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하지 않는 삶엔 미래가 없다

<박원순의 희망탐사 12>

지역에서 희망을 찾고자 전국을 돌아다닌 지 벌써 1년이 넘었다. 하지만 아직도 차 안에서 몇 시간씩 시달리는 게 익숙하지 않다. 서너 시간 덜컹거리는 차에 몸을 기댄 채 설 잠을 자다 깨는 일을 몇 번 반복하다보면 입안이 까칠하고 속을 생각해 채워 넣은 곡기는 더부룩함만을 남기기 일쑤다.

전남 장성의 세심원(洗心院)을 찾은 날. 그날도 그랬다. 하지만 세심원의 변동해 씨를 만나는 시간이 끼니때와 맞물리면서 그가 준비한 상을 물릴 수 없어 앉은 밥상은, 자신컨대 최고였다. 그와의 만남을 이야기하면서 최고의 식사로 운을 떼는 것은 그곳에서의 모든 행위는 세속에서의 그것과는 다른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적절한 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된장과 고추, 김치 등 너댓 가지의 반찬에 밥으로 이뤄진 밥상이 무에 그리 대단할 게 있을까 만은 맛도 맛이거니와 그 식사의 행위는 하나의 세심(洗心)이기도 했다. 특별한 경험이었다.

세심원을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전원별장? 아니면 숙박시설, 그것도 아니면 찻집? 세심원은 그냥 이름 그대로 지친 사람들이 마음을 닦고 쉬는 공간이다. 그곳에서 밥을 먹으면 식당이 될 수도 있겠고, 잠을 자면 숙박시설도 될 수 있겠지만, 그 모든 행위는 ‘마음을 닦는 일’로 이어진다. 여기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세심원에서 씻은 눈과 마음을 가득 채워줄 초가집 미술관이 있다. ‘금곡숲속미술관’. 이 역시 세심원과 마찬가지로 변동해 씨가 직접 지은 작품이다
[##_1L|1014176338.jpg|width=”215″ height=”324″ alt=”?”|▲ 세심원 마루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변동해 씨와 열심히 노트북에 글을 적고 있는 박원순 변호사. ⓒ희망제작소 _##]세심원, 아니온 듯 가시옵소서

“무척 고민하다가 당호를 세심원이라 정했어요. 먹고 노는 장소가 아니라 마음을 닦고 쉴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라는 염원에서죠. 한국 사람들은 좀 쉬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동안 너무 많은 일을 해 왔고, 그래서 성찰할 수 없는 삶을 살아 왔고 또 살아가고 있죠. 성찰이 있어야 달라질 수 있어요.”

변동해 씨는 세심원이라는 이름부터 설명한다. 언어는 단순히 존재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그 의미이기도 하다. 세심원의 또 다른 옥호는 ‘아니온 듯 가시옵소서’다. 세심원에서 마음을 쉴 수많은 이들을 생각하며 풀 한 포기도 조심해 흔적 없이 가야겠지만, 한편으로 찾은 이의 마음속에는 일파만파 물결이 일 것이다. 삶에 대한 성찰의 물결.

지난 2005년 그만두기까지 30년을 공무원으로 산 그는 새로이 당선된 도지사에게 다양한 바람을 전하는 편지를 직접 써 보내기도 했다. 물론 6급 공무원이 보낸 편지에 대해 답장은 없었다. 그래도 그는 그렇게 되리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희망’을 저버리지 않았기에 편지를 할 수 있었다.

그렇듯 희망을 믿는 그는, 희망을 믿기에 더 많은 희망을 직접 만들어내고 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비로소 ‘성찰’을 깨닫는다.

“퇴직하고 나오자마자 이곳 아궁이에 불을 때기 시작해서 불을 그친 적이 없어요. 한여름에도 아궁이에 불을 땠어요. 이상한 짓으로 보이지만 불을 땐다는 건 생명을 보여주는 것이며 어떤 깨달음을 줘요. 자연에서는 소담해야 해요. 문화가 있어야 하죠. 하지만 다들 거창하게 만드는 일밖에는 관심이 없어요. 문화는 사람과 자연을 압도하는 거대한 건물을 지어내는 그런 일이 아닌데 말이죠.”

