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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시에는 대학도, 기업도 없다. 객관적 경제지표로 보면 가장 낙후되어 있는 지역이다. 반면, 시 면적의 90%가 그린벨트 지역으로 개발이 제한된 만큼 환경이 잘 보존되어 있다. 주변이 모두 농촌이고, 크기가 작아 도시 전체를 걸어 다닐 수도 있다. 나이 많은 분들이 살기 좋고, 어린 아이를 가진 부모들이 아토피를 피해 오는 경우도 있다. 수도권에서 이처럼 환경이 잘 보존된 곳이 없다. 씨족 집성촌 마을도 그대로 남아있다.”

김근래 범대위 공동대표가 말하는 생태 도시 하남의 모습이다. 이토록 아름답고 생태적인 도시에서 아주 비생태적인 싸움이 벌어졌다. 광역화장장 유치를 둘러싸고 시장과 시민들은 극한의 대립을 겪었고, 이는 국내 최초의 주민소환 운동으로까지 이어졌다. 그 현장의 중심에 섰던 김 대표로부터 그 간의 사연을 전해 들었다.

“절반의 승리 아닌 절반의 패배”

2007년 12월 하남시에서는 전국 최초로 현직 시장에 대한 주민소환 투표가 이루어졌다.
주민소환 투표를 청구한 주민들은 가슴을 졸이며 개표 과정을 지켜봤지만, 결과는 허무했다. 투표율 31.1%. 투표율 미달로 김황식 하남 시장에 대한 주민소환은 실패했다.

“시장은 소환되지 않았지만, 시의원 두 사람은 소환(의원직 상실)되었죠. 물론 절반의 승리보다는 절반의 패배라는 말이 더 피부로 와 닿습니다. 가장 중점을 두었던 부분이 시장 소환이었기 때문에 아쉬움이 큽니다. 원래 우리의 목적은 광역화장장 반대였지만, 주민 소환을 통해 단체장과 시의원의 오만함을 심판하겠다고 마음먹었던 거죠.”



”?”원래 하남시 시의회 구성원은 한나라당 4명, 민주노동당 2명, 민주당 1명이었다. 현재는 한나라당 소속 의원 2명이 소환됨으로써 ‘2 대 2 대 1’의 구성이 됐다. 주민들이 소환 운동을 통해 한 정당 소속 의원들의 전횡을 막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놓은 셈이다.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기대가 컸던 만큼 김 대표의 아쉬움은 큰 듯했다. 무엇보다 주민들의 호의적인 여론은 시장 소환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했다.

“하남지역 25개 아파트 단지가 모두 범대위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각 단지별로 부녀회, 주민회, 대책위 등이 꾸려져 있었죠. 하남 지역 시민사회단체들도 대부분 뜻을 같이했습니다. 자문, 고문 등의 역할을 맡은 개별 인사들도 많았고요. 주민의 70% 이상이 압도적으로 우리를 지지하고 있었습니다.”

광역화장장 건립을 둘러싼 논란은 2006년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해 7월 취임한 김황식 하남 시장은 취임 한 달 뒤 경기도에 광역화장장 유치를 건의했다. 주민들에게는 어떠한 사실도 알리지 않은 상태였다. 10월이 돼서야 김 시장은 주민들에게 유치 계획을 발표했고, 때맞춰 시의회는 4억 원에 이르는 유치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주민들의 분노는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조선일보 등은 혐오시설을 유치해 지역발전을 이루겠다는 단체장을 극찬하기 시작했죠. 김황식 시장은 호기를 부리며 너무나 자신만만했습니다. ‘맞아 죽더라도 유치하겠다, 반대 측에서 삭발하면 나도 삭발하겠다, 시장직을 걸고 유치하겠다’는 말들을 쏟아냈죠. 이후 시장은 각 동별로 설명회를 열어 주민들을 설득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10월 23일 열린 첫 설명회부터 충돌은 시작됐다. 주민들은 설명회 장소인 동사무소로 들어가는 시장을 온몸으로 저지했고, 이 과정에서 일부 주민이 경찰에 연행됐다. 김 시장은 “단 한 명이 있더라도 설명회를 하겠다”며 강행의사를 내비쳤고, 결국 15시간에 걸쳐 주민들과 대치해야 했다. 그 다음 설명회에서도 같은 상황이 반복됐고, 나머지 설명회 일정은 모두 취소되기에 이른다. 개별적으로 저항에 나섰던 시민들은 이후 대책위원회를 꾸려 조직적인 행동에 나서기 시작했다.


