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지 않는 학생’들의 대학
한국 젊은이, 영국 시니어를 만나다 (2)
희망제작소와 연세대는 협력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대학생 현장 탐방 프로젝트 uGET’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4명의 대학생으로 구성된 프로젝트팀이 2010년 여름 한 달간 영국 런던에 머물면서 영국 시니어들의 사회공헌활동 현장을 조사해 그 방문기를 연재할 계획입니다. 영국에서 전해질 재기발랄한 젊은이들과 지혜로운 시니어들 간의 조우에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희 팀이 런던에 도착한지도 일주일이 넘었네요. 일곱 낮과 밤이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간 느낌입니다. 그 동안 저희는 세 곳의 기관을 방문했습니다. 현지에서도 새로 기관들을 소개 받아, 앞으로 방문 기관들은 더 늘어날 예정입니다. 정신 없이 지내느라 인터뷰 정리가 좀 늦었습니다.
첫번째 방문 기관은, 시니어에 의한, 그리고 시니어를 위한 배움터인 The University of The Third Age(U3A) 입니다.
시험도, 학위도 없다
U3A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배움’을 목적으로 하는 곳입니다. 50대 이상의 시니어들이 회원의 대부분입니다. U3A는 일반적인 대학과는 다소 다릅니다. 이곳에는 시험도 없고 학위도 없으며, 다만 수업들만이 존재합니다. 순전히 배움 그 자체를 위한 조직이지요.
U3A에는 교수님도 없습니다. U3A수업들은 회원들이 서로의 지식을 나누는 형태로 이루어집니다. 회원들 중 각 부문의 전문가가 강사 역할(이곳에서는 Coordinator라는 명칭을 씁니다)을 맡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일방적인 강의 뿐 아니라 수업 내 참가자들의 참여가 수업의 큰 비중을 차지한답니다.
U3A는 전국적인 조직으로, 대도시 곳곳에 U3A가 존재합니다. 각 지역의 U3A는 프로그램과 재정 면에서 독립적으로 운영됩니다. 오늘 방문할 U3A in London은 런던 내에서 가장 오래된 U3A(런던에도 지역 별로 여러 개의 U3A가 있습니다)로 올해로 설립 25년을 맞는다고 합니다.
런던 도착 바로 다음날인 15일 아침, 우리 팀은 U3A in London을 향해 런던 서부의 숙소를 나섰습니다. 첫 방문이니만큼 설레는 마음이었습니다. 동시에 우리를 과연 반가이 맞아줄 지, 그리고 언어의 장벽에도 불구하고 인터뷰가 제대로 될 지 긴장도 되었다지요. 다행히도 화창한 런던의 아침 햇살 덕분에 발걸음이 가벼웠습니다.
U3A in London의 위치는 런던 북쪽의 Belsize Park역입니다. 런던 도심은 아니지만 접근성이 비교적 좋습니다. 서울로 치자면 마포구 정도의 위치랄까요. 한적하고 여유로운, 살기 좋은 동네라는 느낌이 듭니다.
U3A in London은 Hampstead 지역의 옛 Town Hall 건물에 입주해 있었습니다. 족히 100년은 넘어 보일 정도로 고풍스러운 이 건물에는 현재 U3A를 비롯해 각종 지역 단체들이 입주해 있다고 합니다. 리셉션 데스크에 놓인 신문 스크랩을 보니, 이 건물과 그에 입주한 기관들을 지키기 위해서 영국의 유명 스타들이 기금마련 행사에 참여했다는 뉴스가 보입니다.
우리를 맞아 준 사람은 U3A의 현재 회장인 Barry Rae씨였습니다. 차분하고 단정한 차림의 노신사 Rae씨는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셨습니다. 약 한 시간 반 여의 인터뷰 내내 Rae씨는 차분하면서도 열정적으로 U3A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 주었습니다. 나중에 그의 나이가 78세라는 것을 알았을 때엔 모두가 놀랐을 만큼, 넘치는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답니다.
Rae씨에 의하면, U3A in London에는 이번 학기에 현재 160개가 넘는 수업들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리스트에 있는 수많은 수업들 중 몇 개만 나열해 보겠습니다. 음악(베토벤의 교향곡). 불어 회화와 현대문학, 기공 수련, 과학(원자와 분자)…
수업 중 다수는 철학, 역사, 외국어 등 지성과 관련되어 있지만, 브릿지 게임이나 스크래블 게임과 같이 사교를 위한 코스도 있습니다. 오페라 감상, 스포츠 등 수업의 범위는 매우 다양합니다. 누구든지 자신의 관심사에 맞는 수업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 U3A의 큰 강점이라고 Rae씨는 힘주어 말했습니다.
