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귀를 기울이면>은 도쿄 다마 뉴타운이 배경이다. 1964년 도쿄 올림픽 성공과 경제성장의 여파로 수도 도쿄에 몰려든 시민들에게 쾌적한 주거 환경을 제공하겠다는 취지로 건설된 다마 뉴타운은 전후 일본식 고도 경제성장의 상징이자 자부심이었다. 1971년 나가야마 단지에 첫 입주가 시작됐다. 당시 입주자 대부분은 20~30대 전후의 베이비붐 세대였다. 단지 내 유치원과 초등학교는 어디나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그러나 40여 년이 지나면서 다마 뉴타운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는 도시’가 되어버렸다. 성장한 아이들은 독립해 이곳을 떠났고, 노후화하기 시작한 아파트에는 고령의 부모들만 남았다. 입주자의 세대교체가 정체되면서 초등학교는 폐교되기 시작했고, 단지 내 상가도 여기저기 셔터를 내렸다. 특히 입주가 빨랐던 나가야마 단지는 상황이 더 심각해 전체 주민 1만6000여 명 중 약 40%가 65세 이상 고령에 접어들었다. 이들 고령층의 약 30%는 홀로 산다.

이 단지가 몇 년 전부터 이름이 알려지고 있다. 고층 아파트 1층 상가 한 귀퉁이에 들어선 ‘나가야마 복지정’이라는 커뮤니티 카페 덕분이다. 고령화 사회의 새로운 대안 모델로 주목받는다는 이 카페를 찾아가 보니 약 66㎡(20평) 남짓한 실내에 테이블 6개가 놓여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이 중 몇몇 테이블에서는 노인 서너 명이 둘러앉아 환담을 즐기며 식사를 하고 있었다. 개중에는 혼자 신문을 읽으며 밥을 먹는 이도 있었고, 벌써 식사를 마친 듯 바둑 삼매경에 빠진 이도 있었다.

이들은 복지정이 있어서 큰 도움을 받는다고 입을 모았다. 이곳에서 거의 매일 끼니를 해결한다는 야마모토 씨(77)는 “남편 건강이 좋지 않아 집에서 요양 중인데 남편을 데리고 여기에 오면 이웃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식사를 할 수 있어 기분 전환이 된다. 채소와 생선을 중심으로 매일 메뉴가 바뀌기 때문에 노인들이 먹기에도 좋다”라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8년째 복지정 단골이라는 히라야마 씨(84)는 “내게 복지정은 연인과 같은 곳이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그간 복지정에서 발행하는 신문에 자신이 기고했던 글을 보여주기도 했다. 다들 느긋한 모습이었다.

자원봉사자로 구성된 비영리 법인이 카페 운영

2001년 다마 시는 뉴타운 고령화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지역 주민들과 ‘고령자 사회 참여를 위한 간담회’를 개최했다. 자칫 집안에 고립돼 생활하기 쉬운 고령자들이 지역으로 나와 교류하고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당시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한 ‘노인들의 고독사’가 충격을 던져서인지 참가자들의 열기는 예상 외로 뜨거웠고, 사업 또한 빠르게 진행됐다. 다마 시와 도쿄 도의 보조금으로 상가의 빈 가게를 빌려 복지정을 개업하게 된 것이다. 카페 운영은 자원봉사자로 구성된 비영리 법인(NPO)이 자율적으로 맡기로 했다. “복지정을 찾는 지역 노인은 하루 약 50명인데, 자원봉사자 6~7명이 교대로 이들의 식사를 준비한다”라고 카운터를 맡은 모토야마 씨(78)는 말했다.

복지정 탄생의 산파 구실을 한 인물은 현재 NPO 대표를 맡은 데라다 미에코 씨(65). 1974년 나가야마 단지에 입주한 이래 생협 활동을 하며 탄탄한 자원봉사자 네트워크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 그녀는 복지정을 운영하면서 ‘따뜻한 밥 한 그릇’이 지닌 힘을 새삼 깨달았다고 말한다. “외롭다는 말보다는 배고프다는 말이 하기 쉽지 않나? 단순히 끼니에 불과하다고 여겼던 점심 식사가 지역과 고령자의 일상을 지켜주는 생명선이 될 수도 있음을 이 일을 하면서 알게 됐다.”

이렇듯 밥 한 끼니를 통해 지역 고령자들의 끈끈한 커뮤니티를 형성한 복지정은 장기와 바둑·체조·노래 등 다양한 취미 강좌도 진행 중이다. 복지정을 중심으로 고령자 스스로 마을 만들기에도 나선다. 홀로 사는 노인들에게 리본과 지역 생활정보 안내서 등을 나눠주고 이들의 일상을 보살핌으로써 서로가 서로의 지킴이가 되어주는 것이다. 계단 높이를 조절하고 보행에 불편한 곳을 손보는 등 동네 환경을 가꾸는 일에도 적극적이다.

복지정은 현재 다마 시로부터 1년에 60만 엔가량 보조금을 받는다. 고령자 건강 증진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미니데이 서비스’ 기관으로 지정된 덕분이다. 그렇지만 이 돈 대부분은 임차료와 각종 강좌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비용으로 들어간다. 운영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복지정은 이용자들에게 끼니당 500엔씩 밥값을 받는다. 노인이건 자원봉사자건 방문자건 마찬가지다. 그래 봐야 “음식 자재를 구입하고 광열비를 내기에도 빠듯하다”라고 모토야마 씨는 말했다. 결국 무급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에 기반해 카페가 굴러가는 구조라는 얘기인 셈인데, 여기에 불만을 가진 자원봉사자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용자와 스태프를 구분하지 않는 복지정 특유의 운영 방식 때문이다. “저도 일할 때는 스태프지만 식사를 할 때는 이용자지요. 복지정을 이용할 때는 어떤 격식도 절차도 필요 없습니다. 그저 오고 싶을 때 와서 편히 쉬어가는 곳이 됐으면 합니다”라고 데라다 씨는 말했다. 마을 주민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커뮤니티 공간, 이것이 복지정의 성공을 이끈 또 하나의 열쇠였던 셈이다.

[ 시사인 / 2013.11.21 / 안신숙 일본 희망제작소 객원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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