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편집자 주/ 2008년 10월 11일, 대한민국 최초로 불만합창단 페스티벌이 열렸다. ‘불만합창단 페스티벌’은 ‘2008 사회창안주간’ 행사의 일환으로 기획되었다. 10월 8일부터 11일까지 진행된 ‘2008 사회창안주간’은 전 국민의 희망아이디어 열전인 ①’사회창안대회’, 국내외 사회창안 활동의 전망과 좌표를 그려내는 ②’사회창안 국제회의’, 그리고 ③’불만합창단 페스티벌’로 이루어졌다. 다양한 지역, 다양한 주체들로 조직된 8개의 불만합창단, 그 열띤 공연과 공감의 현장을 싣는다.

“♬~ 택배 아저씨는 꼭 내가 집에 없을 때만 집에 와~
헤어진 애인한테 청첩장 좀 주지마~♪”

”?”

알고 있니? 불만도 축제처럼 터뜨릴 수 있다는 걸~ 시원하게!

신나는 우유송에 맞춰 격주 놀토의 불합리성을 노래하는 소녀들(드림한누리공부방 불만합창단)
장애인 화장실의 비좁음과 이동권 제약을 풍자와 해학으로 터뜨리는 장애여성공감 회원들(즐거운 불만합창단)
통계청 직원처럼 나이를 물어대는 사람들에 일침을 날리는 진주여성민우회원과 아이들(진주 꾀꼬리 불만합창단)
굳세어라 촛불아를 외치는 누리꾼들~(누리꾼 불만합창단)
10대부터 60대까지 남행열차 타고 트위스트 날리는 익산팀(익산 불만합창단)
악~하고 사회복지의 열악함을 토로하는 관악팀(관악한울림 불만합창단)
사소한 일상에서부터 정치적 이슈까지 그야말로 전방위적인 불만을 쏟아내는 멋대로팀(서울 멋대로 불만합창단) 북아현동의 언덕배기를 노래한 학생과 지역주민들(북아현동 불평합창단)
이들이 바로 불만을 축제로 풀어낸 주인공들이다.

2008년 10월 11일 조계사 불교역사문화기념관 내 전통예술공연장에서 ‘불만합창 페스티벌’이 열렸다. 개그맨 박준형씨의 사회로 진행된 이번 행사에는 서울, 진주, 익산 등 각지에서 모인 8개 불만합창단이 참여했다. 관객석은 행사 시작 전부터 만석이었다.

‘불만합창단’은 일상의 작은 문제에서부터 세계적인 이슈까지 오늘날의 나와 연관된 모든 불만들을 노래로 부르는 합창단이다. 2005년 영국 버밍햄에서 처음 시작해 핀란드 헬싱키, 독일 함부르크, 미국 시카고 등 세계 각 도시로 퍼져나가고 있다.

이번 행사를 주최한 희망제작소의 박원순 상임이사도 인사말을 하기 위해 무대에 오르면서 대뜸 노래를 불렀다. “깊은 물은 깊고, 얕은 물은 얕다~♬” 관객들은 무슨 노래인지는 잘 모르는 눈치였지만 열창하는 그 모습에 박수로 화답했다.

“어떤 시대나 불만, 절망은 많습니다. 문제는 ‘어떻게 푸느냐’ 입니다. 우리나라는 OECD국가 중 자살률이 제일 높습니다. 불만을 배출할 수 있는 출구가 없기 때문입니다. 불만합창단을 통해 새롭고, 재미 있고, 평화적으로 불만을 노래하려는 이 시도에 힘껏 박수쳐주시고 격려해주시기 바랍니다.”

”?”

♬ 몇 살입니꺼 어디삽니꺼? 온 국민이 다 통계청 직원이야~!♪

1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주체의 에너지로 가득찬 불만합창 페스티벌은 불만합창단을 처음 만든 올리버 코차-칼라이넨씨도 놀라게 만들었다.

