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의 희망탐사69 남한산초등학교, 교사와 학부모의 참교육 공동체


어디서나 남한산초등학교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공교육 안에서의 대안교육’으로 유명한 아산 거산초등학교 관계자도 이 학교를 모델로 삼았다고 했다. 남한산초등학교에 대한 궁금증은 날로 커져만 갔다.

3월 27일 마침내 이 학교를 찾았다. 이름 그대로 남한산 도립공원 내에 자리 잡고 있어 푸른 산이 교정을 감싸고 있다. 산 중턱 나무에는 긴 그네가 매어 있다. 한 무리의 아이들이 신나게 그네를 타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아련한 유년 시절의 기억이 떠오른다.

인터뷰는 교장실에서 이루어 졌다. 선생님을 기다리는 아이들이 수시로 문을 열고 들어와 호기심 어린 눈빛을 쏟아낸다. 누구도 아이들을 나무라거나 막지 않았다.

[##_1C|1297326055.jpg|width=”560″ height=”420″ alt=”?”|인터뷰 도중에도 아이들은 스스럼없이 교장실을 드나들었다. ⓒ희망제작소_##]남한산초등학교의 변신 이야기


2000년 남한산초등학교가 폐교 위기에 몰렸을 때부터 학교를 지켜온 안순억 선생이 먼저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당시 전교생이 20여 명 밖에 안 돼 폐교가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아이를 입학시키려는 지역주민들을 시내의 다른 학교로 보내야했죠. 00년에 발령받아 부임한 정연탁 교장이 이 같은 현실을 많이 안타까워했습니다. 과밀학교, 거대학교에 문제의식이 있던 지역의 학부모들과 함께 고민을 시작했죠. 학부모들이 학교를 살리기 위해 자발적으로 집단전입을 결의했습니다.”

교사와 학부모들은 공교육의 틀 안에서 새로운 시도를 꿈꾸기 시작했다. 교사와 아이들의 교감, 경쟁을 통한 줄 세우기 교육 탈피, 자연친화적 생태교육 등에 주목했다. ‘전입학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성남지역을 돌아다니며 남한산초등학교 알리기에 온 힘을 쏟았다.

“제가 곤지암에서 근무하면서 전교조 참교육실천위원회(참실위) 위원장을 맡고 있을 때 남한산초등학교 학부모들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새로운 학교를 만들어보고 싶다더군요. 당시 저는 관료주의에 발목 잡힌 교사 문화에 지쳐 외국 유학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남한산초등학교 이야기를 들으며 ‘이런 학부모들과 학교를 만들어본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에 가슴이 떨렸습니다.”

안 선생은 뜻을 같이할 동료를 찾기 시작했다. 참실위 위원장으로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마음이 맞는 교사들을 만날 수 있었고, 이들과 함께 ‘드림팀’을 꾸렸다.

“모두 교육과 학교에 대한 갈증이 심한 교사들이었습니다. 쉽게 마음을 뭉쳤죠. 우리가 꿈꾸는 학교의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교육공동체는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가, 제도교육의 한계는 무엇인가, 어린이들의 자율은 무엇인가’ 등의 문제를 고민했습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이고, 대안학교에서조차 엄두를 내지 못하는 아이디어들이 터져 나왔습니다.”

00년 12월, 90명 이상의 학부모가 지역에 전입했다. 이듬해 3월 남한산초등학교의 전교생은 103명이 되었다. ‘참 삶을 가꾸는 작고 아름다운 학교’라는 비전도 정했다. 학교 안에 모두가 모일 수 있는 따뜻한 대화마당을 만들고, 체험과 토론 중심으로 교과과정을 짰다. 01년 새 학기 개학 날, 등교하는 아이들에게 교장 선생님과 교사들은 빨간 장미꽃을 달아주었다.

“학급당 인원을 15명으로 생각했는데 아이들이 계속 늘어 창고를 교실로 썼습니다. 4월 초가 되자 학생 수가 120명으로 늘어 학급당 20명이 되어버렸죠. 전 가족이 지역으로 이사 와 살지 않으면 아이를 입학시키지 않겠다고 공포하고 학교 문을 닫아버렸습니다.”

자녀를 남한산초등학교에 입학시키려는 학부모들은 고육지책을 써야했다. 남한산초등학교는 국립공원 내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학교 부근에는 주택 건물이 없다. 학부모들은 무허가 반 지하방에 살림을 차리거나 음식점에 방 한 칸을 얻어 사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안 선생은 “학부모들이 죽기 살기로 찾아온다”고 표현했다.

“우리 학교가 좋아서라기보다는 그만큼 신뢰할 수 있는 교육기관이 없다는 의미겠죠. 적어도 남한산초등학교라면 아이의 참된 성장을 위해 믿고 맡길 수 있다는 신뢰가 있는 모양입니다.”

