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2009년 1월, <월간참여사회>에서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의 인터뷰를 실었습니다. 이 글의 태그는 “2008, 가게, 농촌, 다양성, 도전, 리더십, 민주주의, 박원순, 상상력, 새해, 서울, 실용, 원순씨, 이명박, 이제훈, 재단, 절망, 참여사회, 촛불집회, 희망”입니다. 2009년 벽두에 박원순 상임이사를 인터뷰한 이유를 짐작케 하는 태그입니다. [밖에서 본 박원순 그리고 희망제작소], 그 두 번째 이야기는 <월간참여사회> 1월호 인터뷰 “지역과 농촌에서 땀방울로 희망을 빚어내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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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는 저작권 협의 후 게재하였습니다
참여연대「월간참여사회」”이제훈이 만난 사람_박원순 변호사” 원문 보기

‘원순 씨’를 만나러 간 때는 2008년 12월 22일 밤 9시 30분께. 서울 종로구 수송동 동일빌딩 4층, 자신의 방에 들어선 ‘원순 씨’의 일성. “짧게 하죠.” 인터뷰 끝나고도 일정이 더 있단다. 글을 하나 쓰고 나서야 퇴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원순 씨’는 쉼 없이 변화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도 달라지지 않는 게 있다. 늘 바쁘다. ‘하루에 약속이 몇 개나 있냐’는 질문에 돌아오는 답. “보통 시간 단위로 있으니까, 아마 10개 정도는 될 거 같은데….” 스스로도 궁금했는지, 늘 끼고 사는 프랭클린 플래너를 펼쳐보고는 멋쩍게 웃는다. 잠은 자정 넘어 새벽 1시에서 2시 사이에 잔단다.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 7시 30분쯤에 어김없이 ‘조찬모임’이 있다. 수면 시간이 5시간 어금지금할 거 같다. “다섯 시간 이상 자면 아무 문제없고, 그보다 덜 자면 좀 힘들다”고 했다. 늘 잠이 부족한 ‘원순 씨’(희망제작소 사람들이 박원순 상임이사한테 붙여준 애칭)는 자면서 꿈을 꾸지 않는다. 바쁜 일상의 선물, 숙면이다. 악명도 높다. “회의하다 절반은 듣고 절반은 자요. 어떨 땐 앞에 앉은 사람과 얘기하며 잠깐 잠깐 졸기도 해요.”

1956년생이니 이제 50대 중반이다. 바쁜 일상에 몸이 부대끼지 않으면 오히려 비정상. “요즘 몸에 너무 자만했던 게 아닌가 해서 태극권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물었다. ‘몸이 피곤하거나 마음이 지칠 때 뭐 하시냐?’고. 돌아오는 답변이라니….
“기본적으로 그런 일이 없어요. 일이 취미가 되면, 즐거움이 되면 피곤함을 모르죠. 너무나 신나는데 왜 피곤해요? 전 스트레스를 해소하려고 일해요. 오히려 어디 조용한 데 가 있으면 스트레스를 받아요. 인생이란 게 즐겁게 사는 건데, 일을 즐거움으로 선택했다면, 그 자체가 취미이자 여가죠.” 할 말이 없다.

<참여사회> 2009년 1월호엔 어떤 분을 모실까 고민했다. 너무도 힘겹고 길었던 2008년, 이명박 정부 임기 첫 해. 다사다난 그 자체였다. 2008년을 뒤로 하고 새로운 2009년엔 어떤 희망을 키워갈 수 있을까? 한국사회와 시민운동의 큰 일꾼이자, 비판정신으로 벼려진 긍정의 힘으로 늘 새로운 운동 영역을 개척해가는 혁신가인 ‘원순 씨’, 그러니까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를 찾아간 까닭이다.

긍정적 창의적 사고로 위기를 기회로

1월호입니다. 2009년엔 희망을 어떻게 키워갈지 덕담 한 마디 해주시죠.

▲ “여러 측면에서 밝은 전망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경제위기에 취약계층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시민사회 처지에서도 굉장히 어두운 한해를 지냈죠. 하지만 전 늘 낙관을 가지고 있어요. 위기라는 것은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선 오히려 기회인 경우가 많아요. 어려움, 좌절, 어두움이 사실은 더 밝은 미래, 희망, 새로운 실험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요.

