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편집자 주 / ‘희망소기업’은 희망제작소 소기업발전소가 지원하는 작은 기업들로, 지역과 함께 고민하고 생활하며, 성장하고 대안적 가치를 생산하는 건강한 기업들입니다. 앞으로 이 연재가 작은 기업들의 풀씨같은 희망을 찾아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우리 마을이 예전에는 꽤나 번성했던 마을이라고 해요. 그런데 춘천댐 수몰과 이농 현상으로 인구가 많이 줄었습니다. 지역 주민들도 대부분 고령이에요. 이 분들 돌아가시고 나면 마을이 없어지지 않겠어요? 풍광이 너무 좋아서 이 마을에 들어왔는데, 사라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언가 대책이 필요했죠. 그래서 주민들과 어떻게 할 지 함께 고민했습니다.”

국내 최대의 연꽃단지, 서오지리

지난 96년 강원도 화천의 작은 마을 서오지리로 귀농을 한 영농조합 ‘꽃빛향’의 서윤석 대표는 마을을 지키고 싶었다. 오랫동안 꿈꿔왔던 귀농을 했지만, 막상 와서 접한 농촌의 현실은 밖에선 본 것과는 판이하게 달랐기 때문이다. 고령화 현상으로 갈수록 줄어드는 인구로 농촌은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는 마을을 살리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람들이 돌아올 자원이 필요했다. 그러나 강원도 작은 시골 마을에서 사람들을 불러모을 만한 것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산과 들, 강이 전부인 지역에서 특별한 자원은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서 대표는 주민들과 마을 현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마을의 가장 큰 자원이 바로 물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강과 호수가 만나는 소류지. 그곳에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의 보물이 있었다.

춘천호 상류 지역에 있는 서오지리는 소박한 시골 마을이다. 마을 인근에는 강과 호수가 만나는 소류지가 형성돼 있다. 경관이 수려해, 보기에는 좋지만 수해 때마다 이곳에 쓰레기가 쌓이고 적조가 자주 발생해 수질 오염이 심각한 상황이었다. 그는 이곳에 연꽃단지를 조성해 물을 맑게 하고 지역 주민에게 도움이 되는 수익사업을 펼치고 싶었다. 생기 없는 농촌에 활기를 불어넣어 줄 것이라는 확신에서다.

“우리 동네에는 물이 많으니 물을 이용할 수 있는 일을 해보자 생각했어요. 그러다 찾게 된 것이 연(蓮)이에요. 연을 길러서 농가 수익에 보탬도 되고,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고 싶었어요.”

하지만 연꽃단지를 조성하는 것은 개인이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대규모 예산과 관청의 도움 없이는 실현되기 힘든 사업이었다. 그는 화천군에 도움을 요청했다. 강에서 연을 길러 지역 특화 사업을 해보겠다는 제안을 한 것이다. 다행히 군에서는 그의 제안에 흔쾌히 동의하며, 적극적인 지원의사를 밝혔다. 그는 천군만마를 얻은 마음으로 구체적인 연꽃단지 구상에 들어갔다.

그는 우선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연꽃단지에 대한 시장 조사를 실시했다. 연이 자란다고 알려진 곳을 찾아 다녔지만, 생각보다 대규모의 연꽃단지는 없었다. 국내 최대의 연꽃단지를 조성하면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그는 종자를 구해 1년 동안 시범 재배를 했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자신감이 생긴 그는 본격적으로 연꽃단지 조성에 들어갔다. 물 관리 방법이나 수로 틀기 등의 시행착오를 겪으며, 연을 재배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찾아 나선 것이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 연꽃단지는 국내 최대 규모의 연 재배 단지가 됐다. 연주(酒), 연차(茶), 연과자 등을 개발해 수익 사업을 펼치고 있다. 애초부터 상품 개발을 통한 지역 사회 수익 환원을 염두에 두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또 내년부터는 연을 테마로 하는 지역 문화 축제를 구상하고 있다. 화천 산천어 축제에 버금가는 지역 축제를 꿈꾸고 있다.

