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는 감자 한 알이 아까워 천연화장품을 만든 그의 뚝심

편집자 주/ 7월부터 새롭게 ‘희망소기업 이야기’가 연재를 시작합니다. ‘희망소기업’은 희망제작소 소기업발전소가 지원하는 작은 기업들로, 지역과 함께 고민하고 생활하며, 성장하고 대안적 가치를 생산하는 건강한 기업들입니다. 앞으로 이 연재가 작은 기업들의 풀씨같은 희망을 찾아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글쎄… 사명감은 아니었던 것 같고… 내가 어딘가에 미칠 때, 명분을 부여할 수도 있지만,그냥 끌리는 게 있었어요. 누군가를 사랑할 때 왜 좋은지 이유를 댈 수가 없잖아요. 어쩌면 그게 제일 무서운 것이긴 한데… 여하튼 사랑에 빠지는 것과 비슷할까.”

㈜감자의 엄현준 대표는 당시의 심정을 사랑에 빠진 설렘에 빗대어 표현했다. 남들 다 부러워하는 KAIST를 중도에 그만둔 이유치고는 너무 싱겁다.


야학을 거쳐 감자에 빠져든 청년


그는 1학년 가을에 야학을 시작했다. 그리고 야학에 미쳤다. 자연스레 학업과는 멀어졌고, 군대라는 피신처가 그를 불렀다. 군대 제대 후 마음을 다잡고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공부를 열심히 했다. 그러다 야학이 폐교 위기에 처했다는 말을 듣고 그는 다시 갈등에 빠졌다.

“학생도 없고, 선생도 없고… 폐교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걸 어찌해야 하나… 가야 되는지 말아야 되는지 고민이 많았는데, 결국 정의심이 발동하더군요. 야학에 발목 잡힌 거죠.(웃음) 그날 이후 기숙사를 떠나 야학에서 먹고 자고 했어요.”



[##_1C|1273542929.jpg|width=”600″ height=”400″ alt=”?”|순박한 얼굴에 쫑긋 서있는 귀. 카메라가 어색한 듯 손사래 치는 그의 눈가에 자글자글 자리잡은 주름이 눈에 들어온다. 그를 새로운 도전으로 끌고 온 힘이 느껴지는 정겨운 주름이다._##]그러던 어느 날 담당 교수한테 전화가 걸려온다.

전화기 너머로 왜 학교에 오지 않냐며 다그치는 교수의 모습이 그림처럼 떠올랐다. 그냥 멍하니 듣고 있기를 한참. 그러다 문득 무언가가 그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바로 학교를 그만둬야겠다는 결심이었다. 그는 그날로 미련 없이 자퇴를 했다. 물론 자퇴의 이유가 전부 야학 때문은 아니었다. 그냥 무언가 알 수 없는 강렬한 끌림 때문이었다.
마치 어느 날, 자신도 모르게 사랑의 열병을 앓기 시작한 청년처럼 말이다.


온 몸과 마음을 야학에 바쳤다. 그리고 야학이 완전히 제자리를 잡은 후에 그는 감자 유통업을 시작한다. ‘e-감자’라는 인터넷 쇼핑몰을 만들어 소비자들과 직거래를 했다. 농민들에게 수매한 감자나 옥수수를 주로 팔았고, 잡곡이나 과일도 판매했다.


강원도 산골 출신인 그가 고른 농산물들은 반응이 좋았다. 신뢰를 생명으로 하는 온라인 쇼핑몰이기에 무엇보다 좋은 품질의 상품만을 팔았다. 자신감이 붙은 그는 ‘뽀샤시 감자’라는 브랜드를 만들고 감자를 집중적으로 팔기 시작했다.


시장의 반응은 예상 외로 뜨거웠다. 한 해에만 4억 원의 감자가 팔릴 정도였다. 시장 가능성을 확인한 엄 대표는 농가들과 계약 재배를 늘렸다. 그런데 막상 연말에 정산을 하고 보니 남는 것이 없었다. 농산물에 대한 부가가치가 워낙 낮은 탓도 있었지만, 좋은 상품만 팔고 상품성이 없는 것은 쇼핑몰에 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농산물이 그렇더라구요. 예를 들어 100톤을 수매하면, 소비자한테 파는 건 60%밖에 안 되요. 얼굴 안 보고 하다 보니 때깔 좋은 거 보낸다고. 그런데 40톤이 남아요. 이 남는 걸 처리 못하면 60% 판 게 말짱 꽝이 되죠. 그래서 가공을 하면 좀 낫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남는 감자도 아까워 가공 상품 개발로


농산물 가공 상품으로 방향을 전환한 엄 대표는 처음에는 감자 옹심이나 감자 떡을 생각했다. 그러나 이것 역시 부가가치가 높지 않았다. 그러다 생각해낸 것이 감자 화장품. 감자가 피부에 좋다는 것은 다들 알고 있으니, 화장품을 만들어 보자는 것이 그의 판단이었다.


