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동북구민 100인은 왜 한자리에 모였나

이곳은 어디일까요?
‘진짜 강북’, ‘서울의 허파’,  ‘개발 제외 지역’,  ‘균형발전의 출발’

“동북4구는 OOO이다”란 질문에 서울의 동북쪽에 위치한 네 구(강북구, 노원구, 도봉구, 성북구) 주민들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같은 서울이지만 동북부는 강남, 강서와 강동과 지역 특성이 뚜렷하게 다릅니다. 불암산, 수락산, 도봉산, 북한산 등 빼어난 산이 있고 경기북부와 한강을 잇는 중랑천이 있어 자연환경이 수려합니다. 아파트와 주택이 밀집한 ‘베드타운’으로 재정자립도가 20%~30% 초반으로 낮지만 돌봄과 복지 수요가 높습니다.

이 지역엔 또 다른 특징이 있습니다. 풀뿌리 주민활동이 여느 지역보다 활발합니다. 인접지역과의 동질성을 바탕으로 지역 주민활동가들은 ‘강풀포럼(강북지역 풀뿌리 포럼)’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교류하기도 합니다. 강북, 노원, 도봉, 성북구청도 살기 좋은 지역을 만들기 위해 공동의 힘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동북4구 발전 협의회’를 만들었고 지난 11월부터는 지역의 공동발전 정책을 수립하기 위해 ‘동북4구 발전 연구사업단’을 발족하여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희망제작소는 이 연구에서 주민의견을 수렴하는 토론회를 <서울시 동북4구 100인 회의>라는 이름으로 맡아 진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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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13일 토요일 오후. 장맛비가 내리는 가운데 도봉구청 대강당에 네 구 주민들이 모였습니다. 참여자는 10대 학생부터 70대 어르신, 갓 이사 온 전입자부터 토박이와 주민활동가까지 다양했습니다. 참여자들은 사전신청을 통해 ‘지역경제와 일자리’, ‘복지교육’, ‘문화와 환경’, ‘공동체’, ‘도시경관 디자인’ 다섯 분야 중 자신이 토론하고 싶은 분야를 미리 선택했습니다. 참여자들은 어느 테이블에 앉을 것인지도 스스로 정했습니다. 행사장 입구에는 5개 주제 테이블별로 논의할 의제를 표시한 배치판을 두었습니다.

희망제작소는 토론회에 앞서 네 구의 민원, 홈페이지 구민제안, 주민참여예산 안건, 구청의 열린 토론회 결과 등 주민들의 관심사를 모두 모으고 추려 토론할 의제를 선정했습니다. 이를 통해 5개 주제 분야별로 10개의 토론 주제가 아래와 같이 정리되었습니다. 주민들은 배치판을 보고 원하는 의제가 있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 분야별 의제 (굵은 글씨 : 토론회에서 논의된 의제)

△ 지역경제와 일자리

지역 일자리 부족
중소기업과 사회적기업의 창업 및 발전 지원
취약계층을 위한 일자리 창출
재래시장과 골목상권 활성화
협동조합, 공유경제 등 사회적경제 활성화
지역 특화산업 육성
관내 생산되는 물품 유통과 판로 확대
은퇴자와 청년을 위한 창업 지원
지역의 자연, 문화, 사회자원의 적극 활용
관내 크고 작은 상업시설 부족

△ 복지와 교육

유아와 아동 돌봄에 대한 지원 부족
어린이를 위한 프로그램 공간 확충
청소년을 위한 프로그램·공간 확충 필요
학교 간 교육환경 편차, 사교육 의존이 심함
도움이 필요한 분들이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함
장애인, 외국인 등 소수자에 대한 배려 필요
주민 모두를 위한 열린 교육 프로그램이 적음
열악한 보건 의료 환경 개선
경로당 외에도 지역 어르신이 갈 곳 부재
지역사회와 교류하는 대학 확충
우울증과 고독, 자살 예방

△ 문화와 환경

턱없이 부족한 문화시설문제의 해소
인구에 비해 부족한 도서관문제의 해소
일상과 멀어진 문화 예술의 개선
주민 건강을 위한 체육시설과 운동프로그램 마련
산과 강 등 자연환경의 생태적 보존 및 활용
동네 별, 계층 별 문화격차 해소
난방비와 에너지 절감
회색도시를 녹색도시로 바꾸기
주민도 즐기고 방문객도 찾을 축제 만들기
쓰레기 없는 깨끗한 거리 만들기

△ 도시경관 디자인

역사 주변 환경개선 (문화의 거리? 유흥의 거리!)
주차난 해결 (주차장인지, 골목길인지)
어두컴컴한 놀이터와 골목길 개선
도시 디자인에 다양한 주민과 전문가 참여
자전거 타기 좋은 여건 만들기
지역에 있는 유용한 시설을 한 눈에 알 방법은?
편리하지만 길을 막는 노점상 문제 해결
개성 있고 조화로운 간판은?
장애인과 약자가 다니기 쉬운 거리 만들기
재해 없는 안전한 거리 만들기

△ 공동체

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한 공간만들기
동네 모임 활성화
아파트 공동체 활성화
주민공부모임 활성화
기 활성화된 마을공동체를 더 발전시킴
세대 간 소통과 공감
자원봉사와 재능기부 활성화
낙후한 지역 이미지와 낮은 자긍심 개선
행정과 주민 간 소통, 주민 참여 활성화
동네와 주민의 소식을 전하는 마을매체 활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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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14개의 테이블이 있고, 테이블마다 토론을 이끌어 갈 진행자가 있습니다. 진행자의 주도에 따라 논의주제 2가지를 정한 후, 문제점을 진단하고 원인을 분석했습니다. 그 후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을 제안하고, 가장 좋은 제안 두 가지를 추렸습니다. 좋은 제안의 요건으로 다음과 같은 기준을 제시하여 판단을 도왔습니다.

