을 이해했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해를 보지는 못했어도 날은 밝았다. 바타드를 떠나야 하는 시간도 금세 찾아왔다. 안타까운 마음이 많이 들긴 했지만 바타드는 좀 더 머물고 싶은 아름다운 곳임에는 분명했다. 2박 3일의 일정은 너무 짧게만 느껴졌다. 자연이 있는 곳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즐거우니까.

[##_1C|1002501917.jpg|width=”500″ height=”338″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바타드의 아침 (사진제공:공감만세)_##]10년 후면 지금 보이는 계단식 논의 3% 밖에 남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 계속 떠올랐다. 내가 다시 찾았을 때 이곳은 어떻게 변해있을까? 나는 이곳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한국으로 돌아가 내가 일상의 삶을 살아갈 때도 이 바타드의 논은 끊임없이 변하겠지? 사람과 인연을 맺듯이 나는 바타드와 인연을 맺은 것 같다. 그의 삶이, 그의 희로애락이 나의 희로애락과 같이 끊임없이 반복될 거라는 것. 제발 무작정 무너져 내리는 것만은 아니기를 바랐다.
바타드와 나의 시간은 똑같이 흘러갈 것이다.  

관광객의 발길에 무너진 둑을 다시 세우고 있는 농부 한 사람의 힘이, 지금 이 순간에는 미약해 보이지만 사실은 지금까지 이 땅을 일구어 온 것이다. 사람의 힘은 위대하다.

글_이선희
가늘고 오래 공부한 끝에 2011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동화 부문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다방면에서 부족함을 절감, 불꽃 튀는 경험을 원하던 중 공정여행에 반해 청년 소셜벤처 공감만세의 일원이 되었다. 지금은 아이들과 함께 북촌을 여행하며 아이들이 스스로 동화를 쓸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월간 토마토에서 어른이 읽는 동화를 연재중이다. 
● E-mail: sunheemarch@gmail.co?m  ● Fac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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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만세는
‘자유롭게 고민하고 상상하며 길 위에서 배우는 청년들이 모여 세상을 바꾼다!’ 라는 구호 아래, 대전충남 지역에서 ‘최초’로 법인을 설립을 한 청년 사회적기업이다. 현재 필리핀, 태국, 제주도, 북촌, 공주 등지에서 공정여행을 진행하고 있으며 공정한 여행이 필요한, 공정한 여행을 실현할 수 있는 지역을 넓혀갈 생각이다. 공정함에 감동한 사람들이 만드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지 기대해보자.  ● 홈페이지:
fairtravelkorea.com  ● 카페: cafe.naver.com/riceterrace


● 연재 목록
1.
나는 왜 공정여행을 떠났는가    
2.
필리핀 ‘골목길 미소’에 반하다  
3. 여자 여섯 명, 수다로 지새운 필리핀의 밤  
4. 끼앙안, 천국보다 평화로운    
5. 이푸가오의 독수리   
6. ‘천상의 녹색계단’ 앞에 말을 잃다
7. 계단식 논은 왜 무너져내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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