공연장은 모두가 공감하는 불만으로 들썩이며 공감과 소통의 공간이 됐다. 사회를 맡은 개그맨 박준형씨는 ‘드림한누리공부방’ 소녀들의 합창을 듣고는 요즘 소녀들의 불만을 알게 됐다고 말했고, ‘턱턱턱턱’ 턱때문에 이동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즐거운 불만합창단’의 공연 후에는 “턱이 문제라는 것을 이제 알게 되었다”며, 서로 모르는 것을 알게 되기에 이 자리가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모든 팀의 공연이 끝난 후 올리버 코차-칼라이넨씨는 연단에 올랐다. 한국 전역에서 8개팀이 모여 이런 공연을 하는 것이 감동적이라며, ‘불만합창단을 새로운 차원으로 넓힌 희망제작소에 감사한다’는 뜻을 전했다. 처음 시작할 때 한국에서 페스티벌이 열리리라고 생각지 못했다는 칼라이넨씨는 꿈보다 현실이 더 대단하다며 고무된 모습이었다.

팀 색깔별로 불만의 색깔도 달랐던 8개 팀의 사진과 불만 가사를 옮겨본다.

1. 일곱빛깔 무지개상 — 익산 불만합창단(익산 희망연대 조직)

익산 희망연대는 인간다운 삶을 누리는 행복한 익산을 만들기 위한 지역시민단체다. 불만합창단이 조직된다는 소식을 듣고 익산 희망연대 회원을 중심으로 어린이부터 60대 어른까지 25명이 합창단원을 조직했다. 인산 불만합창단은 페스티벌 참여를 계기로 상시적인 노래 동호회를 결성해 ‘익산 시민연대 5주년 행사’와 ’10월 시민강좌’에서 합창을 할 예정이다. 이번 공연에서처럼 지역의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생활 속 운동을 펼쳐나갈 것이 기대된다.

“♬ 익산시 공단 주변은 악취때문에 못 살겠다~ 큰며느리는 왜 항상 긴장 속에서 살아야해~”

”?”

“♬ 애인에게 차였어. 헤어진 것 아니야. 임산부에 초음파 잦아 여기 파 저기 파. 대책없는 가스 공사 좁은 거리 담배 꺼내지 마. 깜빡깜빡이 좀 켜주면 안 되나요. 월요 조회시간 잔소리만 30분. 10시면 공원도 깜깜. 여성 위한단 말 뿐. 익산시 뭐하나 노크 없이 문 열지 마오. 의사 실수 괜찮아. 환자만 죄인 돼. 의료법 바꿔주세요~”

2. ‘굿세어라 촛불아상 — 누리꾼 불만합창단(Daum cafe 장백 조직)

온라인으로 활동하는 누리꾼 20명이 만든 불만합창단이다. 불만합창단 활동을 하며 노래하다보니, 불만이 짜증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즐거움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그 어떤 팀보다 사회 비판적인 가사를 담았고, 멋진 화음으로 메시지를 전했다.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에 진출한 저희 용기에 많은 박수 쳐주세요.”

”?”

“♬ 불만,불만 우리는 불만 많은 누리꾼들. 불만이 많아 이렇게 인터넷에서 뛰어나왔지. 지하철 공기는 너무 탁하고 대중교통비는 자꾸만 올라. 학생 땐 시간 많고 돈이 없었는데 직딩이 되니 시간 없고 돈도 없네. 세금은 내렸다는데 내 세금만 자꾸 오르는 것 같아.(중략) 소화기로 메이크업 물대포로 클렌징. 온수를 달라. 전과 없는 대통령 거짓말, 안 하는 대통령, 최소한 한국 사람이면 좋겠어. 왜 명품매장 매장녀들은 지들이 명품인 줄 아는 건지. 왜 구남친들은 새벽에 전화해서 자냐고 물어 보는 거야?(잔다, 이놈아) (중략)이제는 시국걱정 그만하고 싶어요~”

3. 아름다운 우리동네상 — 북아현동 불평합창단(추계예대 판화과 프로젝트팀 조직)

추계예술대학교 실용음악과 학생들이 곡을 만들고 북아현동 주민들과 가사를 만들었다. 북아현동 불평합창단은 이러한 계기를 통해 예술이 삶의 현장에서 이웃과 함께 살아 숨 쉴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저희도 북아현동 주민인 거잖아요. 이번 합창을 준비하면서 서로 더 잘 알게 된 것 같아요.”

