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살리는 일을 매일 하면서 살고 싶어요.” – 칩코(남원)

‘지방소멸’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을 정도로 코앞에 위기가 닥쳐있습니다. 전국 시군구 10곳 중 4곳이 소멸위험지역이라니, 과장된 말도 아닌 거죠. 단박에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지방소멸’ 앞에 기회를 발견하는 청년들이 있습니다. 사라지는 ‘소멸’ 속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하고, 재해석하고, 삶의 터전을 일굽니다. 희망제작소는 청년의 지역살이를 살펴보는 ‘로컬다이버’ 인터뷰 시리즈를 전합니다.

프랑스 남부의 작은 마을에는 매주 축제가 열리고, 바라는 지향점을 위해 같은 목소리를 내고, 이웃과 함께 취미를 나누는 동아리가 있다고 한다. 지역 안에 활기가 가득하다고 한다. 왜 우리가 서 있는 이 땅의 지역은 늙고, 나지막하고, 재미없기만 할까. 다들 젊고, 활기차고, 재미있는 곳을 찾아 떠난다. 그런데도 지역을 떠나는 청년들을 대신해 지역으로 향하며 그 질문에 답을 찾는 청년들이 있다.

공동체 중심의 카페를 열어 시도해보기도 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깨닫고 이루어보고자 산골짜기로 가보기도 한다. 지리산 산골짜기, 남원 산내면에서 이런저런 경험을 거쳐 내가 서 있는 이곳에서 가치를 찾는 칩코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 만나서 반갑습니다. 날씨가 상당히 추워요. 남원의 겨울은 어땠나요.
저는 남원 산내면에 살고 있어요. 산속에 둘러싸인 마을인데, 엄청 추워서 집안에서도 옷을 껴입어야 할 정도예요. 작년에 처음으로 산내 겨울을 맞이했는데 정말 추웠어요. 겨울을 경험하고 나니 더 무섭더라고요. 이런 걸 보면 지역살이에 잘 적응했는지에 대해선 물음표기도 해요.

칩코 _사진출처: 하무

– 지역에 어떤 계기로 관심을 가지게 되었나요.
대학교 4학년 때, 대부분 ‘졸업 후 취업’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편인데 저는 아니었어요. 평생 ‘돈을 벌어야겠다’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어요. 아르바이트하는 것도 싫어했고요. 대신 글쓰기를 좋아하니 공모전이나 대회에 나가서 상금을 타면서 용돈 벌이를 하곤 했어요. 또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옷을 사는 것에 욕심이 없는 편이었고요. ‘어떻게 돈을 벌지 않고도 잘 살지?’하고 고민을 하다가, 식량을 자급할 수 있는 농사에 관심이 갔어요. 마침 비건을 실천하고 있기도 했고요.

– 일전에 지역살이 경험이 있었나요.
제 고향은 인천인데, 인천은 상대적으로 지역 정체성이 약해요. 서울과 가깝다 보니 놀고 싶으면 서울로 가면 돼요. 인천은 ‘서울에 못 간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인식이 있을 정도예요. 인천에는 재미있는 게 없다고 생각하고 살았죠. 가끔 지역에서 전학 오는 친구들은 본인 출신 도시의 인구수며, 지역 출신 작가며 다 알고 있는 걸 신기하게 바라보는 정도였어요.
기회가 생겨 프랑스 남부에서 1년 정도 살았어요. 그런데 지역인데 재미있더라고요. 주말마다 축제가 있고, 다양한 시위가 열리고, 동네 벽면에 마을 사람들끼리 운영하는 여러 동아리 전단이 붙여져 있었어요. 아무 연고도 없이 간 지역이지만 놀기에 너무 좋았어요. ‘지역의 소도시인데 이렇게 재미있을까? 인천은 왜 재미없었을까?’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수도권 위주로 집중된 인프라가 이유라는 걸 깨달았어요. 프랑스에서 돌아오면 꼭 하고 싶었던 게 마을 공동체 중심의 공간을 만드는 것이었어요. 그걸 반드시 인천에서 해야겠다고 느꼈고요.

