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김수종의 사막을 건너는 법

재단법인 희망제작소에 흥미로운 모임이 있습니다. 지방을 살려야 우리나라가 제대로 발전한다는 취지로 3선의 단체장 이력을 가진 전직 및 현직 시장과 군수의 지역발전 프로그램 추진 경험담을 털어놓고 질의와 응답을 하는 일종의 토론회입니다.

면장도 논두렁 정기를 타고 나야 한다는 말이 있지만, 선거에서 시장이나 군수에 세 번 당선된다는 것은 대단한 정치적 능력이나 신망으로 무장된 리더십을 갖추지 않고는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10년 이상 특정 지역의 시장이나 군수를 했다면 분명 그들로부터 무언가 배우고 들을 점이 있습니다. 게다가 현행 법률상 시장 또는 군수는 3선으로 끝나기 때문에 경험담을 솔직히 말하는 데 비교적 자유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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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투수’ 김 군수의 빛나는 아이디어


어제 그 첫 발표자로 1995년부터 2006년까지 11년간 강원도 정선군수를 지낸 김원창씨가 나왔습니다. 정선(旌善)하면 일반인에게 떠오르는 것이 탄광, ‘정선아리랑’, 첩첩산중 정도일 것입니다. 정선은 김씨가 말하듯이 경북 청송과 더불어 아스팔트 도로가 가장 늦게 생겼을 정도로 한국의 최고 오지입니다. ‘하늘이 삼천평, 땅이 삼천평’ 또는 ‘시집가기 전까지 쌀 서 말을 못 먹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척박한 곳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그나마 정선군이 한때 호황이었던 것은 정부의 정책에 힘입어 석탄산업과 농업이 번창하던 1970~1980년 어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석탄산업합리화정책이 시행되면서 90년대 들어 정선군 경제는 파탄에 이르렀습니다. 이 시기에 김원창씨가 첫 민선군수가 되어 구원투수로 나선 것입니다.

김 군수에게 떨어진 과제가 카지노 유치였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프로젝트였다는 게 그의 술회입니다. 지금은 유일한 내국인 카지노로 전국 유수 관광지의 부러움을 사고 있는 ‘강원랜드’가 됐지만 그 추진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고 합니다. 카지노에 대한 주민들의 부정적 시선이 따가웠고, 서울에서까지 내려와 가세한 시민단체와 종교단체의 반대운동 등이 거셌습니다. 정부 내에서도 견제가 심했다고 합니다. 이 난관을 극복한 것이 김 군수의 설득과 추진력이었습니다.

강원랜드가 문을 열어 관심이 커지자 호텔업계의 슬러트머신 허가 요구, 제주도 카지노 유치 활동을 막는 일이 수월치 않았다고 합니다.

김 군수가 돋보이는 것은 정부가 석탄산업합리화 차원에서 밀어준 카지노 유치라기보다 그 후 추진한 프로그램들인 것 같습니다. 카지노 유치로 관광객들이 몰려오긴 했지만 넓고 넓은 정선군에는 카지노와 전혀 상관없는 농촌지역이 많았고, 그 곳 주민들은 상대적 박탈감만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김 군수는 카지노 유치를 기점으로 정선의 살길을 관광에서 찾았습니다. 그의 아이디어는 옛 것에서 새로운 관광자원을 발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버려진 것들을 모아 버려서는 안 되는 소중한 유산으로 만드는 작업”이었습니다.

그가 착안한 것이 정선아리랑, 관광열차, 그리고 5일장을 하나로 묶는 패키지 관광 프로젝트였습니다. 관광열차 개설과 오일장 부활은 힘든 일이었습니다. 정선군 증산에서 구절리를 잇는 길이 46킬로미터의 정선선은 광산폐광과 더불어 꼬마열차의 하루 이용객이 수십 명밖에 되지 않자, 철도청은 1996년부터 적자압박에 못 이겨 폐선을 검토했습니다. 오일장도 폐광으로 사람들이 떠나면서 명목만 남았습니다. 모든 여건은 파장과 같았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지렛대 노릇을 한 것이 정선아리랑이었다고 합니다. 태조 이성계의 조선개국에 동참할 수 없었던 고려 말 충신들의 한을 담고 600년을 이어온 가락이 정선 아리랑입니다. 첨단 산업으로서의 카지노가 경제적으로는 효자노릇을 일부 하지만, 카지노의 부정적 이미지를 덮고 주민에게 정체성을 살려줄 수 있는 있는 동기가 필요했던 터라, 정선아리랑은 더 없이 좋은 테마였습니다.

정선 아리랑을 현대적 감각에 맞게 재구성, 아리랑 창극을 만들어 공연한다는 계획을 세우는 한편, 철도청에 서울 청량리와 정선을 오가는 ‘오일장 관광열차’를 운행토록 하는 로비를 치열하게 펼쳤습니다.

정선아리랑은 테마로는 그럴 듯했지만 창극으로 만들어 공연하는 일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창극 출연진을 확보하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노래공연은 본질적으로 끼가 있어야 하는데, 끼가 있어도 점잖은 주민들은 관광객을 상대로 노래하는 것을 꺼렸습니다.