[##_1C|1155890243.jpg|width=”670″ height=”502″ alt=”?”|푸른 산이 키 작은 학교 건물을 감싸고 있다. ⓒ희망제작소_##]

숲 속 산책으로 시작하는 학생들의 일과


안 선생은 “우리 학교의 하루 일과를 보면 다른 학교와의 차이점을 잘 알 수 있다”고 했다. 학생들의 첫 일과는 숲 산책이다. 아이들은 꽃을 만지고 나무를 만난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 아이들은 ‘자유 이야기 시간’을 갖는다. 교사와 함께 차를 마시며 하루 일과를 준비한다.

“수업 시간은 80분입니다. 놀이(휴식)시간은 30분이고, 여름철에는 40분으로 늘어납니다. 일반 학교의 경우 40분 동안 수업하고 10분을 쉽니다. 이 같은 시간표는 근대적 생산시스템이지 교육시스템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40분 수업에서는 제대로 된 토론이나 활동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또 아이들이 10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쉬어야 하기 때문에 화장실 가기에 바쁘고 폭력적으로 놀게 되죠. 아이들이 80분 동안 집중을 못 한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수업시간에 아이들이 움직인다고 가정합니다. 또 쉬는 시간을 길게 주면 아이들이 노는 것을 설계합니다. 숲에 가서 축구를 하고, 수다를 떨고,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습니다. 스스로 결정하고 실천할 수 있죠.”

남한산초등학교에는 없는 것이 많다. 시험도, 주번도, 통제도, 교장선생님 훈시도 없다. 안 선생은 “관료적인 것은 모두 없앴다”고 했다. 토요일에는 교과서 없이 수업을 한다. 여름에는 ‘여름생활학교’를 열어 목공, 퀼트, 바느질, 요리, 집짓기, 흙 굽기 등을 가르친다. 가을에는 ‘가을예술학교’에서 재즈, 마임, 연극, 힙합, 전통 춤 등 10여 개에 달하는 프로그램을 스스로 선택해 배울 수 있다. 아이들은 극본을 쓰고, 발성 연습을 하고, 무대 장치를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작품을 성남 시내의 공연장에 가서 정식으로 무대에 올리는 것도 아이들의 몫이다.

“여름계절학교, 가을예술학교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많은 자원 활동 인력이 필요합니다. 우리 학교는 학부모들의 참여가 최고 수준입니다. 학교에서 열리는 행사라면 무엇이든 참여하죠. 힘쓰는 일은 아버지들이 모두 해주시고, 영어 잘하는 학부모는 영어를 가르칩니다. 방과 후 학교의 교사 수요는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충당할 수 있죠.”

남한산 초등학교의 학부모들은 매달‘마을학부모모임’을 열어 학교 지원방안을 논의하고, 독서토론을 벌인다. 학교를 둘러싼 실핏줄 같은 연결망이 촘촘하게 짜여 있어 좋은 교육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한다.



개혁학교 네트워크를 꿈꾸다


“공교육 안에서 대안이 나와야 합니다. 대안학교는 소수의 사람들만이 선택하는 게 현실이죠. 논산의 대건고등학교는 사립학교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학교개혁연구소’라고 모임을 갖고 체험 학습 위주의 교과 과정을 펼치고 있죠.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가 뛰어나 학부모와 학생들의 만족도가 대단히 높죠. 현실적으로 입시제도가 커다란 장벽이지만 학교주변의 문화, 소통 방식, 교육 프로그램만 바꾸어도 지금의 한계를 충분히 극복할 수 있습니다.”

남한산초등학교 졸업생의 절반 가량은 일반 중, 고등학교로 진학한다.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홈스쿨링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다. 교육의 본질을 고민해온 부모들은 더 이상 아이의 졸업장에 집착하지 않게 된다.

안 선생은 “새로운 생각을 가진 교사들과 함께 개혁학교 네트워크를 만들어볼 생각”이라고 했다. 이미 10개의 학교가 모여 ‘작은학교 교육연대’라는 모임을 열고 있다. 방학 때면 공동 워크숍을 열고, 새로운 교육을 고민하는 교사들이 생각을 나눈다.

“우리 학교의 이야기가 널리 퍼지면서 기존 교육에 갈증을 느끼던 교사와 학부모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거산 초등학교도 그렇게 시작됐죠. 교육의 수월성, 경쟁, 효율의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도 많지만, 공동체와 생태 교육 등이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런 수요를 받아들일 수 있는 공간이 너무 작아 안타깝죠.”


진짜 ’자율학교’가 필요하다


안 선생은 “학교의 밑그림을 그리고 구체화 하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교사의 역할” 이라고 강조했다.

