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사용자

20대 청년보다 활기차고, 일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미국 시니어, 그들에겐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을까요? 젊은 한국인 경영학도가 ‘세 번째 장을 사는 사람들’ 이라는 제목 아래 자신의 눈에 비친 미국 시니어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적극적으로 노년의 삶을 해석하는 미국 시니어의 일과 삶, 그 현장으로 초대합니다. 


세 번째 장을 사는 사람들 (14)

최근 엄마가 된 저는 워크라이프밸런스 (work-life balance) 문제에 관심을 더 많이 갖게 되었습니다.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게 된 30대 여성의 삶에서 커리어란 무슨 의미를 갖는지, 그들이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방법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양육이라는 것이 진정으로 갖는 의미란 무엇인지, 그 삶이 남성의 삶과는 어떻게 다른지, 특히 여성-남성 커플의 경우 워크라이프밸런스가 성에 따라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왜 다른지에 대하여 개인적으로 고민하고 연구하는 중입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에서 시작된 이 문제의식은 시니어의 삶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습니다. 여성으로서 사는 시니어의 삶은 어떠한 것일까, 남성 시니어의 삶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요?

마침 워크라이프밸런스, 은퇴, 여성 문제에 대해 평생 연구를 해온 Phyllis Moen 교수가 Sarah Flood 박사와 공저한 최근 페이퍼를 읽게 되었습니다 (Moen & Flood, 2013). 이 페이퍼에서 저자는 인생의 세 번째 장 혹은 앙코르 시기(50~75세 사이)를 보내는 미국 시니어들이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 어떤 하루를 보내고 있는지를 ATUS(American Time Use Survey)와 CPS(Current Population Survey)의 ASE(Annual Social and Economic Supplement)를 데이터로 살펴보고 있습니다. 메인 데이터인 ATUS는 미국인 대표 샘플이 오전 4시부터 그 다음 날 오전 4시까지 24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를 인터뷰한 데이터입니다. 이 데이터와 ATUS 인터뷰가 있기 2~6개월 전에 한 사회·경제적 지위 정보가 포함된 인구통계조사(CPS) 데이터를 합쳐서 시니어들이 1)급료를 받는 일(paid work), 2)지역사회 기관에서 일을 하는 등의 공적인 자원봉사(public volunteering), 3)이웃사촌들을 돕는 것과 같은 사적인 자원봉사(informal volunteering – 가족부양역할 불포함)에 할애하는 시간이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 어떻게 다른지를 분석하고 있습니다. 페이퍼에서는 건강상태, 교육수준, 인종, 기혼 여부 등 다양한 사회·경제적 지위 변수를 살펴보고 있지만 이 글에서는 성별에 따른 차이를 집중적으로 논하도록 하겠습니다.

남성 시니어들은 60세에 들어서면서 풀타임으로 일을 하는 경우가 조금 줄어들고(57%에서 40%로) 65세를 넘어서면서 풀타임으로 일하는 것이 현격하게 줄어들었습니다(40%에서 10%로). 여성의 경우, 풀타임으로 일하는 경우가 남성보다 어린 나이인 60세에 들어서면서 현격하게 줄어들었고(50%에서 28%로) 65세를 넘어서면 10프로도 못 미치는 여성이 풀타임으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고용형태에 대한 연구 결과는 인생의 두 번째(20~40대) 장에서와 마찬가지로 미국 여성들의 풀타임 고용이 인생의 세 번째 장에서도 남성들보다 계속 낮은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급료를 받는 일, 공적인 자원봉사, 그리고 사적인 자원봉사를 하는 시간을 분석한 결과는 남성과 여성 시니어 모두 급료를 받는 일을 하는 시간이 나이가 들면서 점점 줄어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40대 남성과 비교할 때 60대 초반 남성은 하루 40분 정도 덜 일하고, 60대  중반 이후의 사람들은 2시간 정도 덜 일하고 있었습니다. 여성의 경우 60대에 들어서면서 하루 30분 정도 덜 유급 일에 썼고, 70대가 되면서 90여 분 덜 쓰고 있었습니다. 또한, 공적인 자원봉사에 쓰이는 시간은 남녀에 상관없이 벌이가 되는 일을 하는 시니어의 경우 더 적었습니다.

가장 놀라운 것은 자녀양육 외 다양한 뒷바라지를 하고 있음에도 꾸준한 자원봉사 활동은 여성 시니어가 더 많이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가족, 친구, 친지들을 돌보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도, 정기적인 자원봉사 활동을 하는 것도 여성 시니어가 더 많다는 것입니다. 공식적인 경제활동율은 낮을지 몰라도 비공식적인 경제활동인 양육, 보살핌, 봉사활동 등은 여성 시니어가 남성 시니어보다 더 활발히 참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자는 다양한 요소를 살펴보면서 연결된 삶들(Linked Lives)이라는 인생여정이론(Life course theory)의 개념을 도입시킵니다. 시니어들 중 연결된 삶이 많은 경우, 즉, 자식, 손주, 본인의 부모님, 그리고 친한 친구들까지도 보살피는 역할을 맡는 경우, 공적인 활동에 쓰는 시간보다 비공식적인 일에 쓰는 시간이 더 많다고 지적합니다. 주로 연계된 삶을 보살피는 역할을 여성 시니어들이 남성 시니어보다 더 많이 맡고 있기 때문에 워크라이프밸런스 문제는 양육과 가정 꾸리기에 집중하는 두 번째 장뿐만 아니라, 세 번째 장, 즉 앙코르 시기에도 드러났습니다. 미국 여성 시니어들은 자녀 양육 역할이 줄어들어도 계속 본인들의 부모님, 친지, 친구, 남편 등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보살피는 역할을 하고 있었고, 그것이 풀타임 고용율을 낮추고 일에 할애하는 시간을 줄이는 큰 요인 중 하나라고 말합니다. 저자는 가족 및 친지를 돌보는 일은 자발적인 경우보다 가족에 대한 의무감에 의해 하는 일이 많다고 이야기합니다. 제가 예전에 쓴 페이퍼에서도 미국 여성 시니어들에게 가족, 친지, 친구들을 위한 다양한 뒷바라지와 보살핌에 쓰이는 시간과 에너지가 얼마나 큰 워크라이프밸런스 스트레스로 다가오는지를 살펴본 적이 있습니다.

