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적 삶으로 사회를 디자인하다


편집자 주/ 11월25일 저녁 7시반, 지난 한 달간 꾸준히 진행돼온 소셜 디자이너 스쿨(이하 SDS)의 마지막 수업이 시작됐다. 그래서일까. 강의실에는 평소보다 많은 학생들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이날 수업은 고려대학교 교수이자 조치원 신안1리 이장인 강수돌 선생님이 강연해주었다. 교수답지 않게 이장을 하고 있다는 그에게서 교수답게, 이장답게 사는 삶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 근원에 있을 인간다운 삶은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소셜디자이너스쿨이라는 이름이 참 멋있어요. 여러분이 속해있는 각 분야에서 부분적인 운동을 하지만, 이런 소셜디자이너스쿨에서는 총체적인 운동, 장기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요. 그런가요?”

내가 아닌 우리, 이 사회의 공공성을 고민하며 사는 사람들에게는 진정한 행복을 찾아가는 힘이 있다. ‘인간답고 사람냄새 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열심인 그이기에, 서글서글한 눈매에 넉넉함이 가득 담긴 모습에서 강한 열정의 에너지가 느껴졌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물음, 무엇이 아닌 어떻게

어렸을 때 많이 들었던 말 중에 ‘너 무엇이 되고 싶니?’라는 질문이 있다. 어른이 된 우리는 다시 아이들에게 이 질문을 되풀이해 물어본다. ‘무엇이 되고 싶니…?’

강수돌 교수는 이 질문을 하는 어른들이 은연중에 ‘사다리꼴 구조’를 생각한다고 말한다. 무한경쟁의 사회에서 자기 자식들은 사다리 질서 아랫부분이 아닌 더 높은 곳, 적어도 자신들보다는 한 단계 높은 곳에 위치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생각하는 높은 곳에 위치하는 방법은, 학교에서 1등하는 것이다. 대학도 서울이나 해외, 그것도 아이비리그를 꿈꾼다는 것. 이런 것을 강요받으며 공부하는 아이들은 어떤 공부가 내 인생에 꼭 필요한지 생각하지 않고 그냥 시키는 공부, 부여받은 공부를 한다. 그리고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은 결국 수업을 포기한다. 이런 사회, 이런 환경에서 아이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할까? 어떤 꿈을 꿀 수 있을까?

그는 공부 잘 해서 좋은 대학가고, 졸업해서 직장에 가도 바뀌는 것은 없다고 말한다. C→B→A로 사다리꼴의 아래쪽에서 위쪽으로 올라가느라고 여전히 힘들다. 이렇게 힘들게 노력해서 더 높은 곳에 도달하면 남들이 누리지 못하는 권력을 누리고, 내 자식들에게는 물질적으로 유복한 환경을 주며 나만큼 성공할 수 있게 돕는다. 그렇게 살다가 평안하게 죽는다. 강수돌 교수는 이런 삶 속에는 진정한 내면적 만족이 비어있다고 지적했다.

“로또 1등한 사람들이 행복하다는 이야기 들어보셨습니까? 못 들어보셨죠? 대체로 재산싸움이거나 도피로 끝나요. 그 중에 행복한 사람은 가급적 많이 나누어준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무엇’이란 결과물과 목적만을 우선시하고 가르친다. 그 ‘무엇’만을 바라보며 달려온 사람들은 과연 행복할까? 로또에 1등하는 사람이 아닌, 1등으로 당첨돼서 받은 상금을 ‘어떻게’사용해야 잘 사용하는 것인지 고민하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쳐야 한다. 강수돌 교수는 말한다. ‘무엇이 되고 싶니?’가 아니라 ‘네 꿈이 뭐니?, 어떻게 살고 싶니?’란 물음이 되어야 한다고.


[##_1L|1125188778.jpg|width=”133″ height=”109″ alt=”?”|강연 중인 강수돌 교수._##]모든 생명은 연결되어 있다

벌레를 보았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일반적이다. 징그럽다며 죽이는 것이 보통의 모습이다. 벌레를 보면서 ‘징그럽고 하찮은 생물이지만 세상 어딘가에선 꼭 필요한 존재로서 자신만의 일을 수행할거야. 그래, 죽이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강수돌 교수는 우리의 이런 행동에 일침을 놓는다. 그는 대개 사람들이 벌레를 때려잡으려는 것은 우리 속에 있는 악하고 흉한 부분을 발견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끊임없이 감추고 회피하려 했던 부분이 벌레를 보자마자 발견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벌레를 가만두지 못하고 끝내 잡아 죽이려하는 것이라고. 그는 결국 모든 생명은 연결되어 있다고 이야기했다. 이를 위해 지금 우리 사회에선 종교적인 의미를 넘어서 모든 생명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 즉 영성을 회복하는 것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온 우주 만물이 하나의 생명체라는 의식이 가장 생태적인 마인드이고, 그것이 영성의 핵심이라는 것.