”?”

“♬ 비좁은 인도 없는 차도를 걸어야 해. 고양이와 비둘긴 언제부턴가 내 친구 복잡한 역 앞의 교통 체증. 한차을 기다려도 오지 않는 마을버스. 어두운 저녁에 가로등 없는 골목길은 내가 마치 공포 영화 주인공이 된 것 같아. 믿었던 24시 분식집은 날 편의점으로 향하게 하는데. (여기는 북아현동) 참 높은 언덕들과 (더 좋게 말하면) 나무 없는 산이지 (집세는 오르고) 월급은 오르지 않아 속상한데 개와 산책할 곳도 없어. (후략)”

4. 세상을 다 가져라상 — 드림한누리공부방 불만합창단(봉천동 나눔의집 드림한누리공부방 조직)

꿈도 많고, 불만도 많은 봉천동 드림한누리공부방 ‘밤바다의 소녀들’. 이 5,6학년 소녀들은 학교도 싫고, 공부도 싫다고 노래했다. 노래 도중 해맑게 까르르 웃기도 했다.

”?”

“♬ 학교 싫어 싫어, 공부 싫어 싫어, 외국어 싫어 오~노. 쌤 맘대로만 해. 훈화 너무 길어. 시험은 너무 많아. 1번 버스 아저씨는 짱 불친절해. 300원 낸다고 나 무시하지 마. 우리학교 1,2학년 너무 편애해. 왜냐하면 1,2학년 벽걸이 TV야. 방학 짧아, 쉬는 시간 짧아. 중국 매미 싫어요. 미치겠어. 학교 화장실 싫어, 공빵 화장실 싫어,(중략) ~ 미치겠어.”

5. 널리 퍼져라상 — 관악 한울림 불만합창단(관악 사회복지 조직)

관악 사회복지 한울림장애인야간학교는 정규교육으로부터 배제된 지역 내 성인장애인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단체다. 불만합창 페스티벌 참가를 통해 자존감과 자신감을 얻고, 운영난을 겪고 있는 장애인야간학교의 현실을 알리고 싶다고 참가 포부를 밝혔다. 노래 중간에 퍼포먼스 형식으로 ‘악~’하는 소리를 내지르며 관객들의 호응을 받았다.

”?”

“♬ (전략) 엘리베이터 좁은 공간 휠체어를 처넣고 아슬아슬 곡예처럼 힘겹게 야학 교실에 들어서면 싸고 차가운 김밥 한 줄, 한 줄만- 더 줘요. 배고파, 이제는 싫어 지겨워 제발 김밥은 이제 그만. 울 동네 구청건물 최고급 호텔 삐까리 뻔쩍 울 동네 공무원은 삐딱-하고 뻣뻣해. 새우깡 과자 봉지 속에 말 안 듣는 똥강아지 머리 찾아 헤매다가 미친소 뼈-다귀 찾아 주구장창 땅굴만 파네.”