”?”
이명박 정부가 시민사회에 절대로 호의적이지 않은데, 오히려 시민사회가 새로운 자생력과 비전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해요. 저는 요즘 경제에 관심이 많은데, 대기업 중심 체제에서 소기업, 사회적 기업, 향토적 소기업 중심으로 전환하는 데 관심이 많아요. 희망제작소에서 소기업발전소, 커뮤니티비즈니스연구소 등을 만든 이유죠. 한국 사회에 우수한 청년 실업군, 굉장히 좋은 경험과 경륜을 지닌 시니어층이 많아요. 이들을 시민사회에 터 잡게 하고 사회적 기업가로 양성해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해요. 요즘 50대면 은퇴하고 거의 놀잖아요. 이 엄청난 자원이 시장에서 퇴출됐다면 시민사회나 비영리단체에서 제대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봐요.(희망제작소는 은퇴한 전문직 시니어들의 이모작 인생 설계를 도와주는 ‘행복설계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남이 보기에 어렵고 좌절스런 시대라도 좀 더 긍정적이고 창의적인 눈으로 보면 많은 변화와 발전을 이룰 또 다른 시대를 맞고 있다고 할 수도 있죠. 희망제작소라고 이름 붙였으니 뭔가 희망을 만들어가야죠. 우리가 원하는 만큼은 아니어도.(그는 언젠가 ‘희망’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희망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땅에서 솟는 것도 아니다. 우리 스스로의 땀방울에 의해 창조되는 법이다.)”

현장에 가면 희망이 보인다

희망과 절망의 측면에서 2008년 한해를 되돌아본다면?

▲ “사물의 본질과 진실을 이해하는 데 양면의 방법이 있다고 생각해요. 부정적 비판적 입장에서 바라보고 답을 만들어내는 방법이 하나이고, 포지티브 측면을 찾아내고 그것을 근거로 더 큰 희망을 만들어가는 것이 다른 하나이죠. 참여연대는 비판적 시야에서 방법을 찾아간다면, 희망제작소는 포지티브한 측면에서 길을 찾는 거죠. 서로 다르지만 둘 모두 현장적 접근을 한다는 점에선 공통점이 있어요.

제가 2006년부터 한 달에 한주 정도는 지역과 농촌을 돌아다녔어요. 새로운 실험을 하고 있는 마을과 단체, 공공기관 등을 돌아다니며 너무도 많은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어요. 객관적으로는 절망이 깊지만, 그 속에서 좋은 비전과 희망을 키워가는 사람들을 만난 거죠. 우리 농촌은 사실 절망적이죠. 노령화했고, FTA(자유무역협정) 이전에 이미 많이 망가졌죠. 하지만 전 농업이야말로 블루오션이라고 생각해요. 청년과 시니어들이 가면 많은 것을 변화시킬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요즘 그분들한테 빨리 농촌으로 가서 선점하라고 권유하고 있어요. 농업이라는 게 쌀과 보리를 경작하는 1차 산업중심이 아니에요. 농촌엔 다양한 비즈니스 기회가 있어요. 그린 투어리즘도 있잖아요. 문화와 예술, 환경, 관광, 역사 등을 잘 연결하면 수많은 기회를 만들 수 있어요.
전 지역과 농촌을 돌아다니며, 무엇이든 현장에서 보면 문제의 본질도 보이고 답도 보인다고 생각했어요. “

협력과 통합의 리더십 보여주기를

그래도 이명박 정부 한해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는데, 질문의 초점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이명박 대통령은 선거운동 과정과 집권 초기 ‘실용’을 강조했는데, 한해를 돌아보면 결과적으로 ‘실용’보다는 ‘이념’ 과잉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둘째, 지난 10년을 거치며 한국사회의 민주주의가 질적으로는 모자란 점이 많지만, 제도와 형식면에선 최소한의 꼴을 갖췄다고, 그래서 한국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일은 좀체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일제고사를 보지 않고 체험학습을 해도 된다고 한 교사들이 파면?해임되는 등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너무도 많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다수의 예상을 깬 이명박 정부의 지난 한해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 “촛불집회의 영향이 아닌가 생각해요. 정부 입장에서는 단호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오히려 정국의 혼란이라든지 집권의 기초가 흔들린다는 생각을 한 게 아닌가 싶어요. 정부의 여러 주도세력의 생각이 과거지향적인 거 같고요. 예를 들어 대운하 사업을 보면 과거 토건국가적인 것과 다른 게 없어요. 그뿐 아니라 정부 운영과정이나 경제발전논리, 정책실현 과정 등 전반적으로 과거지향적인 경향이 발견돼요.

선진적 국가에서 보편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건 정부가 민간의 활력을 활성화해 사회 전체의 힘을 키우고 정부 정책이 잘 전달될 수 있도록 하는 데 상당한 비중을 둔다는 점이에요. 정부가 모든 걸 할 수 없으니 민관협력이 중요하죠. 파트너십과 거버넌스가 현대 행정의 요체인데, 이명박 정부는 그걸 배제하고 관계를 모두 끊고 있어요.