다들《시애틀 추장의 편지》에 대해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1850년경 워싱턴의 미국 정부가, 아메리카 원주민으로부터 강제로 땅을 사려고 했다. 이때 스쿼미시 부족의 시애틀 추장은 워싱턴에 있는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냈다.

“총까지 들고와 땅을 팔라고 해서 팔긴 팔겠지만, 나는 너희가 이해가 안 된다. 강과 산과 들과 바람과 숲과 바위와 공기 모두 우리의 부모형제와 같은데 어떻게 팔 수 있겠는가? 우리가 땅의 일부이듯 당신들도 이 땅의 일부다. 이 땅은 우리에게 소중하며, 당신들에게도 소중한 것이다.”

이 편지 속에는 ‘사람과 자연은 원래 한 몸’이라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오랜 믿음과 자연 앞에서 겸허한 그들의 영혼이 담겨져 있다. 강수돌 교수는 이런 마인드를 복원하려는 운동이 전 세계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시애틀 추장의 편지에 담긴 내용이야말로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 서로 더불어 사는 삶의 핵심이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삶을 원탁형 구조로 정립해야한다고 그는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강수돌 교수가 말하는 ‘영성을 회복시키는 것’, 즉 생태적인 삶을 이해하고 실천해야 한다.



마을의 뿌리 의식이 세계를 구한다

“논밭이 없어지고 그 땅이 개발되고 있는데, 우리 아이들은 컴퓨터 게임만 하고 있는 것이 안타까워요.”

강수돌 교수는 생태적인 삶을 위해선 우리 모두가 지역사회에 눈을 돌려야 한다고 말하며 그것의 첫 번째 실천이 뿌리 의식을 찾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즉, 모든 생명의 뿌리가 ‘땅’이라는 것. 그렇기 때문에 우리 각자의 정신세계가 땅을 토대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고 했다.

뿌리 의식을 지키지 못하고 있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끔찍하다. 그는 한 아이가 다른 아이를 몇십 층에서 떨어뜨린 일, 화가 난 아빠가 재떨이 던지듯 아이를 4층에서 던져 죽인 일 등이 일어나고 있는 근본적인 원인은 ‘삶의 과정에 있어야 할 사람 냄새의 부재’라고 말했다. 그는 비스마르크가 국가주의를 내세웠지만 이는 곧 진보운동을 없애고 풀뿌리를 압살한 것과 같다고 말했다.

“우리 집 좀 봐달라고 부탁하면 옆집 사람이 ‘세콤’처럼 집을 지켜요. 부침개 하나도 같이 먹고, 경조사도 돕고… 크게 봤을 때, 서로 돕고 살아가는 마을이 있다면 그게 국가복지시스템이에요.”

강수돌 교수는, 우리가 공동체적인 지역, 마을, 촌락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마을이 세계를 구한다』라는 간디의 책을 언급했다. 이 책은 간디가 마을에 대해 한 말들만 모아서 엮어 놓은 것이다. 그는 익명성의 사회에선 남이야 죽든 말든 농약을 팍팍 뿌린 때깔만 좋은 채소를 시장에 내놓는다고 지적했다. 결국 ‘마을이라는 단위, 뿌리 의식을 살리는 것’이 세계를 구하고 삶의 희망을 만들어가는 길이라고 말했다.


[##_1M|1294666778.jpg|width=”400″ height=”266″ alt=”?”|질의 응답 시간._##]

셀프디자인으로 사회를 변화시킨다

강수돌 교수는 생태적인 삶을 실현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민중무역’의 방식을 본받고 ‘밥상혁명’을 하며 이를 위해 개개인이 스스로를 ‘셀프디자인’해야한다고 강조했다. ‘민중무역’의 방식을 본받기 위해 필요한 것은 두 가지. 자립자취와 상부상조이다. 세계 각 나라들은 서로 형제자매의 관계를 맺어 석유, 의료진 등 서로 남는 자원은 나눠가지며 삶의 문제를 공동 해결해야 한다. 또한 각국은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자립도를 60% 이상으로 높여야 한다고 했다. 그는 발제문을 통해 지구 자원의 한계나 지구 생명체의 한계를 직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간디 선생 말대로 인간의 필요를 위해서는 지구가 충분하나, 탐욕을 위해서는 지구가 몇 개가 되어도 부족하다.”


“유기농 음식 6개월만 먹으면 돈이 절약된대요. 그렇게 몇 년이면 지구가 건강해져요.”