걱정스러울 만큼 격렬했던 주민들의 저항


김 대표는“운동과정에서 감정이 격해진 시민들을 진정시키는 일이 가장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그만큼 시민들의 분노는 컸고, 저항은 격렬했다.

“집회, 시위 등의 활동을 최대한 합법적으로 진행한다는 기조를 유지했습니다. 초반부터 운동이 너무 과격해지거나 공권력이 투입되어 주민들이 피해를 보면 안 된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주민들의 저항은 격렬했습니다. 시장이 보이기만 하면 공지 방송을 해서 수없이 많은 주민이 모여들었죠. 수백 명의 주민들이 몇 시간씩 시장을 감금하기도 했습니다. 분노한 주민들을 진정시켜 집으로 돌려보내기가 무척 힘들었습니다.”

주민들의 동의 없이 멋대로 예산안을 통과시킨 시의회에도 비판이 쏟아졌다. 시의회를 방문해 항의하는 과정에서 흥분한 주민들이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다.

“당시 시장과 같은 당(한나라당) 소속 의원들이 다수였기 때문에 시의회에 수백 명의 주민이 운집했습니다. 예산안 통과에 반대하는 시의원 3명이 단상을 점거해 예산 통과를 막기 위해 한나라당 의원들과 몸싸움을 벌었죠. 4시간 반 동안 대치가 이어졌고, 방청석에 입장하지 못한 주민들이 시의회 복도를 가득 메웠습니다. 의원들의 몸싸움을 지켜 본 주민들이 흥분해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달려들었고, 경찰이 투입되어 몇몇 주민이 연행되었습니다. 저 역시 주민대표로서 구속됐죠.”

사실 김근래 대표는 대학생 시절에도 학생 운동으로 구속된 경험이 있고, 당시 내가 그의 변호를 맡았었다. 그런데 20여 년이 지난 뒤, 김 대표는 지역 주민들과 함께 싸움을 벌이다 또 다시 구속된 것이다. 그가 “성동교도소에 가보니 너무 새삼스럽더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두 번의 주민소환을 추진하다


시장과의 지루한 싸움을 이어오던 주민들에게 이목을 끄는 소식이 전해졌다. 2007년 5월부터 주민소환법이 발효된다는 사실이었다. 이후 주민들의 운동은 단순한 광역화장장 유치 반대가 아닌 시장에 대한 주민소환을 목표로 삼게 된다.

“운동 과정에서 겪어보니 시장을 완전히 잘못 뽑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소양과 자질이 부족하죠. 자기 뜻에 반대하는 사람은 무조건 부정하고, 대화를 통해 의견을 모을 줄 모릅니다. 심지어 시민단체와 함께 언론사 인터뷰를 하는 것조차 거부할 정도입니다. ‘내가 시민들의 대표기관인 시의회에서 설명하면 되지 왜 임의단체들과 함께 서느냐’고 하더군요. 반대하는 주민들이 아마존 원주민 같다는 모욕적인 발언도 했죠. 화장장이 문제가 아니라 시장 자격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겁니다.”

범대위는 기존의 활동을 정리하고 법적 단체인 ‘주민소환 준비위원회(이하 준비위)’를 만들어 주민소환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하남시의 유권자 수는 모두 10만 명이었고, 시장에 대한 주민소환을 청구하기 위해서는 유권자의 15%, 기초의원에 대해서는 20%의 서명이 필요했다. 준비위는 12일 만에 소환 청구에 필요한 서명을 모두 받아냈고, 선관위는 9월 20일을 주민소환 투표일로 공지했다.