6. 즐겁게 노래해상 — 진주 꾀꼬리 불만합창단(진주여성민우회 조직)

꾀꼬리 불만합창단은 30,40대 여성 18명과 지역아동센터 공부방 학생 2명으로 구성되었다. 10월에는 반성차별캠페인, 11월에는 알뜰살뜰 번개시장, 12월에는 진주여성평등상 시상식에서 공연을 할 예정이다. 세상을 바꿔나가는 발검음에 신명난 불만합창을 보탤 광경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

“♬ 첨 본 사람이 내게 묻는 말. 몇 살입니꺼 어디삽니꺼. 온 국민이 다~ 통계청 직원이야~. 인터넷 강국은 온 동네 PC방 게임 중독도 전 세계 최강. 나의 정보도 모두가 공유해~. 세계의 절반도 되지 않는 복징산 왜 자꾸 줄이나 국회의원 월급도 줄여요~ 직장인 세금은 봉인가요. 고소득자 세금은 뻥이야. 서민들은 지구를 떠나라. 송아지 출산 무조건 30만원. 우리 셋째 고작 20만원. 둘째는 아예 한숨만 나와~.(후략)”

7. 감사한 공감상 — 즐거운 불만합창단(장애여성공감 조직)

장애여성공감은 장애를 이유로 분리되어 있는 여성들의 문제를 알리고 동등한 사회구성원으로서 권리를 찾기 위한 운동을 펼치고 있는 단체다. 장애여성이 불만을 이야기하면 세상은 ‘꼬였다’고 말한다. 하지만 공감은 장애인을 고려하지 않은 세상에 정당한 불편함을 터뜨리는 거라고 항변한다. 불만합창을 통해 불만을 단순한 외침을 넘어 세상을 바꾸는 큰 메아리로 만들고 싶다는 장애여성 ‘마녀들’. 모든 구성원이 연극,퍼스먼스 활동을 하고 있는 팀답게 폭발적인 무대매너를 보여줬다.

”?”

“♬ 쌀까 말까 참을까 말까. 장애인 화장실 찾아 참고 참았어. 방광염이래. 병원에선 진료거부. (웅성웅성, 장애인 화장실 찾아갔더니 왜 청소도구함이야? 찾아갔는데 글쎄 휠체어도 안 들어가는 거야. 근데 왜 남이 말할 때 안 듣는 거에요. 근데 군자역 엘리베이터는 너무 불만이야.) 이동권 투쟁때였어. 지하철 40분 연착. 우리 땜에 늦었다하네. 쓰레기래 장애인 쓰레기래. 승강기 설치되니 먼저들 타시네. 휠체어 장애인은 언제 타라고 야 간신히 타고 나왔는데 턱이 높아. 장애인 콜택시 왜 문자접수 안 받는 거야. 분위기 있는 카페도 턱때문에 못 들어가. 턱! 턱턱턱턱턱(아이고 숨차) 너무나 턱턱턱!(후략)”

8. 희망씨앗상 — 서울 멋대로 불만합창단(희망제작소 조직)

불만합창단 누리집을 통해 온라인으로 모집했다. 고등학교 1학년 학생부터 60대 할머니까지 다양한 세대와 활동 분야를 아우르는 단원을 구성되었다. 9월부터 5차례 정기모임 통해 불만을 가사로 만들고 노래를 만들었다. 구성원 모두가 노래에는 일가견이 있다고 자부하는 팀. 밴드 뜨거운 감자의 김C가 노래 선생님을 맡아주었다.

”?”

2008 사회창안주간, 또 하나의 계기

처음으로 열렸지만 불만을 토로할 통로가 한정돼 있던 때문인지 ‘2008 불만합창 페스티벌’은 시민들의 큰 호응 속에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이번 불만합창 페스티벌이 온 사회에 ‘불만합창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불만이 축제화 되어 마구 소통된다면, 그 축제가 세상을 바꾸는 문화적인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2008 사회창안주간’은 불만합창 페스티벌을 끝으로 ①사회창안대회 ②사회창안 국제회의 ③불만합창단 페스티벌로 이어지는 4일간의 일정을 끝마쳤다. ‘사회창안주간’ 행사는 시민들의 참여가 어떻게 제도 속에 녹여질 수 있는지, 문화적으로 표출될 수 있는지, 조직적으로 구성될 수 있는지 모색해보는 자리였다. 모쪼록 이번 행사가 ‘시민이 세상을 바꾼다’는 의식을 한뼘 더 늘린 계기가 되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