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아줌마, 앞집 아저씨가 만든 ‘희망세상’

<박원순의 희망탐사 10>

‘희망세상’을 만든 반송사람들

부산의 반송동은 꽤나 유명한 마을이다. 여러 신문이 앞 다퉈 이 마을을 소개했으며, 행자부와 국가균형발전위는 대한민국 지역혁신 박람회를 통해 반송마을을 ‘살기 좋은 마을’의 대표적 사례로 발표하기도 했다. 지난 3월에는 건교부가 추진하는 ‘살고 싶은 시범마을’로 선정됐다.

그러나 반송동은 넉넉하지 않은 마을하다. 집값도 높지 않고 임대아파트들이 밀집해 있다. 그 넉넉지 않은 마을의 구석구석은 그보다 더 값진 넉넉한 인심과 사람들의 밝은 웃음소리가 가득 메운다. 그래서 반송동은 유명한 마을이 됐다.

반송마을의 저력은 높은 집값이나 대단위 공단이 아니라 반송동 주민들로 이뤄진 마을 공동체 ‘희망세상’이다. 전국에 수많은 마을 가운데 하나였던 반송마을을 지역주민들에게 희망을 안겨주고 전국의 마을과는 또 다른 최고의 브랜드 ‘반송마을’을 만들어낸 그들을 찾아 부산에 갔다[##_1C|1132856257.jpg|width=”421″ height=”316″ alt=”?”|▲ 도시에서도 아름다운 커뮤니티를 형성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반송동 사람들. ⓒ희망제작소 _##]어려움에서 나온 진한 애정, 마을을 바꾸다

그들은 달랐다. 눈빛이 달랐고 푸릇한 삶의 향이 그득했다. 희망세상의 5평 사무실을 가득 메운 희망세상 전 회장인 고창권 해운대구 구의원과 김형도 회장, 김혜정 사무국장, 석연실 총무간사, 정화헌 행복한 나눔가게 팀장, 김태성 좋은 아버지모임 기획홍보팀장, 김선미 운영위원 그들이 그랬다. 그리고 그런 그들이 반송마을을 생기 가득한 마을로 바꿨다.

반송마을은 지난 60~70년대 부산시 곳곳에서 철거된 판자집 주민들이 단체로 이주한 마을이다. 소외되고 지역주민 사이에 패배감과 소외감이 팽배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다들 돈 벌어서 이 마을을 뜨려는 꿈을 안고 살았다.
희망세상의 전신인 ‘반송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든 고창권 의원은 9살 때 이곳으로 이사 왔다.

“나 또한 어릴 때 어려운 형편에 이곳에 왔어요. 나중에 의대를 졸업하고 다시 여기에 돌아와 개업해 활동하면서 고향과 다름없는 이곳을 사람들이 뜨길 바라는 마을이 아닌 살고 싶어하는 마을로 바꾸고 싶어졌어요. 몇 사람들이 의기투합을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1998년 만들어진 것이 ‘반송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역설적이게도 다들 어려웠기에, 다들 이곳을 뜨고 싶어 했기에 반송마을에 애정을 가질 수 있었다.

“이곳을 뜨고 싶어 했던 주민들이었다는 것은 그들 속에 ‘왜 우리가 사는 마을은 이럴까’, ‘우리 마을은 달라질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는 거잖아요. 그러니 반송마을에 대해 애정도 더 클 수 있었던 거죠. 지금까지는 그럴 계기가 없었던 거예요. 조금씩 달라지는 마을의 모습을 보면서 ‘아, 우리도 할 수 있구나’ 하는 용기를 다들 얻게 됐어요. 주민들이 점차 탄력을 받았죠.”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우선 마을 주민들의 다양한 소모임이었다. 마을 신문이 발행되는 한편 여러 행사가 벌어져 주민의 화합을 도왔다. 제일 먼저 조직된 소모임이 ‘함께 나눔반’이었는데 노인과 소년소녀가장들을 위해 밑반찬을 만들어주는 봉사모임이었다. 반송마을에 영세민 임대아파트가 집중되어 있어 3000명이 넘는 장애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가장 필요한 일들을, 지역주민들이 먼저 찾아 한 것이다.

어린이들의 교육을 위한 자녀교육반, 영아반도 만들고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 위한 ‘좋은 아버지 모임’도 만들었다.

주민이 모두 볼 수 있고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벽화를 그리기도 했다. 어린이날에는 지역의 아이들을 위한 어린이 잔치도 벌이는데 주민들이 몇만 원씩 낸 돈으로 이뤄지는 일이라 어렵기도 했지만 이제는 지역주민 6만 명 가운데 1만 명이 넘게 참여하는 마을의 큰잔치가 됐다.