통계와 확률을 논하는 이 논문을 통해 미국 여성 시니어들의 워크라이프밸런스 문제를 바라보면서 우리나라 여성 시니어들의 사회 참여와 한국 사회 특유의 워크라이프밸런스 이슈를 생각해봅니다. 미국 시니어들은 제게 연계된 삶이 아니지만, 한국 시니어의 경우 제 삶과  가까이 존재하는 연계된 삶이기 때문에 더욱 구체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지금까지  보고 들은 다양한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손주를 돌보느라, 연로하신 노부 혹은 노모를 돌보느라 정신이 없는 중에도 고아원 봉사, 자선사업을 위한 활동까지 참여하는 한국 여성 시니어들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현재 두 번째 장(20~40대)을 사는 사람들의 어머님들 대부분이 이러한 모습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페이퍼에서도 지적하듯이 가족 뒷바라지는 자의적인 경우보다는 사회적인 통념에 의해서 강요된 경우가 많습니다. 50대에 들어서서 새로운 공부를 하고 싶고 인생의 세 번째 장을 새롭게 쓰고 싶은 시니어들이라도 사회구조상 그들에게 제공되는 교육, 취직의 기회가 매우 낮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회 통념이 요하는 역할을 짊어질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은 듯합니다.

세 번째 장을 살면서 새로운 교육과 직업의 기회를 찾는다는 것은 기존의 관념을 깨야 하는  매우 용기 있는 일이기 때문에 그들을 위한 사회제도가 더욱 더 필요합니다. 특히, 본인의 꿈을 가꿔가고 싶어하는 마음이 행동으로 이어질 수 없게 만드는 주요 요소가 가족 뒷바라지 의무라면 사회에서 가족 돌보는 역할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여줄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하루 12시간씩 손주와 노부모를 돌봐야 하는 여성 시니어에게 하루 6시간 만이라도 그 역할을 분담할 수 있는 사회제도가 생긴다면, 자신을 위해 투자할 수 있는 6시간 동안 이 여성 시니어는 본인이 원하는 꿈을 향해 달릴 수 있게 됩니다. 어린이집, 노인복지시설 등이 그 부담을 덜어주는 역할을 맡고 있지만 아직까지 시니어의 입장에서 그들의 필요에 의해서 생겨나는 가족부양 보조 시설과 제도는 매우 부족합니다. 이와 같은 시설과 제도는 어린이집을 다니는 인생의 첫 번째 장을 사는 사람들, 한창 육아와 일에 힘들어 하는 인생의 두 번째 장을 사는 사람들, 노인복지시설의 도움을 요하는 네 번째 장을 사는 사람들, 그리고 이 세 그룹의 사람들과 깊이 연결되어 있는 샌드위치 시기인 세 번째 장을 사는 사람들 모두의 연계된 삶에 영향을 미치고 이를 더 나은 삶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세 번째 장을 살아가고 있는 분들에게뿐만 아니라 다른 장을 살고 있는 분들에게도 시니어들의 사회 참여를 위한 제도 및 정책은 삶과 직결된 문제가 아닐까요? 적어도 현재 두 번째 장에서 워크라이프밸런스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저와 제 남편에게 이와 같은 제도는 제 삶에 직결된 문제로 다가옵니다.

* 글에 언급된 페이퍼 바로가기 (클릭)
  Limited Engagements? Women’s and Men’s Work/Volunteer Time in the Encore Life Course Stage
 
Phyllis Moen, University of Minnesota / Sarah Flood, University of Minnesota

”사용자김나정은 영국 런던 정경대에서 조직사회심리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현재 미국 보스턴 컬리지 경영학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일터에서 다양한 종류의 변화를 겪는 사람들의 정체성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박사 논문 주제로 은퇴기 사람들의 새터 적응기 및 정체성 변화를 살펴보고 있다.  najung.kim@bc.edu



● 연재목록

1. 세 번째 장을 사는 사람들
2. 인생의 의미, 한 문장으로 간추리면       
3. 낯선 자신이 두려운 시니어에게
4. 어떤 자원봉사 자리 찾아드릴까요?
5. 나이에도 종류가 있다  
6. 탱글우드의 시니어는 왜 즐거운가
7. 자원봉사 상담사 로라 씨의 다섯 가지 질문 
8. “일이 품 안에 굴러들어왔어요”
9. 시니어의 인간 관계, 안녕하십니까?
10. 평생 ‘배우는 삶’을 꿈꾸는 시니어들
11. 잃어버린 것과 얻은 것
12. 차별 없는 조직 속 시니어들은?
13. 밥을 배달해 드립니다
14. 여성 시니어로 산다는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