“순수한 즐거움이 매력”
U3A에서 모든 활동은 자발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수업을 가르치는 사람들도, 스태프들도 전혀 돈을 받지 않는 활동입니다. 그럼에도 이 정도 조직을 운영하는 데 돈이 들지 않을 리 없습니다.
그렇다면 U3A의 운영 재원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U3A는 재정적으로 완벽하게 독립적인 조직으로, 재정의 주 수입원은 회원들의 회비입니다. 회원은 1인당 연간 67파운드(약 12만원)의 회비를 내는데, 한 번 회비를 내면 U3A 수업을 횟수에 관계 없이 자유롭게 수강이 가능합니다. 회비는 빌딩 대여, 복사기 렌털비 등 운영비로만 사용됩니다.
재정적 독립성 덕분에 U3A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데 있어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습니다. 더불어 정부 정책 등의 외부 환경의 변화에도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Rae씨는 자랑스럽게 전했습니다.(최근 영국의 시민사회에서도 13년만의 정권교체로 인해 적지 않은 예산삭감과 사업축소를 우려하고 있습니다)
회원들에게 U3A가 어떤 의미를 가지냐는 질문에, Rae씨는 U3A는 지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사람들을 건강하게 유지해준다고 답했습니다. U3A에 와서 새로운 것들을 배우는 것과 더불어, 매일매일 U3A에 나가기 위해 규칙적인 생활을 유지하고, 많은 물리적 거리를 이동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매일 갈 곳이 있다는 사실은, 퇴직 후 일상의 진공 상태를 경험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큰 의미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시니어들로 하여금 매일 U3A로 향하게 하는 매력은 무엇일까요? Rae씨는 그것을 “순수한 즐거움”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사람을 만나는 즐거움, 그리고 무엇보다도 배움의 즐거움. U3A에서는 일하는 사람도, 가르치는 사람도, 배우는 사람도 그 자체의 즐거움으로 온다는 것입니다.
마침 오늘은 봄 학기가 끝나기 바로 전 날이었습니다. 저희는 Rae씨의 도움으로, 수업들을 참관할 기회를 얻었답니다.
우리가 참관한 첫 번째 수업은 스페인어 수업이었습니다. 회원들은 스페인어로 된 문학작품을 함께 읽으며 모르는 단어들을 강사에게 물어보고, 작품의 내용에 관해 논의했습니다. 모두가 열정적 수업에 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잠시 쉬는 시간에 회원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단어 해석에 가장 열심이시던 한 회원께 U3A의 매력이 무엇인지 물어봤더니, 원하는 대로 무엇이든 마음껏 배울 수 있기에 매우 만족스럽다는 대답을 해 주셨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분들이 이만한 곳이 없다고, 매일 와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좋다고 거듭니다.
두 번째로 참관한 수업은 희극 낭독 수업이었습니다. 희극에 나오는 배역들을 분담하여, 회원들이 실제 극을 진행하는 것입니다. 일곱 명의 회원들이 영국 희곡 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The Importance of Being Ernest’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회원들은 낭독, 아니 연기에 몰입했습니다. 라디오 드라마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생생한 낭독이었습니다. 덕분에 작품을 모르고 듣는 저희도 즐겁게 들을 수 있었답니다. 물론 영국 엑센트와 19세기 희곡의 어법은 힘들었지만요.
수업 참관 이후에는 사무실에 들러 재무 담당 회원과, 부회장인 Amelie 씨를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재무 담당자로부터는 U3A의 법적 분류와 세금 혜택, 그리고 Amelie씨로부터는 U3A의 간략한 역사에 대해 들었답니다. 이후 한국에서 가져온 희망제작소의 기념품과 선물을 전하고 우리는 U3A와 작별을 고했습니다.
배우는 한, 늙지 않는다
이날 U3A에서 우리가 본 것은 시니어들의 열정이었습니다. 우리가 만난 모든 회원들의 눈빛에는 무료함과 무력감 대신 호기심과 만족감이 어려 있었습니다. 그 동안 한국에서 목격했던 풍경과는 분명 달랐습니다. 그리고 열정의 중심에는 순수한 ‘배움의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배움의 기쁨. 그것이 U3A의 존재이유이자 U3A를 지속하게 만드는 원동력이었습니다.
이제는 아무런 의무나 책임도 없는 나이, U3A의 시니어들은 자신들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을 찾아 배움으로 삶의 후반부를 채우고 있었습니다. 학점과 취업을 의식하며 공부하는, 20대를 돌아보게 되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U3A에서 돌아오는 길, 얼마 전 다이어리에서 본 누군가의 명언이 피부로 다가왔습니다.
“배움에 대한 흥분이 젊음과 늙음을 구별한다. 배우고 있는 한 당신은 늙지 않는다”.
이상, University of Third Age 방문기였습니다.
글 _ 박상욱 (uGET 실버라이닝팀)
사진 _ 하진규 (uGET 실버라이닝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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