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나라 빚에 대한 다른 생각

지난 주 미국 워싱턴에서 G20 경제회의가 열렸다. 선진국 20개국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들의 모임이다. 세계경제를 규정하는 시스템을 운영하는 이들이다. 그런데 여기서 국가의 재정 지출을 확대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회의 뒤 나온 코뮤니케(공동선언문)에서는 “통화정책만으로는 균형있는 성장을 이룰 수 없으며… 재정정책을 유연하게 사용할 것”이라고 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뒤 선진국들 사이에서는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구조개혁을 강조하는 독일과 통화 및 재정확대를 강조하는 미국, 일본, 일부 유럽국가 등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독일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들의 위기는 구조개혁이 미진해 벌어진 일이므로 내핍과 긴축을 통해 체질을 개선해야 해결될 문제다. 그러나 남유럽 국가나 미국이나 일본 관점에서 보자면 정부가 재정확대와 통화정책 등을 통해 돈을 더 풀지 않은 상황에서는 구조개혁도 어렵게 된다. 이런 팽팽한 논쟁 속에 G20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들은 후자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특히 재정정책에 힘을 실었다.

그런데 국가의 수입은 한정돼 있다. 재정을 확대하려면 세수를 늘려야 한다. 세수를 늘리려면 경제가 성장하거나 세율을 높여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 선진국은 이미 오래 전부터 저성장 시대를 맞았다. 게다가 복지국가일수록 세율은 이미 높일 대로 높여 놓아서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그러면 어떻게 재정을 확대할 수 있을까? 결국 빚을 더 내야 한다. 국가부채를 늘려야 한다는 이야기다.

한국에서 빚을 늘리는 일은 절대악처럼 여겨진다. 언론은 국가부채가 늘어난다는 소식을 국가가 망해간다는 소식처럼 전한다. 경제관료들은 균형재정 도그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서울시 등 지방자치단체는 빚 줄이기를 치적으로 삼는다. 빚이 늘면 낭비해서 그런 것이라는 선입견을 끊임없이 국민들에게 주입시킨다.

물론 낭비를 줄여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낭비를 줄이려다 최종적 안전판으로서의 국가 역할을 줄이게 되는 것은 않을까 걱정이다. 지금처럼 시장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국가마저 최종적 안전판을 거둬 버리면 희생당하는 이들은 가장 어려운 경제적 약자들이다.

현실을 한번 돌아보자. 한국의 국가부채가 늘어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더 심각해지고 있는 것은 가계부채다.

문제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빚을 내면 이자율이 1~2%대인데, 가계가 빚을 내면 주택담보대출이라도 5~6%대이고 신용대출이라면 10~20%까지 올라간다는 것이다. 월세도 집값의 6%를 넘어선다. 정부와 가계 사이의 위험과 부담은 그만큼 차이가 난다.

그런데 이런 차이에서 상상력을 발휘할 여지가 생기기도 한다. 예를 들어 국가가 빚을 내어 주택을 구입한 뒤 월세로 내준다면 어떨까? 빚 내어 집을 산 뒤 매달 5~6%의 이자를 내는 사람은 이제 집값의 2~3%만 월세로 내며 평생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어차피 원금을 같이 갚아나가기 어려운 현재의 거래구조로는 이자를 내는 것이나 은행에 월세를 내는 것이나 큰 차이가 없다. 그렇다면 국가부채를 늘리면서 가계부채를 줄이면서 주거패러다임을 소유에서 임대 중심으로 전환해가면 가계의 위험과 부담이 크게 줄어들 것이다.

주거문제는 하나의 예일 뿐이며, 이런 방식으로 다른 문제들도 접근해볼 수 있을 것이다. 빚을 내어 부담하는 사교육비, 빚을 내어 부담하는 창업 관련 비용 등도 비슷한 패러다임으로 풀 수 있을지 모른다.

G20 경제회의에서 오간 이야기도 이런 국가의 역할이 전제된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 그나마 재정여력이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로 거론됐다. 실제 국제통화기금(IMF) 연구 결과를 보면 한국은 2014년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노르웨이에 이어 두 번째로 재정지출여력이 높은 나라로 나타났다.

국가부채는 절대악이 아니다. 만일 가계가 져야 할 위험과 부담을 줄인다면 오히려 문제해결의 좋은 방법일 수 있다. 저금리와 저성장은 국가부채를 기회로 만드는 상상력을 가능하게 만든다. 취약한 가계의 위험과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는 지렛대가 될 수 있다.

한국 정부는 국가채무 도그마에 빠져 있다. 무리하게 긴축적 본예산을 편성해 놓고 나중에 추경예산을 추가하면서 세수부족에 시달리는 만성적 행태가 그 결과다. 이런 눈속임을 멈추고 본격적으로 재정확대와 증세 및 국가부채 구조변화 논의를 해야 한다.

물론 늘어난 재정을 아무데나 투자해서는 곤란하다. 재정지출 중 도로 건물 등 토목예산의 우선순위를 뒤로 밀어야 한다. 국민들의 주거 등 생활의 어려움을 해결하고, 미래 먹거리가 될 수 있는 새로운 산업에 투자하고, 청년들이 이런 사업에 뛰어들 수 있는 투자시스템을 만드는 일이 최우선 순위가 되어야 한다. 20대 국회에서 논의해야 하는 첫번째 과제다.

[ 뉴스토마토 / 2016.04.20 / 이원재 희망제작소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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