”?”“손해 본다는 마음으로 일하니 믿어주시네요”

그러나 연꽃단지 조성이 처음부터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주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 주민들은 마을 토박이도 아닌 서울에서 귀농한 그를 쉽게 믿어주지 않았다. 특히 평생 농사만 짓고 살던 이들에게 테마를 내세운 문화단지 구상은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 모든 것을 혼자 다 하기에는 힘에 부쳤다. 또 지역 주민들과 함께 연꽃단지를 조성해야 이곳이 진정으로 마을의 것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마을 주민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했다. 결론은 지역 주민들과 함께 ‘연작목반’을 구성하는 것이었다. 그는 주민들을 찾아 다니며 함께 하자는 제안을 했다.

농민들에게 연작목반은 생소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연을 길러서 가공 상품을 만들어 팔 수 있다는 말 자체를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마을 주민들을 일일이 쫓아다니며 작목반 가입을 부탁했다. 우리 마을이 활기차게 변하고 주민들의 살림살이도 필 수 있을 것이라 설득했다.

물론 쉽게 설득되지 않았다. 그는 답답했지만 그렇다고 그냥 포기하지는 않았다. 그저 자신의 진심이 전달되리라 믿으며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먼저 해나갔다. 그는 우선 마을 사업에 자신의 땅과 재산 일부를 내놓았다. 연꽃단지 전망대 공사를 하는 데 자신의 땅을 기부했으며, 사비를 들여 지역 사업에 사용했다.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정성이 통했는지 주민들도 하나 둘 동참하기 시작했다. 연꽃단지를 위해 혼자서 뛰어다니던 그에게 큰 힘이 된 것은 두말 할 필요가 없었다. 지금은 10가구 18명의 주민으로 연작목반이 구성돼 연 상품화 사업을 펼치고 있다. 최근에는 마을 한 켠에 공동 작업장도 만들었다.

주민들의 참여가 늘어나면서 연 사업도 그 규모를 넓히고 있다. 상품의 판로를 확대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연 분말 사업을 추진 중이다. 연 잎을 분말로 만들어 음식에 사용할 수 있는 천연재료로 상품화 한다는 계획이다. 내년에 예정된 연꽃 테마 축제를 위해서도 주민들이 합심해 준비하고 있다. 주민들이 나서서 새로 길을 내고, 강줄기를 따라 가로수도 심고 있다.

마을 사업에서는 자칫 돈 문제 때문에 얼굴 붉히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그는 이를 애초에 방지하고자 했다. 영농조합도 수익금 배분에서 말썽이 생기지 않도록 정관에 못을 박아두었다. 수익금 중 일부는 불우이웃 돕기 등 좋은 일에 쓰도록 했다. 욕심을 버리니 뜻이 통한 것일까? 이제 주민들은 연꽃단지의 가장 큰 후원자이자 참여자이다.

“연꽃단지를 조성하자고 마을 주민들에게 얘기를 했는데, 처음부터 흔쾌히 함께 해주시지는 않으셨어요. 쉽게 믿음이 안 갔던 거죠. 평생 농사만 지으셨던 분들이 콘텐츠 산업이라 할 수 있는 연꽃테마단지에 대해 잘 이해를 못 하셨던 측면도 있어요. 그래서 우선 내 것을 조금 손해 본다는 생각으로 일했습니다. 욕심을 버리고요. 그랬더니 주민들께서 믿어주셨던 것 같아요.”
”?”
꽃(花)과 빛(色), 향(香)이 어우러진 마을

건넌마을로 불리는 서오지리에 연꽃이 있다면 이웃 마을에는 야생화와 금(金) 등을 테마로 테마 마을 구성이 한창이다.

“연꽃단지를 만들어 관광객들을 끌어 모아 지역의 농산물을 판다는 게 애초 계획이었어요. 그런데 연꽃만 가지고는 좀 약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무언가 부족했어요. 그래서 야생화 단지를 만들고자 한 거죠. 최근에는 금을 테마로 한 새로운 지역 사업을 구상 중이에요.”