문화에 대한 확고한 그의 믿음과 의지. 그리고 이를 표현하는 데 더 없이 좋은 그의 말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함께 공유하면 좋을 이 시대의 금언들이다.
[##_1R|1278472767.jpg|width=”346″ height=”230″ alt=”?”|▲ 세심원의 ‘아니온듯 가시옵소서’ 라는 간판. ⓒ희망제작소 _##]지자체의 무관심이 더 안타까워

그는 세심원을 10년 동안 지었다. 그 뒤 이 집은 그저 쉬고 싶은 이들의 것이 되었다.

“운영한 지 꼭 7년째가 됐어요. 이런 좋은 곳을 나만 보고 누리면 되겠어요? 매달 10명 이상의 목사들이 정기적으로 찾기도 하고 1년에는 5000명 이상이 이곳을 다녀갑니다. 가끔 MT 오는 사람도 있고요. 그냥 공짜에요. 그런데 그 공짜는 제가 주는 공짜가 아니라 그들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공짜에요. 후원해주시는 분들도 있고 쌀이 비면 쌀독을 채워주는 사람도 있고.”

세심원에도 열쇠는 있다. 하지만 그 열쇠는 세심원을 찾는 모든 이의 손에 쥐어지기 때문에 그야말로 역할 잃은 열쇠일 뿐이다.

“세심원을 만들자 마자 100개의 열쇠를 100명에게 줬지만, 열쇠를 못 받은 사람은 그냥 말만하면 언제든 열쇠를 줘요. 저는 여기가 좋아서 직장을 그만뒀거든요. 여기에 있으니 내가 보이고 세상이 보이데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이 기분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그 주변에는 사람이 끊이지 않는다. 열어둔 공간만큼 사람들은 모이게 마련이다. 세심원에는 사람들이 꾸준히 찾아오고 ‘금곡숲속미술관’에서 펼치는 작은 미술전시회에는 전국에서 400여 명 이상의 사람들이 모인다. 작은 파티들도 이곳에서 펼쳐진다. 각자 음식을 가져와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며 자연과 미술작품들을 만끽하다 돌아간다
[##_1C|1316250870.jpg|width=”507″ height=”338″ alt=”?”|▲ 금곡숲속미술관은 소박하지만 전국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 힘있는 미술관이다. ⓒ희망제작소_##]”사람들이 많이 깨달을 수 있는 계기가 이곳이 된다면 그보다 더 큰 바람이 없지요. 여기에서는 장독대를 보고도 깨달음을 얻고 풀 한 포기에서도 인생이 보여요. 지렁이도, 나무도 모두 가족이죠. 당연히 제초제 같은 걸 쓸 리가 없죠. 결국 사람이나 식물이나 모두 상처 받는 일이잖아요.”

하지만 등잔 밑이 어두운 법인지 숲속미술관의 행사에 장성 지역 사람들보다 외지인의 발걸음이 더욱 많고 다른 지역 공무원은 세심원과 미술관을 보러 와도, 장성지역 공무원은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 장성군은 100만 평, 200만 평의 편백나무가 있어도 활용을 못해요. 오히려 광주에서는 장성에 가면 예쁜 미술관이 있더라 하고, 삼성경제연구소에서는 후원회까지 만들겠다고 그러는데 장성군 내 과장급 이상 공무원 중 여길 다녀간 사람이 없어요.”

변동해 씨의 말에서는 서운함이 아닌 안타까움이 읽힌다. 장성군민이기도 하고 한때 장성군의 공무원이기도 했기에 그 안타까움은 더욱 크다.

“내가 음악회를 7년째 하고 있는데 면장 한번 온 적 없고 무엇을 도와줄지 물어보는 사람도 없어요. 미술관 개관할 때 지역 인사들에게 다 초대장 보냈는데 99% 오지 않았을 뿐더러 온 사람들은 사진만 찍고 가더군요. 게다가 창작실을 만들려고 했지만 화재 위험이 있다며 불허 결정이 났어요. 그래서 행정소송을 제기한 상태입니다. 이렇게 많은 시도들이 이뤄지지 못하면 여길 뜰 수밖에 없겠지요.”