 ① 동북 4구의 구청이나 주민들이 함께 해보면 가장 좋을 제안.
 ② 가장 많은 사람에게 혜택이 갈 제안.
 ③ 가장 시급한 제안
 ④ 지역의 특성을 반영한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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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4구가 서로 경쟁적으로 도시 디자인을 하고 있습니다. 중복되는 사업도 많고 경쟁을 하다보니 상대적으로 열악한 환경의 주민들은 박탈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자치단체들이 서로 협력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강남지역을 중심으로 이미 기업들이 형성되어 있는데 이 지역으로 대기업을 유치하겠다는 생각은 무리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외부에서 기업 유치가 어렵다면, 우리지역에서 만들 수 있는 것은 있지 않을까요? 4구에 있는 기업인들이 뭉칠 수 있는 분야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창업을 준비하거나 시행할 시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지역경제끼리 네트워크를 만들면 어떨까요? 오늘도 한번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동북4구끼리 지역 네트워크 만들면 재래시장, 은퇴자, 경제인들끼리 공생하는 것이지요. 공동구매도 할 수도 있고요.”

“동북4구에 구별 특화된 도서관이 생기면 어떨까요? 예를 들어 강북구는 민주화도서관, 성북구는 인권도서관, 노원구는 교육도서관, 도봉구는 자연도서관 이렇게 말이지요.”

사전자료집을 두 번이나 읽었다는 분, 논의 주제를 보고 미리 공부해 왔다는 분도 있었습니다. 토론회가 성공하기 위한 첫째 요건이 준비된 토론자라고 합니다. 열의 있는 주민들이 참여한 만큼 열띤 토론이 이뤄졌습니다. 14개 테이블에서 총 28개 의제에 대한 문제점과 원인, 해결책이 도출됐습니다. 모든 테이블의 논의 결과는 아래와 같은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현장에서 공유되었습니다. 참여자들은 자신의 제안 뿐 아니라 다른 분야의 논의에 대해서도 질의응답을 통해 의견을 덧붙였습니다.

제안에는 조례를 제정해 해결할 문제, 예산이 더 필요한 문제, 구청이 해결할 문제 등 다양한 방법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었습니다. 토론 과정에서 주민들은 ‘동북4구가 함께 해결하면 좋을 문제가 있다’는 점에 공감하고 구체적인 해결방안도 제안했습니다. 




토론 결과는 동북4구 발전방안 연구를 통해 정책으로 반영됩니다. 발표된 내용 외에도 이날 테이블에서 논의한 모든 의견을 담아  ‘시민 리포트’를 발간하고 ‘4개 구청’과 ‘동북4구 발전 연구단’에 전달됩니다. 또한 주민 제안이 어떻게 반영될 지를 주민들과 함께 논의하는 사후모임이 다시 열릴 계획입니다.

이번 토론회는 두 가지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구청 간 높은 벽을 허물고 협력하는 좋은 사례입니다. 지방자치제도가 시행된 후 구청 간에 경쟁적으로 정책이 추진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주민유치나 출산율 제고를 위해 각종 복지 혜택을 두고 경쟁하는 경우도 있었고, 바로 인접지역에 거주하는데도 행정구역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주민들이 타 구 시설을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번 동북4구의 협력은 인접지역 지자체가 살기 좋은 지역을 만들기 위해 힘을 합해 정책을 만드는 좋은 사례가 될 것입니다.

둘째는 지역 주민이 직접 지역의 문제점과 해결책을 논의해 정책에 반영하는 새로운 시도라는 점입니다. 지방자치에 주민 참여가 늘고 있지만, 아직 주민이 정책을 제안하는 통로와 방법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행정이 제공하고자 하는 것과 주민 욕구는 다를 수 있습니다. 전문가보다 주민들이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제안을 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서울시 동북4구 100인 회의>는 주민참여의 새로운 실험이었습니다.

여전히 한계는 남아있습니다. 더 많은 주민이 참여하고, 보다 상시적인 참여 창구를 만들며, 주민의 제안을 정책에 반영시키는 절차를 만드는 방법 등 더 많은 연구와 시도가 필요합니다.

다음 주에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담아 <서울시 동북4구 100인 회의> 설계와 진행 과정을 상세하게 소개하려 합니다. 토론회 평가와 함께 주민 의견을 정책에 반영하는 효과적인 모델을 만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 지도 살펴보고자 합니다.

글_ 우성희 (뿌리센터 연구원 sunny02@makehope.org)
사진_ 윤승민 (뿌리센터 인턴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