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문화유산 보존과 활용이 폐광 지역을 살린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 너에게 묻는다

뜨거운 ‘연탄의 시대’가 저물면서 사북, 태백, 영월 등 우리나라 대표적인 광산 지역은 폐광이 속출하며 급격한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경제활동 인구의 대다수를 이루던 광부들이 떠나면서 사북과 태백은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지역이다. 1995년 ‘폐광지역개발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지역을 살린다는 명목으로 사북에 카지노 산업이 들어선 지 14년이 흘렀다. 과연 바람직한 해법이었을까.

산업문화유산연구소(소장 이용규)는 그동안 사북에서 카지노 같은 단일 산업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폐광지역의 산업문화유산을 기록하고 보존하고 활용하는 지역재생 방안을 제안해 왔다. 희망제작소 뿌리센터 전 선임연구원이었던 이용규 소장의 인터뷰를 통해서 사북, 태백 지역의 현황을 들어보자.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역사가 아니다

희망제작소(이하 ‘희망’) : 사북에는 언제, 어떤 계기로 내려오셨나요?

이용규 산업문화유산연구소 소장(이하 ‘이’) : 2011년에 왔습니다. 사북에 오면서 동시에 산업문화유산연구소를 설립해서 활동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내려오기 전부터 사북지역 산업유산에 관심을 갖고 꾸준히 지역을 찾았지만 외지인으로서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외지인이 지역 산업유산에 대한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봤자 역부족이라는 걸 알았어요. 일주일이 멀게 각종 유산들이 철거되고 사라지고 고철로 팔리는 걸 막을 수 없더군요.

지역사람들은 평생을 살면서 항상 봐왔던 것들이라 기록하고 보존해야 할 유산이라는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이는 무조건 지역사람들만 탓할 수는 없는 문제입니다. 이곳 폐광지역이나 전국 어디를 가도 마찬가지지요. 과거 유산은 관심의 대상에서 벗어난 무한 속도의 시대니까요. 폐광지역은 아직 개발이 덜 됐다며 애쓰지 말라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과거유산에 대해 관심도 보이고 철거되는 곳이 있으면 저한테 미리 얘기를 해주거나 막을 수 없으면 철거하기 전에 기록할 수 있는 시간이라도 허락해주게 되었어요.

이용규 (산업문화유산연구소 소장)
이용규 (산업문화유산연구소 소장)

희망 : 산업문화유산연구소는 ‘폐광지역의 산업유산들을 기록, 수집, 보존, 정리, 활용하는 일’을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며,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역사가 아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역사를 매순간 기록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하지만 중앙 중심의 역사, 영웅 중심의 역사도 의미가 있지만 알려지지 않는 민초들의 이야기, 한때는 당당했고 자랑스러웠지만 첨단(High Tech)에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는 구 산업(old industries)들에 대해 조사, 기록하는 것도 또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런 분야를 산업고고학(industrial archaeology)이라고 합니다.

폐광지역에서는 산업문화유산을 활용해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습니다. 훌륭한 관광자원으로 변모시킬 수 있고 동시에 주민에게는 한때 지역을 대표하던 산업에 대한 자긍심도 심어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동안 산업문화유산을 더럽고 낡은 것들로 취급하면서 마치 도시의 미관을 해치는 흉물로 간주해왔습니다. 산업유산을 보전하기 위한 각종 제도 또한 아직까지 미흡하기만 합니다.

산업문화유산 연구소가 궁극적으로 하려는 것은 철거, 건설 위주의 지역재생보다는 보전을 통한 지역재생이 더욱 중요하며 훌륭한 수단임을 널리 알리는 것입니다.

1964년부터 38년간 운영하다 2001년 10월에 폐광된 삼척탄좌 시설을 활용해서 문화예술단지로 되살린 삼탄아트마인
1964년부터 38년간 운영하다 2001년 10월에 폐광된 삼척탄좌 시설을 활용해서 문화예술단지로 되살린 삼탄아트마인

단일 기업이나 자원에 의존하지 않는 지역재생 정책이 필요

희망 : 비슷한 폐광지역이라도 사북과 태백지역은 어떤 차이가 있나요?

사북과 태백지역은 폐광의 타격을 가장 심각하게 받은 곳입니다. 폐광의 아픔이라는 공통의 역사인식을 갖고 있으나 지리적으로는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영서와 영동으로 구분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또한 사북지역은 읍 단위이면서 더 이상 광산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태백은 시 단위이면서 여전히 가행광산(석공 장성광업소)이 남아 있는 곳입니다.

사북은 카지노 여파로 인한 각종 유해업소가 난립하는 등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곳이지만 태백의 경우 그 여파가 좀 덜한 곳이자 강원랜드 직원들이 상당수 거주하고 있는 곳입니다. 하지만 태백은 오투리조트 문제로 지금 심각한 재정난을 겪고 있고 이로 인해 스키장도 올해는 문을 열지 않습니다.

희망 : 쇠락하는 폐광지역을 살리겠다는 취지로 사북에 강원랜드 카지노가 들어선 지 14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카지노가 지역에 미친 영향은 무엇인가요? ‘카지노로 지역을 살린다’는 최초의 취지는 정말 실현이 되었나요?

