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 피해지역에서 가족을 돌보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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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신숙 희망제작소 일본 주재 객원연구위원이 전하는 일본, 일본 시민사회, 일본 지역의 이야기. 대중매체를 통해서는 접하기 힘든, 일본 사회를 움직이는 또 다른 힘에 대한 이야기를 일본 현지에서 생생하게 전해드립니다.


일본통신 (10) 지진 피해지역에서 가족을 돌보는 사람들

지역 복지를 이야기할 때 케어러란 단어는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다. 케어러란  직업적인 사회복지 분야 종사자들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가정에서 병약한 부모나 장애를 가진 자식을 돌보는 사람들을 말한다. 이들은 가족들을 돌보면서 정신적, 육체적, 경제적으로 과도한 부담을 안고 있으며, 때로는 돌발적으로 동반 자살을 한다거나 살인을 할 정도로 궁지에 몰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령자, 병약자, 장애인들에 대한 복지 서비스는 많이 제도화되고 논의되고 있지만, 이들에 대한 케어는 ‘가족이니까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등 자식으로서 부모로서의 의무로 치부하면서 간과하고 있다. 이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그 어느 곳보다 빨리 케어러들의 문제를 직시해 이들도 당연히 지원 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음을 인정하고 제도화시킨 나라가 영국이다. 영국 정부는 1995년‘The Cares Recognition and Service Act’를 제정해, 지방정부가 재택 복지의 책임을 갖고,  돌봄 서비스가 필요한 가정에 대한 지원과 서비스를 평가(Assessment)하고, 조정?실시하도록 했다. 뿐만 아니라 ‘Carers UK’ 등 케어러들을 지원하는 전국 단위의 조직이 다수 활동하면서 지원 서비스의 질을 보다 향상시켜 가고 있다.

일본도 2010년 6월 케어러들이 모여 ‘사단법인 일본 케어러 연맹’을 결성하고 전국적인 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5세대 중 1세대는 고령자, 병약자, 장애가 있는 가족을 돌보고 있으며, 그들 4세대 중 1세대는 복수의 가족을 케어하고 있고, 12세대 중 1세대는 20년 이상 케어하고 있었다. 정신적, 시간적인 구속으로 생활에 심각한 영향을 받고 있는 케어러들의 실태가 드러나면서, 이들 케어러들에 대한 지원이 절실하다는 인식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두 돌을 맞이한 연맹은 올해도 ‘NPO법인 개호자 서포트 네트워크 센터-알라딘’과 함께 지난 6월27일 도쿄에서 ‘2012 케어러 지원 포럼’를 개최하고, 특히 동일본 대지진 재해지 케어러들의 실태와 지원책을 논의했다. 이번 일본통신은 이날 포럼 내용을 공유하면서 우리 나라의 케어러들의 문제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_1C|1382451510.jpg|width=”368″ height=”260″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2012 케어러 지원 포럼_##]
“휴식시간이 필요해요.”

재해지에서 생활하는 케어러들 중 절반 이상이 신체적 또한 심리적인 이상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케어러 연맹과 알라딘은 지난 2011년 11월부터 2012년 1월까지 이와테현 미야코시 등 3개 재해 지역에서‘재해지 케어러 실태 조사’를 실시했다. 이날 포럼은 케어러 연맹의 나카무라 켄지(中村健治、홋카이도 사회복지협의회)이사의 조사 결과 발표로 시작됐다.
[##_1C|1011916384.jpg|width=”227″ height=”191″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나카무라 켄지(케어러 연맹 이사)_##]

조사 결과 재해지 케어러들의 곤란한 상황이 속속 드러났다. 노인이나 장애아동을 돌보고 있는 가정 중 2/3가 쓰나미로 가옥이 전파 혹은 반파되어 피난소나 가설 주택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져 피난소와 친척의 집을 전전하는 경우도 있다. 일반 피난소는 가족을 돌보며 생활하기에는 너무 불편하고 위험했으며 복지 피난소는 그 수가 적어, 3세대 중 2세대는 재해 후 상태가 더욱 나빠졌으며, 오랜 피난 생활을 겪으면서 건강상태가 나빠진 고령자도 많이 보인다. 또한 평균 가족 수가 3.45명에서 3.33명으로 줄고, 특히 2인 세대가 증가했음에 비해 복지 서비스 이용은 여전히 어려워 1인이 감당해야 하는 부담이 크게 늘어났다. 케어러의 평균 연령은 60.9세이고, 5명 중 1명은 남성으로 나타나 경제생활을 포기하고 가족을 케어하는 경우도 많이 발생하고 있다.    
[##_Gallery|1170267756.jpg|지진 이후 거주하고 있는 곳은?|1228461747.jpg|지진 이후 건강 상태는 어떤가요?|width=”350″ height=”300″_##]

