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사회적금융기관 탐방기] ② Big Society Capital

이 글은 한국사회적금융연구원의 문진수 원장이 영국의 사회적금융기관(SIFIs, Social Investment Financial Intermediaries)을 돌아보면서 보고, 느끼고, 경험한 내용을 토대로 작성한 탐방 보고서입니다. 금융의 새로운 얼굴 ‘사회적투자’를 엿볼 수 있는 이번 연재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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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사회적금융기관 탐방기 ②
 Big Society Capital

언론사들이 많이 모여 있는 프리트 스트리트(Fleet street) 부근의 작고 소박한 건물 입구 안내 표지판에서 낯익은 이름을 발견했다. 1조 원이 넘는 거대 기금을 운영하는 ‘Big Society Capital(큰 사회기금)’ 사무실이 런던시 외곽의 이면도로 구석에 있다는 사실이 의아하게 느껴졌다. 사무실이 5층인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엘리베이터가 고장이란다. 약속시간을 지키기 위해 좁은 계단을 따라 급히 올라갔다. 사무실을 꾸민지 얼마 안 된 것 같은 느낌. 갓 출범한 작은 벤처기업을 연상시키는 분위기다. 10명 남짓한 직원들이 손님맞이에 분주하다. 회의실에서 10분 남짓 기다리자 전형적인 영국 신사풍의 건장한 중년 아저씨가 만면의 미소를 띤 채 회의실로 들어온다. 그가 바로 ‘Big Society Capital’ 창립 멤버이기도 하고 오랫동안 사회투자 분야에서 일해 온 경력을 지닌 대외협력 담당 임원 알라스타 발렌타인(Alastair Ballentyne)이다.

“늦어서 미안합니다. 다음 주 기금위원회 미팅에서 논의될 주제인 사회혁신 프로그램(Social Impact Program) 관련 토의가 조금 길어졌습니다. 저희 조직이 출범한지가 얼마 되지 않아 이것저것 분주한 일들이 많습니다.”

[##_1C|1225233237.jpg|width=”450″ height=”308″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좌)문진수 한국사회적금융연구원장 (우)알라스타 발렌타인 Big Society Capital 대외협력 담당 _##]


아래는 알라스타 발렌타인 씨와 나눈 질의응답 내용이다.

문진수 (한국사회적금융연구원 원장 이하 ‘문’) : 사회혁신 프로그램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인가요?

알라스타 발렌타인 (Big Society Capital 대외협력 담당 이하 ‘발렌타인’) : Big Society Capital이 투자하려는 사업영역에 대한 계획서라고 보시면 됩니다. 지역 혹은 나라마다 혁신의 대상과 성격이 다를 것이라 생각합니다. 유럽에서는 포도를 재배하는 협동조합 농장을 사회적경제의 주요 영역으로 해석하겠지만, 우리는 포도를 잘 키우는 것이 사회혁신에 큰 도움이 된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영국에서는 지역(community)이라는 코드가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사회적 배제(exclusion)의 극복, 지역 발전을 위한 아이디어의 개발과 적용 등 지역을 살리는 것이 혁신의 중심과제라고 바라보고 있습니다.

문 : Big Society Capital이 만들어진 배경이 궁금합니다.

발렌타인 : 최초 문제제기는 2005년에 시작되었지만 실제 기금의 출발은 2008년에 휴면예금 관련 법률(the Dormant Account act)이 제정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는 노동당 정부 시절이었는데 보수당까지 이 법안 제정에 적극성을 보이는 등 국가적인 의제로 다루어졌다고 보시면 됩니다. 휴면예금을 주요 재원으로 한 사회투자은행을 설립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인데, 노동당 정부가 제안한 초기기금 규모는 7,500만 파운드였습니다. 이후 보수당이 정권을 잡은 후 놀랍게도 6억 파운드로 규모를 키우자는 제안을 해왔습니다. 최초 사회투자은행이었던 이름이 Big Society Capital로 결정된 것은 캐머런 정부의 정치적 판단에 의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선거공약 중 하나였으니까요.

문 : 그렇다면, 사실상 정부로부터 독립된 기금이라고 하기는 어렵겠군요.

발렌타인 : 꼭 그렇진 않습니다. ‘큰 사회 아젠더(Big Society Agenda, 큰 사회를 만들자는 캐머런 수상의 정치 슬로건)’에 묶여있다는 점에서 현 정부의 눈치를 봐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Big Society Capital은 초당적 합의과정을 통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비교적 정치적으로 자유롭다고 할 수 있습니다. 중립적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조건이라고 할까요. 영국에는 주요 정당이 주관하는 큰 규모의 컨퍼런스가 매년 열리는데 우리는 그 행사에 모두 참석할 계획입니다. 사실상의 의사결정기구인 기금위원회는 총 8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정부 측 대표는 각료 1명이 참여하는 구조입니다.

