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방곡곡 우리들의 고향에서 발견한 희망의 단서들

<박원순의 희망탐사 60>

2006년 4월 29일 나는 늦봄의 아지랑이 같은 따스함을 온 몸으로 느끼며 광주로 떠났다. 그날부터 2007년 12월까지 106일을 지역에서 보냈다. 그 사이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지나고 다시 한 번을 돌아 이 겨울 한복판에 섰다.

봄의 보리밭이 빈 들녘이 되고 푸르던 잎이 단풍으로 변하는 들과 강을 건너 마을과 도시를 오갔다. 광주, 전남, 부산, 경남, 대구, 경북, 울산, 대전, 충남, 청주, 충북, 강원도를 거쳐 인천까지 왔다.

106일도 모자라 아직도 가지 못한 곳이 많다. 경기도, 서울, 그리고 제주지역의 땅을 밟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동안 방방곡곡 530여 명의 지역의 많은 분들을 만나 인터뷰를 했다.

일일이 얼굴을 떠올리기도 힘든, 그 많은 사람들 속에는 농부나 시인 또는 명망 있는 지역인사도 있었고 이름을 채 기억할 수 없는 숱한 어르신도 있었다. 530여 명의 눈빛과 말에는 절망의 한숨소리도, 희망의 열정도, 시행착오의 어려움도,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어 안타까워하는 막막함도 있었다.
[##_1C|1060318935.jpg|width=”480″ height=”319″ alt=”?”|▲ 지난 11월 강원도 태백을 방문해 폐광산을 둘러보았다. ⓒ희망제작소_##] 과거 나는 여러 차례 외국을 장기간 여행할 수 있는 행운이 있었다. 우리보다는 선진적인 사회라 할 수 있는 미국, 일본, 독일을 2~3개월씩 여행하면서 많은 기관과 사람들, 좋은 사례와 모델들을 보고 배울 수 있었던 기회였다.

그 외에도 정부의 초청으로 호주와 뉴질랜드를 몇 주 다녀오기도 했고, 문화예술인들과 함께 하는 유럽기행에도 동참할 수 있었으며, 이런 저런 회의 참석차 세계의 여러 지역을 견문할 수 있었다.

그 기회를 통해 많은 배움과 감동을 받았으며 이러한 경험들은 내 생각과 행동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렇게 외국을 돌며, 한편으로 정작 내 나라에 대해서 나는 얼마나 알고 있는가, 혹시 외국의 선진사례라고 하지만 국내에는 이보다 더 좋은 사례들이 있지도 않을까 하는 죄책감이 들었다. 그러면서 언젠가는 한국의 방방곡곡을 발로 걸으면서 뿌리를 찾는 여행을 하리라는 생각을 오랫동안 품어왔다. 이번 여행은 그런 생각의 실천이었다.

지난 2006년 3월 희망제작소가 창립하면서 우리는 ‘진리는 현장에 있다’는 신념을 발표했다. 추상적인 이론보다는 현장에서부터 이 시대의 문제와 이를 해결하는 대안과 방법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이에 현장에서 일하고 살아가는 이들을 만나서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으로부터 유의미한 우리시대의 과제를 추출해 보자는 작업에 착수하였다.

‘더 많은 민주주의’라는 주제를 포함하여 13개의 주제로, 각 영역별 면담자를 선정하여 인터뷰하고 이를 정리해 ‘우리시대 희망찾기’ 시리즈로 엮어 책을 발간한 것이 그러한 생각에서 비롯됐다. 그 가운데 지역사회, 풀뿌리단체, 지방정부의 영역은 내가 자임했다.
[##_1R|1167804798.jpg|width=”326″ height=”435″ alt=”?”|▲ 경남 창녕에서는 폐교가 된 내 모교에서 오랜만에 옛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희망제작소_##] 이 시대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내 고향은 경남 창녕 장마라고 하는 아주 궁벽한 시골이다. 한 때 한 학년이 100명이 넘었던 초등학교는 폐교가 되었고, 젊은이들은 모두 도시로 떠나 이제는 아이들의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었고, 폐가도 하나둘 늘어 지금은 인적조차 드문 쓸쓸한 마을로 변해버렸다.