그래서 재해지 케어러의 55.9%가 신체적 이상을 느끼고 있으며, 46.3%가 정신적 이상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이는 재해 발생 전인 2010년 조사의 48.4%, 27.4%에 비해 크게 늘어난 수치다. 그러나 이들 중 대다수(70.8%)는 진료 등 어떠한 의료적인 조치도 받지 않고 있으며, 40명 중 1명은 가족을 돌보는 일이 너무 힘들어 자신의 건강에는 신경 쓸 여유가 없다고 답했다. 또한 2명 중 1명은 가설 주택 등에서 지내면서 고립감을 심하게 느끼고 있다고 답했는데, 이는 지진 발생 전 조사에 비해 2배로 늘어난 수치다.
[##_Gallery|1236420741.jpg|지진 이후 생활은 어떤가요?|1188857566.jpg|지진 전보다 가족을 돌보는 일이 부담스럽나요?|width=”350″ height=”300″_##]

지금 가장 절실히 바라는 지원책으로는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간, 긴급 지원 서비스, 지원금 지급이라고 답했다. 나카무라 켄지 이사는 이번 조사를 통해서 재해로 인해 케어러들의 생활에 여유가 없어지거나 불안과 스트레스가 크게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에서 제공하는 복지 서비스 내용은 변화가 없음을 알 수 있었으며, 앞으로 재해 복구에 있어 행정기관과 전문가 그리고 주민들이 케어러들을 직접 찾아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지역의 지원 시스템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자연 재해는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일이지만, 병약자들과 그들을 지키는 가족들에게 재해는 더욱 잔인하게 다가올 수 있으며 생활을 복구하는데 사회적 지원이 더욱 절실함을 느끼게 해주는 발표였다.
 
치바현 중핵지역 생활지원센터
– 맞춤형 케어 플랜 실시

이날 포럼에서는 케어러들의 지원 방향과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선진적인 지역의 실천 사례도 소개됐다. 호리코시 에이코 일본여자대학 교수는 2004년에 설립된 ‘치바현 중핵지역 생활지원센터’의 사례를 소개했다.
[##_1C|1087101887.jpg|width=”257″ height=”195″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호소카와 에이코 (일본여자대학 교수)_##]
치바현은 권역별로 현내 13개 지역에 생활지원센터를 설치해 복지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고 한다. 각 센터는 공모를 통해 결정된 사회복지법인과 NPO, 의료법인 등의 민간단체가 현으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는데, 24시간 365일 상담을 받고 있다. 상담 결과 지원이 필요한 경우에는 각 케이스별로 지역의 타기관이나 전문가들과 함께 맞춤형의 지원 네트워크를 구성하여 문제를 해결해 주고 있는 점이 이곳의 가장 큰 특징이다.  

지원 케이스의 한 예를 들어보자. 중증 장애를 가진 아들과 둘이 살고 있는 50세의 케어러가 상담을 요청해 왔다. 재택개호, 생활개호 등의 복지 서비스를 받고 있지만 모자가정이라서 어머니가 일을 하고 있어서 도움의 손길이 더 필요했다. 센터에서는 모든 관계 기관과 서비스 조정 회의를 개최하여 새로운 케어 플랜을 짜고 필요한 서비스를 행정기관에 요청했으며, 어머니가 일을 하면서 아들을 돌볼 수 있도록 지원했다.

