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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종의 사막을 건너는 법

“버밍엄은 너무 변했어, 옛날이 좋았는데 / 6시 반 퇴근길에 버스는 죽어도 안와
월급 좀 올랐으면 좋겠네 / 왕년에 나도 잘 나갔는데 말야
내 세금 가지고 전쟁을 벌이네 / 가봤자 숨을 힘조차 없으면서
발밑에는 가래침과 쓰레기 / 불평해도 불평해도 모자라”




”?”영국 버밍엄에서 ‘불만합창단’이 부르는 노래가사다. 대중교통과 지저분한 거리에 대한 불평이 터져나온다.
올 가을에 서울 시민들은 정말 특이한 이벤트를 보게 될 것 같다. 마음속에 품어뒀던 불만을 노래로 뱉어내는 ‘불만합창’ 페스티벌이 우리나라 최초로 10월 중순에 열린다. 재단법인 희망제작소가 서구에서 확산되는 ‘불만합창단’ 아이디어를 도입, 행사를 기획하고 있다.

불만합창단(Complaints Choir)이 처음 조직된 곳은 2005년 영국 버밍엄. 북구에서 동구를 거쳐 미국 이스라엘로 퍼졌다. 아시아에서는 처음 싱가포르에 생겼으나 외국인이 끼었다는 이유로 정부와 마찰이 생겨 잘 안 되고 있다.

불만임계점에 도달하지 않게

인간이면 누구에게나 불만이 있다. 갓난애에서 백살 노인까지, 노숙자에서부터 세계 최고 부자 빌 게이츠까지.
배가 고파도 불만, 살이 쪄도 불만, 날씨가 안 좋아도 불만, 월급이 오르지 않아도 불만, 길이 막혀도 불만, 휘발유 값이 올라도 불만, 경쟁업체가 잘 돼도 불만, 응원하는 스포츠팀이 경기에서 져도 불만, 시장과 대통령이 형편없게 정치한다고 불만이 생긴다.
이 지구상에는 65억명이 산다. 불만을 숫자로 표시하는 것은 좀 그렇지만, 누구나 한두개의 불만은 있게 마련이고, 그래서 불만이 100억 개는 넘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은 불만을 삼키지만 어떤 사람은 밖으로 분출시킨다. 불만을 삼키는 사람들은 쌓인 불만이 임계점을 넘으면 폭발하고, 분출시키는 사람들은 또 다른 사람들의 불만을 만든다. 사람들이 모인 집단도 불만이 있다. 집단에 불만이 쌓여 임계점이 되면 사회적 폭발이 일어난다. 해서 불만이 임계점에 도달되지 않도록 개인은 불만을 해소하고 정부와 회사들은 불만 환경을 개선하고 고치는 것이 필요하다.

사전을 찾아보니 불만(不滿)과 불평(不平)이란 낱말이 있다. 비슷한 단어로 혼동이 쉬운데 실은 함의가 다르다. 불만은 ‘마음에 차지 않는 상태’를 뜻하고 불평은 ‘불만상태를 밖으로 표출하는 행동’이다.

불만합창은 바로 불만을 합창으로 표출하는, 즉 집단불평의 새로운 방식이다.
불만을 합창으로 노래해 보면 어떨까라는 상상을 떠올린 것은 핀란드의 칼라이넨 부부. 이들이 영국 버밍엄에서 처음 불만 합창을 공연한 후 헬싱키, 함부르크-빌헤름부르크, 상트페테르부르크, 부다페스트로 퍼져나갔다.

“아침이면 일하러 가고 밤이면 집으로 오지/ 계속 이러다간 미쳐버릴 거야/ 여자는 아직도 남자보다 월급이 적어/ 이건 불공평해”(헬싱키)

“이곳에서 우리는 새로운 도로를 원치 않아/ 왜 국경의 세관 철조망은 아직도 헐리지 않았지/ 어째서 토크쇼 사회자는 실업자를 비난하는 거야/ 논쟁은 많지만 해결되는 일이 없네/ 관료의 축소, 멋진 공원들, 소규모 수업, 새로운 극장, 학교와 운하의 개보수/ 시민의 소리를 귀담아 듣겠다고?/ 모든 게 허풍이야” (함부르크)

“표트르 대제, 기적의 건설자여/ 우리 도시를 왜 들끓는 모기 소굴에다 세웠나요/ 사랑은 고통스러운데 왜 사랑하나” (상트페테르부르크)

“재능도 없는 녀석들이 브라운관을 장식하는데/ 왜 나를 스카우트하는 기획사는 없는 거야/ 야쿠르트 병은 너무 작고 맥주는 미지근해/ 우유가 정말 소에서 나기는 하는 거야” (부다페스트)

“왜 학교는 이렇게 아침 일찍 시작해/ 왜 숙제는 이리도 많아/ 시험이 너무 많아”(핀란드의 초등학교)

불만합창에 나오는 가사도 가지가지다. 권태로운 일상이 불만인 핀란드인, 정치인 공약에 염증을 느끼는 독일인, 불평도 심오하고 거창하게 표현하는 러시아인 등 도시마다 나라마다 특성 있는 불만이 쏟아진다.


평화적이고 재미난 시민참여


세계 어느 나라보다 불만이 많고 그 표출도 역동적인 한국에서 불만합창단이 나오면 어떤 반응들이 나올까. 그건 얼마나 불만을 시대적 코드에 잘 꿰맞추느냐 하는 창의적 센스일 수도 있고 짜릿한 카타르시스의 광장을 만드는 기획력일 수도 있다.

우리 사회의 문제들은 과격한 데모나 폭력적 언사로는 해결될 수준은 넘었고, 그래서 서양의 집회처럼 평화적이고 재미난 시민참여 방식이라야 언론과 사회에 호소력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에서 불만합창을 만든다는 게 기획자들의 생각이다. 사람들의 상상력이란 한이 없다.

 이 칼럼은 내일신문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올챙이 기자로 시작해서 주필로 퇴직할 때까지 한국일보 밥을 먹었다.혈기 왕성한 시절의 대부분을 일선 기자로 살면서 세계를 돌아 다녔고 다양한 이슈를 글로 옮겼지만 요즘은 환경과 지방문제, NGO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이제는 글 쓰는 것이 너무 지겹다’고 말하면서도, 지난 100년 동안 지구 평균 기온이 0.6도 올랐다는 사실이 인류의 미래에 끼칠 영향을 엄중히 경고하기 위해서 사막을 다녀온 후 책을 쓰고, 매주 여러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그는 여전히 현장에 있고 천상 글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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