가까스로 20명의 팀을 구성했는데 대부분 어려운 사람들이었습니다. 김 군수는 “그들이 노래 잘 부르는 것이 정선이 사는 길”로 생각하고 하루 5만 원의 공연 일당을 10만 원으로 올리고 이들을 돕기 위해 모금통을 설치하는 등 별의별 짓을 다했습니다. 창극하는 사람들은 부부싸움도 많았다고 합니다. 남편이 노래를 부르며 밭에 갈 생각을 안 하니 부인들이 싫어하고, 부인이 노래를 부르니 남편이 불만이 컸습니다.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1999년 정선아리랑 관광열차가 운행되기 시작했고, 이 패키지 관광은 인기가 좋았습니다. 문화의 힘을 실감했다고 합니다.

두 개의 프로젝트를 성공으로 이끈 김 군수는 또 하나의 아이디어를 내놓아 히트를 쳤습니다. 그게 바로 철로 자전거 놀이시설인 ‘구절리 레일바이크’ 프로젝트였습니다. 정선선 여량에서 구절리로 이어지는 7.2킬로미터의 폐철도는 철도청에게 애물단지였습니다. 그러나 김 군수는 정선선 끝부분의 철도구간이 적당한 경사도와 아름다운 주변 경치로 레일바이크 시설의 적지라는데 착안했습니다.

정선아리랑 관광열차의 성공을 본 철도청이 이 계획에는 적극 협력했다고 합니다. 초기 시설투자비는 약 18억 원 들었지만, 2005년부터 2008년 4월까지 운영수입(탑승비)은 무려 53억 원이나 됐습니다. 민박 음식점 숙박시설 등의 파급효과는 관광업계가 인정하고 있습니다.

레일바이크는 김씨의 말대로 버려지는 것을 모아 새로운 관광자원을 창출한 모델케이스입니다. 만약 ‘구절리 레일바이크’에 필요한 철로를 새로 부설한다면 1,100억원이 소요된다고 하니 폐철로가 이제 지역경제의 효자가 된 셈입니다.


창조적 리더십의 힘


이날 김원창씨는 11년 동안의 민선 군수의 경험을 말하면서 몇 가지 의미있는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첫째, 지자체 단체장의 정당공천제 폐지를 주장했습니다. 정당공천제 때문에 선거가 끝나도 지방단체장이 지역사회를 통합하여 발전의 원동력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한탄했습니다.

김씨는 1998년 2기 단체장선거 때 민자당에서 국민회의로 말을 갈아탔습니다. 그는 강원랜드 설립 후 관광호텔 슬러트머신 로비를 막아줄 수 있는 방패를 그 이유로 들었습니다. 강원도에서 이 같은 변신은 위험한 도박이었다고 합니다. 김씨는 선거운동에서 등소평의 흑묘백묘(黑猫白猫)론을 들고 주민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고 합니다. 당이 무슨 소용이냐, 주민을 잘 살게 하는 게 군수라는 논리였습니다.

둘째, 공무원을 일하게 하는 방법을 강조했습니다. 지자체에서 일하려면 공무원의 힘과 아이디어가 절대 필요하다는 논리였습니다. 공무원들의 기본 정신 상태는 일을 안 되는 쪽으로만 먼저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김씨는 이런 공무원들을 일하게 움직이는 것은 지자체장의 청렴하고 솔선수범하고 희생하는 자세라고 합니다.

김씨는 “부패한 짓만 안하면 일하려다 잘못된 것은 내가 절대 책임진다”고 선언하고, 또 공무원에게 불미스런 일이 생기면 면박을 주고 정강이를 걷어차면서도 옷을 벗게 하는 일은 한사코 막았다고 술회했습니다. 이렇게 할 때 공무원들이 아이디어를 내고 일을 한다고 말합니다. 김씨는 일은 공무원이 한다는 신뢰감 같은 것을 갖고 있습니다.

셋째, 지역발전에서 언론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하다는 게 김씨의 생각입니다. 지방언론이 이것저것 긁어대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이들에게 행정을 공개하고 잘 협조함으로써 지방을 발전시키는 동력이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습니다.

김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비록 기초단체장일지라도 창조적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면 훌륭한 군수나 시장이 되기가 힘들겠다고 생각했습니다.


”?”1947년 제주에서 태어난 그는, 1974년 한국일보에 입사해서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혈기 왕성한 젊은 시절의 대부분을 기자로 살면서 세계를 돌아 다녔고 다양한 이슈를 글로 옮겼지만 요즘은 환경과 북한 핵문제, NGO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이제는 글 쓰는 것이 너무 지겹다’고 말하면서도, 지난 1백년 동안 지구 평균 기온이 0.6도 올랐다는 사실이 인류의 미래에 끼칠 영향을 엄중히 경고하기 위해 사막을 다녀와 책을 쓰고, 매주 여러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그는 여전히 현장에 있고 천상 글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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