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광모] 베이스캠프를 높게 치려면?

정광모의 국회를 디자인하자

지구에서 가장 높은 산인 에베레스트는 1953년 에드문드 힐러리가 처음으로 정상에 올랐다.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고상돈이 1977년 처음 정상을 밟았는데 56번째 정상 등반자였다. 1953년 이후 1977년까지 1년에 2팀 정도가 이 산을 오른 셈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하루에 2팀이 오를 정도로 에베레스트 등산길은 붐비고 있다.

이게 가능해진 가장 큰 이유는 베이스캠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베이스캠프를 3000미터에 쳤는데 그 후 5200미터와 6000미터로 높였고 지금은 전진베이스캠프를 6400미터에 치기도 한다. 고도가 2000미터 증가할 때마다 산소 농도는 2% 감소하고 산을 오르는 등반 속도는 절반으로 준다고 한다. 즉 베이스캠프를 2000미터 더 높이 친다면 정상에 오르는 시간은 1/4로 줄어든다는 말이다. 그래서 무슨 일을 하든 성공하려면 베이스캠프를 높이 쳐야 한다. 삼성경제연구소 강신장 지식경영실장의 말이다.

국회가 베이스캠프를 높이 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무엇보다도 전문성을 높이는 교육을 제대로 받아야 한다. 기본기가 없으면 축구 실력이 늘지 않듯이 국회의 핵심 업무인 입법과 예산 업무를 잘 모르면서 베이스캠프를 높이 칠 수 없다. 국회 사무처 직원 교육은 상당한 수준이다. 국회 사무처 5급 입법고시 합격자는 8주간 교육을 받는다.

2007년 합격자가 받은 교육 내용을 보면 입법지원능력 배양이 72시간으로 40%를 차지한다. ‘행정입법심사 이론과 실제’ 3시간을 비롯한 법률안 관련 교육이 27시간, ‘예산안 심사제도와 실제’등 예결산 업무가 24시간, 국회법이 21시간이다. 국회 사무처 5급 승진자 교육도 5주간이고 8급 신규 채용자는 4주간 108시간, 9급 신규 채용자는 3주간 71시간이다.


의원과 보좌진은 9급 직원보다 적은 교육을 받아


국회의 주인인 국회의원 교육은 형편없어 교육이라고 부를 수 있을 지 고민스럽다. 18대 국회의원 교육은 5월 15일 하루였는데 인사 및 조직 소개가 60분, 본회의장 방문 20분, 의정활동 및 지원제도 안내가 110분으로 총 3시간 남짓하다. 9급 직원이 3주간 교육을 받으니 의원이 받은 교육은 교육이라기보다 상견례에 가깝다. 그러나 하루 동안 의원 교육에 쓴 예산은 총 5300만 원 정도다. 강사비는 160만 원, 교재 등 인쇄비가 2200만 원, 오찬 등 기타가 3000만 원이다. 하루 교육 밥값이 강사비의 19배다. 교육의 양과 질은 온데간데없고 식대만 의원급이다. 17대 국회 의원 교육도 별반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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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을 보좌하는 보좌직원 교육도 사정은 비슷하다. 17대 국회와 18대 국회 개원 전 신규 보좌직원 오리엔테이션이 하루 6시간 정도다. 18대 국회 보좌직원 교육도 의원들과 마찬가지로 강사수당보다 식대가 많다. 강사 수당은 140만 원에 식대 등이 955만 원으로 7배 정도다.

이밖에 의원 교육 프로그램으로는, 각 정당에서 소속 의원들을 상대로 연찬회를 가끔 하지만 이건 주로 ‘정세 분석’과 ‘투쟁 전략’을 논의하고 결의를 다지는 자리라 의원들의 내공을 키우긴 어렵다. 더구나 국회가 시작되면 의원들은 지역구를 관리하고 유력인사를 만나느라 숨 쉴 틈도 없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의 질을 자랑하는 뉴스거리를 매일 풍성하게 쏟아놓아 의원들은 터지는 현안을 쫓아다니며 공격하고 방어하기에 바빠 책 한 번 차분히 볼 시간이 없는 실정이다.