“투표일이 정해진 뒤 2주 정도 선거운동을 했는데, 9월 13일 선관위가 갑작스레 투표 무효판결을 내렸습니다. 서명부에 주민투표 청구사유가 명시되어야 하는데, 그것이 없다는 겁니다. 사실 우리가 사용했던 서명부는 선관위가 만들어준 것이었는데, 김 시장이 느닷없이 그 문제를 발견해 소송을 제기한 것이 인정된 거죠. 선거운동이 중단되고 난리가 났습니다.”

준비위는 다시 한번 주민소환을 추진하기로 했다. 9월 말부터 다시 절차를 밟기 시작해 10일 만에 2만 7천 명의 서명을 받아냈다. 12월 10일, 다시 한번 주민 소환 투표 날짜가 잡혔다.

“이때 아주 힘들었습니다. 첫 번째 투표가 중단된 뒤라 선관위에서 엄격하게 절차를 진행하다 보니 투표일이 많이 늦어졌죠. 대통령 선거가 12월 19일이어서 언론의 관심을 받지 못했고, 추운 날씨 탓에 홍보도 힘들었습니다. 법적 홍보물 외에는 임의로 홍보물을 만들 수 없었고, 현수막도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주민들과의 접촉점이 별로 없었죠.”

주민소환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유권자 3분의 1의 참여와 과반수의 찬성표가 필요했다. 그러나 최종 투표율은 31.1%에 그쳤고, 김 시장의 소환은 실패로 돌아갔다. 시의원 두 명에 대해서는 38%의 투표율로 소환에 성공할 수 있었다.


공개투표가 되고만 주민투표


김 대표는 소환 추진 과정에서 겪은 어려움을 하나 둘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는 “서명부가 유출돼 주민들이 많은 불이익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시장이 서명부를 입수해 일일이 서명자를 확인했습니다. 사실상 공개투표가 된 셈이죠. 공무원을 비롯한 공직자들은 투표를 할 수 없었습니다. 또 하남시의 90% 이상이 그린벨트로 묶여 있는데, 축사 등의 시설을 운영하면 이행 강제금을 부과할 수 있습니다. 서명한 주민에 대해 천여 건의 이행 강제금 부과 사례가 있었습니다. ‘시장 손에 서명부가 들어가 이런저런 압박을 받는다’는 주민의 항의도 받았죠. 지역 토박이 출신인 시의원들이 서명부에 표기된 전화번호로 일일이 전화를 걸어 항의했다고 합니다.”
”?”투표 당일에도 시에서 고용한 사람들이 캠코더를 들고 아파트 단지 입구에 도열해 있었다. 이들은 투표하는 주민들의 모습을 분주히 영상으로 담아 갔다. 김 대표는 “주민들이 위축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라고 말했다.


“유권자 3분의 1 참여 조항은 삭제돼야”


김 대표는 “유권자 수 3분의 1의 참여가 있어야 한다는 법 조항이 있는 한 주민소환은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했다.

“공무원이나 관변 단체 사람 등 시장의 영향력 아래 있는 사람들은 투표를 못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투표율에 상관없이 찬성표가 많으면 가결돼야 합니다. 시장이 투표 거부 운동을 못하게 하는 거죠. 일본의 경우 주민 3분의 1 이상의 서명을 받으면, 투표율에 관계없이 주민 소환을 추진할 수 있습니다. 서명자가 많으면 단체장이 사임해 버리곤 하죠. 미국에서는 주민소환 투표와 함께 차기 시장 선출 투표를 동시에 하는 사례가 많고요.”

그는 비용문제도 거론했다. 현행법상 주민소환 추진에 필요한 비용은 모금을 할 수 없도록 되어있다. 소환을 추진하는 법적 단체의 대표가 모든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사무실 임대비용, 차량비용, 플래카드 비용 등이 만만치 않습니다. 모금도 못하고, 선관위가 보전을 해 주지도 않습니다. 첫 번째 투표에서만 1억 원의 비용이 들었습니다. 선관위의 실수로 투표가 중단되었기 때문에 이때 들어간 비용을 국가가 부담하도록 소송을 제기한 상태입니다.”