문 :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로부터 단기적인 성과를 만들어내라는 압박이 있지 않을까요?

발렌타인 : 맞습니다. 얼마 전 정부가 설립한 사회투자기관에서 정부로부터 지원받은 자금을 너무 천천히 보수적으로 운영했다는 이유로 경영진이 교체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새로 선임된 경영진은 너무 급하게 자금 지원을 하는 바람에 오히려 부실화 시비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한 번은 너무 천천히 했다고 문제가 되고, 한 번은 너무 급하게 했다고 문제가 된 것이죠. 지금 이 기관은 해당 펀드를 운영 포트폴리오에서 완전히 빼버린 상태입니다. Big Society Capital은 단기 수익을 쫒는 것이 아니라, 긴 시간에 걸쳐 사회투자시장을 조성한다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는 인내자본(Patient Capital)입니다. 분명 정치 일정과의 일정한 충돌을 피할 수 없겠지만 끝까지 이 원칙을 견지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 : Big Society Capital은 자금집행의 완급 조절을 잘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발렌타인 : 균형을 잡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방금 말씀드린 경우처럼, 어떤 이는 기금 운영에 너무 인색하다고 할 것이고, 또 다른 이는 엉뚱한 곳에 기금을 쓰고 있다고 생각할 겁니다. 아마 이런 비판들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라 봅니다. 결국 우리가 하는 모든 노력들이 사회투자시장을 만들기 위한 과정이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납득시켜야 하겠지요. 시간이 걸리는 일이기 때문에 조급하게 바라봐서는 안 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문 : 일부 언론에서 Big Society Capital은 정부 재정악화로 복지예산을 줄인 사회적 여파를 줄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많던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발렌타인 : 복지 예산 삭감으로 사회서비스가 줄어든 것이 사실이고, 또 이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하지만 이 문제를 단순화하여 Big Society Capital을 그 틈새를 메꾸는 존재로 해석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 프레임의 오류를 바로잡으려고 홍보하고 있는데, 쉽지가 않습니다. 단기 수익을 쫒는 것과 장기투자를 하는 것은 전혀 성격이 다른 일이며 양립될 수도 없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Big Society Capital은 단기적 수익을 추구하는 조직이 아니기 때문에 그 지적은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_1C|1321557898.jpg|width=”460″ height=”215″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Big Society Capital 홈페이지_##]
문 : Big Society Capital은 어떤 목적을 위해 만들어졌나요?

발렌타인 : 시민사회와 제 3섹터 발전을 위해 만들어진 기금입니다. 하지만 사회적기업 등 개별 사회적경제 조직들에게 직접 자금지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투자전문기관(Social Investment Financial Intermediaries)들을 통해 지원하는 방식으로 운영될 예정이기 때문에, 일종의 도매상(wholesaler)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Big Society Capital은 정치조직이 아닙니다. 우리는 자원봉사조직, 사회적기업 연합회, 사회투자 중간지원조직 등 시민사회영역의 다양한 주체들과 파트너십을 유지하면서 함께 일하게 될 겁니다.

문 : 기금 설립 과정에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발렌타인 : 어려움이 많을 거라 예상했지만 비교적 잘 마무리되었습니다. 휴면예금은 정부 돈이기 때문에 영국 기관들에게 지원금을 주려면 유럽연합의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직접 EU 위원회에 출두해서 Big Society Capital을 왜 설립하려고 하는지에 대해 설명해야 했습니다. 위원회 위원들이 기금의 필요성을 대체로 수긍하는 분위기여서 큰 무리 없이 잘 끝났습니다. 다음은 영국 금융 감독기관(Financial Services Authority)의 까다로운 자격 인증요건을 맞추는 것이었는데, 이 역시 예상보다 빨리 마무리되어 금년 1월에 정식 금융기관 인증을 받았습니다.

문 : 사회투자 전문기관들은 어떻게 활동하고 있습니까?

발렌타인 : 10년 전에 사회투자시장 조성을 위한 테스크포스팀(SITF)이 만들어진 이후 비교적 많은 기관들이 생겼지만 (최근 발간된 영국 사회투자시장 보고서에서 확인하셨듯이) 아직까지 규모나 실적 면에서는 구멍가게 수준이라고 생각됩니다. 시장 자체가 작기 때문인데요. 향후 이 시장의 성장 잠재력이 높기 때문에 더 많은 기관들이 만들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사회투자를 중재하는 전문조직을 키우는 것이 저희들이 해야 할 역할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Big Society Capital 운영에 있어서 이들과의 파트너십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문 : 영국 사회투자시장에서 Big Society Capital에게 부여된 역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발렌타인 : 무엇보다 이 시장을 잘 만들고 키우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임무겠지요. 전체 기부시장(Charity market)의 크기에 비하면 사회투자시장은 역사도 짧고 규모도 매우 작습니다. 만일 Big Society Capital이 이 시장에서 군림하려고 한다면 수많은 비판과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겁니다. 영국은 이미 그런 선례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기금의 기금이라는 위치를 잘 지켜나가는 가운데, 다른 사회투자기관들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함께 성장해나가야 한다는 것이 임원진들의 공통된 생각입니다.