그래도 사업은 사업이다. 상품성이 떨어지는 것을 좀 팔더라도 계속 농산물 유통을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아니면 좋은 감자만 수매해서 소비자에게 판매하면 쓸데 없는 지출이 줄어드니 괜찮을 것이다. 구태여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는 건 너무 무모한 판단이 아니었을까?


이에 대한 그의 대답은 이번에도 싱겁다. 하지만 이번에는 강원도 사투리가 살짝 도드라지는 그의 말에서 단호함을 느낄 수 있었다.


“내 혼자 장사해서 내 혼자 먹고 사는 것 생각하면 그렇게 하면 되요. 나도 촌구석에서 살았고, 뭐랄까 농사 지은 사람의 마음이란 게 있어요. 자기가 농사지은 걸 버린다고 생각해봐요. 농가들에게 그런 식으로 부담 주고 싶지 않았어요. 이건 제 몫이라고 봤어요.”


세상 사람 모두가 그와 같다면 먹거리 불안은 앞으로 없을 듯하다. 하지만 순박한 그의 원칙 때문에 주위에서 장사를 못한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 그래도 그는 꿋꿋이 앞만 보고 달렸다. 감자 화장품이 감자 재배 농가에 큰 희망이 되리란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2년 만에 감자 화장품 개발에 성공


감자 화장품을 만들고자 결심은 했지만 막상 무엇부터 손을 대야 할지 잘 몰랐다. 감자라면 누구한테도 지지 않을 정도로 잘 안다 자신했지만, 화장품을 만드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돌아갈 수는 없는 일. 잘 나가던 인터넷 쇼핑몰도 다른 사람에게 팔고, 감자 화장품 만들기에 모든 것을 던졌다.


[##_1C|1213973398.jpg|width=”350″ height=”525″ alt=”?”|위생복을 착용한 엄현준 대표. 감자 화장품의 생명은 자연 그대로이다._##]우선 독학으로 화장품에 대한 기본 지식을 쌓았다. KAIST 시절 이만큼만 공부했으면 쉽게 박사 학위를 땄을 거라고 여길 만큼 그는 밤낮없이 연구개발에 매달렸다. 그러던 어느 날 중소기업청에서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다. 중소기업청 향토산업 개발사업 지원 대상에 선정된 것.


천군만마를 얻은 엄 대표는 감자 화장품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상품화를 위한 설비도 갖추고 연구개발 환경도 개선해 진척 속도가 빨라졌다. 하지만 끝까지 한가지 문제가 풀리지 않았다. 감자가 주성분인 화장품이 시간이 지나면 굳어버리는 것이다. 전분을 물에 풀어 끓이면 처음엔 점성이 있지만 시간이 흐른 뒤 굳어버리는 것과 같은 이치다.


여러 번 실험을 거듭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상온에서는 굳지 않았지만 냉장 상태에서는 쉽게 굳어버렸다. 애타는 엄 대표의 마음도 모르는 듯 그렇게 6개월이 흘렀고, 추석이 다가 왔다. 화장품 개발에 진척이 없는 상황에서 추석이 즐거울 리 없었다. 집에 있어봐야 한숨뿐. 엄 대표는 직원들 없는 회사에 홀로 나와 실험실을 지켰다.


낙담한 마음을 뒤로 하고 냉장실을 뒤적이는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실험 샘플 중 하나에서 물컹한 느낌이 나는 것이다. 급하게 꺼내어 내용물을 살펴보니 처음 상태 그대로였다. 실험노트를 살펴보고 다시 그대로 실험을 진행했다. 며칠 후 샘플을 살펴보고 그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실험이 성공한 것이다. 연구개발에 뛰어든 지 2년 만의 일이다.


꿈은 꿈을 낳고


이제는 시장의 반응만이 남았다. 엄 대표는 본격적인 판매에 앞서 쇼핑몰 회원 1천2백 명에게 무료로 샘플을 보냈다. 천연 감자 화장품이기에 부작용은 문제가 안 됐지만, 소비자들의 취향에 맞지 않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며칠이 지나자 반응이 하나 둘 접수됐고, 90% 이상 사용자들이 만족감을 표시했다.


