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광모] 예산은 정말 ‘국민의 돈’인가

정광모의 국회를 디자인하자

‘쌀 소득보전 직불금’ 부정 수령이 한국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다. 쌀은 수천 년 동안 우리사회의 뿌리이자 문화 기반이었다. 민족의 생존 수단이자 문화의 토대였던 쌀은 한국사회가 압축성장하면서 상공업에 밀려 천대받아 왔다. 마침내 부동산 투자 바람이 불자 농지는 좋은 투자대상으로 전락하였고 부재지주들은 농사를 짓지 않으면서 직불금을 받아갔다. 감사원 발표에 따르면 그렇게 실경작자가 아니면서 돈을 부정수령한 사람이 2006년 28만 명에 1683억 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기념비적인 예산 낭비 사건


이 거액은 정부가 농민들의 소득을 보전하기 위해 만든 예산에서 지출되었다. 이렇게 부정한 돈을 수령한 사람들 중 고위공무원과 국회의원이 여러 명이고 4만 6000명(가구원 기준)에 달하는 공무원과 공기업 임직원들이 들어 있다고 한다. 직불금이 이들에게 큰돈은 아닐 수도 있겠지만 아마도 8년 동안 농사를 손수 지어야 감면받는 양도소득세 때문에 자경사실을 확인받는 용도로 직불금을 받기도 했을 것이다.

여러 가지 관점에서 이 사건을 바라볼 수 있겠지만, 예산이 ‘눈 먼 돈’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단적인 사례다. 직불금 법규와 예산 관리가 얼마나 허술했으면 이렇게 많은 사람이 부정수령을 했단 말인가. 직불금 신청을 농지소유자의 주소지가 아니라 농지 소재지 관청에 하도록만 했어도 이렇게 많은 돈이 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튼 한국 정부의 예산 관리가 얼마나 무능한지, 한국 공직자들의 양심이 얼마나 무딘지를 만천하에 알린 기념비적인 사건이라 하겠다.


국회 결산은 통과의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불과 몇 주 전에 한 2007년 결산에서 이 쌀 직불금 집행 문제를 다뤘다.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2008년 9월 펴낸 ‘2007년도 결산 검토보고(부처별 Ⅱ)’ 자료를 보면 “쌀 직불금은 실제 경작자가 아닌 지주가 받는 사례가 있거나 지급대상 이외의 농지에 직불금이 신청되는 등 농업예산이 비효율적으로 사용된 사례가 있는 바, 실경작자와 지급대상 농지에 예산이 지원되도록 대응책 마련이 필요함”이라고 집행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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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국회예결특위 자료가 밝힌 쌀 직불금 부당신청 사례 적발현황을 살펴보면 2006년도 부당신고센터 접수 건은 처리건수는 29건 부당신청 금액은 890만 원에 불과하다. 농림부가 부당 신청했다고 자체 적발한 현황도 2006년 791건에 금액은 6816 만 원이다. 만약 예결특위 자료가 사실이라면 이는 소소한 집행문제로 쌀 직불금 문제가 이처럼 한국 사회를 강타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예결특위 차원의 정확한 조사나 추적 없이 농림부가 밝힌 자료를 그대로 옮겼기 때문이다.

아무리 국회가 언론이나 지역구민이 주목하지 않는 나라 살림 결산을 등한시한다 하지만 이렇게 감사원 감사가 1년 전에 끝난 사건까지 지적하지 못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그래서 국회 결산은 중앙부처에게는 그냥 스쳐 지나가는 통과의례일 뿐이다.


273조 예산은 삼성전자, 포스코, 현대자동차 매출액의 2.3배


정부가 발표한 2009년도 예산은 273조다. 273이란 숫자 뒤에 0이 12개 붙는 어마어마한 돈이라 감이 잡히지 않을 정도다. 이 예산을 이명박 정부는 ‘일자리 창출을 위한 경제 재도약 예산’이란 이름으로 편성하였다. 기획재정부가 낸 홍보책자를 보면 2009년 예산안은 12대 과제에 중점을 두었는데 첫째가 ‘일자리 창출을 위한 경제 활력 제고’다.

2007년도 기준 우리나라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의 매출액이 63조, 포스코는 22조, 현대자동차는 30조로 합계 115조이다. 이들 대기업은 수 백 개의 하청업체와 협력업체를 거느리고 우리 사회의 고용과 산업에 큰 영향을 미친다. 2009년도 우리나라 예산은 이들 3개 대기업의 매출액을 합한 돈 보다 2.3배 더 크니 그 위력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예산을 잘 쓰면 ‘경제 재도약’을 위한 귀중한 종자돈으로 쓸 수 있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도 이 사실을 잘 알고 대통령직인수위 시절부터 첫 번째 국정 과제로 ‘예산 20조 절감’사업을 내세웠다. 하지만 이 어마어마한 돈 창고에 ‘쌀 소득보전 직불금’ 같은 쥐구멍들이 수없이 뚫려 있을 것이다. 정부예산으로 사업을 하는 수많은 업체들과 발주 공무원들 사이에 커넥션이 없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는가? 이번 사건도 감사원이 이미 사실을 조사해놓고도 발표하지 않으려 노력하다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회 등의 자료요청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밝힌 내용이 아닌가?


