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고맙습니다

우리 사회의 희망씨, 희망제작소 후원회원님을 소개합니다.

다 익은 뿌리작물의 얼굴을 확인하기 위해 흙을 털어내는 순간,
우리는 일 년의 노력과 마주하게 됩니다.

주렁주렁 달려 있는 과수의 열매와 달리,
땅 위를 넘실대며 줄기를 뻗어가는 덩쿨과 달리,
뿌리작물은 좀처럼 그 얼굴을 보기 힘들지요.

오로지 하늘을 향해 뻗어 있는 손을 힘껏 잡아 올려야,
빛나는 얼굴을 만날 수 있습니다.

주중식 후원회원님을 만나는 과정이 그랬습니다.

서울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계시는 후원회원님
그리고 희망제작소 프로그램을 통해 자주 뵙게 되는 후원회원님과 달리,
지역에서 활동하시는 후원회원님과는 자주 인사를 나누지 못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안타깝고 죄송한 마음입니다.

그래서 무작정 전화기를 들었습니다.
9월, 이른 추석으로 몸과 마음이 상하진 않으셨을까 지역 ‘농부’의 안부를 여쭙고 싶었습니다.
갑작스럽게 손을 뻗었음에도 불구하고, 흔쾌히 손을 잡아 주신 주중식 후원회원님께 감사 드리며
거창농부의 빛나는 희망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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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주중식입니다. 저는 현재 읍내 집에서 조금 떨어진 산골짜기에다 논 한 뙈기 마련해서 반은 밭으로 일구어 농사를 조금 짓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끔 나라 안팎으로 세상 구경을 다니고, 틈틈이 학교에 나가서 아이들에게는 ‘우리 말글 바로 쓰기’ 이야기를 해주고, 학부모님과 선생님들을 만나 교육 이야기를 나누기도 합니다. 또 ‘한국 글쓰기 교육 연구회’ 일꾼으로 지내며, 우리 말과 삶을 가꾸는 ‘글쓰기’ 공부도 합니다.”

요청한 한 장의 질문지와 그동안 틈틈이 기고하셨던 글 한 묶음이 이메일로 도착했습니다.
연구원들과 함께 나누어 읽기도 하고, 밑줄을 그어 가며 다시 읽으면서
며칠 동안 주중식 후원회원님의 이야기에 푹 빠져 있었습니다.
후원회원님의 글은 2009년 2월, 교장 퇴임 이후 꾸준히 글쓰기와 농사를 통해 희망을 만들고 계신 이야기로 가득했습니다.
희망제작소와의 만남은 2010년에 시작됩니다.

‘거창 100인 북(독서) 클럽’이 처음 여는 ‘박원순 변호사 초청 강연’을 들었다. 희망제작소를 비롯한 여러 가지 나눔 사업을 펴 나가는 이야기다. 제각기 하는 일에 어울리는 이름을 붙이고 새롭게 해나가면 작은 기업 사장이 된다는 사례를 사진으로 소개하셨다. 세상이 변하므로 그에 맞추어 얼마든지 일을 새롭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박원순 변호사님은 부모님한테서 살아가는 태도를 유산으로 받았기에, 자식들한테도 줄 게 없는 유산을 남긴다는 유언을 해놓으셨단다. 참 큰 유산을 준비하셨네! 마치고 나오면서 ‘희망제작소’ 후원금을 다달이 1만 원씩 내겠다고 하였다.


“희망제작소와의 인연을 기억하기 위해 2010년 6월 28일, 써놓은 일기를 찾아보았습니다. 다시 읽어 보니, 세상은 변하지만 얼마든지 새로운 일을 만들 수 있다는 말이 인상 깊네요. 제겐 글쓰기와 농사가 그렇습니다. 모두 목숨을 살릴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 것이기도 합니다.”

