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보다 경험을 소중히 여깁니다

희망제작소 후원회원 중에는 멋진 인생의 황혼기를 보내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이 분만큼 다양한 여가 활동을 누리는 회원이 있을까 싶은데요. 춤, 가야금, 민요, 고전문학 낭독, 연기까지 다채로운 활동을 즐기는 홍선희 후원회원입니다. 홍 후원회원은 2011년부터 희망제작소를 후원해 올해 후원 10주년을 맞았습니다. 여가 활동만큼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 사회를 풍성하게 만들고 있는 홍 후원회원을 만났습니다.

나이듦 속에서 발견, 내 일상의 코드는 ‘몸’

“나이가 들면서 몸을 제대로 운신하는 데 관심이 갔어요. 몸치였던 제가 수 년 간 기체조를 하니까 머리는 비우고 몸은 채우고 싶더라고요. 기예에 관심이 생겨서 장구, 민요, 춤, 여성국극 등 우리 것부터 서양의 것까지 조금씩 배워봤어요. 코로나 팬데믹 전에는 포크댄스, 경기민요, 가야금병창, 나중에는 댄스스포츠까지. 몸이 즐거웠지요. 2016년 봄에는 안은미 무용단 할머니 춤패로 프랑스, 스위스의 ‘핫’한 극장에서 한 달 간 순 공연도 참여하며 흥이 쌓였어요.”

서울 성북구에서만 40년을 거주해온 홍 후원회원은 동네 주민들과 민요를 불러 성북구 동네 축제 무대에도 올랐는데요. 코로나로 인해 가장 아쉬운 것이 사람들과 함께 노래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받아들이는 홍 후원회원은, 다양한 활동만큼 다양한 시민단체에 기부를 실천 중입니다. 나눔은 그의 직장생활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영어일간지 언론사에서 사회부 기자로 25년 일했어요. 오랫동안 사내 유일한 여기자였는데 언론사 근무 조건이 워낙 열악하고 유리천장에 부딪히다 보니 일터에서의 삶이 성에 차지 않은 거죠. 어쩌면 회사에서 느끼는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외부의 시민단체들을 찾아다닌 건지도 모르겠어요.”

90년대 중반부터 경제정의실천연합이나 참여연대에서 주관하는 시민 강좌에 참여하며 희망제작소까지 연을 맺게 되었다는 홍 후원회원. 퇴근 후 피곤할 법도 하지만, 기자 생활에서 경험하지 못한 뿌듯함을 느껴 꾸준히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당시 해외 자료를 발표하는 모임이 있었는데 영어 실력을 발휘해 번역 일을 돕기도 했습니다.

“희망제작소 안국동 사무실이 회사와 가까워 자주 드나들었죠. 당시 있었던 몇몇 연구원들 이름을 아직도 기억해요. 우리 사직동 빌라에 희망제작소 인턴 청년이 살기도 했어요.”

끊임없는 관심은 기부와 사회 참여로

그렇게 희망제작소와 연결된 홍선희 후원회원은 10년 전 행복설계 아카데미, 사회적경제 아카데미 등 희망제작소 교육 프로그램 통해 깨어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기쁨을 누리며 후원을 시작했습니다. 최근에는 희망제작소의 <시민이 읽는 오디오북, 읽는 시민>에 참여했습니다.

“눈 건강이 안 좋아지면서 실명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꼈어요. 더는 활자를 읽기가 어려운 정도였죠. 실명할 경우를 대비해서 집에서 노는 방법을 찾다가 라디오, 오디오북 등 청각으로 할 수 있는 활동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읽는 시민>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른 곳이었으면 관심 갖지 않았겠지만, 희망제작소니까 참여했죠.”