야생화 단지가 조성된 곳은 동구래 마을(원천2리)이다. 지역 주민과 화천군이 기증한 1만여 평의 땅에서 3천여 종의 야생화를 재배하고 있다. 이를 위해 야생화 전문가까지 초빙해 ‘야생화마을’ 조성에 한창이다. 이곳에서 재배한 야생화는 아로마 오일이나 향 제품 생산에 사용된다. 이 지역 120가구로 구성된 ‘들꽃작목반’이 이를 맡아서 진행하게 된다.

들꽃작목반은 야생화 중에서 좋은 것들을 따로 키워 상품화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포르투갈에서 향수 제조 기계를 수입했다. 천연 그대로의 향 채취를 위한 것이다. 첨가물이 들어가지 않은 이들 제품은 체내 흡수도 잘 되고, 아토피 등 피부질환에 효과가 좋아 인기가 높다. 현재 들국화로 프로럴워터를 생산하고 있으며, 전량 제조사에 납품하고 있다. 앞으로는 이를 응용해 지역만의 특산품으로 만들고자 한다.

최근에는 원천1리 지역에서 빛을 테마로 새로운 지역 사업을 진행 중이다. 바로 금(金)을 주제로 체험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다. 연꽃단지 조성을 위한 지역 공사를 하면서 우연히 이 지역이 금광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계기였다.

“하늘에서 내린 복이 아닐까 해요. 전망대 공사를 하다가 금맥 가능성이 있는 곳이 발견됐어요. 채산성이 있는 곳은 물론 아닌 듯 해요. 그래서 이것을 광산업으로 추진하기에는 환경 문제 등 여러 무리수가 있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현재 체험 프로그램을 준비 중에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마을 주변 곳곳에 금광이 있었다. 이제는 모든 금광이 폐광이 됐지만, 아직도 그 시절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마을의 흙을 살펴보면 소량의 금이 섞여 있고, 사금지역도 소량이지만 금이 추출된다. 서 대표는 우선 폐광 리모델링을 통해 체험 탄광을 추진하고 금학습관 등도 조성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사금지역 체험 프로그램도 만들어 청소년들이나 가족 단위 관광객들의 참여를 유도한다는 생각이다. 현재는 준비 단계이며, 내년 말 이후 구체화할 계획이다.

이러한 3개 테마 마을 조성을 위해 서대표와 주민들은 영농조합법인 ‘꽃빛향(대표 김동운)’을 만들었다. 꽃빛향은 각각의 마을의 특색을 살려 사람들이 찾아가고 싶어할 만한 단지 구성에 힘쓰고 있다. 이름 또한 연꽃마을과 야생화마을을 뜻하는 ‘꽃’, 금광 테마를 나타내는 ‘빛’, 들꽃마을이 생산하는 야생화 향수를 뜻하는 ‘향’으로 이뤄졌다.

현재 조합원 수는 24가구로 조합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운영된다. 꽃빛향의 목표는 이익 증대가 아니라 주민 소득 증대와 살기 좋은 마을 건설이다. 이를 위해 이익의 대부분을 주민들에게 돌려주고 있다. 또 수익금의 일부는 장학사업과 불우이웃 돕기 등 좋은 일에 사용하고 있다.

이들의 노력 때문일까? 서오지리와 원천1,2리는 살기 좋은 마을로 선정됐다. 올해 행정안전부에서 주관한 ‘살기 좋은 지역 만들기 국가지정 시범사업’ 평가 결과 전국 30개 마을 중 우수 마을로 뽑힌 것. 지역 공간활용 및 소득기반 강화 등 4개 분야 평가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

“먼저 손 내미세요” … 귀농 준비는 이렇게

“연도 단풍이 있어요. 하지만 연이 아열대성 식물이어서 가을 밤 찬 서리를 맞으면 단풍을 맞기도 전에 시들어 버리기 일쑤에요. 그래서 단풍 보기는 그리 만만치 않아요. 그래도 일부 지역에서는 볼 수 있어요. 대략 새잎이 난지 60일 정도가 지나면 단풍이 들죠. 새 잎한테 영양분을 주고 노(老)잎은 사라지는 거에요. 어찌 보면 사람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죠?”