이 : 강원랜드는 폐광지역의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함과 동시에 대체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세워진 공공기관입니다. 1995년 주민운동에 의한 ‘폐광지역개발지원에 관한 특별법(폐특법)’이 만들어지고 이 법에 따라 강원랜드라는 카지노 산업, 도박 산업(gambling industry)이 지역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강원랜드가 과연 성공할지는 당시 정부도, 폐광지역도 반신반의했습니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과 달리 설립과 동시에 승승장구하게 됩니다. 빛이 있는 만큼 그림자도 생기기 마련이지요. 도박 중독자와 도박으로 인한 자살자가 속출하게 되고 각종 전당사와 모텔, 룸살롱 등 강원랜드 고객을 대상으로 한 업체들이 우후죽순 생겼습니다. 초창기에 불어 닥친 갑작스런 호황으로 부동산 가격이 오르고 각종 건설 붐이 일면서 일부 지역 토호들은 큰돈을 만지게 됐습니다. 갑자기 돈을 벌게 된 주민이 강원랜드를 출입하고 카지노에 빠져들게 되면서 지역사회에 문제가 되자 강원랜드에서는 지역주민의 출입을 막게 됐습니다.

지금 지역의 가장 큰 문제는 단일 기업에 의한 단일 도시의 성격이 탄광시절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는 것입니다. 광산이 문을 닫자 지역도 파산을 하게 됐습니다. 강원랜드가 위기에 봉착하면 지역 역시 흔들릴 수밖에 없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가장 큰 책임은 정부입니다.

폐광지역에 대한 지역정책(regional policy)은 그때나 지금이나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정부도 시인하고 있는 문제입니다. 지금 지역에서 강원랜드는 지역의 효자가 아니라 정부의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교육은 파탄 나게 됐고 의료시설 하나 변변한 게 없습니다. 주거환경도 그다지 나아진 게 없습니다. 인구는 지속적으로 감소해서 조만간 진짜 위기가 닥쳐오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하지만 정부는 국세와 기금 등으로 강원랜드 연매출의 50% 가까이 거둬가고 있습니다. 폐특법이 2025년 종료됩니다. 한시법이니까요. 이후 어떤 대안을 마련할지 정부와 강원도, 지역 모두가 이제는 해법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지역의 독특한 자원과 자산을 살려야

희망 : 폐광지역의 지역재생에서 가장 중심이 되어야 할 것(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이 : 폐광지역은 연구자 입장에서 아주 흥미로운 지역입니다. 가끔 섬(island)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자신들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는 자생단체가 뿌리 깊은 곳인 반면 외부에 대해서는 상당히 배타적인 곳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문제는 우리가 해결하니 우리가 필요할 때 도움을 요청하면 된다는 생각이 많습니다. 여기에는 역사적 배경도 있습니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지역주민의 힘으로 정부와 상대하여 특별법을 쟁취했으니까요. 이러한 것들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역이 지속가능하게 발전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인구입니다. 하지만 인구정책만큼 어려운 것도 없습니다. 장년, 노년은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데 반해 유소년과 청년은 지속적으로 유출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교육, 의료, 정주환경 개선을 요청하고 있지만 정부는 아직까지 뚜렷한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희망 : 앞으로 이 지역이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제가 지역발전 전문가는 아니지만 강원랜드에만 의존해서는 안 됩니다. 강원랜드는 폐광지역뿐 아니라 강원도에서 가장 큰 기업입니다. 강원랜드가 기침하면 지역은 폐암에 걸릴 정도로 허약한 상태입니다. 얼마 전에 한 과학기사를 보니까 달 주위를 수십 억 년간 돌고 있는 지름 2m짜리 위성이 발견됐다고 합니다.

지역도 그렇습니다. 비록 인구도 적고 작은 동네이지만 자기 중력을 갖고 있다면 흡수되지 않고 본연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자기 중력을 잃어버리는 순간 지역은 강원랜드에 흡수되고 맙니다.

지역이 자기 중력을 유지한다는 말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자신의 역사, 자신의 정체성,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자신만의 독특한 자원, 자산을 지키고 살리는 일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산업유산이라 보는 것입니다.

희망 :산업문화유산연구소의 앞으로 계획은 무엇입니까?

이 : 현재 구술사(oral history) 채록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올 연말 두 번째 결과물이 나옵니다. 이 사업은 광부의 이야기, 시집 온 며느리의 한 맺힌 이야기, 외지에서 들어와 갖은 고생을 겪은 촌로의 이야기 등 지역 민초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입니다. 이 결과물이 차곡차곡 쌓이면 지역을 이해하는 데 가장 밑바탕을 이루는 기초사료가 될 것입니다. 더불어서 산업고고학이나 유럽의 폐광정책에 대한 번역과 소개를 지속적으로 할 예정이고, 본래하고 있던 산업유산에 대한 기록, 수집도 꾸준히 진행할 것입니다.

인터뷰 진행 및 정리_이원혜(콘텐츠센터 팀장 topcook@makehop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