“이전에 근무했던 학교에서는 교사들이 주인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교장 선생님과 마음이 안 맞아도 그냥 교실에서나 잘하자는 생각뿐이었죠. 남한산초등학교에서는 교사들이 밑그림을 그리고 학부모와 소통하며 꿈을 그려나갈 수 있었어요. 교사들이 새로운 학교를 만들고, 신명나게 일하고 싶어 하지만, 꿈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이 없습니다. 자율성이 보장된 상태에서 교사가 프로그램을 만들고 지역과 학부모, 아이들, 국민에게 인정받는 틀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그는 “공교육을 학교 단위로 바꿀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특목고보다 중요한 것은 ‘자율학교’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공교육을 바꾸고 싶어 하는 사람은 정말 많습니다. 그럼에도 바꾸지 못하는 이유는 교과단위, 교실단위가 아니라 우리처럼 학교단위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현실에 맞춰 미국의 차터스쿨과 같은 자율학교가 나와야 합니다. 공교육 안에서도 뜻이 맞는 교사와 교장이 모여 학교를 만들 수 있어야죠.”

자율학교가 제대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학교와 교육청의 관계도 바뀌어야 한다. 안 선생은 “교육청의 관리, 감독을 받는 것이 아니라 교육청과 협약을 맺는‘협약학교’가 늘어나야 한다”고 했다.

“현 제도에서의 자율학교는 형식적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학교가 프로그램을 자유롭게 짤 수 있어야죠. 교육청이 아니라 학부모나 지역으로부터 평가와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교장공모제도 확산해야 합니다. 교장 선생님이 교육청의 발령을 받아서 오는 것이 아니라 교사, 학부모와 지역사회가 불러서 오는 겁니다. 교장 선생님이 교육청보다 지역사회를 더 존중할 수밖에 없죠. 교육청이 서류를 보고 평가한다면, 부모와 아이들은 교육적 성과로 평가할 겁니다. 관료적 통제 라인에 속해 있는 교장과 교사를 지역사회로 되돌려 주는 일입니다.”

[##_1L|1187908801.jpg|width=”400″ height=”533″ alt=”?”|아이들에게는 산과 학교의 경계가 없다. ⓒ희망제작소_##]모든 권위를 포기한 교장선생님


남한산초등학교는 작년부터 교장 공모제를 시행했다. 최웅집 교장은 공모제를 통해 취임한 첫 번째 교장이다. 남한산초등학교에서 교감으로 근무하다 다른 학교로 옮겨 간 그를 교사와 학부모가 다시 지역으로 불러들인 것이다. 교사충원제도 안착 되어 있다. 공모제를 통해 선발된 교장이 정해진 비율 아래서 함께 일할 교사를 불러오는 제도다.

최 교장은 인터뷰 내내 묵묵히 안순억 선생의 말을 듣고 있었다. 교사에게 ‘마이크’를 뺏긴 채 조용히 차를 따라주는 교장의 모습이 경이로웠다. 그에게 첫 공모 교장으로서의 소감을 물었다.

“ 이곳으로 다시 온다고 하자 모두 발목을 잡고 말렸습니다. 기존 학교에서 누리는 교장의 권위를 다 뺏기는데 왜 가느냐고 했죠. 쉬운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이곳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결정할 수 있었죠. 남한산 초등학교의 주체는 내부 공동체입니다. 또 공동체를 움직이는 중심은 교사죠. 그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교장의 역할은 한발 떨어져 이들을 지원해 주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학교 운영위원회가 교장의 방침만 좇는 기존 학교와 달리, 남한산초등학교의 운영은 철저히 각 교육 주체가 맡는다. 학생 문제는 아이들 스스로 모임에서 결정하고, 학교의 실무는 교사회의에서 결정한다. 학부모는 학부모회의에서 의사 결정을 내린다.

“여기 사는 사람들은 모두 교육 생각만 합니다. 회식 자리에 가도 교육, 놀러 가도 교육 얘기에요(웃음). 교사로서 그 깊은 고민이 부러웠습니다. 저 역시 평교사 시절 동료교사와 이웃들을 만나지 못해 자괴감이 컸습니다. 우리 학교의 교사와 학부모들을 지원하는 일이 행복합니다. 교장 중심으로 가는 학교의 한계는 분명하죠. 사회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공동체와 아이들로부터 멀어지게 마련입니다.”

정리_이현구

Comments

“박원순의 희망탐사69 남한산초등학교, 교사와 학부모의 참교육 공동체”에 대한 2개의 응답

  1. 남한산은 국립공원이 아닙니다.

  2. 후회 아바타
    후회

    진작 이런 학굘를 알았다면 우리 아이도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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