– 공동체 공간을 준비하면서 청년정책 지원을 받을 수 있었나요.
청년창업 정책 지원을 받으려고 살펴보니 서울엔 다양하게 많았지만, 인천은 지원금도 적고 사업 종류도 많지 않았어요. 하지만 인천 우리 동네에 하고 싶었기에 마음 맞는 친구들 5명이 모여 카페를 운영했는데, 재정적 문제로 1년 후에 문을 닫게 되었어요.
카페를 그만두게 된 것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어요. 첫 번째는 돈에 대한 부담감이었어요. 그래서 채소를 키워 자급하면 돈에 덜 시달릴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인천은 도시다 보니 얻을 땅이 없고요. 두 번째로는 실내생활의 어려움이에요. 일정한 근무시간을 지키면서 계속 실내에만 머무니 햇살과 바람을 쐬고 싶어 못 견디겠더라고요. 지역에서 농사를 지어야겠다 생각은 했지만, 농사에 대해 아는 게 없었어요. 그렇게 여성농민생산자협동조합인 언니네텃밭 사무국에서 일하게 되었어요.

– 서울에서 일련의 귀촌 준비를 하고 지역으로 갔는데요. 이론과 실기가 다를 수 있는 것처럼요. 그 준비가 실제 지역살이에 도움이 되었나요.
일하면서 농민권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관련 활동도 많이 했어요. 또 그만큼 여성농민이 겪는 성차별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지역살이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도 있었고요. 그러다 남원 산내면에 위치한 ‘문화기획 달’이란 곳에서 발간하는 농촌 페미니즘 월간지를 접하면서 ‘산내’라는 마을에서 벌어지는 ‘미투운동’, ‘쌍년파티’ 등 다양한 활동을 볼 수 있었어요. 막연히 이 마을에 너무 가고 싶었어요. 그러다 청년 지역 유입 프로그램으로 운영되는 ‘청년인생학교’에 입학하면서 지역살이가 시작되었어요. 그런데 학교와 학생 간 성 인지 감수성, 동물권 등 인식 차이로 갈등이 생기면서 학교가 중단되었어요. 다른 지역 공동체에서 이런 고민을 나눴는데 다들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더라고요. 지역에 청년정책이 우후죽순 늘어나면서 청년이 지역에 갔지만 어려움은 아직 존재해요.

📣 더 나은 곳을 찾아 떠나는 청년

– 외지인이 던진 페미니즘, 비건 등 새롭고 낯선 의제가 오히려 지역 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의견도 있었어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희 마을에 생협이 하나 있어요. 생협 바로 옆 조그마한 빵 공장이 있는데 직접 구운 빵을 생협에서 판매해요. 그런데 항상 플라스틱 비닐 포장이 되는 게 아깝더라고요. 그래서 한 번은 포장지를 쓰지 않는 걸 부탁드렸는데, 저희 의견을 반영해주시더라고요. 하루 전날 다회용기를 가져다드리고 저희가 구매하는 양만큼 담아주시는 거로요. 또 청년인생학교 동기들 8명 중 7명이 채식을 지향했어요. 산내는 원래 채식주의자가 꽤 사는 마을이기도 했지만, 신입생들이 온 해에 산내의 카페 세 군데 모두 두유 선택지가 생긴 것은 고무적인 변화였어요.

– 지역소멸은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지역소멸을 체감하나요.
처음 산내면에 왔을 때부터 동기 8명 외에도 마을에 오래 살고 있던 또래 청년들이 있었어요. ‘산내살이가 서울살이보다 바쁘다’고 말할 정도로 항상 누구 생일이니 파티니, 친구들과 모여 자주 놀았는데, 작년부터 친구들이 하나둘씩 산내를 떠나고 있어요. 부동산 계약이 어렵고, 농지를 구하지 못해서요. 그런데 옆 동네 구례에서 청년들에게 숲을 내어주셔서 그쪽으로 많이 빠지고 있어요. 이렇게 청년이 계속 빠져나가면 더 들어올 청년도 없겠더라고요. 저희보다 더 어린 분들이 보시기에, ‘나도 2030이 되면 지역에서 저런 것 할 만하겠다.’ 생각이 들게끔 하는 롤모델이 없으니깐 앞으로 청년은 더 빠져나갈 것 같아요.

