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이전과는 다른 세상을 위해

세월호 참사 후 8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날의 상처는 아물지 않았습니다. 많은 시민이 아직도 세월호에 마음 아파하지만, 막상 그동안 안산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는 분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참사 이후 안산에서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공동체 회복 프로그램’ 사업을 진행해왔는데요. 희망제작소는 안산 지역 공동체 회복 프로그램의 사업성과 분석과 모델화를 위한 연구를 수행했습니다. 세월호 8주기를 기억하며, 연구에 참여한 이은경, 허웅 연구원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은경 연구원(좌), 허웅 연구원(우)

세월호 참사 이후 안산에 어떤 일이 있었나요?

허웅(이하 허): 세월호 참사는 안전불감증, 물질 만능주의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일깨웠습니다.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정부의 무능이 드러나 사람들이 분노했죠. 특히 유가족과 안산시 주민들은 정신적 트라우마를 겪었습니다. 이웃 간 균열과 갈등이 생기고, 지역경제가 침체하면서 재난지역이라는 도시 이미지까지 만들어졌어요. 주민들 사이의 의견 차이가 정치적 갈등으로 번지면서 공동체가 위기를 맞았죠. 일반적인 재난이라면 다들 공감하고 피해자를 보듬으면서 잘 수습되었을 텐데, 세월호는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정치적인 프레임이 씌워지면서 2차 피해가 일어났고, 탄핵까지 이어지며 사회적 파장이 컸어요. 그래서 2015년 세월호 특별법이 만들어졌고 이를 근거로 안산 ‘공동체 회복 프로그램’이 시작되었습니다. ‘공동체 회복 프로그램’은 2017년부터 현재까지 6년째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은경(이하 이): 안산의 경우는 재난이 일어났을 때 회복해야 할 부분들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해줍니다. 국가가 그것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에 대해서도요. 기존에는 무너진 건물을 세워주거나 피해보상을 해주는 등 단순한 물질적 복원에 그쳤습니다. 하지만 ‘공동체 회복 프로그램’은 사람들의 마음을 돌보고 공동체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접근이죠. 세월호는 단순히 개인의 불행한 사건을 넘어 사회적 재난화 되었잖아요. 안산시의 ‘공동체 회복 프로그램’은 국가가 공동체의 치유와 갈등 회복을 지원한 첫 번째 시도라는 데 큰 의미가 있습니다.

‘공동체 회복 프로그램’에는 이런 것들이 있어요
공동체 회복 프로그램은 세월호 유가족과 안산시 주민이 교류·소통하는 다양한 활동을 말합니다. 안산시에서는 서로를 이해하고 갈등을 해소하여 공동체 회복의 기반을 만드는 수십 가지의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자세히 보기: 희망곳간(공동체회복 프로그램 홈페이지)
416공방 : 유가족이 모여 공예품을 만드는 곳. 바느질, 가죽공예 등 수공예 작업을 하며 아이에 대해 이야기하고 아픔을 나누는 공간 (참고 416공방 홈페이지)
일촌가드너 : 단원고 주변 학교 가는 길에 꽃을 심어 예쁜 화단을 가꾸는 프로젝트. 주민들이 함께 가드닝을 하며 교류하고 마을 환경 개선 활동 추진
늘풂학교 : 유가족이 안산지역 아이들을 대상으로 목공, 연극, 합창 등을 가르치는 프로그램. 유가족과 지역주민의 만남의 장 (참고 늘풂학교 홈페이지)

희망제작소는 최근 ‘공동체 회복 프로그램’ 관련 연구를 수행했습니다. 연구의 내용은 무엇인지 간단히 설명해주세요.

: 공동체 회복 프로그램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효과는 있었는지 살펴본 연구입니다.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보면 첫째, 공동체 회복 프로그램의 성과를 분석하고 평가지표를 개발했습니다. 둘째, 재난 상황에서 공동체 회복의 모델을 만들어 이후 재난 지역 공동체 회복 과정의 방향성을 제시했습니다. 셋째, 다른 지역에서 재난이 일어날 경우를 대비해 매뉴얼을 구축했습니다.

안산 공동체 회복 프로그램 사업성과 분석 및 매뉴얼 구축 연구 보고서(2021.12)

연구 결과, 공동체 회복 프로그램으로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 2017년부터 지금까지 공동체 회복 프로그램을 진행한 결과, 프로그램의 심리 치유와 주민 간 교류 증대 효과는 높은 것으로 나타났어요. 처음에는 주민분들이 어색하게 만나 말없이 밥만 먹었다면, 작은 단위에서 교류를 시작해 자연스러운 만남의 기회를 늘리고 활동에 집중하며 치유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특히 유가족과 주민의 참여율이 높아졌고 현재는 이분들이 적극적인 주체로 성장했다는 것이 가장 큰 성과입니다. 또한 사업을 진행하는 지원 조직(희망마을추진단)이 여러 주체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어요.

: 처음에는 유가족과 주민들이 대화도 나누기 어려워서 잘못된 정보와 소문으로 오해가 있기도 했는데, 교류가 생기며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유가족은 지역 주민을 보고 ‘저분도 피해자일 수 있겠다’라고 인식하고 주민들도 유가족에 대해 더욱 깊이 이해하며 공동체 의식이 생겨난 거예요. 특히 아이가 있는 분들은 부모의 입장에서 공감대를 형성했고, 세월호 참사의 피해 당사자가 학생이다 보니 지역 청소년의 공감대도 높았습니다. 지역 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사회적 기업을 시작한 경우도 생겨나고 지속자립성 측면에서 지역 경제에 기여하기도 했습니다.

