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편집자 주/ ‘희망소기업’은 희망제작소 소기업발전소가 지원하는 작은 기업들로, 지역과 함께 고민하고 생활하며, 성장하고 대안적 가치를 생산하는 건강한 기업들입니다. 앞으로 이 연재가 작은 기업들의 풀씨 같은 희망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할아버지, 우리 전에 타던 거 어디 있어요?”

재잘재잘, 아이들이 허름한 창고 안으로 몰려 들어온다. 놀이동산에 온 아이들마냥 신이 난 동네 꼬마들. 저마다 점 찍어 놓은 자전거를 향해 달려간다. 작은 사무실 안에 자리를 지키고 있던 할아버지는 아이들의 모습이 기특한 듯 작은 미소만 짓고 있다. 어느덧 북적이던 자전거 행렬이 사라지자, 동네 어귀로 떠난 아이들의 웃음 소리만 귓가에 맴돈다.

”?”
사업 실패로 꿈에 도전하다

특수자전거를 만드는 스카이휠에는 아이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자전거들이 이곳에는 가득하기 때문이다. 손과 발을 모두 사용하는 손발자전거, 손만으로 움직일 수 있는 손자전거 등 신기한 자전거가 아이들을 불러모은 것이다. 이 자전거를 손수 만든 최진만 대표는 아이들의 밝은 모습을 보는 게 즐거운 일상이 됐다.

“애들이 지들끼리 몰려와서 재미있게 타는 거 보면 기분 좋지. 앞마당에서 시끄럽게 자전거 타는 게 보기 좋더라고. 이 녀석들 이름은 잘 모르지만, 내가 자전거 타고 지나가면 인사도 하고 그래요.”

아이들에게 큰 기쁨을 주고 있는 자전거이지만, 그 탄생 과정에는 나름의 아픈 사연이 있다. 최 대표는 원래 청주에서 베어링 기계부품 납품사업을 했다. 큰 돈은 안 돼도 여섯 식구 살아가는 데 부족할 것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불행이 닥쳐왔다. IMF가 터지면서 납품처에서 받은 어음이 휴지조각이 된 것. 결국 2001년에 사업을 접어야 했다.

하루아침에 할 일이 없어진 최 대표. 경제적인 고통도 컸지만,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점이 그를 슬프게 했다. 그렇다고 지나간 과거만 탓할 수는 없는 일. 그는 사업 때문에 잠시 접어두었던 꿈을 펼치기로 결심했다.

그는 예전부터 발명에 관심이 많았다. 83년에는 아들의 자전거를 개조해 핸들 없이 몸으로 균형을 잡을 수 있는 자전거를 개발하기도 했다. 주위의 반응도 괜찮아서 특허를 내려고 했지만 이내 포기했다. 비용 때문이었다. 그 시절의 경험을 살려 본격적으로 발명에 나서기로 했다. 돈도 기술도 없는지라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막상 발명에 나선다고 했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아이디어만 가지고 시작할 수 없는 게 발명이었다. 우선 발명의 기초를 닦을 시간이 필요했다. 무작정 특허청 사이트를 뒤지며 발명에 대한 정보를 모았다. 컴퓨터 학원을 다니며 도면 그리는 법을 배우고, 발명 동호회에도 가입했다. 그렇게 1년이 흐른 뒤, 그동안 머릿속에 그려 놓은 아이디어 하나를 특허 출원했다. 혼자만의 힘으로

”?”

아내에 대한 사랑으로 만든 자전거

발명의 꿈은 순조롭게 이뤄지는 듯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불행은 갑자기 찾아왔다. 어느 날 아내에게서 다급한 전화가 걸려온 것이다. 아내는 자신이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추돌사고를 당한 것이다. 다행히 심각한 상황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퇴원을 한 후에도 오랫동안 교통사고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

병원을 퇴원한 후에는 물리치료를 받았지만 회복은 더뎠다. 아내는 매일 고통 속에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의사는 재활치료를 위해 운동을 권했고, 없는 돈을 쪼개 운동기구를 들여 놓았다. 그러나 혼자서 묵묵히 해야 하는 운동을 아내는 좋아하질 않았다. 안타까운 마음에 어려 번 권해보기도 했지만 그때뿐이었다. 무언가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러던 중 텔레비전 속의 무언가가 그의 눈을 강하게 사로잡았다. 텔레비전 화면에서는 사냥감을 향해 날쌔게 달려가는 치타가 허리를 틀어 방향을 꺾고 있었다. ‘바로 저거야! 어쩌면 아내가 운동에 흥미를 느낄 수 있을지도 몰라’ 그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하며 생각에 잠겼다.