예산 배정과 심사 ‘그들만의 리그’


국민수임기관인 국회는 예산과 결산 심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시스템에 갇혀 있다. 정부가 법정제출기한인 10월 2일 273조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의안과에만 냈다. 기획재정부의 예산홍보책자가 국회에 먼저 배포되고 며칠 지나서 의원실에 예산 서류가 들어왔지만 국정감사 준비에 바쁜 의원실과 보좌관은 두툼한 서류를 들춰볼 엄두도 내지 못한다.

10월 말 국감이 끝난 후에 부처에서 예산사업설명을 하지만 시간에 쫓긴 의원실에서 각목명세서까지 꼼꼼하게 따져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정당의 정책위원회에서 개략적인 심사 방향을 정하지만 충분하지 않고 결국 많은 의원실은 예산정책처 자료와 전문위원 검토보고서에 기대어 예산 검토를 하게 된다. 그런 국회 예산 검토 시스템에서는 이번에 감사원이 밝힌 ‘쌀 소득보전 직불금’과 같은 대어를 낚는 건 어림없다. 결국 예산심사는 행정부의 뜻대로 흘러가고 몇 가지 상징적인 사업 예산 삭감 조치로 끝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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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감사원은 국민의 종자돈을 지키기에 충분한 파수꾼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감사원이 사회에 미칠 파장을 우려해 직불금 조사결과를 1년 3개월이나 공개하지 않고 있었던 이번 사건을 보라. 왜 국민은 감사원이 2007년 7월 끝낸 ‘쌀소득 등 보전 직접지불제도 운용실태’ 감사결과 처분요구서를 2008년 10월에 와서 봐야 하는가? 아니 이것도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른다. 이 사건이 감사원이 농림부에 감사결과를 통보하는 것으로 묻혀버릴 수 있었지 않은가? 이점이 바로 행정부의 정보공개가 절실한 이유다.

지금 행정부의 예산 관련 정보 공개 실태는 형편없다. 정부 부처는 2008년 4조 9000억 추경예산안 내역도 홈페이지에 올리지 않았고 2009년도 ‘예산 사업별 설명서’와 ‘각목명세서’ ‘2009년 성과계획서’ 등 예산관련 정보는 홈페이지를 아무리 뒤져도 찾을 수 없다. 홈페이지에는 단지 그 예산으로 부처가 이렇게 일을 잘하고 나라 살림이 좋아진다는 홍보자료만 가득하다. 결국 모든 부처는 예산을 기획하고 배정할 때 국민이 참여하지 못하고 흔한 자문위원회 조차 없는 ‘그들만의 리그’에서 정하고 국민은 홍보대상 일뿐이다.


정보공개로 국민 ‘종자돈’을 지켜야


예산자료는 납세자인 국민 생활과 관련한 중요한 문서니 가능하면 국민 모두가 볼 수 있게 홈페이지에 올리는 방법으로 공개해야 한다. 정부부처가 하지 않으면 국회라도 정부가 제출한 예산 결산 자료를 모두 공개해야 한다. 책으로 만들어 국회에 배포한 공개 자료이니 굳이 공들여 만들지 않아도 된다. 그것만이라도 정보공개가 된다면 국민의 돈을 국민도 모르게 국회 예산 심의가 마무리되는 상황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종자돈은 잘만 굴리면 무럭무럭 불어난다. 간단하게 계산해보면 273조 예산의 절반을 의무지출 비용으로 보더라도 절반인 136조 5000억의 10%를 절약하면, 아니 5%만 아껴도 6조 8250억이다. 한 예를 들면 행정안전부는 2008년 10월 도로교통 안전시설물을 표본조사하니 도로 시선유도봉을 과다 설치하는 등의 문제만 고쳐도 연 130억 예산을 아낄 수 있다고 밝혔다.

집안 살림을 하는 주부가 만 원을 쓸 때 5%인 500원은 어렵지 않게 아낄 수 있다. 이명박 정부 5년을 계산하면 34조 1250억이다. 대학생 학자금대출은 2008년의 2907억 원에서 2009년 3234억 원으로 327억 원이 늘었다. 우리의 대학진학률은 1980년 27%에서 2007년 82%로 크게 늘어 세계 최고 수준이다.

34조면 국민 최대의 민생고인 대학생 등록금 문제를 몇 번은 해결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국민과 전문가를 상대로 34조로 할 수 있는 ‘민생’과 ‘국가 경쟁력 강화’ 사업 공모를 해보면 훌륭한 치적이 될 것이다.
이제 비밀주의와 적당주의 배정과 심사에서 벗어나 예산을 알뜰한 국민 종자돈으로 만들기 위해 발상의 전환을 할 때다.


* 이 칼럼은 여의도통신에 함께 게재합니다.


[##_1L|1149224739.jpg|width=”120″ height=”91″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_##] 정광모는 부산에서 법률사무소 사무장으로 10여년 일하며 이혼 소송을 많이 겪었다. 아이까지 낳은 부부라도 헤어질 때면 원수로 변하는 모습을 보고 인생무상을 절감했다.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일하며 국록을 축내다 미안한 마음에 『또 파? 눈 먼 돈 대한민국 예산』이란 예산비평서를 냈다. 희망제작소에서 공공재정 연구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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