이념도 중요하죠. 문제는 적대적 존재로서 갈등이 아니라 상호 생산적 경쟁으로서 이념이 돼야 한다는 점이에요. 그런데 우리 사회는 언젠가부터 좌우갈등이 감정적 대립과 소모적 논쟁으로 비화하고 있어요. 한 사회엔 통합적 요소도 필요하고, 차이를 둘러싼 건강한 토론과 경쟁도 있고 해야 하는데…. 결국 21세기엔 통합적 리더십이 중요해요. 차이도 필요하고 중요한데, 다만 그걸 어떻게 조정해서 합의를 이루고 차이를 좋은 발전의 동력으로 삼을 수 있냐가 문제죠. 현재의 상황은 그렇지 못해 아쉬움이 많아요.”

가난한 사람들이 더 많이 나눈다

아름다운재단이나 아름다운 가게를 보며 ‘부자들이 주머니를 열게 하는 데 한국에서 가장 뛰어난 능력의 소유자’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비결이 뭔가요?

▲ “사실은 가난한 사람들이 더 많이 나누고 있어요. 아름다운재단엔 4만 5,000명 정도의 개인 기부자들이 있는데, 특히 1만 원 등 소액 기부자가 많아요. 사실은 부자를 움직이려면 가난한 사람들을 먼저 움직여야 해요. 개미군단, 소액기부자가 중요해요. 그렇게 사회의 평판과 신뢰를 쌓아야 부자들이 움직여요. 좋은 부자들도 참 많아요. 많은 분들이 믿고 기부할 곳을 못 찾기도 하고, 어떻게 쓰는 게 가장 좋은지를 모르기도 해요. 투명하고 믿을만한 기관을 만드는 일과 함께, ‘이렇게 쓰는 게 정말 잘 쓰는 거다’를 보여주고 선례를 만들어가는 것도 굉장히 중요해요. “

민주 인간 합리적인 사회를 설계하는 디자이너

직업을 ‘소셜 디자이너’(social designer)라고 소개하시던데, 한국사회를 누구와 함께 어떻게 디자인하고 싶으신가요? (‘원순 씨’의 사무실 문에는 ‘social designer’라고 적혀 있다)
”?”▲ “2004년 석 달 정도 독일을 여행했을 때, 그리고 2005년 미국 스탠포드 대에서 한 학기 동안 강의를 하며 많은 생각을 했어요. 다니면서 늘 한 사회의 시스템을 어떻게 하면 좀 더 민주적이고 인간적이고 합리적인 사회로 만들어볼까 고민하고 아이디어를 내놓고 그랬는데, 그러면 결국 이게 사회를 디자인하는 직업 아니냐, 라고 생각한 거죠. ‘소셜 디자이너’라는 말을 사람들이 참 좋아해요.

전 특히 지역에 있는 단체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서울공화국이라는 말도 있듯이 서울엔 사람 돈 네트워크가 많지만, 지역의 시민사회 공익활동 하는 영역으로 가면 거의 독립운동하는 수준이에요. 이분들을 어떻게 체계적으로 도울까 고민하는데, 쉽지는 않아요.

전에 참여연대 사무처장 할 때에는 중앙 정부와 국회를 집중적으로 감시하고 비판했는데, 이 기능은 여전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저는 지금 참여연대에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럼 제 역할은 뭐냐는 거죠. 비어있고, 새로운, 그래서 한국사회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는 것을 찾아내 대안을 만들고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전 그런 영역이 지역공동체, 농업, 현장이라고 봐요. 전 민주주의란 무지개처럼 아름다운 색깔을 내는 다양성이라고 생각해요. 서로 역할을 나눠야 할 필요가 있지 않겠어요? “

한국사회엔 할 일이 너무 많다

참여연대, 아름다운재단, 희망제작소의 경험에 비춰보면, 한 곳에 오래 머물지 않고 자리를 옮겨 새 일을 만드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 “처음부터 그러려고 한 건 아니에요. 한 단체에서 5년 이상 일하면 새로운 세대가 성장하는데, 그분들이 자기 역할을 할 기회가 있어야 한다고 봤어요. 제가 없어도 잘 돌아갈 수 있는 시스템과 인프라가 작동하는데 구태여 남아서 월급을 축내거나 새로운 상상력과 도전을 막을 일은 아니다, 라고 생각했죠.

그리고 한 곳을 나와서 똑같은 일을 하면 좀 웃기지 않나요? 상법에 보면‘경업금지’라는 게 있어요. 영업을 양도하고 근처에서 똑같은 것을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에요. 윤리적으로 맞지 않다는 거지요. 그리고 한국사회엔 할 일이 너무 많지 않나요? “

”?”

[밖에서 본 박원순 그리고 희망제작소] 연재순서

1. 에코모션 대표 테드 플래니건이 본 희망제작소와 한국 (2008.12.16)
2. 지역과 농촌에서 땀방울로 희망을 빚어내자…월간 <참여사회> 2009년 1월호)
3. <연합초대석>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연합뉴스 (2009.1.6)
4. 시민연구소 파견 1호 공무원 이야기…박병윤 완주군 공무원
5. <시사IN> 신년강좌 ‘위기에서 길을 묻다’…시사IN (2009.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