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 정민규 기자(hello21) / 9월 21일자

”?”올해도 태풍은 한반도를 그냥 두지 않았다. 제11호 태풍 나리가 훑고 지나간 제주도는 그야 말로 아수라장이 됐다. 잠정집계된 이번 태풍의 피해는 사망실종자 13명에 피해액만 650억원을 넘어섰다. 농작물 침수 등의 피해를 포함한다면 1000억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러한 피해의 1차적 원인은 불과 몇 시간 만에 쏟아져 내린 폭우에 있다. 하지만 집중호우만이 이번 피해를 키운 건 아니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번 태풍 피해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것은 하천 복개. 하천 범람 피해가 컸던 한천과 산지천, 병문천 등은 모두 복개 부지 인근에 위치하고 있다. 복개로 인해 생긴 교각들이 물 흐름을 막아 범람을 키웠다는 지적이다.

이와 더불어 산간 지역의 무분별한 개발 역시 자연적인 물 흐름을 방해한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화산섬인 제주도는 빗물이 화산암 지질인 토양으로 급격히 스며들어감으로써 침수 피해를 막아왔다. 하지만 최근 한라산 산간지대까지 들어서고 있는 골프장과 관광시설 등이 빗물이 스며들 화산지대를 틀어막아 버리면서 불어난 물이 그대로 도심지로 밀어닥쳤다는 것이다.

제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18일 성명을 통해 이번 비 피해가 “하천 중간 부분을 복개하면서 물의 흐름을 차단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또 제주 경실련 측은 “마구잡이식 복개공사를 시행한 제주도 등 행정당국에 분명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제주 경실련 측은 하천 복개 사업을 시행한 제주도를 상대로 피해보상을 청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비 피해가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번에 피해를 입은 제주도내 8개 하천은 또다시 이런 비가 내린 다면 속수무책으로 범람할 수 밖에 없는 구조적인 결함을 안고 있다. 연이어 상륙할 태풍에 엎친데덮친격 식의 피해가 재발할 가능성이 충분한 셈이다.

”?”제주도만의 문제가 아니다

비단 제주도만이 이러한 구조적인 결함을 안고 있는 것은 아니다. 급속한 개발이 가져다 준 부작용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부산과 인접한 경남 김해시 장유면 일대는 지금도 여기저기서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하류의 김해 평야 일대는 신도시가 조성되고 난 뒤 전에 없는 피해를 입고 있다.

지역 주민 김아무개씨는 “고소득 작물을 키워보고 싶어도 매년 물에 잠기니 시설은 만들 엄두를 못 내고 그나마 물에 강한 벼농사를 짓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다른 지역은 자체 브랜드를 만들어 판로를 개척해 나가는데 우리는 미질이 안 좋아 사먹지를 않으니 판로 개척 조차 쉽지 않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불과 100mm의 비만 와도 논밭이 그대로 물 속에 잠겨버린다는 것이다. 인근의 600만평 가량의 땅이 이런 식으로 거의 매년 잠기다시피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원인을 지표로 스며들지 못한 빗물이 그대로 낙동강으로 쏟아져 들어가면서 생기는 문제라고 지적한다.

희망제작소 재난관리연구소 김겸훈 부소장 (한남대 교수)은 “낙동강 삼각주는 원래 범람과 퇴적으로 형성된 곳이지만 신도시의 형성으로 강의 용량을 벗어난 물이 쏟아져 들어오고 도로가 물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으면서 침수가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 부소장은 “개발 논리가 앞장서는 현실태를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며 “신도시가 책임비용을 느껴야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경북 성주의 이야기도 이와 다르지 않다. 전국적인 참외 생산지로 이름 높은 성주는 위성사진에서도 살펴볼 수 있듯이 들어설 수 있는 거의 모든 곳에 비닐하우스가 들어차있다. 문제는 이러한 비닐하우스로 인해 스며들지 못한 빗물의 대부분이 하천으로 쏟아져 들어온다는 데 있다.

이 때문에 저지대 가구들은 거의 해마다 침수 피해를 입고 있다. 취재를 하러 온 기자에게 마을 주민이 제일 먼저 던진 말이 “우째 올해는 물 안 들어오건는교?(들어오겠냐)”였다. 침수가 지속되다보니 가옥들의 구조도 물이 들어오지 못하게 지면은 높여가지만 천장은 높일 수가 없어 키 큰 사람은 허리를 구부리고 서야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피해는 계속되고 있지만 난개발에 대한 대책은 이제 걸음마 수준이다. 토지공사는 지난달에야 처음으로 빗물의 저류기능과 물흐름 환경을 대폭 개선한 ‘방재(防災) 신도시’를 파주 운정 신도시에 처음 적용키로 했다. 이제야 팽창만을 내다보던 신도시들의 수방시설이 갖추어지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미 들어선 신도시 등에 대한 지자체의 생각은 안일하기만 하다. 취재 중 만난 한 공무원의 입을 통해 그들의 속사정을 알 수 있었다. 이 공무원은 “가시적인 성과가 드러나지 않는 방재 관련 예산은 뒷전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지자체장 입장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재난에 돈을 쓰기 보다는 일어난 재난 현장을 찾아가 같이 삽질 한번 하고 위로금을 전달하는 것이 더 좋은 이미지를 쌓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귀띔했다.

희망제작소 재난관리연구소 이재은 소장(충북대 교수)은 이러한 지자체의 재난 대책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 소장은 “지역별 위험 지역에 대한 재난대책이 세워져야하는데 예산 편성이 제대로 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교수는 “방재 예산에 인색한 지금의 예산 편성을 고쳐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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