옆집 아줌마, 앞집 아저씨가 운영하는 희망세상

‘반송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시작한 지 6년이 넘으면서 반송을 넘어 부산 전역으로 확대해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운영진들도 좋은 모임들이 부산 전체로 확대되면 좋겠다는 판단을 하고 ‘희망세상’이라는 새 이름을 달고 부산 전체로 활동을 확장했다. 함께 하는 지역이 넓어지고 사람들이 많아진 만큼 그들의 활동 또한 더욱 다양해졌다. ‘행복한 나눔가게’와 ‘느티나무 도서관’은 그렇게 해서 탄생했다.
[##_1L|1202117564.jpg|width=”323″ height=”298″ alt=”?”|▲ 반송동 사람들의 생활나눔터가 되고 있는 ‘행복한 나눔가게’. ⓒ희망제작소 _##]사람들이 상시적으로 활동하는 고리를 만들고자 설립한 ‘행복한 나눔가게’는 헌 물건을 기부받아 판매하는 재활용 가게로 수입금은 어린이 지원사업에 쓰고 있다. ‘느티나무 도서관’은 그저 책만 있는 도서관이 아니라 주부들로 구성된 도서팀을 두어, 어린이에게 책을 읽어주거나 학습여행을 함께하는 등의 적극적 활동을 벌인다.
이웃들이 이웃에게 벌이는 행복한 마을을 만들기 위한 따뜻한 활동에 힘입어 희망세상의 회원도 늘어났다.

김형도 회장은 “회원도 적고 회비도 들쑥날쑥 했는데 지금은 200여 명의 회원들이 정기적으로 회비를 내고 있어요. 많지 않은 숫자지만 결코 적지 않지요.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그 덕에 전에는 상근 주부들에게 전혀 지원을 못했는데 요즘은 반찬값이라도 주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사무국에는 사무국장을 포함하여 상근자가 3명이 있다. 모두 이 지역에 사는 주부들이다. 17명의 운영위원도 길거리에서 만나 인사를 나누는 지역주민들이다.

“저는 빵집 아저씨였어요. 너무 멋진 일 아닌가요? 런닝에 슬리퍼를 신고 마을 앞에서 인사 나누던 옆집 아저씨와 앞집 아줌마, 뒷집 총각이 마을을 새롭게 바꾸는 이 기적 같은 일을 진행할 회장이 될 수 있어요.”
[##_1R|1306313439.jpg|width=”255″ height=”340″ alt=”?”|▲ 희망세상 회장 김형도 씨. ⓒ희망제작소 _##] ‘빵집아저씨’ 김형도 씨의 말에 자부심이 가득 묻어난다. 이유 있는 자부심이다. 실제로 지역에 뿌리를 받고 살아가던 평범한 아줌마, 아저씨들이 학습과 실천을 통해 지역운동가가 되고 있다. 북한 핵문제는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FTA는 무엇인지, 간부가 되려면 어떤 품성을 가져야 하는지 등을 공부한다. 소모임이나 단체운영은 어떻게 하는지, 지역주민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하는 등의 방법도 배운다.

지난 10년을 돌아보며, 앞으로의 10년을 그리다

희망세상이 탄생한 지 10년이 되어간다. 지난 10년의 성과도 있고 앞으로의 10년을 위한 각오도 있다.

김형도 회장은 “주민자치위원회의 이름으로 ‘청소년선도자율방범단’을 운영하면서 마을 순찰을 도는 등의 활동을 벌이는데 실제로 청소년 범죄율이 줄었어요. ‘소년분류심사원’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입소 청소년이 절반으로 줄었다고 하더라고요. 믿기세요? 다른 지역에서도 그런 방범단을 운영하겠지만 저희는 다른 활동과 아울러서 하니깐 아무래도 받아들이는 쪽에서도 신뢰를 갖고 우리를 바라보는 것 같아요”라고 설명했다.

이런 수치적 변화와 더불어 반송마을을 다루고 있는 언론의 보도들, 중앙정부에서의 다양한 지원책과 시범마을 등으로의 선정 등은 그들의 지난 10년의 성과를 말해주는 것이다.

성과의 크기만큼 앞으로의 각오도 단단하다.

교육인적자원부가 벌이는 ‘교육복지투자우선지역지원사업’의 반송지역 프로젝트 조정을 맡고 있는 이승훈 씨는 국가의 지원을 받아 반송지역학교를 새롭게 바꾸는 일을 하고 있다. 건물을 짓거나 도로를 놓는 것보다는 실질적으로 아이들을 지원하고자 활동을 벌이고 있는데 여기에 희망세상의 ‘희망의 사다리운동’이 함께 한다.