서울에서 잘 나가던 사업체 사장님 자리를 내려놓고 귀농을 한 지 12년. 그에게 화천은 제2의 고향이나 다름없다. 풍족한 도시 생활을 벗어나 시작한 농촌 생활은 그에게 더 풍족한 삶을 주었다. 물론 경제적 풍요로움이 아니라 넉넉한 마음을 가지게 된 것이다.

어쩌면 도시에서 사장님 소리 들으며 사는 것이 편할 수는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게 두려웠다. 욕심이 욕심을 부르는 도시 생활. 그는 자신이 가진 것을 이제 내려놓아야 할 때가 온 것을 직감했다. 그가 귀농을 결정하고 화천으로 내려온 때가 96년. IMF가 터지기 직전이었다. 동료에게 회사를 넘기고 내려온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가 부도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가 귀농을 결심하면서 마냥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새로운 곳에 대한 두려움도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다행히 마을 주민들은 그를 따뜻이 맞이해줬다. 그 역시 주민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섰다. 그러다 보니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지역 주민들과 융화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귀농을 하는 사람 모두가 서대표처럼 주민들과 쉽게 어울리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문화적인 차이로 인한 갈등, 지역 주민들의 텃새 등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해 귀농에 실패하는 사례를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귀농을 하는 데 있어 주의할 점은 무엇일까? 서대표가 생각하는 묘책은 무엇보다 먼저 손 내밀고, 한 발 양보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지역하고 융화하려고 노력해야 해요. 그것이 우선이죠. 이 지역에 먼저 살고 계신 분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들을 존중해야 되요. 그렇게 하면 마을 사람들과의 갈등이 해결될 거에요. 그 마음이 변치만 않는다면 말이죠. 또 내 것을 조금 손해 본다는 생각으로 살면 나중에 그 분들이 주시는 정이 더 클 거에요.”

서대표와 함께 꽃빛향을 운영하면서 공동체 마을 만들기에 나서고 있는 이호상씨도 귀농을 한 케이스다. 들꽃마을 리더로 활동하는 그 역시 마을 주민들과 관계 맺기가 가장 어려웠다.

“처음에 여기 살겠다고 왔을 때 두 가지 중 하나의 반응을 보이더라고요. 어떤 사람은 사기치는 것 아니냐고 하고, 어떤 이는 미쳤다고 해요. 마음을 열지 않으시는 거죠. 그런데 묵묵히 들꽃마을을 위한 집과 공원을 만들고, 일을 해 나가니까 어느 때부턴가 마음을 여시더라고요. 이제는 동네 노인들이 나서서 돕고 있어요.”

꽃빛향 3개의 마을이 지역 주민들의 참여로 아름다운 테마 단지로 바뀌어 나가고 있다. 지역 주민을 위한 수익 사업도 해가 지날수록 커지고 있다. 명실상부 살기 좋은 농촌으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서대표가 바라는 마을의 모습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그저 모두 다 같이 잘 사는, 더불어 사는 마을을 바랄 뿐이다. 그것이 모두 잘 사는 길이라 그는 믿는다.

“공동체 의식으로 같이 나누고 어우를 수 있는 마을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이웃 없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어요. 도시처럼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생각이 뿌리 내리지 않도록, 그런 마을을 만들고 싶은 게 제 바람입니다. 우리 애들에게 고향을 만들어주고 싶은 것도 나름의 꿈이고요. 힘들고 어려우면 다시 찾게 되는 고향. 그 소중한 추억을 우리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싶습니다.”


취재/작성자 소개

노준형은 전공이 뭐냐고 물어볼 때가 제일 난감하다. 전자공학과 글쓰기의 상관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회로설계(Circuit Design)와 글쓰기의 원리는 동일하다고 종종 주장한다.
몇 차례 취재기자를 꿈꾸며 <코리아포커스>, <아시아경제 브이에스뉴스> 등에서 짧게나마 기자생활도 했으나 불가항력적 상황에 밀려 지금은 현재 IR 대행사 아이피알파트너즈에서 일하고 있다.
‘노대리의 직딩일기’와 같은 자전적 에세이를 쓰고 싶지만, 잦은 야근에 치여 하루하루 꿈을 내일로 미루고 있다. 희망제작소의 소중한 부름을 받게 된 것에 감사하며 사는 소박한 직장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