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디자인 도구를 경험하기

희망제작소 연구원들은 시민들과 함께 자주 워크숍을 엽니다. 여러 사람과 머리를 맞대고 아이디어를 발산하기 위해, 지역 내 문제를 정의하고, 대안을 찾기 위해, 혹은 주민들 스스로 우리 지역에 필요한 사업을 발굴하고, 제안서를 작성하기 위해 다양한 워크숍 기법을 활용해 논의를 이어가는데요. 지금까지 청년, 시니어, 시민, 활동가들을 만나며 진행한 워크숍 경험을 바탕으로 <희망드로잉 26+ 워크숍 활용설명서>(바로보기)를 펴내기도 했습니다.

이승호 울산과학기술원 교수

이처럼 희망제작소 연구원들은 현장 중심으로 워크숍을 기획하고 진행해왔지만, 여전히 궁금합니다. 워크숍 참여자들이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인지, 그리고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는 과정을 어떻게 설계하는 게 좋을지 말입니다. 이러한 연구원의 고민을 덜어내고,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희망제작소에서는 ‘공육위원회’가 설치·운영되고 있는데요. 공육위원회에서는 지난 8월 22일부터 23일까지 양 일간 디자인싱킹 교육 프로그램을 열었습니다. 서울과 헬싱키의 디자인 스튜디오, 핀란드혁신기금 시트라에서 일하고, 현재는 울산과학기술원(UNIST)에 재직 중이신 이승호 교수와 함께 한 시간을 전합니다.

이승호 교수가 희망제작소 연구원에게 보낸 이메일 갈무리

광고메일? 희망제작소의 2년 후는!

교육 프로그램이 열리기 전 한 통의 메일을 받았습니다. 사무실에 출근하자마자 받은 열어본 편지함에 도착한 메일. 이승호 교수님이 보낸 메일이었습니다. 이 교수는 이번 교육에서 워크숍 기획자가 아닌 워크숍 참여자가 된 연구원들에게 작은 미션을 제시했는데요. 바로 ‘희망제작소의 2년 후’를 상상하고, 이를 사진을 찍어 해시태그를 달아서 보내라는 요청이었습니다.

이승호 교수의 강의자료 갈무리

어떤 이미지를 보냈는지는 비밀이었던지라 실제 워크숍에 출력된 이미지들은 그야말로 각양각색이었습니다. 나무, 얼음, 창립선언문 문구, 돌담길, 바다, 얼음 등 생각지 못한 이미지였는데요. 이러한 사진을 펼쳐놓고 그룹별로 희망제작소의 어떤 미래와 연결되는지를 유추했습니다.

그런데 각 사진에 대한 의도와 해석은 달랐습니다. 사진을 찍은 당사자와 사진을 해석하는 참여자 간에 생긴 간극을 두고 이 교수는 ‘창의적 오해’가 발생한 지점이라고 말했는데요. 일례로 희망제작소가 때론 얼음처럼, 때론 물처럼 외부 환경에 유연하게 움직였으면 하는 바람에서 ‘얼음’을 찍었는데, 다른 참여자들은 ‘답답하다’, ‘속 시원한 제작소’ 등을 떠올린 것처럼 말이죠.

이 교수에 따르면 사전과제는 참여자들이 주제에 좀 더 민감할 수 있도록 하고,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고, 이해하고, 아이디어를 생각해내는 과정으로 이어지면서 영감을 떠올리는 단초가 된다고 말했습니다. 워크숍을 진행할 때 아이스브레이킹이 중요한 것처럼 말이죠.

유럽, 남미, 일본 등에서 시도되는 정부 서비스 디자인

이어 이 교수는 세계 각국에서 디자인 주도가 두드러지는 흐름을 전했습니다. 여러 나라에서는 문제와 해답을 찾는 과정에서 ‘디자인적 사고’를 적용하는 데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먼저 핀란드에서는 2002년부터 2018년까지 덴마크 3개의 행정부와 1개의 지자체가 함께 공공디자인 서비스에이전시 ‘마인드랩’을 만들었고요, 2009년부터 2013년까지 핀란드 헬싱키디자인랩을, 이어 디자인 주도 도시를 선언하며 행정부 정책 영역에서 ‘서비스 디자이너’와의 협업을 강화해나가고 있습니다.

https://www.lab.gob.cl 갈무리

칠레 정부에서는 지난 2014년부터 서비스와 정책혁신을 위해 ‘Laboratorio de Gobierno’(바로가기)를 설치했습니다. 급격한 경제성장과 시민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혁신적인 서비스와 정책개발을 목표로 단지 예산의 편성이 아닌 일하는 방식의 변화를 꾀하는 것입니다.

https://openpolicy.blog.gov.uk/about/ 갈무리

영국에서도 지난 2014년부터 내각 산하에 디자인 주도 혁신기구인 폴리시랩(Policy Lab, 바로가기)을 출범해 사용자 중심의 정책개발을 목표로 20여 개의 대형 프로젝트를 진행 중입니다. 미국에서는 지난 2015년 디자인 혁신기구 ‘The Lab’을, 일본 정부는 지난 2017년 서비스의 디지털을 위해 서비스 디자인을 택한 바 있습니다.

이 교수는 핀란드에서 디자인 관련 수업을 진행할 때 학생들이 진행한 프로젝트를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이른바 농림부와 함께 한 ‘공감 디자인(empathic design)’인데요. 핀란드 농부들은 유럽연합(EU)의 보조금을 받기 위해 서류를 제출해야 하는데, 이를 제때 제출하지 않아 문제가 됐다고 합니다. 또 온라인으로 제출해도 되는 서류를 직접 수기로 작성하는 경우가 많아 오류가 종종 발생하기도 했는데요.

학생들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농부 인터뷰, 현장 탐방을 통해 농부에게 보조금 수령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직접 사무실을 방문해 수기 작성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또 농업진흥청 담당자들과 공동 디자인 워크숍을 진행한 결과 서류 내 중복된 항목을 합치거나, 간결하게 설명 문구를 추가하는 등 농부들이 손쉽게 기재할 수 있도록 개선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퍼소나’기법, 생생한 이야기 뒤 남은 것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문제의 당사자와 이해관계자 중심으로 해결방안을 찾을 때, 다양한 디자인 도구를 활용하는 게 도움이 됩니다. 디자인 도구 중 하나는 ‘퍼소나’(persona) 기법이 있습니다. 호주 캔버라시 특별자치정부가 씽크플레이스, 주민공동체기관 등과 함께 한 ‘가족목소리 듣기 프로젝트’인데요. 복지 지원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한 일환으로 저소득 가정, 빚을 진 가정, 장애우가 있는 가정 등 총 9개 가정을 인터뷰해 이를 6개의 퍼소나(돈나 가족)를 만들었습니다.

실제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돈나 가족’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복지시스템이 가닿지 못하는 구멍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교수는 “‘퍼소나’라는 디자인 도구를 활용해도 관찰하고자 하는 맥락의 범위와 규모를 프로젝트의 성격에 맞게 조절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승호 교수가 펴낸 <새로운 디자인 도구들>(바로가기)에서는 관찰도구, 대화도구, 협력도구, 해석도구, 활용도구뿐 아니라 디자인 도구의 원리와 맥락을 파악하는 과정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시민들을 만나 아이디어를 발산하거나, 문제 해결 방안을 찾을 때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 글: 방연주 경영기획실 연구원 | yj@makehope.org
– 사진: 희망제작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