그러니 적지 않은 의원들이 법학개론이나 민법총칙 내용도 확실히 모르는 채 법안심사를 하고, 예산 사업설명서나 각목명세서를 정확히 볼 줄 모르면서 예산 심의를 하게 된다. 정부 부처가 중요한 법안과 예산을 내면 의원을 찾아가 자세하게 설명하고, 보좌진이 받쳐주니 의원들이 법안과 예산 심사 내용을 잘 알고 진행하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도 많다. 사정이 이러니 이렇게 의원 교육을 소홀히 하는 정당과 국회 사무처가 고의적으로 ‘의원 우민화’ 정책을 쓰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기본기가 없으면 국민이 감동할 ‘하이 컨셉’도 어렵다


우리 사회를 발칵 뒤집은 ‘쌀 소득 직불금’ 문제를 보자.
정부와 김재원 의원이 각자 발의한 <쌀 소득 등의 보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2005년 2월 22일 제 252회 임시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회 법률안 심사소위원회에서 심의하였다. 이미 상당 부분 농지는 부재지주가 소유하고 있으니, 논을 임차해 농사를 짓는 농민 시각에서 보면 쌀 직불금을 누가 수령하느냐는 중요한 문제다. 즉 직불금을 직접 농사를 짓는 농민이 수령하면 농지 주인이 부재지주라는 것이 드러나고, 부재지주가 수령하면 부정 수령이 되는 문제에 대한 실태 조사와 대책이 필요하였다.

그러나 이 날 심의에서 정부와 의원 모두 직불금이 농지 경작자가 아닌 부재지주에게 지급될 부정수급가능성에 대해서는 검토하지 않아 정부와 국회 모두 부실한 입법책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이런 사례가 의원들이 법안 교육을 받지 않은 것과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는 것일까?

실제로 국회의원과 보좌직원의 교육 시스템이 만들어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는 기본기가 약해질 수밖에 없고, 따라서 국회가 국민을 감동시킬 ‘하이 컨셉’을 만들어내기 어렵다. 게다가 ‘하이 컨셉’을 만드는 능력보다 전투력 강한 저격수 의원이나 예산 잘 따내고 민원 잘 처리하는 마당발 의원이 득세하는 정치현실은 이를 더욱 가속화시킨다. 그러니 의원이 지역구에서 함평의 ‘나비축제’와 같은 브랜드를 만들거나 스스로 새로운 지역 발전 모델을 만드는 곳은 찾기 어렵다.

일각에서는 의원과 보좌진이 바빠 교육을 받을 시간이 없다고 한다. 그러니 더욱 교육이 필요하다. 국회가 ‘하이 컨셉’을 만드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일류 강사는 많다. 정당과 국회 사무처는 의원과 보좌직원들을 국회 개원 전과 개원 후 2년마다 의무적으로 1주일 씩 연수원에 넣어 교육을 시키는 것은 어떨까? 그리고 그 연수 실적을 공천 평가에도 반영하면 어떨까?

나라를 끌고 간다는 국회가 적어도 9급 직원보다는 더 교육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 투입이 없는데 산출이 있을 수 없다.

*이 칼럼은 여의도통신에 함께 게재합니다.

[##_1L|1367625625.jpg|width=”120″ height=”91″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_##] 정광모는 부산에서 법률사무소 사무장으로 10여년 일하며 이혼 소송을 많이 겪었다. 아이까지 낳은 부부라도 헤어질 때면 원수로 변하는 모습을 보고 인생무상을 절감했다.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일하며 국록을 축내다 미안한 마음에 『또 파? 눈 먼 돈 대한민국 예산』이란 예산비평서를 냈다. 희망제작소에서 공공재정 연구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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