: 반면 아쉬운 점을 짚어본다면, 비슷한 프로그램들이 진행되다 보니 주민들이 피로감을 느끼기도 했고, 지역사회 내 갈등을 완전히 없애기는 어려웠어요. 갈등 해소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어 후속 사업이 필요한 지점입니다.

안산 공동체 회복 프로그램 사업성과 분석 및 매뉴얼 구축 연구 자문위원회 회의

연구를 진행하며 세월호 생존자나 유가족, 안산 주민을 만나셨을 텐데, 사업 초기와 비교해 느끼는 변화가 있었나요?

: 이 사업에 참여하셨던 여러 이해관계자(유가족, 주민, 생존학생, 마을활동가, 시민단체, 행정 등)를 2019년과 2021년에 인터뷰했었는데요. 그 내용을 텍스트 분석했더니, 변화를 발견할 수 있었어요.

안산시 공동체 회복 FGI에 등장하는 주요 단어 워드 클라우드 2019년(좌), 2021년(우)

2019년에는 ‘사업’, ‘행정’, ‘돈’, ‘추진단’과 같이 ‘일’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요. 공동체회복 프로그램 1단계(2017~2019년)에서는 아무래도 사업이 자리 잡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잘 굴러갈 수 있도록 하는데 힘을 쏟았던 점을 반영하는 것 같고요. 반면, 2021년 인터뷰에서는 ‘아이’, ‘엄마’, ‘생각’, ‘유가족’ 등 이야기의 중심이 ‘사람’으로 옮겨왔습니다. 공동체회복 프로그램이 2단계(2020~2022년)에 들어서며 사업에 참여하고 만들어가는 사람들, 주체들에 대한 고민이 더 많이 드러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공동체 회복 사업이 물리적인 복구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복구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업이다 보니 직접적인 변화를 느끼기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이렇게 인터뷰 텍스트 자료를 분석해 보니 변화의 지점과 내용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네요.

: 설문 조사 결과에도 드러납니다. 사업 참여자의 85.5%가 ‘공동체 회복 프로그램이 안산 지역주민과 공동체가 세월호 참사의 아픔을 극복, 치유하고 안정을 되찾는 데 기여했다’고 답했습니다.

최근 안산시의 상황은 어떤가요?

: 생명안전공원을 둘러싸고 갈등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갈등이 어느 정도 완화되었어요. 2024년 참사 10주기에 맞추어 ’생명안전공원‘과 ’공동체 복합시설‘이 준공될 예정입니다. 또한 공동체 회복 프로그램 2단계 사업이 2022년으로 끝나는데, 2023년부터 3단계 프로그램이 지속될지 아직 결정되지 않은 상태라,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시민으로서 세월호 공동체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 피해지역 주민들과 유가족들은 세월호를 잊지 말고 기억해달라고 말씀하십니다. 조금 더 할 수 있다면 생명과 안전이 우리 사회 중요한 가치로 자리 잡도록, 관련 이슈가 있으면 관심 갖고 지켜보는 것입니다. 기억하기, 공감하기, 추모하기. 아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세 가지 아닐까 합니다. 희망제작소도 세월호가 우리 사회에 던져준 물음들에 답하기 위해 계속 노력해야 할 거고요.

: 참사 이후 처음 몇 년 동안은 ‘그날이네’하고 잠깐이라도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점점 기억이 가물가물해지면서 먼 이야기가 되어버린 것 같아요. 잠시라도 추모의 시간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울진 산불이나 코로나19, 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은 재난이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번 연구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요?

: 앞으로 다른 지역의 재난 상황이 발생했을 때 공동체회복을 지원하기 위해 안산의 경험을 정리하여 매뉴얼 제안을 보고서에 담았습니다. 재난이 발생했을 때 선진국은 피해자를 위한 심리안정 지원을 많이 하는데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했어요. 연구를 계기로, 물리적인 복구와 피해지원을 넘어 사람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갖게 되면 좋겠습니다.

: 이 연구는 재난이 발생했을 때 정책적 방향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피해 당사자뿐만 아니라 재난지역 주민 또한 재난의 간접적인 피해자로 인정하는 인식이 중요합니다. 일반 재해와 달리 사회적 참사 상황에서는 지역 주민도 공동체 일원으로서 사업 대상에 포함하는 접근이 필요합니다. 다행인 것은, 2017년 지진이 발생한 포항에서도 피해지역의 공동체 회복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지난 8년 동안 세월호 유가족과 안산 주민들은 서로를 갈라놓는 가짜뉴스와 정치적 프레임, 진상규명을 가로막는 사회에 맞서 싸워왔습니다. 긴 싸움은 사람들 마음에 상처를 남겼고 아직도 다 아물지 못했습니다. 어떤 것도 그 아픔을 덮을 수는 없지만, 이들의 희생을 헛되게 하지 않기 위해 세월호 참사 이전과는 다른 세상을 만드는 것이 우리 사회의 책무입니다. 희망제작소는 세월호를 잊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함께하겠습니다.

– 인터뷰 진행 및 정리: 이규리 이음팀 연구원 | kyouri@makehop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