문 : Big Society Capital에 대한 국민들의 생각은 어떤가요?

발렌타인 :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Big Society Capital의 존재 자체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영국 전역을 돌면서 이 기금의 의미와 목적에 대해 홍보하는 설명회(Road show)를 진행하는 등 많은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그런데 케머런 총리가 국영방송(BBC)에 출연해 Big Society Capital에 대해 설명한 다음부터 인지도가 급상승했습니다. 공중파의 위력은 대단합니다. 아무리 의미 있고 중요한 일을 한다 하더라고 국민들에게 다가서지 못한다면 소리 없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준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문 : 사회혁신채권(Social Impact Bond)에 대한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발렌타인 : 사회혁신채권은 특별한 사람들을 위한 특별한 프로그램입니다. 아직까지는 어떤 보편적 기준과 법칙을 적용하기 어렵습니다. 사실은 어제 최초의 사회혁신채권 실험이 진행되고 있는 ‘피터버러시’에 다녀왔습니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이해관계자들은 매우 고무되어 있으며, 현재까지는 아주 잘 굴러가고 있습니다. 법원장, 경찰서장, 수감자 대표, 서비스 수행기관 대표가 원형 테이블에 마주 앉아 함께 프로젝트 진행과정을 논의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십시오. 저는 피터버러 프로젝트가 좋은 성과를 만들어낼 것이라 믿습니다. 현재 영국에는 피터버러 사례 외에도 또 다른 두 개의 파일럿 프로그램이 진행 중입니다.

문 : 사회혁신채권의 가장 큰 장점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발렌타인 : 많은 장점이 있지만, 무엇보다 각 영역 간 ‘칸막이(Silos)’를 없앨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취약계층들을 위한 사회서비스 진행과정을 들여다보면, 비슷비슷한 내용의 지원들이 각 해당부서들이 상대방이 무엇을 하는지 아무런 관심도 기울이지 않은 채 따로따로 진행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예산은 낭비되고 성과는 미미한’ 가장 나쁜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지요. 이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여 서로 협력할 수 있는 최적의 방안을 도출한다면 결과는 분명 달라질 겁니다. 사회혁신채권은 새로운 거버넌스의 촉매제 역할을 하게 될 겁니다.

문 : Big Society Capital이 직면한 가장 큰 도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발렌타인 : 비단 저희들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투자자와 투자처 사이의 수급균형이 가장 어렵고 힘든 일이 아닐까 싶네요. 영국에는 사회적 가치와 재무적 성과를 함께 추구하는 투자자그룹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들에게 적합한 투자처를 제공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문제는 지속가능성을 담보할만한 영역 및 사회경제 주체가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개별 조직들의 숫자를 세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들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과 시장을 만드는 것이 해결방법입니다. 계속해서 사회투자 시장을 자극해야 합니다. 이것이 가장 큰 도전입니다. 씨를 뿌려도 자라는 것이 거의 없거나 모두 죽어버리는 조건에서 계속해서 씨를 뿌릴 수 있는 용기와 신념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사회투자시장의 미래를 낙관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다소 길게 걸릴지 모르지만 꽃은 반드시 피게 될 것이라 믿습니다.”

문 : 다른 나라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고 있을 텐데요. 교류는 어떻게 하고 계신가요?

발렌타인 : 어느 나라, 어느 기관과도 함께 협력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요청이 오면 가능한 도움을 드리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저희들 역시 다른 곳에서 배워야 하니까요. 특히 유럽 국가들과의 교류 협력은 중요하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영국에는 법인격을 갖춘 비영리단체를 포함하여 다양한 사회적경제 조직이 존재하지만, 협동조합 기반의 활동은 여타 유럽이 훨씬 더 강력합니다. 이 경험은 우리들이 꼭 배워야 할 소중한 내용입니다. 필요한 사항이 있으시면 언제든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다른 미팅이 잡혀있어서 긴 시간을 내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총총 회의실을 나서는 모습을 지켜보며 인터뷰를 이끌어 준 김정원 객원연구원(희망제작소 사회혁신센터)이 내게 말했다.

“이 나라에는 제 3섹터에 훌륭한 분들이 정말 많은 것 같지 않아요?”

글_ 문진수 (한국사회적금융연구원장 mountainmjs@gmail.com)

* 영국 사회적금융기관 탐방기 연재목록
1) Social Finance Ltd
2) Big Society Capi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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