농사는 사람을 살리는 일

“사람은 밥을 먹어야 삽니다. 그 밥 얻는 일이 농사이니, 농사는 사람 살리는 일이지요. 여러 가지 일 가운데서도 첫째 가는 중요한 일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났다가 그 중요한 일 한 번 해보고 가야지 하는 마음에 다섯 해 전부터 시작하였습니다. 제 힘에 맞추어 하는 일이라서, 우리 집 밥상에 올리고 이웃에 조금 나누어 먹을 만큼만 짓습니다. 나락 농사는 물론, 옥수수, 참깨, 콩 같은 곡식에 오이, 가지, 고추, 호박, 상추, 무, 배추 같은 남새도 가꾸며 농사꾼 흉내는 다 내고 있습니다.


농사를 하고부터 햇볕과 비, 구름, 바람, 우주의 기운을 느낍니다. 올해는 봄철에 많이 가물어서 참깨 씨를 넣고 물을 주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여름철에는 비 온 날이 너무 길었고, 이 가을에는 기온이 빨리 내려가서 농작물에는 해로운 것 같습니다.

무엇이건 가치를 돈으로 재는 세상입니다. 그러니, 돈이 안 되는 농사 지을 사람이 자꾸만 줄어들지요. 이제 농촌에는 나이 많은 사람만 남아서 아픈 몸 끌고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 ‘삶을 가꾸는 글쓰기’에 기고하셨던 글을 다시 읽어 보았습니다.

“찾아보면 목숨 살리는 말을 많이 있다. 그 말이 살아 숨 쉴 자리가 없어진 것이 문제다. 말이 숨을 쉴 공간이 좁다. (중략) 말을 살려야 한다.”

글(말)과 농사, 후원회원님의 말처럼 모두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길일지도 모릅니다.
쉽게 내뱉은 말로 편을 나누고, 거짓말로 안타까운 목숨을 잃었습니다.
밥 없이 살 수 없지만, 우리는 쉽게 지역을 외면하고 쌀 시장 개방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사는 것이 쉽지 않다지만, 우리는 쉽게 ‘살기’를 포기하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저는 젊은이들이 도시에만 몰려 있지 말고 농촌에서 아이 낳고 살면서 아이들이 이런 자연 속에서 자라도록 하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이 될까 하고 꿈꿉니다. 이런 세상이 오도록 희망제작소 일꾼들이 농촌이 살아나게 하는데도 힘써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젊은이들 마음도 바뀌고, 나라 살림 맡은 이들의 생각도 달라지겠지요?”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함께 살기 위한 방법을 연구하겠습니다. 그리고 지역과 더 많이 함께하겠습니다. 제 다이어리 한 켠에 옮겨 적어 놓은 주중식 선생님의 수필을 마지막으로 전하며, 크고 무거웠던 뿌리작물과의 인터뷰를 마치겠습니다.

“밭에 이랑을 만들고, 거기에다 알맞은 간격으로 막대를 꾹꾹 눌러서 홈을 내고는 씨를 넣는다.
씨가 싹트려면 알맞은 물기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온도 또한 알맞아야 싹이 튼다.
그 조그만 씨앗이 땅속에서 싹을 틔우는 것만 해도 기적이다.
그런데, 싹이 터서 이만큼 자란 것은 더더욱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큰 무로 자라려면 언제나 위험이 따른다.
벌레가 갉아 먹어서 시들 수도 있고,
고라니가 와서 밝아버리면 싹은 여지없이 꺾이고 그것으로 생명은 끝나버린다.
이 어린 무가 자라는 걸 보면서 내가 살아온 지난 날을 생각해 본다.
태어나서 어린 날을 지나고 환갑을 맞이하는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위험한 일을 얼마나 많이 겪었던 가.
(중략) 어찌 보면 실낱 같은 목숨이 끊기지 않고 잘 붙어 있어서 지금까지 살아 있는지 모른다.”


하늘이 짓는 농사 중 무를 솎으면서 / 2012.09.10.월 / 아침에는 흐렸으나 차차 맑아졌다.

글_ 윤나라 (공감센터 연구원 satinska@makehope.or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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