그는 밥상혁명을 위해서는 우선 유기농 음식과 지역에서 난 농산물을 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유기농 음식을 6개월 이상 먹으면 병원비가 줄고, 병원에 왔다갔다하는 시간이 줄어 에너지도 절약할 수 있다고 했다. 또한 농산물 가격은 전혀 비싸지 않다고 말하며, 비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직접 지어봐야 안다고 일갈했다. 자신이 작은 텃밭에서 콩을 키워봤는데, 밭에 콩 심고 까불고 하는데 사용한 시간과 정성에 비해 돈으로 따진 가치가 너무 적다고 했다. 그 많은 시간을 보내 콩을 키웠는데 시장에서 살 수 있는 것으로 환산하니 만원어치의 분량밖에 나오지 않았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유기농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 대한 대우도 높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더 적게, 더 느리게, 더 낮게 해서 살아가는 방식을 배워야 해요.”

우리는 지금까지 ‘대량 생산, 대량 소비, 대량 폐기’의 잘못된 생활 방식에 익숙해 왔다. 하지만 이것이 지구를 죽게 하고 생태학적 삶을 위협하고 있는 지금, 강수돌 교수는 더 적게, 더 느리게, 더 낮게 살아가는 방식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에너지를 적게 쓰고 자원을 적게 쓰며 너무 배불리 먹지 않는 법을, 사회적으로는 대안 에너지를 개발하고 그것의 사용을 촉진하며 유기농 농업을 장려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일이 실현되도록 하기 위해 개인들은 사회 변화가 가능하도록 촉구하는 운동을 벌여나가야 하며, 또한 지역 차원에서는 마을 공동체가 그렇게 되도록 새로 디자인하고 새로 채워나가야 한다고 했다. 이처럼 강수돌 교수는 개인의 변화가 사회의 변화를 이끌 수 있다며 ‘셀프디자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자율적인 생태공동체가 있어야 한다

도시적인 요소들과 시골의 전원적인 요소들이 어우러져서 여유를 느끼면서 사는 삶의 시스템. 즉 대량 생산, 대량 소비가 아니라, 조금 적게 일하고 많이 향유하는 삶을 꿈꿀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강수돌 교수. 그는 소셜 디자인의 차원에서 상상하자면, 자율적인 생태공동체들이 전국 방방곡곡에 만들어져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도시 이장, 통장, 동 대표 역할을 하면서 혼자 사는 것이 아닌, 공동체적인 관계를 만드는데 앞장서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강수돌 교수는 이장으로서 그가 하고 싶은 일을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장 이상의 권력을 바라지도 않고 바람직하다고 생각지도 않는다. 하지만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이런 것이다. 첫째, 주민들이 가진 재주나 역량을 좀 더 생산적으로 엮어내는 일이다. 또 배 농사나 복숭아 농사를 짓는 분들이 인근 도시 소비자들과 직거래를 하도록 만들고 싶다. 둘째,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로 유기농 식당이 운영되면 좋겠다. 셋째, 아이들 글쓰기 교실이 발전해 마을도서실을 만들고 마을 문화의 구심이 되도록 만들면 좋겠다. 넷째, 이제 흉물로 변한 시멘트 덩어리의 1000세대 아파트 단지를 허물고 생태 공원이나 대학 문화 타운을 만드는 일이다. 다섯째, 인근 대학생들이 졸업한 이후에도 우리 마을을 포함한 인근 지역에 머물며 살 수 있는 여러 삶의 기회를 만드는 일이다.”

우리가 꿈꾸는 삶. 모두가 꿈꾸는 삶은 ‘행복한 삶’일 것이다. 강수돌 교수는 사회를 새롭게 디자인하는 이유도 궁극적으로 행복해지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지위의 높고 낮음에서 오는 상대적인 행복이 아닌, 자신의 내면이 평안한 것이 진정한 행복이라고. 그는 행복한 삶을 위한 우리의 행동을 당부하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그런 행복은 은행이자랑 달라요. 모아서 찾는 행복이 아니라, 매일 찾아야죠. 옛날에는 행복하려면 비장해야했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마지막 행복도 좋아야 하지만, 과정도 행복해야 해요. 매일 행복한 삶을 살면서도, 사회에 대한 꿈을 잊지 말아요.”
강수돌 교수의 강연을 마지막으로 10월21일부터 시작한 제2기 SDS의 막이 내렸다. 대안적 사회에 대한 꿈을 키우고자 모였던 40여명의 수강생들은 과연 그 꿈들에 어떤 색을 입혔을까. 그동안의 강연을 바탕으로 저마다 키운 꿈의 부피와 넓이와 깊이를 발표하고 함께 이야기하기 위한 자리로 종강워크숍이 열린다. 이번 주말, 서울근교로 떠나는 1박2일간의 시간동안 수강생들이 꿈꾼 사회는 어떤 것인지, 그런 사회를 어떻게 디자인 할 것인지, 40여개의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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