그의 안타까움은 장성군 밖에도 그 원인이 있다. 우리나라 전체 박물관 및 미술관 중 50% 가량이 사립이지만 그에 대한 지원은 행정절차 간소화, 세제 혜택 등 간접지원에 그치는 실정이다.

아름다운 마음이 지배하는 곳, ‘세심원’
[##_1R|1153045167.jpg|width=”192″ height=”289″ alt=”?”|▲ 안정된 공무원 직을 버리고 세심원과 금곡숲속미술관을 운영하면서 오히려 행복해졌다고 말하는 변동해 씨. ⓒ희망제작소 _##]”차 씨를 4년째 심고 있어요. 매년 조금씩 늘려가면서 올해는 여섯 가마니를 심었죠. 이에 자원봉사자를 모집해서 더 많이 심어볼까 해요. 이렇게 한 30년 심으면 우리나라 최고의 차밭이 될 거에요. 그럼 사람이 모이겠죠. 여기에 일반 관광객을 중심으로 꾸밀 수도 있겠지만 특히 문사들을 중심으로 꾸미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에요. 문사들이 어디 가서 글 쓸 데가 없거든요. 정신문화를 이끌 그런 사람들이 와야지.”

뭐든지 급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한 30년 넉넉히 잡아 차 씨를 뿌려 최고의 차밭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는 변동해 씨다.

내가 지역을 돌며 들은 이야기 중 가장 많은 이야기가 사람의 중요성이다. 좋은 산업시설도 좋고, 투자를 끌어오는 것도 좋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변동해 씨도 사람의 중요성을 거듭 밝힌다.

“전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공장 하나 더 있다고 해서 뭐가 얼마나 달라지나요? 정작 유치해야 하는 것은 사람이죠. 향우들을 데려와야 해요. 그들이 올 수 있게끔 해줘야죠. 그리고 광고를 내서라도 전국에 미친 사람을 다 오라 해야 합니다. 저 같은 사람이 미친 놈이죠. 모두 선망하는 공무원을 그만두고 이렇게 살고 있으니까. 지금 시대에 미친 사람이 없어요. 사람은 어떤 것에 미쳐야 제대로 일을 낼 수 있어요. 그 사람들이 오면 지역도 달라져요. 아름다운 왕따, 한 분야에 미친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인재를 강조하는 변동해 씨의 생각 가운데는 ‘붕어빵 대한민국’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 있다. 세태 속에서 자기의 생각을 잃어버린 사람들, 어디에 미치지 못하고 평균을 맴도는 이들, 그들이 만들어내는 똑같은 시설과 성공했다 소문나면 전국 어디에서든 만나게 되는 벤치마킹 정책들이 붕어빵 대한민국을 만든다고 그는 말한다.

세심원은 그러한 남다름 속에서 남다른 멋으로 빛을 발한다. 언제 어디서나 터진다는 핸드폰을 여기서는 켜둘 수 없다. 공짜 숙소와 식사를 제공하지만 사람들이 모이면 으레 벌어지는 거나한 술자리도 없다. 마음을 쉬는 곳이니 마음을 조급하게 하는 시계와 달력도 없다.

“아름다운 마음이 지배하는 곳을 하나는 만들고 싶었어요. 늘 일과 사람들에게서 벗어날 수 없게 하는 핸드폰, 언제나 ‘빨리’를 외치며 달리게 만드는 시계와 달력, 그런 거 없이 우리 살 수 있어요. 안될 것 같지만 안될 거 없어요. 한번쯤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새로운 나를 만드는 곳, 아름다운 마음이 지배하는 곳이 여기가 됐음 좋겠어요.”

아름다운 마음이 지배하는 곳, 그곳에서 나도 핸드폰을 손에서 놓았다. 내심 누구에게 급한 연락이 오지나 않을지 마음이 쓰였다. 다른 사람도 같은 마음이었을 거다. “빨리빨리”를 외치며 빠르게 성장하고, 그런 가운데 빠르게 마음을 잃어가는 우리들.

처음부터 큰 땅을 사서 헬기로 씨를 뿌리고 불과 몇 년 만에 최고의 차밭을 만들겠다는 그런 사람 말고 성찰하며 느리게, 그러나 제대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아직 있다는 것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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