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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종의 사막을 건너는 법

연말에 광화문 거리를 보셨습니까? 가로수들이 온통 은빛으로 빛나고 있습니다.

택시 운전기사 분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연말에 마음도 경제도 얼어붙었는데 저 싸늘한 트리 빛깔이 뭡니까. 더 따뜻한 색깔 없나요? 가로수를 전깃줄로 칭칭 동여매었던데 그렇게 나무를 전기고문하면서 가슴을 웅크린 시민에게 보여주는 게 차디찬 빛깔이란 말입니까?”

“저 조명도 빛의 전문가들이 만들었을 겁니다. 예술 하는 사람들은 작년 했던 것은 다시 안 쓰거든요. 창의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서울시를 위한 내 변명에 그 기사는 버럭 핏대를 냈습니다. “경제 위기로 떨고 있는 시민들 마음을 녹여줄 줄도 모르면서 무슨 얼어 죽을 창의입니까?”

세종문화회관의 야간조명을 보셨습니까. 건물이 온통 붉은 물감 속에 담갔다가 건져낸 듯합니다.

40대 여자 분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가 세종문화회관을 저렇게 조명해놓았습니까. 온통 피가 흘러내리는 것 같잖아요? 분위기가 드라큘라 영화같이 기괴하네요?”

이런 얘기들을 듣고 보니 올해 서울 광화문 일대 조명이 을씨년스럽기도 하고 특이하게 느껴졌습니다. 기성세대에게는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기분을 상쾌하게 만드는 빛은 아닌 듯합니다.

”?”

서울의 겨울밤을 수놓은 조명은 ‘은백색’을 주제로 한 하이서울페스티발의 일환이라고 합니다. 시 당국자는 “빛과 조명예술을 통해 시민들에게 빛에 대한 새로운 경험과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기획됐다”고 하니 전문가들이 고심하고 만든 것인가 봅니다.

전문가들이 공들여 만든 이 조명예술을 새로운 경험으로 느끼기 보다는 차갑고 기괴하게 느끼는 시민들이 꽤 많은 것 같습니다. 시민들이 조명예술가들의 미적 수준에 미달해서 생기는 오해일까요, 세대차이일까요? 하도 세대 간에 또 계층 간에 괴리가 심한 사회이다 보니 빛을 보는 눈도 차이가 많이 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한 해를 보내며 괜한 트집을 잡는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빛도 모르고 조명예술도 모르면서 말입니다.


* 이 칼럼은 자유칼럼에 함께 게재합니다.

올챙이 기자로 시작해서 주필로 퇴직할 때까지 한국일보 밥을 먹었다.혈기 왕성한 시절의 대부분을 일선 기자로 살면서 세계를 돌아 다녔고 다양한 이슈를 글로 옮겼지만 요즘은 환경과 지방문제, NGO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이제는 글 쓰는 것이 너무 지겹다’고 말하면서도, 지난 100년 동안 지구 평균 기온이 0.6도 올랐다는 사실이 인류의 미래에 끼칠 영향을 엄중히 경고하기 위해서 사막을 다녀온 후 책을 쓰고, 매주 여러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그는 여전히 현장에 있고 천상 글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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