– 청년으로서 지원받을 수 있는 정책이 있나요.
전입 시 100만 원을 주고, 집수리비용 500만 원, 이사비용 100만 원과 같은 금전적 지원이 있어요. 복잡하지 않은 절차라 혜택을 본 친구들이 많아요. 구례도 전입신고 시 지원받을 수 있는 혜택이 동일하지만, 지원 조건이 매우 까다로워요. 결혼하고 자녀가 있는 청년에게 가산점, 농업경영체 등록을 하면 가산점 등 조건에 충족되지 않는 부분이 많은 게 한계에요.

4개월간 지리산권을 무전방랑했다. _사진출처: 아영

📣 자연을 닮고자 자연을 방랑하다

– 지리산 방랑단은 어떻게 시작하고 결성하게 되었나요.
공동체에 속할 때 다양한 갈등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인간과 비인간에 대한 경계였어요. 한번은 절(청년인생학교)에 들개 한 마리가 왔는데 개를 쫓아내더라고요. 절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겠지만, 다른 땅 소유주들도 모두 나름의 이유로 개를 쫓아내다 보니, 개가 있을 곳이 위험한 차도뿐이었어요. 그때 ‘비인간종은 어디서 살아야 하나’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고, 저희도 공동체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면서 ‘땅을 소유하는 것’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어요. 땅을 소유하지 않고 지리산을 지켜온 야생동물과 나무들. 지리산을 더 알고 싶어지더라고요. 돈, 땅, 집 없이 사는 야생동물의 모습을 롤모델로 우리도 이렇게 살아보자 결심하고 무전 방랑을 계획했고 그렇게 4개월간 지리산방랑단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위험한 차도 밖에 갈 곳 없는 개를 위한 현수막을 걸었다. _사진출처: 차라

– 다양한 활동을 통해 칩코님이 얻은 것은 무엇인가요.
공동체를 통해 ‘타협’을 배울 수 있었어요. 저는 생태적으로 살고 싶어서 지역에 내려왔어요. 수세식이 아니라 똥을 퇴비화하는 생태 화장실을 사용한다거나, 가스가 아닌 장작불을 떼서 요리하는 등의 생태적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했어요. 하지만 생활패턴이 다른 친구들에게는 제가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적용하기 어려울 수 있죠. 돈과 자원을 절약하기 위해 공동체를 찾았지만, 공동체로 살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라이프스타일을 고집하기 어려운 거예요. 그러다 문득 든 생각이 ‘혼자 잘하면 뭐 하나’ 였어요. 한 사람의 큰 발걸음보다는, 여러 사람의 작은 발걸음이 중요하다는 걸 깨닫고 구성원들과 타협하게 되었어요. 장애가 있는 친구, 혹은 몸이 약해 추위를 많이 타는 친구 등 구성원의 다양성을 가지기 위해선 서로 타협이 필요하더라고요.

– 탈자본에 가까운 활동인데, 칩코님이 그리는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최근 어린 분들이 기후 위기 활동을 하시는 이유가 생존에 대한 문제라고 봐요. 저의 경우만 해도, 10년은 살 수 있는 집이 계약되느냐 문제보다 지구가 당장 내일 어떻게 될지에 대한 불안감이 더 커요. 막연히 먼 미래를 꿈꿔본다면, 모두가 농부가 되면 멋질 것 같아요. 전업농이 되자는 게 아니라, 모두가 자신이 취하는 생명만큼은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면서 살면 좋겠어요. 당장 내일이 불안하더라도 오늘은 오늘의 일을 해야 하니까, 아주 작은 일이라도 생명을 살리는 일을 매일 하면서 살고 싶어요.

-인터뷰 진행 및 정리: 정보라 미디어팀 연구원 bbottang@makehope.org | 방연주 미디어팀 연구원 yj@makehop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