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종] 안산시의 사냥대회

김수종의 사막을 건너는 법

박주원 안산시장이 이상한 사냥 대회를 시작했다. 안산 하면 반월공단과 시화호의 이미지만 떠오르는데 사냥터가 어디 있을까. 그렇다. 안산 시장이 사냥하는 것은 숲 속의 노루나 꿩이 아니다. 탄소사냥이다.


안산시의 이상한 사냥대회


탄소사냥, 그게 뭐하는 것일까. 아주 간단하게 설명하면 전력 사용량 줄이기 경쟁이다. 작년 7월 1일부터 연말까지 사용한 전력량과 비교해 올해 같은 기간 중 사용한 전력량이 줄어들게 하는 것, 그게 탄소사냥이다.

사용 전력량 감축 비율이 가장 높으면 1등을 한다. 이 사냥대회에 참가해 1등을 차지한 가구에게 주어지는 상금은 30만원이다. 시당국은 동아리로 참가하기를 권하고 있다. 상금도 다르다. 예를 들면 50가구가 단체로 등록해서 탄소사냥에 나서서 1등을 하면 150만원의 동아리 상금이 나온다. 물론 1등을 한 동아리 중에서 가구 1등이 나올 수도 있다.

“애걔걔! 그것도 상금이라고.”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탄소사냥대회는 상금이 중요한 게 아니다. 안산시가 아직 아무 지자체도 실행하지 않는 이산화탄소 줄이기에 범시민적으로 뛰어들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전력 사용량 줄이기 경쟁


우리나라에서 이산화탄소를 가장 많이 발생하는 분야는 발전 부문(석탄화력)이다. 그래서 전력사용을 줄이는 것이 탄소 줄이기의 핵심이다.

기후변화의 원인인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것은 국제사회의 제일 큰 이슈다. 여기다 국제유가 폭등으로 에너지 절약이 이제 국가적 과제가 되었다. 이런 상황을 예측이라도 한 듯 박주원 시장은 2년 전 시장 선거에서 7대 선거공약을 제시하면서 경제 활성화를 제1공약으로 내세우고 곧바로 친환경 생태도시 건설을 제2공약으로 내걸었다.

‘친환경 생태도시’, 정말 전국 어디를 가나 흔해빠진 장식용 정책이다. 그러나 안산시에서 추진하는 것을 보면 그냥 장식용이 아니다. ‘기후보호 도시-안산’이라는 앞서가는 케치프레이즈를 내걸었을 뿐 아니라, 정책실행의 의지가 인사와 예산에 구체적으로 반영되고 있다.

안산시는 환경문제를 관할하는 시청의 직제부터 뜯어고쳤다. 기존의 ‘환경관리과’를 ‘지구환경과’로 바꿨다. 이름만 바꾼 게 아니라 지구환경과에 ‘온난화대책 담당’과 ‘신재생에너지 담당’을 설치했다. 시청의 탄소 컨트럴 타워인 셈이다.

시청직제 개정보다 더 대담한 조치는 안산시의 환경보전에 대한 각종 지원사업을 벌일 재단법인 ‘에버그린 21’을 지난 봄 출범시킨 것이다. 이 재단법인의 이사장은 시장이 직접 맡았다. 시장이 환경보전 관련 사업을 직접 차고 앉아 관장하겠다는 뜻이다.
이 재단법인의 주력 사업으로 꼽히는 것이 환경인증제 업무다. 그래서 이름도 ‘에버그린 환경인증제’다. 이 제도가 박 시장이 선거공약으로 내세운 ‘환경생태도시’ 핵심이다.

안산시에는 25만 8000가구에 75만 명의 인구가 산다. 기업체수 5천여 개로, 숫자에서 우리나라 최대인 반월·시화 산업단지가 있다. 가정 기업체 서비스업소 학교 공공기관 등 27만4000개소에 이르는 에너지 소비 주체를 대상으로 온실기체 감축이행 정도에 등급별 인증을 부여하고 차별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한다는 것이 ‘에버그린 환경인증제’의 실행 전략이다.


에버그린 환경인증제 실시


우리나라에서 처음 구체화된 이 사업은 운영주체인 안산시, 인증기관인 재단법인 ‘에버그린 21’, 실천방안 연구를 맡은 민간 싱크탱크 ‘희망제작소’, 그리고 각종 유관단체의 협력으로 엮어지는 프로젝트이다. 탄소사냥 대회는 이 프로젝트의 실행을 알리는 신호탄인 셈이다.

안산시는 환경문제 해결의 단초를 왜 눈에 보이지 않는 이산화탄소 줄이기에서 찾을까.
박주원 시장은 이렇게 말한다. “에너지 절약은 환경문제를 푸는 마스터키입니다.” 무슨 얘긴가 했더니 보이지 않는 쓰레기인 이산화탄소를 줄임으로써 낭비가 줄어들고, 이게 다른 모든 환경문제를 일으키는 도시쓰레기 등 오염물질을 줄이는 데 시발점이라고 보는 것이다.

보이는 환경 문제부터 손대는 관행에 비춰본다면 완전히 역발상이다. 이런 식의 얘기는 시장뿐 아니라 환경담당 공무원의 입에서도 나온다. 누구의 아이디어인지 모르나 환경문제 해결에 대한 개념화가 잘 정비되어 있는 것 같다.


안산시민은 환경문제에 민감하다. 반월공단과 시화호 오염의 기억은 아직도 안산의 이미지로 남아 있다. 지금도 오염 화학물질 악취가 날 때가 있다.

이런 시민들의 아픈 기억이 지자체의 정책을 움직이고 탄소 줄이기의 선두주자가 되게 만든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마치 전후 일본 최악의 산업 오염도시를 환경도시로 만든 일본 기타큐슈의 르네상스 프로젝트를 연상케 한다.

안산시의 다른 정책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전혀 모른다. 그러나 환경정책 하나는 기초를 잘 잡아 나가는 것 같다. 안산이 가는 길은 우리나라 모든 도시가 따라갈 수밖에 없는 길이다.

 이 칼럼은 내일신문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올챙이 기자로 시작해서 주필로 퇴직할 때까지 한국일보 밥을 먹었다. 혈기 왕성한 시절의 대부분을 일선 기자로 살면서 세계를 돌아 다녔고 다양한 이슈를 글로 옮겼지만 요즘은 환경과 지방문제, NGO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이제는 글 쓰는 것이 너무 지겹다’고 말하면서도, 지난 100년 동안 지구 평균 기온이 0.6도 올랐다는 사실이 인류의 미래에 끼칠 영향을 엄중히 경고하기 위해서 사막을 다녀온 후 책을 쓰고, 매주 여러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그는 여전히 현장에 있고 천상 글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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