홋카이도 크리야마 사회복지협의회
– 케어러가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지역 만들기

홋카이도 크리야마(北海道栗山町) 사회복지협의회 사무국장 요시다 요시히토(吉田義人)씨가 지역에서 실시하고 있는 케어러들의 지원 정책을 소개했다. 크리야마는 인구 13,326명, 그중 65세 이상의 고령자가 4,350명, 독신가정이 1,100세대, 부부만의 세대가 900세대나 되는 지자체로 다른 지방도시처럼 젊은이들의 지역 이탈, 무연고 사회, 노인가정, 쇼핑난, 고독사 등의 문제가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_1C|1277341765.jpg|width=”196″ height=”175″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요시다 요시히토(크리야마 사회복지협의회 사무국장)_##]

크리야마 사회복지협의회는 이러한 지역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일환으로 ‘케어러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케어러들은 케어러 자신들의 건강 불안, 쇼핑과 통원 등 일상생활의 불편, 지역 정보와의 단절, 자신의 사후에 대한 불안 등의 문제를 호소했다. 크리야마 사회복지협의회는 이런 문제들을 지역적 차원에서 해결하기 위해, ▲ 70세 이상 고령자들에게 생명의 바톤(만일의 경우 구급 대원들이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병력과 통원 병원명 등을 기입한 응급의료 정보 키트) 배포 ▲ 재택 서포터 파견 ▲ 택배전화부 작성 ▲ 장년들의 인재 등록, 볼란티어 포인트제 도입 ▲ 케어러 수첩 발행 등 케어러 지원책을 마련하여 실시하고 있다고 한다.

 요시다 사무국장은 “조사를 통해 장애인과 노인들의 학대 등 가족 문제가 예상보다 심각하게 복지제도의 틈새를 타고 나타나고 있었으며, 어쨌든 대책을 취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먼저 제도적인 지원으로 이어질 수 있는 비공식적인 도구를 만들었다. 특히 케어러 수첩의 반응이 굉장히 좋다.”고 말하면서 케어러의 문제는 복지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지역 만들기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_1C|1019341742.jpg|width=”200″ height=”267″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케어러 수첩_##]
 
NPO 개호자 서포트 네트워크 알라딘
– 케어러즈 카페를 만들다.

마지막으로 마키노 아야코(牧野史子) NPO 개호자 서포트 네트워크센터 알라딘 대표가 나와 단체에서 운영하는‘케어러즈 카페’를 소개했다.‘케어러들을 케어하자!’는 목표로 설립된 알라딘은 지난 10년간 고립된 생활을 보내는 케어러들을 지역활동에 참가시키기 위해 전화 상담, 케어 서포터 파견 등 다양한 노력들을 하고 있다.

그동안 케어러들의 사정이 많이 변했다고 한다. 특히 케어러들의 고립된 생활과 고독사가 증가했으며, 독신 남녀의 젊은 케어러 수가 증가했다고 한다. 그래서 지난 4월 지역에서 고립되기 쉬운 케어러들에게 오픈 공간으로, 젊은 케어러들이 편히 찾을 수 있는 카페를 개설했다. 남성 케어러들을 포함한 젊은 케어러들이 오가며 가볍게 들러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커뮤니티 카페를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역 앞과 병원 앞에 카페를 만들었다. 카페를 오픈한 이후 케어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계속 늘고 있으며, 미니 강좌 등도 개최하고 있는데, 지역 병원의 의사와 간호사, 가족을 가정에서 돌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의 강좌가 케어러들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한다. 또한 한 달에 한 번씩 개최되는‘노부모를 돌보는 자식들의 모임’은 동병상련을 나눌 수 있어 큰 인기를 얻고 있으며, 자신의 스트레스를 토로할 수 있는 ‘철학 이야기’ 모임도 큰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한다. 이 카페는 도쿄도의 지역 상조 보조금을 받아 오픈했다.
[##_1C|1223098374.jpg|width=”350″ height=”263″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토쿄 아사가야역 앞에 오픈한 케어러즈 카페_##]
 이날 포럼은 개호자(介護者 가정에서 가족을 돌보는 사람들) 지원 추진에 관한 법률안 제정을 목적으로 ‘일본에 개호자 지원법을 실현하는 시민 모임’ 결성을 호소하면서 막을 내렸다.

참가자들은 케어러 지원 법률 제정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호소함과 동시에 케어러 지원책은 ▲ 포괄적인 생활지원의 원칙  ▲방문?동행 상담 지원과 가족 단위의 접근 ▲ 지역에 필요한 서비스와 긴급 대응 체제 구축 ▲ 케어러 지원 전문가 양성과 교육 5)지역 들기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그 원칙을 밝히면서, 각 지자체는 우선 케어러들의 건강과 실태 그리고 욕구 파악에 착수할 것을 촉구했다.
 
글_ 안신숙 (희망제작소 일본 주재 객원연구위원 westwood@makehop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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