주민소환을 제약하는 요소들


주민소환의 대상이 관권을 움켜쥐고 있는 시장이라는 점도 주민들을 힘들게 했다. 김 대표는 “시장이 곧 제왕”이라고 표현했다.

“화장장 반대 현수막을 내걸었다고 과태료 1억 3천만 원을 부과하더군요. 길거리에는 걸지도 못했습니다. 공무원들이 다 뜯어가 버립니다. 아파트 높은 곳에 걸어놓으면 공무원 100명이 몰려와 크레인을 이용해 철거했습니다. 이에 대해 항의하면 사진을 찍은 다음 불법행위를 했다며 고발해버립니다. 싸움이 벌어지면 결국은 주민들이 집니다. 상대는 관권이 있기 때문이죠.”

그는 한나라당의 주민투표법 개정 시도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냈다. 이미 주민소환을 제약하는 여러 현실적 요소들이 있는 상황임에도 청구사유를 제한하려 들기 때문이다.

“주민소환 청구사유를 비리, 부정부패 등으로 한정하는 것이 주 내용입니다. 게다가 단체장 등 공직자의 부패 혐의가 확인돼도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소환을 못 하게 되죠. 전국 자치단체장의 대부분이 한나라당 소속이기 때문에 이런 개악을 추진하는 겁니다.”

이미 전국 여덟 곳에서 주민소환 추진 사례가 있지만, 단 한 곳도 성공하지 못했다고 한다. 60일 안에 유권자 15%의 서명을 받아야 하는데, 이를 해내지 못한 것이다. 김 대표는 “실제로 서명을 받아보면 정해진 수를 넘기기 힘들다”며 “모든 아파트 단지에 범대위 조직이 있던 하남시는 특수한 상황”이라고 했다. 아파트 구내방송, 엘리베이터 홍보물 부착, 세대별 우편물 투입 등을 할 수 있었기에 주민소환에 대한 홍보가 가능했다는 설명이다. 그는 “거리에서의 활동으로는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못 박았다.


주민소환은 민주주의의 문제


그에게 시장에 대한 주민소환이 성공했을 경우 어떠한 계획이 있었는지 물었다. 현직 단체장이 물러난 뒤의 공백은 분명 적지 않은 혼란을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주민소환 뒤 바로 선거에 들어가게 됩니다. 당시만 해도 주민소환의 성공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누가 차기 시장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논란이 있었습니다. 주민 소환운동을 열심히 한 사람이 후보로 나서는 것은 회의적입니다. 결국 자기가 시장이 되기 위해 반대 운동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6월에 있을 시의원 선거의 경우는 다르죠. 한나라당 소속 출마자가 그대로 당선되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주민 대표를 후보로 내세우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주민소환 운동을 추진한 주민들이 지역 이기주의 행태라는 비판을 받았던 것도 사실이다.
김 대표는 “운동 초기 님비 의식이 동력이 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그것이 운동의 전부는 아니라고 했다.

“이처럼 긴 기간 동안의 싸움은 지역 이기주의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기본적인 민주주의의 문제입니다. 광역화장장 유치는 주민들과의 논의와 합의를 거쳐 추진돼야 하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았습니다. 주민들의 문제제기는 당연하죠. 시장의 일방적인 독주에 대한 반감이 컸던 겁니다. 지금도 주민들은 시장이 TV에 나오면 채널을 돌려버립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도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편집자 주/ 3월21일 본 인터뷰를 진행한 이후 광역화장장 건립을 둘러싼 하남시장과 주민들 간의 대립은 일단락된 상태입니다. 4월4일 경기도는 광역 화장장 건립 포기 입장을 밝혔고, 28일 하남시 역시 이에 대해 합의했습니다. 한편, 광역화장장 유치 반대 범시민대책위원회(이하 범대위)는 광역화장장 유치 추진 과정에서 시가 부당하게 행정력과 예산을 낭비했다며 5월 9일 경기도에 주민감사를 청구했습니다.

정리_이현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