성공 가능성을 직감한 엄 대표는 자체 쇼핑몰은 물론 옥션이나 지마켓 등 대형 쇼핑몰에 감자 화장품을 내놓았다. 들어보지도 못한 ‘비단생’이란 브랜드에 가격은 기존 화장품 업체의 10배 이상이어서 소비자들의 반응은 예상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결과는 놀라왔다. 감자팩 분야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하게 된 것. 한 번 써본 소비자들의 재 구매율이 높아지고 ‘e-감자’ 쇼핑몰 시절부터 신뢰를 보내온 소비자들이 또 믿고 구매한 것이 성공 요인이다.


엄 대표는 이제 더 큰 꿈을 꾸고 있다. 영월에 감자 클러스터를 만드는 것. 일본 쌀 주산지를 가보면 쌀 테마 전시관이 있다. 그곳에 가면 쌀 가공식품을 쉽게 찾을 수 있고, 쌀밥 식당, 전시관, 테마공원 등 클러스터 자체가 관광지다. 그 역시 강원도를 대표하는 감자를 통해 영월 주민은 물론 강원도 전체가 풍요롭게 살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고 싶다.


“저는 지역 농가들과의 관계를 중요시하는데요, 말 그대로 농업이 진짜 어려운 지경이에요. 차라리 농사를 짓지 않았으면 까먹지라도 않지… 이런 기업이 많이 생겨서 감자를 많이 팔아줘야 돼요. 1-2-3차 산업을 한데 엮는 것이 필요한데, 나 혼자는 물론 못하죠. 클러스터가 내 것도 아니고… 다만 제 감자 사업이 그런 계기로 쓰였으면 좋겠어요.”



노준형/객원연구원


천연 감자 화장품, 무엇이 좋길래?



한의학적으로 감자는 찬 성질을 가지고 있어 피부열을 식혀주며 피부를 진정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엄현준 대표의 감자 화장품은 감자 추출물로 만든 기존 제품과는 달리 감자를 주성분으로 10가지 한약재를 첨가한 천연 감자 화장품이다. 이에 따라 감자의 피부 진정 작용과 한방의 영양 및 보습작용으로 피부를 부드럽고 깨끗하게 가꿔준다.


강원도 감자를 직접 건조해 800mesh급(밀가루 입자의 1/3 크기)으로 분쇄한 초 미세 감자입자가 함유돼 천연감자 그대로의 진정 작용을 느낄 수 있다. 감자 분쇄 방식은 초고속공기를 이용한 ACM(Air Classifier Mill) 분쇄방식으로 쇳가루가 나오지 않는다. 또 합성 방부제나 알코올 등을 배제해 피부 트러블이 없다.


주요 제품으로는 여름 휴가철에 관심을 모을 수 있는 감자팩 ‘오렌지 감자’가 눈에 띈다. 선블록 크림이 미리 피부에 발라 햇빛의 자외선을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면, ‘오렌지 감자’는 여름철 햇빛에 상한 피부를 진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해변가에서 아이들이 햇볕에 그을려 빨갛게 달아올랐을 때, ‘오렌지 감자’를 바르면 1시간 내에 진정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감자의 진정 작용과 강한 흡착력으로 피부노폐물과 피지를 제거하고 모공을 축소할 수 있는 트러블 케어 용 감자팩도 있다. 세안 후 두텁게 바르고 30~60분 후 물로 씻어내면 되며, 감자가 주성분이라 잘 씻겨진다. 이외에 식물성 한방 감자비누와 한방 감자샴푸, 두피 트러블 케어 용 헤어 팩과 발마사지 용 발 팩 등 다양한 감자 화장품이 있다.


이들 화장품들은 인터파크와 희망제작소가 진행하는 희망소기업 캠페인을 통해 구입할 수 있으며, ㈜감자의 쇼핑몰(vidan.co.kr)에서도 판매 중이다. 문의: 033-375-3030

[##_1L|1260405339.jpg|width=”85″ height=”85″ alt=”?”|_##]노준형은 전공이 뭐냐고 물어볼 때가 제일 난감하다. 전자공학과 글쓰기의 상관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회로설계(Circuit Design)와 글쓰기의 원리는 동일하다고 종종 주장한다. 몇 차례 취재기자를 꿈꾸며 <코리아포커스>, <아시아경제 브이에스뉴스> 등에서 짧게나마 기자생활도 했으나 불가항력적 상황에 밀려 지금은 언론홍보대행사 커런트코리아에서 홍보AE로 일하고 있다. ‘노대리의 직딩일기’와 같은 자전적 에세이를 쓰고 싶지만, 잦은 야근에 치여 하루하루 꿈을 내일로 미루고 있다. 희망제작소의 소중한 부름을 받게 된 것에 감사하며 사는 소박한 직장인이다.

Comments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관련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