그는 아내를 위한 자전거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손과 발 모두를 사용해 전신운동이 가능한 자전거를 만들어 아내의 재활치료를 돕고 싶어서다. 물론 아내에게는 비밀로 해두었다. 실패할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는 곧 자전거 연구에 들어갔다. 우선 전 세계의 손발 자전거 현황을 살펴보고 문제점과 개선점을 찾아 나섰다.

처음에는 번듯한 공장도 없어 혼자 뛰어다니며 모든 것을 해결해야 했다. 아이디어가 생각나면 무작정 도면을 그리고 비슷한 부품을 구하기 위해 고물상을 찾아나섰다. 시행착오 끝에, 개발에 나선 지 1년 만에 손발자전거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최 대표는 아내에게 완성된 손발자전거를 보여주었다. 아내 박희숙씨는 어안이 벙벙했다.

“그날 저를 부르더니 앞으로는 이 자전거로 운동을 하라고 하더라고요. 일반 자전거도 무서워서 못 타는 사람한테 이걸 타라고 하니… 막막하더라고요. 그래도 성의가 고맙잖아요. 그 성의를 생각해서 열심히 배웠어요. 그래도 나름 노력하니 자전거 타는 게 익숙해졌어요. 또 막상 타보니까 재미가 있더라고요. 그렇게 매일 남편과 함께 자전거를 타게 된 거죠.”

”?”

처음으로 느껴보는 자전거 바람

최 대표는 지금 매일 아내와 함께 몇 시간씩 자전거를 타고 운동을 한다. 매일 똑같은 길을 돌아다니면 질릴 만도 한데, 부부의 마음은 그렇지 않은 듯하다.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교통사고 후유증에 시달리던 아내가 손발자전거로 건강을 되찾았기 때문이다. 이제 아내 박희숙씨는 남편의 든든한 지원자이자 자전거 친구다.

“교통사고를 당한 뒤, 후유증 때문에 너무 고생을 했어요. 너무 아파서 자다깨서 울 정도로 힘들었어요. 병원, 한의원, 통증클리닉 등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노력했는데도 고통이 쉽게 잦아들지 않더라고요.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고통없이 잠을 자게 된 거에요. 처음엔 왜 그런가 싶었는데, 자전거를 통한 전신운동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준 것 같아요.”

최 대표는 아내의 건강을 위해 자전거를 만들었지만,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 자전거를 알리고 싶었다. 처음에 만든 두 바퀴 손발자전거가 초보자들이 쉽게 배우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아 삼륜 손발자전거를 만든 것. 자전거를 못타는 사람도 쉽게 배울 수 있는 자전거였다. 또 다리가 불편한 사람들도 자전거를 탈 수 있도록 발 기능을 제외한 손자전거를 개발했다.

”?”
이러한 소식이 입소문을 타자 장애인들이 직접 스카이휠을 찾는 일이 많아졌다. 모두들 장애를 가지게 된 후에는 자전거를 타보지 못했던 이들이었다. 그런데 저마다 장애의 정도나 부위가 달라 각자에 맞는 자전거를 새로 개발해야 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게 척수장애인용 자전거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탈 수 있는 2인용 자전거 등이다.

“와서 타보신 분들이 자기 생전에 자전거를 타리란 생각을 아예 접고 사셨던 분들이에요. 그런 분들이 와서 자전거를 타보시고는 눈물을 흘리면서 고맙다고들 하세요. 자전거를 타고 얼마 안 있으면 땀이 흐르잖아요. 그리고 바람을 가르며 질주하는 순간, 시원한 느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죠? 그런데 이 분들은 그런 경험을 이날 처음 하신 거에요.”

스카이휠이 언론에 소개되면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었지만 정작 매출은 크게 오르지 않았다. 문제는 가격이다. 스카이휠의 장애인용 손자전거 가격은 50만원 선으로 500만원 이상 되는 외국산에 비해 저렴한 편이다. 그러나 전동 스쿠터 등 장애인용품이 정부 지원을 받는 반면 자전거는 지원을 받을 수 없어 장애인들이 쉽게 구입하지는 못하고 있다.