희망제작소 외에도 나눔문화, 고려인단체, 환경단체 등 여러 단체에 기부를 실천하는 홍 후원회원은 후원뿐 아니라 평화 활동가를 위한 1인 시위, 미얀마 여대생을 위한 물품 기부 등을 통해 꾸준히 사회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또 동포 지원단체 ‘동북아평화연대’ 부이사장으로 봉사하며, 이번 11월 25일 세계 디아스포라 네트워크 포럼을 개최했습니다. 주류가 아닌 이방인에 끊임없이 관심 가져온 그에게 사회 참여의 동력을 묻자, 고개를 저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열심히 참여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많은 사람이 집합하는 사안에는 도리어 관심을 안 갖는 편이죠. 정말 내가 필요한 일, 나 아니면 할 사람이 없을 것 같은 일에 봉사합니다. 숫자로 우위를 점하려는 집단의 폭력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해요. 제가 책임질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저의 역할을 고민하는 거죠. 보통 사회 문제를 대할 때, 편 가르기를 하는 게 아니라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많은 사람이 그저 탓할 대상을 찾더군요. 이게 유리천장을 넘지 못한 마이너리티로서 저를 지키는 방식이죠.”

언론사 퇴직 20년 이후, 뉴스가 소모품이 아니기를

일간지 언론사에서 퇴직한 지 만 20년이 넘었음에도, 여전히 홍 후원회원의 눈빛에서는 기자로서 호기심과 사회의식이 읽혔습니다. 25년을 근무한 베테랑에게 요즘 언론에 관해 물었습니다.

“저는 근성이 부족하고 자신감이 모자란 밥벌이꾼이었지만, 정확한 기사를 쓰며 윤리를 지키려 노력했어요. 그렇게 배웠으니까요. 지금은 인터넷으로 이따금 뉴스를 접하는 소극적 독자일 뿐이지요. 기본 교육이 미비한 상태에서 마구 뱉어내고 ‘아니면 말고’식 기사를 생산, 확산하고, 뉴스가 상품으로 소비되는 세상이니까. 기자 명함 내미는 이들은 많은데 발로 쓴 기사, 직접 현장에서 일대일로 취재한 기사는 많지 않더군요. 소속사의 우산을 걷어차고서라도 책임질 수 있는 기사를 써야 기자이지요.”

자신의 신념에 맞게 행동하며 살아온 홍 후원회원다운 조언이었습니다. 이어 요즘 관심사는 ‘비우는 것’이라고 소개했습니다.

“물건이든 관계든 비워야 보이는 법이니까요. 가진 걸 주변과 나눌 줄 알아야 해요. 자고로 남에게 주려면 좋은 것, 아까운 것을 나눠줘야죠. 그래야 다른 것도 쉽게 놓아줄 수 있어요. 지인이 거실 소파를 바꾸고 싶다기에, 소파를 새로 사기 전에 거실을 비워놓고 몇 달 살아보라고 했어요. 그러면 비어있는 공간의 소중함을 알 수 있을 겁니다. 나중에 소파를 새로 사더라도 소파의 소중함을 알 수 있을 거고요.”

마지막으로 희망제작소에게는 시니어를 위한 활동을 지속할 것을 당부했습니다.

“나이 든 사람에게 관심을 표하고, 희망을 지어주세요. 세대 간 디지털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사회적 장치가 필요합니다. 명절에 기차표를 사려고 하면, 노인은 새벽에 가서 줄을 서고 젊은이는 스마트폰으로 싸고 편하게 살 수 있잖아요? 시니어를 위한 사회적 장치를 만드는 일은 사람의 자존감을 살리는 일입니다.”

홍 후원회원과의 만남 이후, 은퇴한 혹은 은퇴를 코앞에 둔 이 시대의 많은 시민을 헤아려봅니다. 베이비부머 세대를 비롯한 이들 시민은 각자 어떤 사회를 꿈꾸며 인생 이모작을 일구고 있을까요. 어떤 형태를 하고 있든, 이들 삶에 깃들어있는 참여의 정신은 우리 사회의 큰 자산입니다. 그중에서도, 소유하는 것보다 경험하는 것을 소중히 여기는 삶, 그것이 홍 후원회원을 빛나게 하는 가장 큰 보석이 아닌가 싶습니다. 더욱 멋진 삶을 기대하며 홍선희 후원회원님이 직접 녹음하신 <읽는 시민>을 추천드립니다.

– 글 : 이규리 이음팀 연구원 kyouri@makehope.org
– 인터뷰 진행 : 이규리, 유다인 이음팀 연구원 yoodain@makehope.org
– 사진 : 유다인 이음팀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