그 빈곳, 어느 들녘, 어느 산모퉁이는 이제 서울과 부산, 대구 사람들의 소유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나의 고향은 이렇게 붕괴되어 버렸다. 그러나 어딘들 다르지 않았다. 농촌은 농촌대로 피폐해졌고 도시는 도시대로 살벌해졌다.

우리의 지역사회는 지난 근대화의 결과로 이렇게 송두리째 뿌리 뽑혀져 버렸다. 서로 함께 돕고 함께 교류하고 함께 살아갈 공동체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농촌과 지역의 사람들은 언제 떠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살아가고 있고, 도시의 사람들은 서로 앞집에 사는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 우리 모두는 공동체와 정주성을 상실한 채 부평초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그곳에 희망이 있음을 믿는다. 무엇보다도 훌륭한 풀뿌리 활동가들과 좋은 사람들이 지역 안에서 희망의 씨앗을 품고 자신의 지역과 동네를 되살리고 사람이 살만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 땀방울을 흘리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깃발을 부여잡고 자신의 지역과 한계상황 속에서 농민과 상인, 문화인과 예술가들, 교육자들, 언론인과 시민운동가들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들로부터 뭔가 희망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내 믿음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 그 열정과 노력, 성취들을 좀 더 전국적인 차원으로 확산하고 제도화함으로써 한 지역의 작은 실험이 아니라 전국적인 성공의 파문을 일으키는 일이 미래의 우리 모두의 과제이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그들의 이런 생각과 노고, 시행착오와 경험, 그리고 성취를 일일이 기록함으로써 내가 배우는 것은 물론 동시대인과 공유하는 것이 나의 임무라고 생각했다. <프레시안>이 바로 지역의 희망메이커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광장을 마련해 주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었다.
[##_1L|1109168017.jpg|width=”375″ height=”283″ alt=”?”|▲ 지역을 돌면서 숱한 어려움들을 목도했지만, 그 뒤에는 항상 희망이 당당히 버티고 있었다. ⓒ희망제작소 _##] 이번에 전국을 다니면서 이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게 해 준 여러 지원자들에게 감사드린다. 전국의 곳곳에서 이 인터뷰를 주선해 준 코디네이터 활동가들, 막강한 네트워크로 그것을 지원해준 희망제작소의 김광식 전 부소장과 원고의 출고를 담당한 원기준 뿌리센터장, 내 일정을 체크하면서 그 긴 여정에서 현지와 서울 희망제작소간의 연락책임을 지고 동시에 현장에서의 현안들을 처리한 박은주 연구원, 함께 다니며 사진을 찍고 운전을 하는 고된 역할을 자임한 문종석 동대문푸른시민연대 대표, 석진규 연구원, 그리고 투박한 원고를 정리해 사실상 새로운 원고를 쓴 것이나 다름이 없는 이경희 연구원, 그리고 좋은 난을 마련해준 <프레시안>과 멋진 제목을 달아주고 깔끔한 편집으로 글을 돋보이게 해준 <프레시안>의 전홍기혜, 김하영 기자, 이러한 모든 것이 가능하도록 후원해준 (주)유한킴벌리, 그리고 일일이 귀찮은 인터뷰에 응해준 많은 지역 인사들께 감사드린다.

이 작업은 전적으로 이분들의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프레시안>에 모든 분들의 인터뷰를 실을 수는 없었지만 모든 기록들은 단행본이나 어떠한 형태로든 많은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모쪼록 이 작은 작업이 우리의 지역사회가 좀 더 희망차고 행복한 지역공동체로 더 발전해가는 길목에 작은 디딤돌이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_1C|1409548926.jpg|width=”445″ height=”297″ alt=”?”|▲ 나는 이번 여행에서 지역인들의 노고와 시행착오, 경험 그리고 성취를 일일이 기록함으로써 크게 배우고, 깨우칠 수 있었다. ⓒ희망제작소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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