‘희망의 사다리운동’은 밥을 굶거나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지 않거나 사랑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없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가난은 나라도 구제 못 한다고 하는 마당에 모든 아이가 사랑받게 한다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인지 의문이 먼저 들지만, 그래도 희망세상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쓸데없는 나무토막도 연결되면 훌륭한 사다리가 되잖아요.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지역과 지역이 만나면 불가능한 일은 없지 않을까요? 교육부의 지원은 5년이 지나면 끝나는데 벌써 4년차가 됐어요. 하지만 교육복지사업은 계속되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희망의 사다리운동을 생각하게 됐어요.” 김형도 회장의 설명이다.

“우선은 학교를 넘어서서 지역교육공동체를 만들려고 해요. 마을 전체가 하나의 학교, 마을 사람 모두가 교육자가 되는 거죠. 이렇게 하면 복지정책과 교육정책을 하나로 묶어낼 수 있어요. 또 교육부 사업으로 인한 성과를 지속시키고 자생력을 기르기 위해 별도의 회원체계를 운영하는 데에 단 몇 천 원씩이라도 내는 사람들이 300여 명으로 늘어났어요. 정부의 예산은 경직성이 있지만 이렇게 모여진 돈은 가정과 얽힌 복잡한 문제로 둘러싸인 어린이들을 유동적으로 지원하는 데 효과적이죠. 지역사회가 학교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해 왔고, 앞으로도 이 사업에 주력하고자 해요.”
[##_1L|1337483688.jpg|width=”381″ height=”286″ alt=”?”|▲느티나무 도서관. ⓒ희망제작소 _##]자랑스러운 명함, “희망세상의 회원입니다.”

희망세상은 이렇게 지역사회를 바꿔나가고 있지만 그곳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먼저 바꿔놓았다. 사람을 바꾸는 일, 진정성이 없다면 결코 이룰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김선미 운영위원은 희망세상을 두고 ‘나의 종교’라고 표현한다.

“평범한 주부였죠. 그런데 희망세상을 만들면서 많이 달라졌어요. 풍물을 배웠고, 선거운동도 했고, 명함도 생겼어요. 마을신문의 편집부 일을 하는데 사진도 찍고 글을 쓰기도 해요. 하지만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이 절을 찾아 또는 교회를 찾아 잘못을 반성하고 앞날의 각오를 다지듯 제게 희망세상이 그래요. 일을 하다 보니 봉사가 무엇인지 알겠어요. 작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장이 내 앞에 열려 있으니 모든 일에 감사한 마음이 절로 들고요. 여기에서 일하면서 어엿하게 성장한 저를 발견합니다.”

김선미 씨가 가지고 있다는 명함은 그럴싸한 직책이 쓰여 있는 그렇고 그런 명함이 아니다. “희망세상의 회원입니다”라는 자부심 넘치는 명함이다.

사무실을 나와 그들이 해 온 일들을 곳곳을 다니면서 소개받았다. 동네 주변은 주민들이 직접 만든 벽화로 갤러리가 따로 없었고, 아파트 뒤 작은 언덕은 나무와 야생화가 가꿔진 아이들의 학습장이 되었다. 그냥 스쳐지나갈 만한 구석구석에도 그들이 함께 한 값진 경험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들의 활동 속에서 제일 중심은 아이들에 대한 교육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마을 주민 모두가 공감하며, 활동가들의 다양한 활동의 중심을 지나는 궤는 ‘아이들에 대한 교육’이었다. 마치 지역 활동의 동력이 바로 가족에게 있었듯이 말이다[##_1C|1053184339.jpg|width=”438″ height=”329″ alt=”?”|▲ 반송동 사람들. 뒷줄 왼쪽부터 김태성 고창권 김형도 (필자를 건너 뛰어) 이승훈 정화언 씨. 그리고 앞줄 왼쪽부터 김정숙 김혜정 송정숙 김선미 석연실 씨. ⓒ희망제작소 _##]면담일시 -2006년 10월 17일 오전 11시

면담장소 – 부산시 해운대구 반송2동 77번지

면담인사 – 고창권(해운대구의회 의원. 전 회장.의사) 김형도(희망세상 회장) 김혜정(희망세상 사무국장) 이승훈(교육복지투자우선지역지원사업 반송지역프로젝트 조정자) 석연실(희망세상 사무국 총무간사) 정화언(희망세상 행복한나눔가게 팀장) 김태성(희망세상 좋은아버지모임 기획홍보팀장) 김선미(희망세상 운영위원.주부)

Comments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관련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