대량생산 체제를 갖추지 못한 것도 최 대표로서는 아쉬운 부분이다. 중요한 부속품들을 일일이 구입해서 제작하다보니 가격이 비싸질 수밖에 없다. 특히 최근의 환율 폭등으로 인해 경영 환경은 더욱 악화됐다. 그래도 이 일을 그만둘 생각은 없다. 아내의 건강을 생각해서 시작한 일이지만, 이제 그가 바라는 세상은 커졌기 때문이다. 더 많은 장애인이 자전거로 세상을 달리고, 환경을 지키는 자전거 세상을 열어가는 길을 그는 지금 꿈꾸고 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장애인들은 이동에 대한 욕구가 굉장히 강해요. 그 사람들이 조금 더 편하게 이동할 수 있게끔 하고 싶어요. 자전거의 바퀴가 수족처럼 사용될 수 있도록 하는 게 제 꿈입니다. 게다가 자전거란 게 무공해ㆍ친환경 이동 수단이잖아요. 이런 자전거를 포함해 자전거 타기가 활성화돼 우리 환경에 도움이 많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

핸들 없는 자전거? “처음엔 다들 미쳤다고 했어요”

손발자전거란 손과 발 모두를 이용해 바퀴를 굴리는 자전거를 말한다. 국제인력자전거협회(IHPVA)는 ‘손으로 페달의 힘을 도와주는 인력차량’으로 분류하고 있다.

네 발로 달리는 짐승이 직립보행을 하는 인간보다 빠르다는 점 때문에 많은 발명가들이 손발자전거에 도전했다. 19세기 후반부터 여러 형태의 자전거가 개발됐지만 지금까지 상용화된 것은 거의 없다. 일반 자전거에 비해 자연스러운 자전거 운전이 힘들었던 탓이다.

지금까지 개발된 대부분의 손발자전거는 손으로 바퀴를 굴리면서 방향전환까지 해야 했다. 그런데 이러다보니 방향을 틀 때마다 자전거의 중심이 흐트러지면서 안정적인 운행이 불가능해졌다. 출시된 제품 대부분이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아온 이유다.

그러나 스카이휠의 손발자전거는 손으로 방향전환을 해야 한다는 기존의 생각을 아예 배제하고 출발했다. 손과 발 모두 바퀴를 굴리는 데 집중하고 방향은 몸의 중심 이동으로 해결하자는 것이 개발 초기의 생각이었다. 넓은 들판을 달리는 치타가 척추와 꼬리뼈로만 방향을 전환하는 데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다.

“처음에 핸들 없는 손발자전거를 만든다고 하니, 사람들이 미친 사람 취급하더라고요. 어떻게 핸들 없이 가는 자전거가 있냐 이거죠. 저도 솔직히 이게 정말 될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는 했어요.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고요. 핸들 없이 몸으로만 방향 전환을 하기 위해서는 앞 바퀴의 각도가 중요한데, 그걸 알아내는 데 꽤나 애를 먹었죠.”

막상 자전거가 세상에 공개되자 그의 말에 코웃음을 쳤던 사람들도 머쓱해졌다. 2006년 대만에서 열린 국제발명품전시회에서 1등상인 금상을 수상한 것을 시작으로 지난해 국내에서 열린 보조기구공모전에서도 기획 및 제작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최근에는 미국의 한 업체에서 사업제휴를 제의하기도 했다.

취재/작성자 소개

노준형은 전공이 뭐냐고 물어볼 때가 제일 난감하다. 전자공학과 글쓰기의 상관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회로설계(Circuit Design)와 글쓰기의 원리는 동일하다고 종종 주장한다.
몇 차례 취재기자를 꿈꾸며 <코리아포커스>, <아시아경제 브이에스뉴스> 등에서 짧게나마 기자생활도 했으나 불가항력적 상황에 밀려 지금은 언론홍보대행사 커런트코리아에서 홍보AE로 일하고 있다.
‘노대리의 직딩일기’와 같은 자전적 에세이를 쓰고 싶지만, 잦은 야근에 치여 하루하루 꿈을 내일로 미루고 있다. 희망제작소의 소중한 부름을 받게 된 것에 감사하며 사는 소박한 직장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