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책] 아파트 한국사회

요즘 어떤 책 읽으세요? 희망제작소 연구원들이 여러분과 같이 읽고, 같이 이야기 나누고 싶은 책을 소개합니다. 그 책은 오래된 책일 수도 있고, 흥미로운 세상살이가 담겨 있을 수도 있고, 절판되어 도서관에서나 볼 수 있는 책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괜찮으시다면, 같이 볼까요?


세 번째 책 <아파트 한국사회>
단지 공화국에 갇힌 도시와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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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다 마주하는 도시의 모습은 천편일률적이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제 각각 다른데,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의 모습은 다르지 않다. <아파트 한국사회>를 읽다 보면 아파트 단지 공화국에 갇힌 도시와 그 일상을 마주하게 된다.

1970년대의 급격한 경제 성장으로 한국사회에는 신중간층이 등장했다. 신중간층의 등장과 함께 새로운 주거 및 공간에 대한 욕구도 증가했다. 그러나 정부의 사회기반시설 투자는 도로나 전력에 한정되어 있을 뿐 도시 공공공간 조성은 제외되었다. 열악한 도시 환경, 주거 환경에 대한 욕구 증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국가는 그들에게 새로운 정책을 제공한다. 그것이 바로 아파트 단지 개발 정책이었다.

한국 사회에 퍼진 명실상부한 아파트 공화국, 아파트는 사는 곳(Living)이 아니라 사는 것(Buying)이다. 국가는 허약한 도시 공공공간을 사유기반 시설을 갖춘 아파트 단지들로 분절하고 격리하여 개인이 구매하도록 하는 전략을 취한 것이다. 아파트 단지화 개발 정책으로 인해, 아파트는 특별한 계층 집단의 거주지가 되었다. 중간 계층 이상의 주거를 공간적으로 집단화하는 현상이 발생했고, 아파트는 더욱더 단지 내부로 향하는 내향적인 공간 구조를 띄게 되었다.

아파트 담장은 높아져만 갔고, 면과 면이 만나는 지점들이 상실되었다. 그리고 이웃과 나누는 일상의 소통은 사라졌다. 소통의 부재와 단절이 만들어내는 도시의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저자는 일상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일상의 변화를 위해 아파트 단지는 외부의 시선과 마주해야 하며, 그 접촉면을 확장해나가야 한다고 말이다.

“아파트 담장을 허무는 일, 길가에 아파트 단지 담장이 아니라 상점과 개인 집 마당들이 면하도록 하는 일, 새시로 막혀버린 발코니를 발코니답게 만드는 일, (중략) 이 모든 것이 어쩌면 사람들의 무관심과 냉소 속에서 기성 체제의 온갖 관행, 규범, 아비투스(일정하게 구조화된 개인의 성향체계)를 깨야 하는 일이다. 세상을 바꾸는 일인데 쉬울 리 있겠는가. 새시와 담장으로 닫혀 있는 개인들의 하루하루 삶을 접속하고 소통하는 삶으로 바꾸는 일인데 말이다. 이 작은 일들은 쉽지 않다. 그리고 중요하다. 아파트 발코니가 바뀔 때, 아파트 단지 담장이 바뀔 때 세상이 바뀔 것이기 때문이다.”

– <아파트 한국사회> 중


세상의 변화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매일매일을 살아가는 우리 일상의 변화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삶의 면면들이 만나는 지점이 확장되고, 그 속에서 소소한 소통이 일어나기 시작할 때, 일상을 변화시킬 작은 씨앗이 싹을 틔울 수 있지 않을까?

글_ 안수정 시민사업그룹 연구원 / sooly@makehop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